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사람 조현철

조현철 배우조현철
와이드 팬츠 코스 아카이브 에디션(COS Archive Edition), 울 혼방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레이 바이 매치스패션닷컴(Raey by MATCHESFASHION.COM).
조현철 배우조현철
블랙 셔츠, 테일러드 재킷 모두 로리엣(Roliat).
조현철 배우조현철
터틀넥 스웨터 맨온더분(MAN on the BOON), 오간자 긴소매 셔츠, 슬립 포켓 조거 팬츠 모두 펜디(Fendi).
조현철 배우조현철
자주색 하이넥 니트웨어, 블랙 캐시미어 터틀넥 니트웨어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XXX(Ermenegildo Zegna XXX).
조현철 배우조현철
셔츠, 아웃 포켓 테일러드 재킷, 팬츠 모두 로리엣(Roliat).

그러니까 조금 다른 인터뷰였다. 배우 조현철과 1시간을 마주 앉아 있었지만 대화의 반은 꽤 단조롭고 밍밍하게 흘렀다. ‘할 말이 있어도 여러 번 생각하다 보면 결국 안 하게 된다’는 그의 대답을 빌미로 말수 없는 성정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더 길게 답을 해야 하는데’라며 뭐라도 더 이야기해보려는 듯 오래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되레 어느 순간 내 질문이 잘못됐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조현철은 자신이 답할 수 있는 질문에 최대한 반응하는 사람 같다’는 짐작과 함께 대화가 매끄러워진 건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꺼낸 후 부터다. 시간이라는 다층적인 세계와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행위에 대해 그는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생각을 정확히 표현해냈다. 대답의 끝에는 “근데… 이런 이야기 좋아하세요?”라고 상대의 마음을 살피며.

최근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쾌활하고 해맑은 재벌 ‘산체스’ 역할로 주목받았지만, 실제 성격은 그와 정반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배우로서 연기하는 데 큰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안 하던 걸 하려다 보니 힘들더라고요. 큰 소리로 대사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표정도 과장하다 보니 쉽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일 끝나면 그냥 좋고 대체로 만족하며 지냈는데 이번에는 대사가 안 외워지고 목소리도 안 나오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계속 떨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약간 위기였어요.(웃음)

독립영화 <영아> <9월이 지나면> <뎀프시롤: 참회록>과 상업영화 <건축학개론> <마스터> <차이나타운> 등 많은 작품에서 연기해왔음에도 새삼 위기를 겪었다는 거죠?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떨 수도 있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연기를 생업으로만 생각하며 익숙하고 편한 방식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나 싶었고요. 아무리 생계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까요. 대단한 배우가 되거나 주연을 맡고 싶다기보다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정신 차리고 해야겠다고요.

