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항아

소코도모 고등래퍼
니트 풀오버 오프화이트(Off-White™), 셔츠 세션스(Sessions), 팬츠 리암 호지스 바이 아이코스(Liam Hodges by Ikoes), 신발 아디다스(Adidas), 목걸이 베르사체(Versace), 터틀넥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소코도모 고등래퍼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후디 프롬마크(Frommark), 안경 펜디×젠틀몬스터
(Fendi×Gentle Monster).

프로펠러가 달린 모자와 물안경 같은 선글라스를 쓰고 <고등래퍼3> 무대에서 지구 멸망을 외치던, 지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지구 반항아’. 그게 소코도모의 첫인상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6개월 뒤 만난 ‘고등 래퍼’는 차분하고 생각 많은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고등래퍼> 이후 첫 정규 앨범이에요. 발매를 앞두고 소감이 어떤가요? 앨범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공이 드는 줄 몰랐어요. 작업하다가 괜찮은 곡 나오면 모아놓았다가 앨범으로 발매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미리 계획을 세우고 판을 짜고 진행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음악적인 것보다는 진행적인 면에 있어서 좀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도 재밌게 한 것 같아요.

이번 앨범 컨셉트는요? 사실 아무거나 다 넣어봤어요. 힙합에서 친숙하게 들어보셨을 법한 사운드도 넣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도, 못 들어보셨을 것 같은 것도 넣었어요. 다양한 음악을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앨범에는 시티 팝도 있고, 지금 촬영장에 흐르는 레트로 느낌의 곡도 있고, OST스러운 곡도 있어요. 아, 사운드 클라우드에 예전에 올린 곡들도 넣었어요. 여러 장르를 선보였습니다.

지난 곡들을 들어보면 스토리텔링을 하는 방법이 독특한데 곡의 콘셉트를 정하는 방법이 있나요? 주로 그때그때 드는 감정으로 컨셉트를 잡아요. ‘Freedom’은 당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지구 멸망’은 자유로워지고 싶어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 이럴 거면 그냥 다 망해버려라 하는 마음에 만들었죠. 그때의 감정들을 곡 안에 녹여내려고 했어요. ‘Go home’도 “그냥 집 가라. 그만하고 이제 집 가도 된다” 이런 심정이었어요.

그럼 곡의 영감을 일상에서 하는 생각에서 받는 거네요. 모든 곳에서 다 받아요. 길을 걷다가도,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다가도, 이렇게 앞에 놓여 있는 펜에서도요. 그때 그때 영감받은 것들로 노래를 만들어요. 이제까지 나온 곡들도 그런 식으로 만들었어요.

음악 작업 방식은 어떤가요? 저는 뮤지션이니까 음악이 직업인 거잖아요. 회사원이 출근해서 일하는 것처럼 매일 음악 작업을 해요. 오늘도 이 촬영 끝나고 다른 스케줄 갔다가 끝나면 곡 작업할 거예요. 작업 능력도 근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운동을 쉬면 근육이 퇴화하는 것처럼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돼요. 끊임없이 사용해줘야 하죠.

최근 곡인 ‘GO HOME’ 뮤직비디오도 상당히 파격적이에요. 흰색 속옷 한 장 입고 우주를 떠돌아다니던데요. 사실은 다 벗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면 19금 딱지가 붙잖아요. 아마 한국이 아니었으면 다 벗어버렸을 수도 있어요. 다 벗어던지고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마음으로 속옷만 입은 거였어요. ‘Go home’ 곡의 전개도 초반에는 불평불만을 하는 가사들로 시작해서 후반에는 다 내려놓고 초월한 듯한 식으로 구성했거든요. “그럴 거면 집 가라, 그냥 가.” 이렇게 시작해서 마지막엔 “집 가든 말든 나는 신경 안 쓴다.” 이런 식으로 다 내려놓는 거죠.

