정확한 도달

고아성 BIFF
블라우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고아성 BIFF
시스루 블라우스 문탠(Moontan), 버건디 재킷과 스커트 모두 푸시버튼(pushBUTTON), 귀고리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반지 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고아성 BIFF
수트 제이백 쿠튀르(Jaybaek Couture), 화이트 앵클 알렉시스앤(Alexis N), 반지 마르스봄(MARsboM), 귀고리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유관순 열사’ 하면 떠오르는 단 하나의 명료한 이미지가 있다. 우리가 오래도록 봐온 흑백사진 속 서늘한 표정의 한 여성. <항거: 유관순 이야기>(이하 <항거>)의 배우 고아성 역시 그 아득한 한 장의 이미지에서 시작했다. 고아성은 유관순 열사의 지척까지 정확히 도달하겠다는 마음으로 적막 속 홀로 선 그에게 불을 밝히고 숨을 불어넣으며 볼 수 없는 것을 보고자 했으며, 용기와 신념을 지닌 자가 어떻게 초월적 존재가 되는지 그 처절한 여정에 흠뻑 잠기고자 했다. 그 엄격한 암중모색의 결과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유관순 열사에 대한 몇 개의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됐다. 형무소 내 만세 운동을 주도한 그를 색출하러 온 일본 헌병을 향하던 눈, 고문실에서 끌려 나올 때의 곧은 발끝,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숨을 거두는 얼굴은 두 계절이 지난 지금까지도 형형하다. 개봉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는 고아성을 만나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궁극의 책임감을 떠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에 대해, 그 가늠하기 어려운 용기와 고독에 대해.

고아성 BIFF
블라우스 문탠(Moontan), 실크 뷔스티에와 팬츠 모두 문초이(Moon Choi), 귀고리 더 센토르(The Centaur).
고아성 BIFF
화이트 블라우스 데일리미러(Daily Mirror), 레드 아우터와 장갑 모두 기준(Kijun), 이어 커프 마르스봄(MARsboM).
고아성 BIFF
가죽 점프수트 이로(Iro), 장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인터뷰를 앞두고 <항거>를 다시 봤습니다. 새삼 배우 고아성이 유관순이라는 인물을 사랑했겠구나, 사랑하는 만큼 두려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사랑했던 시간과 무거웠던 시간, 그 모든 걸 다 겪고 이겨냈던 것이… 다 지나고 나니 요즘 기분이 이상해요. 아직 새 작품을 시작하지 않아서 더 많이 남아 있는 것 같고요. 이제야 비로소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빛이나 표정, 고개를 드는 방식, 발끝의 움직임까지 인물에 극도로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습니다. 실존 인물인 만큼 접근 방식이 달라야 했을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접근 방식은 달라야겠지만 <항거>는 제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간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어서 매일 도 닦듯 마음을 다잡아야 했어요. 마음가짐에 가장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증도 참고했죠? 인상 깊은 것이 있었나요? 유관순 열사와 함께 서대문 형무소 8호실에 수감됐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남긴 증언 중에 ‘짓궂을 정도로 장난기가 많았다’는 기록이 있어요.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고정적이잖아요. 한 장의 증명사진처럼 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그 증언을 접하고 제가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말과 행동을 하는 동적인 이미지의 사람으로.

2년 전 <마리끌레르>와 인터뷰하면서 ‘주체적인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고 답했죠. 그리고 그사이 주체적 캐릭터의 정점이라 할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궁극의 책임감을 떠안은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크게 와닿는 것 같아요. 다르덴 형제가 감독한 <로제타>의 로제타나 자비에 돌란의 <마미> 속 엄마처럼 책임감으로 스스로 큰 짐을 진 이들의 치달음에 관한 이야기에 유독 감정이입이 되는 것 같아요. 주체적인 캐릭터를 좋아해왔는데 이‘ 제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데 막상 연기를 하면서 느낀 건 그 전에는 내가 유관순 열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감히 닿을 수 없어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면 <항거>를 통해 그분의 의지와 바람, 희망을 조금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경험이었어요.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의 모습은요? 책임감을 진 여성들을 사랑하지만 덜어낼 수도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고단하고 외로운 일이잖아요. 모든 것을 다 떠안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도 그렇고,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고요.