많은 이들이 인상적인 캐릭터였다고 평가하는데도요? 평가는 알아서 걸러 들어요. 내가 어떻게 연기한지 알고, TV에 어떻게 나오는지 아니까 좋은 평을 들으면 기분 좋지만 흘려듣게 되죠. 반대로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누군가 정확히 짚어서 이야기할 때는 마음에 담아둬요.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걸 비난하는 것에는 큰 타격을 받지 않는데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오늘 만난 배우 조현철은 배우로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배우에게는 자신을 증명하고 드러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없진 않아요. 다만 뭔가를 드러내고 펼쳐 보이기보다는 작은 역할을 맡아도 사연이 있고 충분히 있을 법한, 도구적이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요. 감초 역할은 웃음을 주거나 정보 전달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 또한 의미 있고 좋지만 살아 있는 캐릭터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배우 이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2010년 연출작이자 주연작인 단편영화 <척추측만>으로 제36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수상했죠. 최근 상업 장편영화로 개봉한 <판소리 복서>의 원작인 <뎀프시롤: 참회록>의 공동 연출자이자 주연배우이기도 했습니다. 독립영화, 상업 영화를 가리지 않고 스무 살 이후부터 줄곧 감독 혹은 배우로서 작품 안에서 살아왔어요. 그런 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는 게 좋았어요. 어디 가서 내 이야기를 하고, 그걸 누군가 들어주는 일은 쉽게 생기진 않잖아요. 이런 식으로라도 포장해서 내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꽤 많은 사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꽤 긴 시간 사이 영화는 무엇일까, 연기는 뭘까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들었을 것 같고요. 영화와 연기에 대해 고민했던 시절은 다 지나간 것 같아요.(웃음) 너무 오래전에 지나간 것 같고… 오히려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 하는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굳이 한다면 어떤 영화에 대해, 어떤 연기에 대해 욕을 하거나.(웃음) 요새는 그냥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웃음),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 좋아해요. 관심사가 많이 바뀌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긴 해요. 요즘은 시간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요. ‘이게 다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고, 왜 내가 의식이 있는 채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실제로 여기 존재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죠. 지금 이 인터뷰도….(웃음) 이게 다 내가 만든 시뮬레이션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기도 했고요. 그런 식으로 질문을 거듭해가는데 말하자면 시간이라는 것도 인간의 고유한 시각으로 본 현상이라는 거죠.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우주의 본질이 그렇지 않은데 인간이 희미한 시각으로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사는 건 아닐까?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향하는 게 시간의 흐름과 연관 있는 건데… 근데 이런 거 재미있으세요? 진짜로요?

그 책 제목이 뭐예요? 카를로 로밸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요.

이런 다채로운 사유들이 삶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꿈에서 바위산을 타다가 길을 잃었는데 수풀 속에서 수천 마리의 메뚜기 떼가 날아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나 내게 양자의 세계를 보여주겠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파란 빛이 보여요. 그리고 ‘이것은 물질이 아니고, 무(無)인 동시에 유(有)이고, 존재인 동시에 비존재’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참 좋더라고요. 연기자로서 성공해야지, 연기로서 뭘 해내야지 하는 생각이 사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변방이잖아요. 작은 나라이고, 60년 넘게 분단돼 있고, 인종도 다양하지 않고요. 그 속에서 무언가 하겠다고 아등바등하면서 삶을 생각하다가 관점을 달리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그런 걸 궁금해하고 찾아보게 되고요. 다른 것들에는 크게 즐거움을 못 느끼지만 이해할 수 없던 것, 알지 못했던 걸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리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을 책이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선명하게 보고 확인하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새롭게 깨닫는 것처럼 배우 혹은 감독으로서 반대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삶이 허무하고 의미 없는 와중에 유일하게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게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잖아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창조의 과정이고 거기서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순간에 유독 더 이야기하고 싶고, 더 만들고 싶고, 더 쓰고 싶어요? 사랑하는 것이 생겼을 때. 예쁜 걸 보면 나누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는 사랑이 작동하는 것 같아요. 내 안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을 남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고요. 또 죽음을 목격했을 때. 죽음이 어떤 의미이고,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무엇이었고,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이 사랑을 불러일으키나요? 대단히 아름답기보다는 사소한 것들인데, 길을 지나가다 제철 과일을 보고 돈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누가 생각나서 사게 되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봤는데 날씨가 좋아 좋은 마음이 들면서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는 것도 사랑이겠죠. 그런 마음들을 예민하게 잘 써야 할 것 같아요. 모르고 지나치기 쉽잖아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다 느낄 수 있는 건데 막상 보지 못하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보여주고 싶어요. 다들 사랑하고 있지만 사는 게 피곤해서 지나치는 것들이요.

감독 혹은 배우로서 계속 만들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품게 되는군요. 그렇죠. 하지만 그게 꼭 영화는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농사를 지으면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고, 글이야 언제든지 쓸 수 있고요. 하다못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소통할 수 있으니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 해요. 한데 숙명적으로 뭔가 계속 쓰긴 써야 할 것 같아요. 빠져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건.