‘GO HOME’의 피처링을 맡은 ‘LÁPAMASAKA’가 또 소코도모의 다른 자아라고 들었어요. 소코도모와는 어떻게 다른 모습인지 궁금해요. 피처링 할 만한 아티스트를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여기저기 부탁했는데 마음대로 안되고, 연락을 안 받는 곳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살짝 화도 나더라고요. ‘LáPamasaka’는 저의 화난 자아에게 붙여준 이름이에요. 이름 자체에 특별한 뜻이 있진 않아요. 소코도모는 모든 음절이 모음 ‘ㅗ’로 끝나고 라파마사카는 모두 ‘ㅏ’로 끝나죠.

앞으로 다른 곡에서도 만날 수 있는 분인 거죠? 네. 화가 나면요. 화나는 상황이 생긴다면 또 나올 거예요.

유년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다고 들었어요. 다양한 나라에서 보낸 시간, 그때 경험한 자유분방한 문화가 현재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큰 영향을 미쳤어요. 생각의 폭도 넓어졌고요. 어렸을 때는 미국과 브라질에서 살았어요. 미국에 있을 때는 한인들이 많지 않은 서부 앨라배마에서 살았어요. 사계절 내내 별이 유독 잘 보이고 경치도 아름다운 곳이죠. 그러다가 브라질로 갔는데 거기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위험한 지역이긴 했지만 사람들도 친절하고 유대감이 끈끈했죠. 서울도 저에겐 외국 같아요. 여행하는 외국인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소코도모 고등래퍼
후드 재킷 티슈클럽밴드(Tissuclubband), 안경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셔츠와 넥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린 나이에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잦은 이동 때문에 불안하거나 위태롭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제 아이덴티티를 만들었고 또 저의 자유분방함을 만들었거든요.

방송에서 선보인 고글이나 모자 등 독특한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어요. 아이템들은 직접 선택한 건가요? 네, 맞아요. 직접 고른 거예요. 패션에 관심은 많지만 자신 있게 패션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요. 아직 더 배워야 하기도 하고 어딘가 어설프기도 하죠. 패션에 있어서는 아마추어라고 생각해요. 저를 스타일링해주는 형이 있는데 그 형이 제 아마추어적인 면모들을 많이 잡아주고 있어요.

김하온(HAON)이나 강현준(릴타치) 등 <고등래퍼> 출신들은 방송에서 본인의 멘토였던 뮤지션을 따라 소속사를 정하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소코도모의 소니뮤직행은 의외였어요. 멘토였던 그루비룸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나요? 방송하면서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소속사 선택을 앞두고 그루비룸 형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죠. 근데 안타깝게도 하이어뮤직(그루비룸 소속)에서는 연락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그루비룸 형들과는 작업도 같이하고, 재미있는 노래들을 같이 만들려고 해요.

소니 뮤직은 어떤 이유로 선택하게 된 건가요? 같은 소속사 보이콜드 형 때문예요. 형이 소니뮤직에 있거든요.

그럼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뮤지션은 누구인가요? 보이콜드? 네, 같은 회사 소속이니까요.

보이콜드와는 회사를 떠나서도 친분이 두터운 거죠? 소니뮤직에서 연락왔을 때 형에게 물어봤어요. 작업도 종종 같이하거든요. 지금도 많이 의지하고 있죠.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것 같아요.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 모습의 차이가 있나요? 차이라고 하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는 거죠. 방송이나 무대에서는 창의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통통 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고, 인터뷰를 할 때는 창의력이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그럴 땐 이렇게 차분하기도 하죠. 크리에이티브 하려고 할 때와 평소 이야기할 때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럴 때 ‘하이 텐션’이 되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평소 차분하고 조용하던 사람도 친구들을 만날 때면 신이 나고 흥이 나듯 저는 음악을 할 때 그래요. 특별한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지금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파이팅.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하고 어울리면서 지금처럼 지냈으면 좋겠어요.