<항거> 속 유관순 열사는 인간적 두려움, 스스로에 대한 의심 속에서도 나약함을 감추지 않으며 자기를 단련하는 사람이죠. 그런 점에서 오히려 더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같은 지점에서 강인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감독님이 쓴 어떤 글을 보면 체 게바라 등 역사 속 지도자들이 공통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지금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었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보면서 유관순 열사 역시 형무소 안에서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지내며 더 큰 초월성을 얻게 됐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도자의 진정한 면모에 대해. 독단적이거나 독립적인 결정권자가 아니라 자신의 약한 모습도 보여주면서 스스로의 힘을 쌓아가는 사람이라고요.

고아성이 생각하는 ‘강함’이란 무엇인가요? 며칠 전 박완서 작가의 소설집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을 읽었어요.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높은 보직의 공무원이 된 주인공이 보잘것없던 때 다니던 포장마차에 다시 간 이야기가 있어요. 그가 금의환향한 듯한 우월감을 가지고 찾은 그곳에서 옆자리에 앉은 허름한 행색의 동년배에게 철저히 패배해요. 허름한 청년에 대해 ‘그 사람은 단 하나의 부분도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었다’라는 뉘앙스로 묘사한 구절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 같아요. 그렇다면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이 타의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타의의 간섭 없이 자의와 신념으로 선 사람…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100% 그렇게 되지는 못할 것 같아요. 배우가 100%의 자의로 있을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고, 제가 이렇게 교육받은 사람이기도 해서. 동경하며 조금이라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봐요.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에서 20대 중·후반부터는 그래도 확고한 가치관이 생긴 것 같아요. 하나의 기준은 있어요. 어떤 선택을 할 때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가치관에 부합하는 일일까’ 하는 생각은 끊임없이 하는 것 같아요.

기준을 세우고 이를 유지하기에 배우는 외부 평가에 자유로울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성 배우에 대해서는 예쁘다거나 예쁘지 않다거나 매력 있다거나 매력 없다거나 하는 평가가 숨 쉬듯 끊임없이 이뤄지는 곳이죠. 이런 평가들이 본인을 흔들기도 했나요? 다행히 예쁘다, 예쁘지 않다는 개념보다는 자연스러운가, 시네마틱 한가 하는 기준이 제겐 더 중요했어요. 영화에서 영화적으로 무척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런 아름다움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미적 기준보다 먼저 다가왔어요. 이에 맞춰 살고 싶었고요. 예를 들어 연기를 할 때 빛나는 배우들이 있잖아요. 딱 그 인물로 보일 때 전해지는 매력들이 어떤 외적 요인보다 더 중요했어요. 그래서 예쁘다거나 예쁘지 않다는 평가에 크게 개의치 않아요.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해왔지만 외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에 자유로울 수 있는 건 큰 능력이자 행운이죠. 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주변에 좋은 이야기를
해주는 어른도 많았고요. 제인 캠피온 감독의 <내 책상 위의 천사>에 자넷 프레임이라는, 너무나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가 나와요. 저는 그보다 예쁜 사
람을 본 적 없어요. 그 영화가 이 기준을 세우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죠.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일기 잘 썼을 때. 글을 쓰는 도중에 정확한 표현을 찾았을 때 제 자신이 더없이 예쁘고 멋있어요.(웃음)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 가장 쾌감을 느껴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연기에서도 강하게 발현되죠? 그렇죠.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 늘 있는 것 같아요. 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도 비슷한 욕망
을 기저로 하는 직업을 선택했을 것 같아요.

지금 고아성의 가장 큰 욕망은요? 표현하는 것. 멋있는 일을 남기는 것.

생활인으로서 믿는 나의 모습이 있다면요? 모르겠어요. <항거> 이후로 촬영을 안 하고 생활인으로 지내는데 요즘에는 제 단점만 떠올라요. 배우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저는 그다지 말할 것이 없어요. 한데 그런 생각은 들어요. 내 결점을 바꿀 수는 없다, 그저 이 결점의 방향을 조금 좋은 쪽으로 틀어야지 완전히 없애거나 고칠 수는 없다고요.

결점을 곱씹는 건 좀 의외예요. 제가 그렇게 자신 있어 보여요?(웃음)

지금까지 연기해온 캐릭터들이 덧입혀지면서 고아성 하면 자동적으로 확신에 찬 단단한 모습을 떠올려서 그런 것 같아요. 농담을 줄이려고 해요. 농담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아서 왜 그 정도까지 농담을 했을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명상을 하지 않는 이상 고쳐지지는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스스로 큰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 이런 사소한 버릇은 고쳐지지 않고, 결국 내가 더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어요.