인간 조현철로서 지금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극적이었던 시기는 3년 전에 지난 것 같아요. 그때 믿었던 것들도, 확신도 있었다면 그런게 하나씩 다 무너지고.(웃음) 자신에 대한 확신도 사라지고, 믿었던 것들도 다 사라져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가장 활활 타올랐던 때는 다 지나고 재만 남은 건데, 김연수 작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럴 때 글을 쓸 수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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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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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엠브로이더리 디테일과 풍성한 페플럼 실루엣의 조합이 감각적인 드레스, 나이트폴 하프 부츠, 카보숑 장식 스트라스 가죽 이어링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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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스트리트 비즈니스맨의 수트에서 영감 받은 스트라이프 팬츠 수트, 그래픽 프린트 셔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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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수작업으로 완성한 주얼 장식 케이프 재킷 루이 비통(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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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핑크 컬러 소가죽과 새틴을 조합한 크롭트 재킷, 블랙 버뮤다 쇼츠, 메트로폴리스 플랫 레인저 부츠, 방돔 스트라스 이어링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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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시티에서 영감 받은 LV 문 포쉐뜨 모노그램 미드나이트 백, 화려한 엠브로이더리 디테일과 스트라이프 프린트가 어우러진 롱 뷔스티에 드레스, 메탈릭한 방돔 스트라스 이어링, 부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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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고층 빌딩을 모티프로 한 프린트와 자수로 장식한 재킷, 가죽 팬츠, 메트로폴리스 플랫 레인저 부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오늘 하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멋진 하루. 우아함부터 파워풀, 보이시, 여성스러움까지 루이 비통의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생각을 구현해내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오늘을 기록한다면 자신감 넘치고 신나는 날이라고 할 거예요.

이곳 LA에서 곧 또 하나의 신나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새 영화 <아담스 패밀리>가 LA에서 개봉해요. 이 책이 나온 이후에는 한국에서도 개봉할 거고요. 이 애니메이션은 1938년에 나온 찰스 애덤스의 만화가 원작인데, 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웬즈데이’를 연기하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매우 좋아한 캐릭터거든요. 그래서 그가 원했던 웬즈데이의 모습을 살려내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연기한 웬즈데이를 포함해 영화 속 모든 캐릭터가 무섭고 괴짜 같고 흥미로울 거예요. 기대해도 좋아요.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은 스크린에 등장해 연기하는 것과 방식이 완전히 다를 것 같아요. 많이 달라요. 머릿속에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연기해야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스크린에서 하는 연기 이상의 것이 가능해요. 실제로 연기하는 것은 제한이 많은 데 비해 목소리만으로 연기할 때는 그보다 훨씬 더 과장되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오늘을 포함해 지금까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표출해왔어요. 영화, 광고, 화보, 시사회와 시상식, 그리고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서도요.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나요? 카메라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해마다 달라요. 어릴 때는 그저 새로운 경험 중 하나였지만, 카메라 앞에서 자라면서 점점 내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성인이 된 후로는 나를 표현하고 탐구하는 표출 수단으로 카메라를 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탐구하고 표출하나요? 사진이든 영화든 카메라 앞에 있을 때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해요. 렌즈에 제가 생각하는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묘사하는 걸 좋아해요.

영화 촬영을 할 때는 카메라의 존재를 잊고 자신의 연기에 몰입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어떤 식으로 카메라에 담길지 연구하는 편인가요? 항상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다는 걸 완전히 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연기하는 인물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아내야 하니까요. 동시에 카메라는 관객의 눈이라는 것 또한 인지하려고 해요. 그렇게 균형을 맞추는 거죠.

처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 게 2004년이니까, 벌써 15년이 지났어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있나요? 그렇게 오래됐어요? 충격적이네요.(웃음)

배우로서 보낸 15년의 시간은 어떻게 흐른 것 같아요?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맡은 역할, 함께 일한 감독님들과 무척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이 모든 경험을 해온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해요.