소코도모 고등래퍼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후디 프롬마크(Frommark), 신발 오프화이트(Off-White™), 안경 펜디×젠틀몬스터(Fendi×Gentle Monster), 팔찌 모두 아티펙스(Artifex), 반지 모두 포세뜨(Fossette),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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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사람 조현철

조현철 배우조현철
와이드 팬츠 코스 아카이브 에디션(COS Archive Edition), 울 혼방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레이 바이 매치스패션닷컴(Raey by MATCHESFASHION.COM).
조현철 배우조현철
블랙 셔츠, 테일러드 재킷 모두 로리엣(Roliat).
조현철 배우조현철
터틀넥 스웨터 맨온더분(MAN on the BOON), 오간자 긴소매 셔츠, 슬립 포켓 조거 팬츠 모두 펜디(Fendi).
조현철 배우조현철
자주색 하이넥 니트웨어, 블랙 캐시미어 터틀넥 니트웨어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XXX(Ermenegildo Zegna XXX).
조현철 배우조현철
셔츠, 아웃 포켓 테일러드 재킷, 팬츠 모두 로리엣(Roliat).

그러니까 조금 다른 인터뷰였다. 배우 조현철과 1시간을 마주 앉아 있었지만 대화의 반은 꽤 단조롭고 밍밍하게 흘렀다. ‘할 말이 있어도 여러 번 생각하다 보면 결국 안 하게 된다’는 그의 대답을 빌미로 말수 없는 성정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더 길게 답을 해야 하는데’라며 뭐라도 더 이야기해보려는 듯 오래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되레 어느 순간 내 질문이 잘못됐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조현철은 자신이 답할 수 있는 질문에 최대한 반응하는 사람 같다’는 짐작과 함께 대화가 매끄러워진 건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꺼낸 후 부터다. 시간이라는 다층적인 세계와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행위에 대해 그는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생각을 정확히 표현해냈다. 대답의 끝에는 “근데… 이런 이야기 좋아하세요?”라고 상대의 마음을 살피며.

최근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쾌활하고 해맑은 재벌 ‘산체스’ 역할로 주목받았지만, 실제 성격은 그와 정반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배우로서 연기하는 데 큰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안 하던 걸 하려다 보니 힘들더라고요. 큰 소리로 대사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표정도 과장하다 보니 쉽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일 끝나면 그냥 좋고 대체로 만족하며 지냈는데 이번에는 대사가 안 외워지고 목소리도 안 나오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계속 떨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약간 위기였어요.(웃음)

독립영화 <영아> <9월이 지나면> <뎀프시롤: 참회록>과 상업영화 <건축학개론> <마스터> <차이나타운> 등 많은 작품에서 연기해왔음에도 새삼 위기를 겪었다는 거죠?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떨 수도 있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연기를 생업으로만 생각하며 익숙하고 편한 방식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나 싶었고요. 아무리 생계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까요. 대단한 배우가 되거나 주연을 맡고 싶다기보다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정신 차리고 해야겠다고요.

많은 이들이 인상적인 캐릭터였다고 평가하는데도요? 평가는 알아서 걸러 들어요. 내가 어떻게 연기한지 알고, TV에 어떻게 나오는지 아니까 좋은 평을 들으면 기분 좋지만 흘려듣게 되죠. 반대로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누군가 정확히 짚어서 이야기할 때는 마음에 담아둬요.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걸 비난하는 것에는 큰 타격을 받지 않는데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오늘 만난 배우 조현철은 배우로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배우에게는 자신을 증명하고 드러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없진 않아요. 다만 뭔가를 드러내고 펼쳐 보이기보다는 작은 역할을 맡아도 사연이 있고 충분히 있을 법한, 도구적이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요. 감초 역할은 웃음을 주거나 정보 전달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 또한 의미 있고 좋지만 살아 있는 캐릭터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배우 이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2010년 연출작이자 주연작인 단편영화 <척추측만>으로 제36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수상했죠. 최근 상업 장편영화로 개봉한 <판소리 복서>의 원작인 <뎀프시롤: 참회록>의 공동 연출자이자 주연배우이기도 했습니다. 독립영화, 상업 영화를 가리지 않고 스무 살 이후부터 줄곧 감독 혹은 배우로서 작품 안에서 살아왔어요. 그런 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는 게 좋았어요. 어디 가서 내 이야기를 하고, 그걸 누군가 들어주는 일은 쉽게 생기진 않잖아요. 이런 식으로라도 포장해서 내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꽤 많은 사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꽤 긴 시간 사이 영화는 무엇일까, 연기는 뭘까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들었을 것 같고요. 영화와 연기에 대해 고민했던 시절은 다 지나간 것 같아요.(웃음) 너무 오래전에 지나간 것 같고… 오히려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 하는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굳이 한다면 어떤 영화에 대해, 어떤 연기에 대해 욕을 하거나.(웃음) 요새는 그냥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웃음),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 좋아해요. 관심사가 많이 바뀌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긴 해요. 요즘은 시간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요. ‘이게 다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고, 왜 내가 의식이 있는 채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실제로 여기 존재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죠. 지금 이 인터뷰도….(웃음) 이게 다 내가 만든 시뮬레이션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기도 했고요. 그런 식으로 질문을 거듭해가는데 말하자면 시간이라는 것도 인간의 고유한 시각으로 본 현상이라는 거죠.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우주의 본질이 그렇지 않은데 인간이 희미한 시각으로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사는 건 아닐까?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향하는 게 시간의 흐름과 연관 있는 건데… 근데 이런 거 재미있으세요? 진짜로요?