결국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문제잖아요. 이 점에서 한 개인으로서 고아성과 배우 고아성의 충돌도 있어요? 네. 대외적으로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하는 편이에요. 배우로서 힘든 이야기는 안 하는 것이 옳은 것 같아요. 제게 맞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작품 위주로 활동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작품에녹여내는 것이 개인적인 해소 방법이기도 해요. 그래서 충돌이 있을 때는 다음 작품에 이런 점을 넣어봐야지 하고 해결하는 편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  한 작품을 할 때 두세 가지 중심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이 잘 느낄 수 있는, 잘 전달되는 하나의 주제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 중심은 저만 알고 행하려고 해요. 유관순 열사의 경우 사고하는 사람, 의지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고요. 나머지 두 가지 중심은 말 안 할 거예요.(웃음)

자기만의 즐거움이 있네요. 어떻게 보면 혼자 노는 걸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찾는 직업적인 재미가 커요. 배우뿐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다 비슷할 것 같아요. 다만 배우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주어진 인물에 자기 경험을 최대한 담아내는 사람이니까 100% 창작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이런 재미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항거>를 보내며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단 하나의 장면이 있다면요?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떠오른 몇몇 장면이 있어요. 포스터에도 등장한 장면이에요. 용기를 내서 옥중 만세 운동을 벌이고 마음속으로 그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하던 차에 일본 헌병이 수감실로 쳐들어오던 때의 표정을 두고 ‘그래, 나다!’ 하는 듯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마치 속내를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어요. 혼자만 알고 있는 어떤 것을 생각하면 딱 그 장면이 떠올라요.

고아성 BIFF
재킷 제이백 쿠튀르(Jaybaek Couture), 반지 마르스봄(MARsboM), 이어링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존재하기를 선택함 #백현주

BIFF 백현주
블랙 레더 재킷과 안에 입은 니트 톱 모두 자라(ZARA), 데님 팬츠 문탠(Moontan), 메탈 오브제 장식 로퍼 마이클 마이클 코어스(MICHAEL Michael Kors).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연극 <비평가>

배우 백현주

극단 한강에서 연극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연극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 사건이 있었나? 고등학교 때 성당을 다녔는데, 거기서 한 성탄절 연극이 처음이었다. 그때 담당 교사가 꽤 의욕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교의 연극 동아리 멤버였던 것 같다. 성탄절이라고 굳이 마구간 배경으로 예수님 나오는 극을 해야 하냐면서 <방황하는 별들>이라는 작품을 하자고 하더라. 처음에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무대에 오르게 됐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다른 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데, 커튼콜의 기억만 선명했다. 공연이 다 끝나고 조명이 밝게 비춰지는데 내면에서 알 수 없는 뜨거움이 올라왔다. 이걸 한 번만 더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달라진 게 없었다. 잠깐 배우를 꿈꾸긴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연영과를 지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한 친구가 연극반에 놀러 가자며 날 이끌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맡았고, 못 이기는 척 또다시 연극을 시작했다. 엄마도 좋아하진 않으셨지만 대학 생활에서 한 번쯤 경험하는 건 나쁘지 않겠다며 허락해주셨는데, 그 후로 지금까지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웃음)

그때부터 배우의 길을 걸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건가? 그건 2학년 때부터였다. 1학년 때는 ‘한 번만 더’라는 생각이었다. 2학년 때 선배가 직접 쓰고 연출한 작품을 한 적이 있다. 한 가족 이야기였는데, 작품 속에 나오는 순간과 비슷한 상황을 우연히 집에서 맞닥뜨린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연습한 대사를 내뱉었는데, 그때 느꼈던 것 같다. 연기를 좀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그리고 대학로에 나와 연기를 한 지 벌써 27년이 됐다.

그렇게 배우가 되어 연극 무대에 오른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연극을 하면서 커튼콜의 전율을 느끼고 있나? 이제는 그런 순간들이 훨씬 더 이르게 찾아온다.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리허설 중에, 무대에서도. 사실 이제는 그런 뜨거움이 없어도 할 순 있다. 직업이란 게 그렇지 않나. 오랜 숙련 과정이 있으니까 그냥도 가능하지만, 여전히 그런 뜨거움을 느끼는 순간이 좋다. 그래서 연극이라는 장르를 못 놓는 것 같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대본을 받았을 때 그런 느낌이 나면 좋다.