혹시 과거의 어떤 순간을 잠시 여행할 수 있다면, 다녀오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영화 <휴고>의 세트장으로 여행을 가서 그 순간에 다시 빠져보고 싶어요. 어마어마한 세트장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작업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몇 번이고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이었어요.

올해는 어땠나요? 어떤 해보다 다양한 작품을 만난 해인데요. 아주 만족스러운 해예요. 제가 원하는 곳에 정확히 도달한 느낌이에요. 내년에는 제게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벌써 기대될 정도로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으면 연기하는 내내 굉장히 참담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최근 사랑에 빠졌던 캐릭터에 대한 얘기해준다면요? 영화 <톰과 제리>에서 연기한 캐릭터와 완전히 사랑에 빠졌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역할이었는데, 영화를 찍는 내내 제 안에 있는 코미디 요소를 찾는 일이 무척 즐거웠어요. 오랫동안 우상으로 생각했던 배우 루실 볼과 줄리아 로버츠에게서 영감을 받아 연기했는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요.

인터뷰를 위해 필모그래피를 다시 살펴봤는데,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어요. 영화 데뷔작 <아미티빌 호러>를 비롯해 <더 써드 네일> <디 아이> <캐리> <서스페리아> 등 유독 공포영화가 많다는 점이에요. 스릴러물이긴 하지만 영화 <마담 싸이코> 역시 꽤 섬뜩했고요. 다른 장르에 비해 공포물에 흥미를 느끼는 편인가요? 저는 호러야말로 많은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공포라는 하나의 장르에 집중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죠. 또 극한의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건 배우로서 멋진 기회이기도 해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만 남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만큼 강인하고 성격이 분명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는 점이에요. 나 자신을 어딘가에 가두거나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아요. 다양한 생활 방식과 배경을 지닌 캐릭터들을 경험하고 저를 다양한 형태로 바꿔보면서 안일한 태도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할리우드 미디어 산업에 만연한 성 차별과 기회 불균등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도 자신을 포함해 모든 여성 배우를 위해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제 목소리를 내고, 동료 배우들이 이 업계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작품이에요.

여성이라는 사실에 갇히지 않고 꽤 다양한 인물을 그려내고 있으면서도 영화계의 상황에 대해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이유가 있나요? 또 이에 관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내갈 생각인가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제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제 행보는 아직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지 않은 수많은 여성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전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고 해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보고, 듣고, 보호받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동안 여성뿐 아니라 환경, 정치 분야에 관한 소신도 꾸준히 밝히고 관련 활동을 펼쳐왔어요. 이런 분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와 정책을 지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였어요.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2020년 대선.

영화를 제외하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다면요? 제 반려견 ‘루비’요. 귀여운 프렌치불도그인데 언제나 저를 즐겁게 해주고, 제 삶의 모든 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요.

새롭게 관심을 두는 것도 있나요?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서 새로운 재미와 흥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우리 주위에서는 생각보다 경이롭고 마법 같은 일이 많이 벌어지거든요.

20대가 된 자신의 시간을 즐기려고 하는 편인가요? 20대의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20대가 되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어요. 저는 여전히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작은 것에도 즐거움을 느끼고, 나이에 얽매이지도 않거든요. 바라는 게 있다면, 앞으로 카메라 앞에서든 밖에서든 더 도전적이고 신나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20대가 지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수년 내에 감독이 되어 디렉팅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제가 하는 모든 일에서 영감을 찾고 싶다는 것.

지금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있나요?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요.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소가죽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실크 랩스커트, 카보숑 장식 스트라스 가죽 이어링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지구 반항아

소코도모 고등래퍼
니트 풀오버 오프화이트(Off-White™), 셔츠 세션스(Sessions), 팬츠 리암 호지스 바이 아이코스(Liam Hodges by Ikoes), 신발 아디다스(Adidas), 목걸이 베르사체(Versace), 터틀넥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소코도모 고등래퍼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후디 프롬마크(Frommark), 안경 펜디×젠틀몬스터
(Fendi×Gentle Monster).