그 책 제목이 뭐예요? 카를로 로밸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요.

이런 다채로운 사유들이 삶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꿈에서 바위산을 타다가 길을 잃었는데 수풀 속에서 수천 마리의 메뚜기 떼가 날아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나 내게 양자의 세계를 보여주겠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파란 빛이 보여요. 그리고 ‘이것은 물질이 아니고, 무(無)인 동시에 유(有)이고, 존재인 동시에 비존재’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참 좋더라고요. 연기자로서 성공해야지, 연기로서 뭘 해내야지 하는 생각이 사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변방이잖아요. 작은 나라이고, 60년 넘게 분단돼 있고, 인종도 다양하지 않고요. 그 속에서 무언가 하겠다고 아등바등하면서 삶을 생각하다가 관점을 달리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그런 걸 궁금해하고 찾아보게 되고요. 다른 것들에는 크게 즐거움을 못 느끼지만 이해할 수 없던 것, 알지 못했던 걸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리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을 책이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선명하게 보고 확인하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새롭게 깨닫는 것처럼 배우 혹은 감독으로서 반대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삶이 허무하고 의미 없는 와중에 유일하게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게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잖아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창조의 과정이고 거기서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순간에 유독 더 이야기하고 싶고, 더 만들고 싶고, 더 쓰고 싶어요? 사랑하는 것이 생겼을 때. 예쁜 걸 보면 나누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는 사랑이 작동하는 것 같아요. 내 안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을 남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고요. 또 죽음을 목격했을 때. 죽음이 어떤 의미이고,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무엇이었고,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이 사랑을 불러일으키나요? 대단히 아름답기보다는 사소한 것들인데, 길을 지나가다 제철 과일을 보고 돈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누가 생각나서 사게 되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봤는데 날씨가 좋아 좋은 마음이 들면 서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는 것도 사랑이겠죠. 그런 마음들을 예민하게 잘 써야 할 것 같아요. 모르고 지나치기 쉽잖아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다 느낄 수 있는 건데 막상 보지 못하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보여주고 싶어요. 다들 사랑하고 있지만 사는 게 피곤해서 지나치는 것들이요.

감독 혹은 배우로서 계속 만들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품게 되는군요. 그렇죠. 하지만 그게 꼭 영화는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농사를 지으면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고, 글이야 언제든지 쓸 수 있고요. 하다못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소통할 수 있으니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 해요. 한데 숙명적으로 뭔가 계속 쓰긴 써야 할 것 같아요. 빠져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건.

인간 조현철로서 지금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극적이었던 시기는 3년 전에 지난 것 같아요. 그때 믿었던 것들도, 확신도 있었다면 그런게 하나씩 다 무너지고.(웃음) 자신에 대한 확신도 사라지고, 믿었던 것들도 다 사라져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가장 활활 타올랐던 때는 다 지나고 재만 남은 건데, 김연수 작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럴 때 글을 쓸 수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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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by LITTLE

강태오 배우강태오
보머 재킷과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강태오 배우강태오
코듀로이 셔츠와 버건디 스웨터 모두 코스(COS).
강태오 배우강태오
피케 셔츠와 레드 재킷 모두 프레드 페리(Fred Perry), 안에 입은 티셔츠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에서 꽃선비, 요섹남, 순정남 ‘차율무’ 역을 맡았다. 유일하게 원작에 없는 캐릭터이자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지금껏 작품을 하면서 좋은 역할은 많았지만, 이 인물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어필한 역할은 처음이었다. 대외적으로는 더없이 완벽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가장 큰 반전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그가 드러내는 이중적인 면에 매력을 느꼈다.