지금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연기 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세 가지 매체를 오가며 연기를 하는 건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매번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는 이유가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다 잘 몰라서다. 처음 영화를 제안받을 때만 해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선배가 영화를 해보라고 추천했는데 단번에 안 한다고 했다. 아마 연극이 아닌 다른 매체에 대해서는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선배가 네 생각이 맞는지 일단 해본 다음 다시 생각해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해보니까 너무 다르더라. 연극을 할 때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클로즈업 신이 되기도 하고, 풀 숏이 되기도 했는데 영화는 그게 내 선택이 아니었다. 이게 뭐지? 뭔가 재미가 덜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그때부터 영화를 알아가고 싶어서 1년 반 정도 단편을 했다. 드라마도 그렇게 강력한 의지로 시작한 건 아니다. 어느 날 캐스팅 디렉터가 ‘혹시 드라마 할 생각 없어요?’라고 물었고, 그 작품이 <송곳>이었다. 그렇게 지금은 연극과 영화, 드라마 모두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완벽히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없다. 어디서든 그저 나는 연기를 할 뿐이다.

지금까지 해온 작품 중 가장 내 것이다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 글쎄.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나한테 그렇게 얘기할 만한 작품이 있나? 반대로 그게 아닌 작품이 있나? 20대 때는 어떤 캐릭터를 맡으면 그 사람이 되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그게 연기인 줄 알았다. 어떻게든 캐릭터와 비슷하게 생각하려고 기를 쓰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마 20대인 나에게 물어봤으면, 모든 작품이라고 답했을 거다. 그런데 30대는 좀 달랐다. 그동안 만든 나의 무기들을 여러 방식 으로 시도해봤고, 캐릭터마다 다른 색을 입히기도 했다. 그런데 30대 후반에 그런 나의 연기관이 무너지는 순간을 겪었다.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아주 오래된 친구가 한 말 때문이다. ‘현주야, 너 연기 되게 잘하더라. 그런데 나는 네가 옛날에 했던 연기가 훨씬 좋다’라는 말이었다. 아마 그 친구가 말한 건 기술이 아니라 진실성에 대한 얘기였을 거다. 그게 나를 굉장히 긁었다. 그동안 내가 한 연기가 전면적인 부정을 당한 느낌이었다. 진행하던 연기 수업도 쉴 만큼 내적인 충격이 컸다.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한동안은 공연 전에 떨리는 것도 없었는데, 다시 대본 리딩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게 숨이 안 쉬어질 만큼 떨렸다. 정말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래서 30대의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아마 없다고 답할 거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 묻는다면 20대에 한 작품, 30대에 한 작품, 그리고 마흔 살이 지나서 한 작품 중에 조금씩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극단 한강 사람들과 공동 창작으로 만든 연극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다. 일본군 위안부 얘기였는데,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신체 훈련만 하루에 4시간씩 하고 대사가 없는 무언 즉흥만 한 달 반을 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소리 내 대사를 뱉었다. 쉽게 꺼낼 수 없는 얘기를 하는 경험이 선명했던 작품이었다. 하면서 내가 연기를 잘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지만, 배우로만 3년을 붙들고 있었으니 그 작품 어딘가에는 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연기에 관해서는 더 이상이란 게 없을 정도로 완성된 배우라는 시선이 많다. 부담이 많이 된다. 부담이라는 건 누군가의 기대 때문이기도 하고, 동료 배우가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어쨌든 어려울 때가 있다. 같이 연기를 할 때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편히 하면 되는데 동료 배우들이 조심스러워할 때가 있다. 또 반대로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을 때가 있는데, 뭘 더 하면 연출이 곤란해질까 봐 못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얘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작품을 하고자 한다. 또 하나는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인가. 아직도 나는 안 해본 특이한 캐릭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고려하는 편이다.

반대로 안 하게 만드는 요소도 있을까? 노출.(웃음) 그리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 사람이 우스워질 때라고 해야 하나. 장르에 상관없이 캐릭터가 도구적으로 쓰이는 작품은 손이 안 간다.