프로펠러가 달린 모자와 물안경 같은 선글라스를 쓰고 <고등래퍼3> 무대에서 지구 멸망을 외치던, 지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지구 반항아’. 그게 소코도모의 첫인상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6개월 뒤 만난 ‘고등 래퍼’는 차분하고 생각 많은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고등래퍼> 이후 첫 정규 앨범이에요. 발매를 앞두고 소감이 어떤가요? 앨범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공이 드는 줄 몰랐어요. 작업하다가 괜찮은 곡 나오면 모아놓았다가 앨범으로 발매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미리 계획을 세우고 판을 짜고 진행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음악적인 것보다는 진행적인 면에 있어서 좀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도 재밌게 한 것 같아요.

이번 앨범 컨셉트는요? 사실 아무거나 다 넣어봤어요. 힙합에서 친숙하게 들어보셨을 법한 사운드도 넣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도, 못 들어보셨을 것 같은 것도 넣었어요. 다양한 음악을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앨범에는 시티 팝도 있고, 지금 촬영장에 흐르는 레트로 느낌의 곡도 있고, OST스러운 곡도 있어요. 아, 사운드 클라우드에 예전에 올린 곡들도 넣었어요. 여러 장르를 선보였습니다.

지난 곡들을 들어보면 스토리텔링을 하는 방법이 독특한데 곡의 콘셉트를 정하는 방법이 있나요? 주로 그때그때 드는 감정으로 컨셉트를 잡아요. ‘Freedom’은 당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지구 멸망’은 자유로워지고 싶어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 이럴 거면 그냥 다 망해버려라 하는 마음에 만들었죠. 그때의 감정들을 곡 안에 녹여내려고 했어요. ‘Go home’도 “그냥 집 가라. 그만하고 이제 집 가도 된다” 이런 심정이었어요.

그럼 곡의 영감을 일상에서 하는 생각에서 받는 거네요. 모든 곳에서 다 받아요. 길을 걷다가도,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다가도, 이렇게 앞에 놓여 있는 펜에서도요. 그때 그때 영감받은 것들로 노래를 만들어요. 이제까지 나온 곡들도 그런 식으로 만들었어요.

음악 작업 방식은 어떤가요? 저는 뮤지션이니까 음악이 직업인 거잖아요. 회사원이 출근해서 일하는 것처럼 매일 음악 작업을 해요. 오늘도 이 촬영 끝나고 다른 스케줄 갔다가 끝나면 곡 작업할 거예요. 작업 능력도 근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운동을 쉬면 근육이 퇴화하는 것처럼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돼요. 끊임없이 사용해줘야 하죠.

최근 곡인 ‘GO HOME’ 뮤직비디오도 상당히 파격적이에요. 흰색 속옷 한 장 입고 우주를 떠돌아다니던데요. 사실은 다 벗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면 19금 딱지가 붙잖아요. 아마 한국이 아니었으면 다 벗어버렸을 수도 있어요. 다 벗어던지고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마음으로 속옷만 입은 거였어요. ‘Go home’ 곡의 전개도 초반에는 불평불만을 하는 가사들로 시작해서 후반에는 다 내려놓고 초월한 듯한 식으로 구성했거든요. “그럴 거면 집 가라, 그냥 가.” 이렇게 시작해서 마지막엔 “집 가든 말든 나는 신경 안 쓴다.” 이런 식으로 다 내려놓는 거죠.

