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전하는 날

더배드저널

술을 좋아하는 작가와 스타일리스트가 각자의 감각을 발휘해 만든 캐주얼 바. 와인을 기본으로 하지만, 주종에 상관없이 누구나 함께 술을 즐길 수 있도록 브루클린 라거의 생맥주와 위스키, 칵테일은 물론 소주도 구비하고 있다. 와인 리스트 역시 누구나 편하게 즐기도록 품종과 상관없이 3만9천원, 5만7천원, 10만원의 가격대별로 구분해뒀다. 금액 때문에 와인을 고르는 데 제한을 두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운영 방침이라고 한다.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는 바만 운영하고, 10시 이후부터는 테이블이 있는 홀도 오픈해 10명이 넘는 단체 모임도 가능하다. 주최자 입장에서 모두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고민하고 있다면, 더배드저널에서 추천하는 타닌과 보디감, 과실 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르 프티 생 자크나 청량감이 풍부한 비엔베비도 풀포 알바리노를 고려해봐도 좋을 것이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25길 57
문의 010-8975-7223
영업시간 월~토요일 19:00~03:00, 일요일 휴업
가격 와인 3만9천원부터, 자숙 문어 다리와 아보카도 1만5천원, 명란 크림 파스타 1만8천원

 

있을재

뚜또베네와 팔레 드 고몽의 이재훈 셰프와 그의 동생이자 로칸다몽로를 론칭한 이재호 매니저가 함께 만든 캐주얼 비스트로 ‘있을재’. 이곳에서는 한국의 재료로 만든 이탈리아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에 한식 기법을 더한 메뉴를 주로 선보이는데, 그 때문에 처음 맛보는 메뉴도 묘하게 친근감이 든다. 식전 빵 대신 포크주(돼지 사골)에 조린 무를 내놓고, 커틀러리에 기본적으로 젓가락이 포함된다. 대파로 퓌레를 만들기도 하고, 토종닭에 트러플 페이스트를 가미한 메뉴도 있다. 평소 이탈리아 음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호기심을 가질 만한 메뉴가 꽤 많다. 와인부터 맥주, 하드 리큐어(증류주)까지 주종도 다양한데다 비스트로로는 드물게 새벽 1시까지 영업해 평일 저녁에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모임을 즐길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168길 19 1층
문의 02-547-0606
영업시간 월~토요일 18:00~01:00, 일요일 휴업
가격 바삭한 감자 뇨키 2만9천원, 타야린 3만2천원, 우설과 아롱사태 찜 4만2천원

 

이다

음식의 맛은 물론이고 눈으로 보기에도 아름다운 플레이팅과 공간 구성, 전망까지 좋아야 하는 깐깐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한식 다이닝 장소다. 창경궁과 창덕궁 사이 한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골목에 자리한 ‘이다’는 방풍나물, 시금치, 돼지감자, 새우, 성게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재료로 그동안 접했던 방식과 다른 맛을 선보이고 있다. 나물, 두릅, 쌈 등 메뉴는 대부분 직관적인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살리고자 하는 셰프의 의지를 반영한 부분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한식의 범주를 넘어선 맛과 모양새로 누구에게나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여기에 한식과 잘 어울리는 다양한 전통주 리스트와 의외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내추럴 와인 메뉴도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음식을 두고, 좋아하는 이들과 축배를 들기에 더없이 좋은 멋진 공간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서순라길 153
문의 02-744-3979
영업시간 월~토요일 12:00~22:00, 브레이크타임 14:00~17:00, 일요일 휴업
가격 나물 1만원, 쌈 1만5천원, 새우밥 1만5천원, 갈비, 그리츠 1만5천원

 

마린

‘마린’은 레스토랑 도마를 통해 한우에 특별한 불 맛을 더한 우드 파이어 요리를 선보였던 김봉수 셰프가 신선한 해산물을 주제로한 음식을 소개하는 두 번째 우드 파이어 레스토랑이다. 해산물 각각에 맞는 장작불로 식감과 향을 더한 메뉴는 물론이고, 김봉수 셰프 특유의 감각과 도전정신이 더해진 참신한 메뉴도 많다. 동죽에 깻잎 향을 입힌 파스타, 고등어와 쑥갓의 조합으로 만든 파스타, 비장탄에 살짝 익힌 생멸치와 치미추리를 피타 브레드에 싸 먹는 메뉴 등 대부분의 음식에는 마린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맛과 향이 담겨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제철 생선이 당도할 때마다 깜짝 이벤트처럼 내놓는 그날의 새 메뉴를 즐기는 재미는 덤이다. 다양한 내추럴 와인도 구비돼 있으니 각자 취향에 맞는 페어링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26길 41
문의 02-6925-4895
영업시간 매일 11:00~23:00, 브레이크타임 15:00~18:00
가격 마린 해산물 스튜 2만8천원, 계절 생선 통구이 2만9천원부터