여성이라는 키워드도 영향을 미치나? 그렇다. 그건 내 문제기도 하니까. 여자로 살아온 시간들이 있으니까 어떻게 그려지는지에 대해 생각을 안 할 순 없다. 국내 상업 영화 중에 백델테스트(영화의 성평등 평가 방식)를 통과한 작품이 많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런 기준이 아니더라도 여자이고 배우인 내가 어떻게 해야 이 인물이 가치가 있어지는지 잘 모를 때는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은 거다. 혹은 하고 싶지 않거나. 이 문제에 대해서 특히나 여자 작가들을 붙들고 계속 얘기했다. 제발 작품 쓸 때 사람 같은 여자를 그려줬으면 좋겠다고. 엄마, 소녀, 창녀 말고 그냥 인간으로서 여자가 왜 없냐고. 그런데 글을 쓰는 친구 하나가 자기도 그러고 싶었고, 그럴 줄 알았는데, 글을 쓰려고 봤을 때 주변을 보면 여자가 안 보인다고 말하더라. 네 주변이 다 여잔데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연극이나 예술 하는 쪽에는 많을 수도 있지만, 어떤 얘기를 그리려고 보면 그 일을 둘러싼 주변 인물 중에 여자가 없다는 거다. 좀 답답했다. 배우로서도 그렇지만 아직도 이쯤에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어쨌든 뭔가 다른 게 있었으면 한다.

지금 작품을 만드는 이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쓰는 분들은 어려울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모든 엄마가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준영이 엄마나 현수 엄마처럼 누구여도 상관없는 그런 엄마 말고, ‘엄마라면 다 그렇지 않을까. 엄마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말고 그 사람에 대해서 그렸으면 한다. 사실 남자 배역 중에도 그런 게 있다. 이 과장, 김 대리. 여자 남자 떠나서 그런 인물은 없다는 생각이다. 일반 말고 한 사람의 개성이 있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인물로 그려줬으면 한다. 그리고 참을성 없는 여자도 많고, 기다리는 거 잘 못하는 여자도 있고, 하고 싶은 거 많은 여자도 있으니 가능하면 어떤 욕망이 있는 여자도 그려주면 좋을 것 같다.

이 주제로 비춰봤을 때 <60일, 지정생존자>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 연기한 기록비서관 민희경 역은 50대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나이를 드러내거나 여성성을 나타내는 역할은 아니었다. 사실 <60일, 지정생존자>는 작품이 가려고 하는 방향이 흥미로워서 하게 된 거다. 역할에 대해서는 처음에 살짝 기대한 것들이 있긴 했는데, 워낙 많은 인물이 나와서인지 쉽진 않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정원 한나경 요원(강한나 분), 야당 대표인 윤찬경(배종옥 분), 청와대 출입기자 우신영(오혜원 분)을 제외하고는 청와대 내 스태프 중 여자는 딱 3명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한 명은 더 있을 법도 한데, 이 성비가 한국 사회인가 싶어서 조금 속상했다. 그래도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과 우리가 잘 버티자면서 촬영을 했다.

<60일, 지정생존자>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도 높아졌다. 예전에 아침 드라마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시장이나 마트 갈 때마다 사람들이 알아봤다. 그래서 한동안 수영장을 못 갔다.(웃음) 그 드라마의 열기가 식고 난 이후에는 어딜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에 <60일, 지정생존자> 역할에 메이크업이 강하지 않아서 그런지 생얼로 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생기더라. 아차 싶었다. 나는 연기는 연기대로 하고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게 제일 좋은데 말이다.

그래서일까? 같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작품마다 스타일의 변화가 과감하다.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주저함이 전혀 없는 것 같다. 6개월동안 같이  일한 드라마 스태프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선배님, 이 작품도 하셨어요?’라고 하긴 하더라.(웃음) 물론 나에게도 쉽사리 도전하기 힘든 스타일은 있다. 섹스어필을 해야 하는 캐릭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 외에는 크게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럴듯하게 분장을 해주면, 다른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예전에 단편 찍으러 다닐 때 노숙자 역할을 한 적이 있는데, 화장실에서 환복하고 나오니까 사람들이 나와 부딪히기 싫어서 길을 터주더라. 새로운 경험이었다. 사람이 자기가 서 있는 입장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걸 크게 겪은 거다. 외형에 변화를 주는 것도 그 인물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 가장 많이 변한 게 있다면? 체력과 기억력. 옛날에는 머릿속에 모든 페이지가 들어와 있었는데, 요즘은 쉽지 않다. 그리고 연기를 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전에는 그 인물과 똑같아지려고 애썼다면 지금은 그 인물의 제일 좋은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 인물이랑 친해지면 사람들이 비슷하게 보지 않을까. 나는 그 인물에 대해 대신 얘기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한다.