캐스팅을 한 이유 중 하나가 ‘한복이 잘 어울려서’라는 말이 있던데, 혹시 감독님에게 이유를 물어봤나? 궁금하긴 한데 왠지 쑥스러워서 못 물었다. 글쎄, 내 열정적인 의지를 좋게 봐주신 걸까? 아니면 율무의 이중성을 내게서 발견하셨을 수도 있고.(웃음) 나중에 종방연 할 때 물어봐야겠다.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것에 관해서 생각해본 적 있나? 타고난 건 없다. 오히려 가지지 못한 점이 많다. 전에는 발음이 심하게 좋지 않았다. 잘못 인지하고 말하는 단어가 많았다. 예를 들어 시옷(ㅅ)은 혀를 아래로 내려 발음해야 하는데, 나는 혀를 위에 대고 말했었다. 그래서 한동안 몸으로 하는 연기만 할 정도로 콤플렉스가 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우는 말을 하는 직업인데 말하는 걸 이렇게 두려워해서 되나 싶은 마음이 들더라. 그때부터 엄청나게 노력했다. 매일 집에서 몇 시간씩 발음 연습을 해서 겨우 고쳤다. 아마 이런 게 무기가 아닐까 싶다. 재능은 없지만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배우가 되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인가? 손 떨지 마. 술도 못 마시는데 이상하게 카메라에 잡힐 때면 손을 떨 때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민망한 말이다.

강태오 배우강태오
데님 팬츠 리바이스(Levi’s), 안경 스틸러(Stealer), 빈티지 스웨트셔츠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렇게 운을 띄우는 걸 보니 쑥스러운 칭찬인 것 같은데, 어떤 말인가? 절대 어필하려는 건 아니다. 우수에 찬 눈빛을 가졌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아마 대체로 짝사랑하는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면 주변에서 ‘우수에 찬 눈빛’이라면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인가? 그렇진 않다. 사실 나의 이미지를 특정 짓지 못하겠다. 내 연기를 보면 오히려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날 보면 무슨 색이 떠오르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 답으로 나를 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주로 어떤 색이라는 말을 듣는 편인가? 생각보다 다양한 색이 나온다. 짙은 회색일 때도 있고, 주황색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많은 건 갈색이다. 왜냐고 물어보면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들은 “네 피부가 까맣잖아”라고 하고, 구수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다는 대답도 나온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파란색이 아닐까. <오늘도 청춘> <쇼트>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등 청춘을 그린 작품이 유난히 많다. 청춘물을 찍을 때 나를 가장 많이 드러내는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다른 작품에 비해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상대적으로 편하게 임한다. 그중에서도 <쇼트>의 ‘호영’이라는 인물이 내 실제 성격과 가장 비슷하다. 장난치는 걸 좋아하지만 심드렁한 면도 있고, 솔직하고 열정적인 성격의 호영이를 연기하면서 나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2013년에 웹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으로 데뷔했으니, 이제 6년 차 배우다. 배우라는 직업에 완벽히 적응한 것 같나? 시간이 무척 빨리 흐른 것 같다. 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낯가림이 심해서 새 작품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매번 가까워지는 데 얼마간의 시간이 든다. 배우라는 직업은 늘 낯섦을 맞닥뜨리는 직업인데,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나? 아직도 방법을 못 찾고 극복하려 애쓰는 중이다. 10년쯤 지나면 적응할 수 있을까?

배우로서 삶의 주기를 살펴봤을 때, 진폭이 큰 삶이었나? 연기를 하면서 크게 스펙터클한 일을 겪진 않았다. 나는 낮은 계단을 천천히 하나씩 올라가고 있는 쪽이다. 몰랐던 걸 조금씩 알게 되고, 두렵고 긴장되던 일도 이제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 여기고,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가끔은 실수를 번복하기도 하면서 올라가는 것 같다.