참외로 차린 한 상

한여름 껍질에 골이 있는 노란 참외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흔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런데 참외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종류가 훨씬 많다. 개구리참외, 사과참외, 개똥 참외, 잠자는 숲속의 미녀까지. 모양과 색, 식감이 모두 다른 참외들이 씨앗밥상의 한 상 차림을 위해 여러 곳에서 공수돼 왔다. 참외를 주인공으로 씨앗밥상을 차린 이는 카페 수카라의 김수향 요리사. 김수향은 카페 수카라의 주인이자 마르쉐@씨앗밥상의 기획자다. 아무레이수나의 변준희 요리사도 함께했다. “참외가 예민한 친구더라고요. 종류가 같아도 식감과 수분 함량이 많이 달라서 조리하기가 쉽지 않았죠. 오늘 제가 만든 음식은 개구리참외로 만든 지짐이예요. 지짐이는 보통 충청도에서 노각으로 만드는 음식입니다. 자글자글 끓여서 따듯하게 먹곤 해요. 다른 참외와 달리 호의 단맛이 나고 식감도 서걱서걱하기 때문이에요.”(변준희) 개구리참외도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성환 개구리참외. 일본에서 들여온 씨앗과 토종 씨앗을 교접해 만들었다. 변준희 요리사는 세 가지 참외로 세비체도 만들었다. “사과참외와 노랑 참외, 개구리참외에 해산물과 레몬 등을 더해 만들었는데 새콤한 세비체와 참외의 달콤한 맛과 식감이 잘 어울려요. 노지 노랑 참외는 소금에 절이고 개구리참외는 살짝 말렸어요. 여기에 사과참외로 단맛을 더했습니다.”(변준희) 김수향 요리사는 개구리참외와 감귤을 넣은 차가운 수프, 참외 처트니, 참외지와 사과참외 시로다시 절임을 만들었다. “참외가 성질이 찬 과일이어서 수프를 만들 때 몸을 따듯하게 해주는 생강과 귤즙, 너트메그라는 향신료를 넣었어요. 너트메그 대신 계피를 넣어도 되고요.”(김수향)

참외는 오늘의 씨앗밥상에 오르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쳤다. 안전한 비닐하우스 대신 햇빛과 바람, 비를 그대로 맞는 노지에서 자란 노지 노랑 참외는 장마 뒤에 이어진 폭염으로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도 했고, 운 좋게 잘 익은 참외를 멧돼지가 먼저 먹기도 했다. “올해는 개똥참외와 쇠뿔참외를 심었어요. 잘 익은 참외를 가져오고 싶었는데 개똥참외는 아직 덜 익어서 맛이 들지 않았고 쇠뿔참외는 고라니가 와서 다 먹었어요.(웃음) 요즘은 장마 시기도 불규칙하고 날씨가 오락가락한 데다 일기예보도 자주 틀려서 농사짓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요.” 수확과 판매가 아니라 씨앗 채종을 위해 농사를 짓는 양인자 농부의 설명이다. 구름산, 청계산 등에서 농사를 짓는 양인자 농부의 밭은 모두 산 아래에 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는 농지 근처보다는 화학물질이 전혀 닿지 않는 산 밑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참외라는 것이 있어요. 북한에서는 사탕참외라도 하고요. 엄청 달고 맛있는 데다 껍질이 얇아서 껍질째 먹어도 돼요. 껍질째 먹으면 맛이 더 좋죠. 그런데 껍질이 얇아서 유통이 힘들어요. 무언가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상처가 나서 오늘 이곳에 올 때도 농부님이 신문지에 둘둘 말아서 캐리어에 담아 ‘모시고’ 왔어요.” 양인자 농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토종 종자를 수집한다. 수집을 위한 동네를 정하면 전수조사라도 하는 것처럼 집집마다 다니며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고, 할머니 때부터 심었던 씨앗이 있는지 묻는다. 마르쉐@에서 만난 농부들을 통해서도 토종 씨앗을 많이 구했다. “옛날에는 방울참외라는 것도 있었어요. 탁구공만 한 크기의 참외인데 요즘은 제초제와 예초기로 풀을 없애다 보니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어요. 씨앗도 자원이자 재산인데 이런 식으로 하나씩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죠. 토종 채소와 과일은 먹지 않으면 사라져요. 사람들이 토종 농작물을 계속 찾아서 먹으면 점점 더 많은 농부들이 심겠죠.”