보통은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배우들에게 하는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은 무엇인가? 해보고 싶은 거 굉장히 많다. 내 화술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언변을 구사하는 인물도 해보고 싶고, 겁이 많아서 공포물을 못 해봤는데 그런 것도 하고 싶다. 어쨌든 사람들이 그 인물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그러면서 새로운 역할을 맡고 싶다.

혹시 배우로서 가지는 유토피아가 있을까? 나다운 걸 아직 가지고 들어가본 적이 없다. 백현주라고 생각되는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 다른 것들을 내려놓고 툭 거기 있어도 되는 그런 역할.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해보고 싶은 나만의 목표다.

BIFF 백현주
그레이 울 블레이저 코스(COS), 블루 데님 팬츠 렉토(Recto), 레더 스트랩 시계 펜디 워치(Fendi Watch).

존재하기를 선택함 #이정은

BIFF 이정은

영화 <기생충> <여보세요> <미성년>
드라마 <눈이 부시게> <타인은 지옥이다>

배우 이정은

BIFF 이정은
라벤더 색상의 셔츠 드레스 잉크(EENK).

팬입니다. 요즘 어딜 가도 저처럼 팬이라며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죠?(웃음) 얼마 전 촬영 때문에 김포 최전방에 갔었거든요. 커피 한 잔 마시려고 다방에 갔는데 거기 주인어른이 절 너무 좋아한다며 본인이 농사지어 직접 만든 도토리묵 가루와 참기름을 주시더라고요. 그 주인 양반이랑 한 시간 떠들었나?(웃음) 연기하는 덕분에 요즘 재미있는 분을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에 다녀온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흥분과 환호가 조금 가라앉은 지금, 배우에게는 무엇이 보이나요? 칸에서 좀 편하게 즐기려고 했어요. 시상식 현장에서도 작품에 대한 부담감을 최대한 안 느끼려고 했고요. 그런 노력 때문인지 다른 배우들보다는 마음이 가벼웠고, 봉 감독님도 나한테 이‘ 작품과 별로 상관없는 사람처럼 돌아다니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배우들보다는 공식 일정이 적기도 했으니 여행지에 온 듯 섬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한데 그건  일종의 거리 두기였던 것 같아요. 나이 드니까 작품으로 얻어지는 것에 대해 한 가지 감정으로 즐거웠다, 슬펐다 크게 흔들릴 필요 없는 것 같아서. 지금 이렇게 지나고 보니 확실한 것은 엄청난 행운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거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다 잊어도 나는 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내가 왜 거리를 두려고 했을까 곱씹어보면 아마 좀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요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연극으로 시작해 30여 년간 연기 생활을 이어온 배우로서 ‘내가 드디어 칸에 왔구나’ 하는 식의 감회는 없었나요? 근데 그게 내가 영화만 쭉 해온 사람이 아니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좀 외람되기는 하지만 칸의 위상이나 심지어 아카데미도 실감이 잘 안 나는 거예요. 어느 정도 이슈인지를 잘 모르겠고 사실 지금도 잘 몰라요. 이 무지가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 같아. 안 그랬으면 어깨에 뽕이 한참 들어갔을 텐데.

흔히 배우는 다양한 배역을 거치며 성장하고 더 두터워진다고 하죠. <기생충>의 ‘문광’ 역을 통해 덧씌워진 것 혹은 빠져나간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문광을 연기하는 동안 우리가 클리셰처럼 사용하고 있는 감정의 바운더리를 못 쓰게 한 것이 굉장히 큰 자극이 됐어요. 실제로 봉 감독님에게 중간중간 “이 사람이 이 상태에서 어떤 해결책을 가지면서 진행될까요?” 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 덕분에 어떤 상황에 있는다는 건 결국 어떤 삶과 투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문광은 남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기 위해서 김 기사도 만나야 하고, 후임 가사도우미에게 사정도 하며 어떤 해결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하잖아요. 그러다가 사람이 주저앉을 수는 있지만 주저앉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사고해야 하니까. 그런 면이 내 삶에도 영향을 주겠죠. 해결하지 못할 것을 먼저 생각하고 주저앉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저앉을 때까지 모색하느냐 하는 문제를. <기생충>의 모든 주인공이 그랬던 것 같아요. 뭔가를 찾아가기 위해 무계획이라 할지라도 분투하는 것.