‘GO HOME’의 피처링을 맡은 ‘LÁPAMASAKA’가 또 소코도모의 다른 자아라고 들었어요. 소코도모와는 어떻게 다른 모습인지 궁금해요. 피처링 할 만한 아티스트를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여기저기 부탁했는데 마음대로 안되고, 연락을 안 받는 곳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살짝 화도 나더라고요. ‘LáPamasaka’는 저의 화난 자아에게 붙여준 이름이에요. 이름 자체에 특별한 뜻이 있진 않아요. 소코도모는 모든 음절이 모음 ‘ㅗ’로 끝나고 라파마사카는 모두 ‘ㅏ’로 끝나죠.

앞으로 다른 곡에서도 만날 수 있는 분인 거죠? 네. 화가 나면요. 화나는 상황이 생긴다면 또 나올 거예요.

유년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다고 들었어요. 다양한 나라에서 보낸 시간, 그때 경험한 자유분방한 문화가 현재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큰 영향을 미쳤어요. 생각의 폭도 넓어졌고요. 어렸을 때는 미국과 브라질에서 살았어요. 미국에 있을 때는 한인들이 많지 않은 서부 앨라배마에서 살았어요. 사계절 내내 별이 유독 잘 보이고 경치도 아름다운 곳이죠. 그러다가 브라질로 갔는데 거기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위험한 지역이긴 했지만 사람들도 친절하고 유대감이 끈끈했죠. 서울도 저에겐 외국 같아요. 여행하는 외국인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소코도모 고등래퍼
후드 재킷 티슈클럽밴드(Tissuclubband), 안경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셔츠와 넥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린 나이에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잦은 이동 때문에 불안하거나 위태롭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제 아이덴티티를 만들었고 또 저의 자유분방함을 만들었거든요.

방송에서 선보인 고글이나 모자 등 독특한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어요. 아이템들은 직접 선택한 건가요? 네, 맞아요. 직접 고른 거예요. 패션에 관심은 많지만 자신 있게 패션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요. 아직 더 배워야 하기도 하고 어딘가 어설프기도 하죠. 패션에 있어서는 아마추어라고 생각해요. 저를 스타일링해주는 형이 있는데 그 형이 제 아마추어적인 면모들을 많이 잡아주고 있어요.

김하온(HAON)이나 강현준(릴타치) 등 <고등래퍼> 출신들은 방송에서 본인의 멘토였던 뮤지션을 따라 소속사를 정하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소코도모의 소니뮤직행은 의외였어요. 멘토였던 그루비룸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나요? 방송하면서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소속사 선택을 앞두고 그루비룸 형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죠. 근데 안타깝게도 하이어뮤직(그루비룸 소속)에서는 연락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그루비룸 형들과는 작업도 같이하고, 재미있는 노래들을 같이 만들려고 해요.

소니 뮤직은 어떤 이유로 선택하게 된 건가요? 같은 소속사 보이콜드 형 때문예요. 형이 소니뮤직에 있거든요.

그럼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뮤지션은 누구인가요? 보이콜드? 네, 같은 회사 소속이니까요.

보이콜드와는 회사를 떠나서도 친분이 두터운 거죠? 소니뮤직에서 연락왔을 때 형에게 물어봤어요. 작업도 종종 같이하거든요. 지금도 많이 의지하고 있죠.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것 같아요.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 모습의 차이가 있나요? 차이라고 하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는 거죠. 방송이나 무대에서는 창의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통통 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고, 인터뷰를 할 때는 창의력이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그럴 땐 이렇게 차분하기도 하죠. 크리에이티브 하려고 할 때와 평소 이야기할 때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럴 때 ‘하이 텐션’이 되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평소 차분하고 조용하던 사람도 친구들을 만날 때면 신이 나고 흥이 나듯 저는 음악을 할 때 그래요. 특별한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지금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파이팅.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하고 어울리면서 지금처럼 지냈으면 좋겠어요.

소코도모 고등래퍼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후디 프롬마크(Frommark), 신발 오프화이트(Off-White™), 안경 펜디×젠틀몬스터(Fendi×Gentle Monster), 팔찌 모두 아티펙스(Artifex), 반지 모두 포세뜨(Fossette),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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