마르쉐@씨앗밥상에는 여섯 종류의 참외가 나왔다. 우리가 흔히 먹는 하우스재배 노랑 참외와 노지에서 자란 노랑 참외, 사과참외, 성환 개구리참외, 깐치개구리참외, 개구리참외까지 다양하다. 지금 우리 땅에서 토종 참외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건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과 그들이 힘들게 수확한 참외를 찾아 요리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토종을 지키겠다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어도 토종이 이어지면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참외 요리

참외 요리

1 노랑 참외 우리가 흔히 먹는 참외. 대부분 하우스 재배로 생산한다. 비닐하우스 재배로 수확 시기가 점점 빨라져 요즘은 1월이면 참외가 나온다. 씨앗의 기원은 일본으로 추정되는데 한국에서 더 깊이 정착해 지금은 국제 표기상 코리안 멜론으로 불린다. 2 성환 개구리참외 토종 참외로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참외 중 가장 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왕에게 공급했을 만큼 맛이 좋다. 3 깐치개구리참외 같은 개구리참외도 맛이 조금씩 다르다. 토종 참외는 교잡이 잘되는데 깐치개구리참외 씨앗을 심으면 다른 참외가 수확되기도 한다. 4 개구리참외 토종 참외 중 그나마 명맥을 잘 이어가고 있는 개구리참외. 껍질이 개구리 피부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5 사과참외 북한에서는 사탕참외라고도 불린다. 껍질이 얇아서 껍질째 먹으면 더 맛있는데, 대신 조금만 스쳐도 상처가 나기 때문에 유통이 쉽지 않다. 6 노지 노랑 참외 달콤한 과일은 노지재배가 쉽지 않다. 물에도 약해 장마를 잘 견디지 못한다. 대신 힘들게 수확한 노지 참외는 향과 식감이 하우스재배한 참외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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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감의 농간

섹스가 없다면 종말이 올 것이라고,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아포칼립스적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말은 인생의 ‘노잼’ 시기를 일컫는다. 물론 노잼 시기라는 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 워딩인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건 마치 ‘너 지금부터 술도 담배도 음악도 다 압수야’ 하는 상황에 버금갈 정도로, 섹스는 내가 매료된 메가 어딕션 중 하나였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을 남겨둔다고 가정할 때, 섹스는 단연 리스트의 상위에 랭크돼 있었음을 밝힌다. 섹스를 밝히는 여자? 맞다. 섹스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 관계라고 하는 어휘의 드넓은 함의 중에서도, 사람과 사람이 맨살을 대고 있는 것보다 진정한 교섭 관계이자 내연한 상태가 또 무엇이 있겠는가. 없다. 그때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20대는 보통의 또래 남녀들처럼 많은 시간을 섹스와 연애에 몰두했다. 섹스가 곧 연애인 케이스는 드물었다. 섹스를 하고 나서야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연애가 끝나도 여전히 섹스를 하는 관계도 있었다.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의 역사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 나는 8개월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리고 4년간 섹스 파트너로 지내왔다. 제안은 내 쪽에서 먼저 했다. 왜 그랬느냐고? 아마도 미련 때문이었으리라. 만난 기간은 8개월이 전부였지만, 그 짧은 기간은 이전에 만난 모든 엑스들과 쌓은 옛정을 희석해버릴 만큼,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 가장 강렬한 오르가슴을 선사했기에. 밉고 싫고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마음과 그가 아니면 또 어디서 이런 섹스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미련이 상충했고, 결국 승자는 오르가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 관계에서 빠져나왔는가. 2년이란 시간을 두고 그때를 다시금 회상해보니 점점 선명해진다. 내가 얼마나 그 관계에 무수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지를. 섹스라고 했지만, 그것은 비단 섹스만이 아니었다. 매일 같이 가던 내 집 같은 그의 집, 내 칫솔과 그의 칫솔이 나란히 걸려 있는 칫솔걸이를 보면서 피어오르던 여러 감정들. 친구는 말했다. “너희는 같이 앞으로 걷기는 싫고, 그렇다고 헤어지기는 싫어서 그냥 옆으로 계속 걷는 거야. 게도 아니고 뭐하는 거냐, 그게.” 그랬다. 우리는 한 쌍의 게처럼 나란히 누워 있기만 했다. 잠든 그의 넓은 등짝에 내 얼굴을 푹 박고서 이것은 섹스일까, 사랑일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그 넓은 등짝과 섹스를 끝마치고 서로의 품속으로 빨아들일 듯 안아주는 짧디짧은 시간, 각자의 땀이 서로의 몸에 닿는 순간, 그런 것들은 사랑일 수가 없다. 그것은 그저 감각이 감각하는 감정이었다. 내가 아닌, 타인과의 밀착. 그 감촉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얼마간 그렇게 누워 있다가 둘 중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쳐다보지 않고 각자 담배를 피우며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우리는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앞을 보았다. 멀리 번쩍이는 마포대교를 보고,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높디높은 건물 유리창에 반사되는 달빛을 보고, 점점이 지나가는 행인들에 눈길을 주었다. 각자 다른 상을 응시하는 것,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다시는 보지 않기로 하고 서로에게서 멀어진 지금, 나는 이제 더 이상 그와의 추억을 꺼내 보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유일한 증거다. 우리가 연애를 한 것이라면, 연인의 모습을 띠고 있던 우리가 함께한 장면들이 차곡차곡 쌓인 채 가끔씩 나를 멜랑콜리하게 만들었을 텐데. 관계에 어떤 이름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정의 또한 바뀌는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그 감촉을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감촉의 온도를. 순간적으로 뜨거워졌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금세 식어버리고 마는 몸의 열기와 냉기를.