분투하는 ‘문광’도 참 좋아하지만, 저의 ‘원 톱’은 <미성년>에서의 항구 아주머니가…. 아니, 그거를 왜 그렇게들 좋아하시는 거지?(웃음) 나는 그게 이슈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진짜로. 문광은 감독님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만들어낸 인물이니까 그게 당연히 이슈가 될 부분이 있겠다고 생각했고, 물론 그 파장 역시내 생각보다 더 크기도 했지만요. 그렇지만 <미성년>은 아예 그런 가늠조차 못한 작품이에요. 봉 감독님도 그 영화 보시고 “삥 뜯는 것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이정을 만든 것 같다” 하고.(웃음) 근데 나는 사실 그 역할이 어려웠어요. 행여 비슷한 분이라도 만날까 싶어 방파제를 한참 돌아다닐 정도로요. 내가 잘했다는 생각보다 우스꽝스러웠나? 그로테스크했나?

올해 만난 최고의 악당이랄까요. 하하. 근데 김윤석 감독님이 그런 이야기는 했어요. 주인공의 만행에 대해서 어떤 보복 행위가 있다면 이런 역할이 해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어이없게 저돌적이다가도 마침내 갈취하고 지폐를 흔들고 갈 때의 그 해사한 표정과 뒷모습…(웃음) 맞아. 전에는 그런 역할을 대부분 남자 배우가 했죠. 여성 악당이 나온 건…. 근데 막상 대사를 하는데 이 사람이 나를 받아주지 않으니까 화가 확 나더라고. 그러니 반드시 돈을 뜯어야겠다 하고….

그런 면에서 영화 <여보세요>는 동시대, 동년배 여성의 노동과 부양에 대한 책임감, 나아가 통일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평소 사회적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배우의 선한 영향력에 대해서도 고민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매체를 통해 꽤 좋은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근데 그거보다는 좀 못하고요. 다만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자라는 세대가 워낙 많으니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번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만 해도 악인들의 이야기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러니 끝까지 봐라, 악인의 최후를.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남들 역시 그럴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만들어줘야죠. 다른 사람들 역시 자유의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나만 독점할 수 없죠.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캐릭터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연기해왔습니다. 한두 가지 이유만으로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연기를 놓지 못한 이유가 있나요? 연기는 진짜 잘 안 되니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부족하니까. 다음에는 더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또 살면서 문득 ‘아, 그때 그 역할을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드니까 또 하게되고. 그리고 나는, 가끔 이렇게 멀리서 현장을 보면 소꿉장난 같아. 사람들이다 미친 거예요. 근데 자기 인생을 살면서 미치는 일에 한번 종사해보는 것도 큰 행운이지 않아요? 인생이 긴 듯 보여도 짧으니까. 그러니까 중독된 거지, 중독. 현장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기적, 감정이 오가며 만들어지는 카타르시스가 나를 계속 붙잡아놓은 것 같아.

그렇게 현장을 지키며 작은 비중의 역할도 많이 맡아왔습니다. 중년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한계 속에서 비슷한 설정과 톤의 캐릭터도 있었고요. 그 반복되는 과정에서 나는 어떤 부류의 배우일까, 혹은 어떻게 이 길을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은 없었나요? 이게 내 자존감일 수도 있는데 나는 똑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예를 들면 가사도우미라 하더라도 전형적으로 풀면 그저 전형성을 가진 도우미겠지만 나는 그 안에서도 살아 있고 싶었어요. 소모되는 역할이라 해도 내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은 내가 거기 스스로 존재하는 거잖아. 존재를 선택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여주더라고요. 그래서 나름 혼자 꼼지락거리면서 늘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사람들이 그러죠. “너는 연극까지 해놓고 후배들 보는데 가사도우미 역할이냐.” 근데 동요하지 않았어요. 언젠가 분명히 바뀔 거야. 내 연기가 살아 있는 순간을 사람들이 알아차릴 거야 하고. 그런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강렬한 알아차림 중 하나가 영화 <변호인>의 아파트 집주인이죠. 한 쪽 눈에만 아이라인을 그린 채 오‘ 렌지 쥬시’를 권하던.(웃음) 송강호 배우를 비롯해 모두가 부산 출신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역할이요. (이정은 배우의 고향은 서울이다.) 근데 그때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아요. 송강호 선배와 부딪치며 연기한다는 건 철저한 준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거든요. 많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사투리 배웠고, 정열을 다했어요.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그 역할이 내게 큰 전기가 된 것 같아요.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 배우의 멱살을 잡는 장면조차 혼을 실어서. 봉 감독님이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아.(웃음) 그 현장에 대학로에서 기 세다고 하는 사람들을 다 모아놨다고 그러는데 나는 그렇게 기 세고, 싸우는 거 잘 못했어요. 얼굴은 착하게 생겼지만 힘 있어 보였나 봐. 나보고 멱살을 잡으라고.