내 삶에 영화적인 순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때는 없나? 그런 순간을 겪어보고 싶긴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게 좋지 않은 쪽이면 어쩌나 싶고. 어쨌든 지금은 이런 삶에 만족한다.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떻게 올라가느냐보다 어떻게 유지하느냐다. 연기하면서 실수하지 않고 조용히 올라가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렇게 얇고 길게 조금씩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 곁에 머무는 배우가 되고 싶다.

굉장히 안정 지향적인 삶이다. 직업은 배우인데 마인드는 회사원이다.(웃음)

연기하면서 희열은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지금과 정반대로 어릴 때는 ‘관종’이었다. 학교 다닐 때 반마다 가장 목소리가 크고, 말할 때 모두가 자기를 지켜봐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가 꼭 하나쯤 있지 않나. 그게 나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다. 배우가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목소리를 크게 내고 주목받으려는 행동이 창피한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급격히 내성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연기를 하고 싶은 꿈은 그대로 간직했다.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는데, 무대 냄새를 맡으면서 조명을 받고, 관객과 보이지 않게 소통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그때부터 연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순간이 훨씬 많다. 매체에 상관없이 연기를 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희열을 느낀다.

처음 시작할 때 꿈꾸던 모습에 얼마큼 다가갔다고 생각하나?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본 작품이 <태극기 휘날리며>였는데, 보면서 펑펑 운 기억이 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진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가 될 거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직 먼 것 같다.

연기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겁먹지 않으면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것. 드라마 <오늘도 청춘>을 하기로 했을 때 덜컥 겁부터 났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베트남에 가서 촬영하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상대 배우랑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괜찮을까 등등 온통 겁나는 일 투성이였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되더라. 말이 안 통하니까 서로의 행동과 눈빛을 바라보면서 더 집중할 수 있고, 익숙한 곳이 아니라서 오히려 여행하듯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그 작품을 마치고 나서 겁먹지 않아도 일단 해보면 재미있게 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에 대해 알게 된 점도 있나? 생각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친구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더러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나도 내가 그런 줄 알았는데, 연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 하면 되지’ 하는 일도 혼자서 계속 다른 변수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태도가 연기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나? 연기할 때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 초반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대사 하나하나 숨 쉬는 지점까지 준비해 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오니까 감독님의 디렉팅과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너무 많더라. 결국 준비한 건 하나도 못 하고, 너무 열심히 준비한 나머지 긴장해서 오히려 실수만 연발했다. 그게 티가 났는지, 친한 스크립터가 조언을 해줬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현장의 흐름을 느껴보라고. 그 말을 듣고 혼자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기보다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뒤부터 조금 편해진 것 같다.

주변의 조언을 빨리 받아들이는 편인가? 그런 부분에서는 고집이 별로 없다. 내 생각대로 안 되는데 옆에서 조언해주면 빨리 갈아 끼우는 편이다. 그런데 그것도 안 되면? 또 다른 조언을 찾아 듣고. 될 때까지 찾는 스타일이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 인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꾸준함. 어릴 때부터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이었다. 학원도 10년 동안한 군데만 다닐 정도였다. 연기도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우가 되겠다고 큰소리 떵떵 친 이후로 한 번도 뒤돌아본 적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가다 보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젠가 물도 나오고 기름도 나오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회의가 들거나 정체기가 온 적은 없었나? 내 연기에 대한 고민 말고 직업에 대한 고민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유일무이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어릴 때 친구들한테 연기할 거라고 말하면 다들 심드렁하게 ‘그래’라고 했는데, 지금은 다들 부러워한다. 어릴 때 꿈을 지금도 꾸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때 꾼 꿈의 정점에 언제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10년 뒤? 30대 중반에는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얼마 전에 점을 봤는데, 30대 중반에 잘된다고 했다. 정확히 서른여섯.

강태오 배우강태오
폴라플리스 레터맨 점퍼, 안에 입은 데님 셔츠와 베스트, 타이, 팬츠 모두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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