그와 헤어진 후, 나는 섹스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누군가의 등을 맞대고 누워 잠을 자거나 손가락과 손가락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반경 안으로 타인을 허용한다거나 하는 행위에 가담해본 적이 없다. 섹스가 없으면 그건 종말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지낸 시기에 나는 섹스를 하지 않으면 마치 여성으로서 매력이 제로인 사람처럼 주눅 들었고, 언제고 상대에게 섹슈얼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그런 끝없는 강박과 자괴감에서 무척 멀리 벗어나 있다.

일단은 몸에 관한 강박이다. 와이어가 옭아매던 푸시업 브라를 굳이 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아름답다는 걸 느낀다. 부러 의식화한 것이 아니다. 그전과 다른 곡선이 내 몸의 아우트라인이 되었고, 그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섹스를 예감하며 불편한 언더웨어를 감수하는 바보 같은 짓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겨드랑이와 무릎에 난 털들을 굳이 제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역시. 아마 다시 섹스를 하게 된다해도, 나는 내 몸을 사랑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나만의 곡선을 즐길 것이다. 섹스를 하지 않은 근 1년간, 나는 무엇보다도 내 일에 집중했다. 심적 해소의 도구로 섹스를 택하지도 않는다. 글쓰기라는 노동은 업무와 휴식 간의 물리적 거리감이 없는 작업이다. 일상의 전부를 쏟아부어 힘써야 하는 때가 잦은데, 나는 그런 스트레스가 찾아올 때마다 섹스로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피하지 않는다. 고스란히 겪어내야 하는 부담을 정면으로 응수하는 것. 30대 직업 여성으로서 내가 바라던 상태다. 나는 이 집중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그런 시기는 자연스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기꺼이 멈춤과 머묾을 해내려는 가장 온화한 방식의 전투다. 내 커리어를 위한 전투.

내게는 그 무엇보다 감촉이 보드라운 털을 지닌 고양이 두 마리가 있고, 친동생이 선물로 준 값비싼 베개가 있다. 나는 더 이상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게 섹스는 사랑도 중독도 아닌, 단지 어떤 감촉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감촉의 농간에 꽤 당한 셈이니, 이제는 다른 감각을 찾기로 한다. 이를테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까 겁내며 들여다보았던 내 몸을, 이제는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응시하는 감각 같은 것 말이다. 누군가 나의 속살을 보지 않아도, 나는 나를 위해 향이 좋은 오일을 바르기로 한다. 생활에서 섹스를 제거하고 나니, 진정 보이는것은 오로지 ‘나’뿐이다. 그 어떤 폭발력 있는 오르가슴보다 더 해방감을 준다는 점에서 탈섹스는 종말이 아니라 일종의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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