작품 모두 아주 짧은 순간 등장함에도, 그 작은 역할에도 자신을 온전히 담으려 했던 것이지요? 그러고 싶은 거죠. 근데 그때는 솔직히 말하면 내 마음속에 이 역할로 어떻게 다음 기회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 순간밖에는 없는 거잖아요. 배우한테는. 그 순간을 재미있어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는 거야. 지금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다다음 역할 같은 것은 지금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게 내게는 좋은 비결이었던 것 같아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 적도 없고, 지금도 없어요. 그건 알아요. 관에 들어갈 거라는 것만 딱 알아요. 거기 투숙자로 예약해놓은 것 외에는 없어.(웃음)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저는 이야기가 풍요로워지게 하는 역할을 계속하고 싶어요. 배우 키키 키린을 엄청 좋아해요. 그 사람의 목소리나 풍채에서 나오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자연스러운 연기, 특유의 정서를 지닌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 외에는 어떤 역할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어차피 살아온 만큼 쌓인 재료가 연기에 쓰일 것이고,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건 어떤 역할을 한다고 해서 금방 나오지는 않는 것 같아요. 반대로 역할을 통해 배우죠. 내가 모자라니까 어떤 역이든, 모든 역에서 배우는 게 있어요.

이전까지는 여성 배우가 비중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면 이제는 좀 더 다양한 여성 서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다양한 여성 서사가 만들 어지고 있다고 보나요? 시도를 하고 있죠. 왜냐하면 한국 영화계는 서구 영화계의 영향을 받고 있고,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이야기를 발전시켜야 하겠죠. 근데 그 이야기라는 것이 극을 구성하는 사람과 그 사람들의 관계성에 의해 변하는 거니까, 사람과 관계가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세요. 한쪽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건을 뒤집거나 판을 깨는 역할에서 여성 캐릭터에게 힘을 주지 않으면 좋은 이야기는 못 얻게 될 거라 봐요. 무시할 수 없는 세계적인 변화고 그 속에서 단순하게 남자가 했던 역할의 성별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새로운 관계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이제 마무리할까요. 연기를 빼면 이정은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나요? 글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이든 많이 남기고 싶지는 않아요. 집에 가구도 많이 놓고 싶지 않고, 가끔은 옷도 버거울 때가 있거든요. 그냥 나는 이렇게 한 순간 있다가 사라지는 그것이 인생 같아. 그런 게 남는 걸까요? 결국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된 것. 보존할 수 없다는 것. 근데 아이러니한 거죠. 영화는 기록을 남기는 건데 언젠가 나는 볼 수 없잖아. 누군가는 보겠지만. 나는 사라지지만 그 상황을 즐기고 몰입했던 순간은 남겠죠. 그런 게 남을까요?

무형의 것을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는 편인 거죠? 그렇죠. 내 마음에 남으니까. 바다에 가서도 이러고 (사진을 찍듯 천천히 두 눈을 한 번 깜박인다.) 마음에 남겨요.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다 담을 수 없다는 결핍에서 오는 갈증도 커지는 것 같아요. 결코 인간은 담아낼 수 없는 것들. 노을은 노을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있는 건데 그 순간을 보고 있으면 아깝죠, 아름답고. 그런 게 제일 아름다운 것 같아.

화이트 롱 셔츠 드레스와 부츠, 트렌치코트 모두 잉크(EE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