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ME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정교한 엠브로이더리 디테일과 풍성한 페플럼 실루엣의 조합이 감각적인 드레스, 나이트폴 하프 부츠, 카보숑 장식 스트라스 가죽 이어링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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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스트리트 비즈니스맨의 수트에서 영감 받은 스트라이프 팬츠 수트, 그래픽 프린트 셔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건축적인 실루엣이 돋보이는 크롭트 재킷과 안에 입은 화이트 원피스, 메트로폴리스 플랫 레인저 부츠, 카보숑 장식 스트라스 가죽 이어링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정교한 수작업으로 완성한 주얼 장식 케이프 재킷 루이 비통(Louis Vuitton).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핫핑크 컬러 소가죽과 새틴을 조합한 크롭트 재킷, 블랙 버뮤다 쇼츠, 메트로폴리스 플랫 레인저 부츠, 방돔 스트라스 이어링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고담시티에서 영감 받은 LV 문 포쉐뜨 모노그램 미드나이트 백, 화려한 엠브로이더리 디테일과 스트라이프 프린트가 어우러진 롱 뷔스티에 드레스, 메탈릭한 방돔 스트라스 이어링, 부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뉴욕 고층 빌딩을 모티프로 한 프린트와 자수로 장식한 재킷, 가죽 팬츠, 메트로폴리스 플랫 레인저 부츠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오늘 하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멋진 하루. 우아함부터 파워풀, 보이시, 여성스러움까지 루이 비통의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생각을 구현해내는 일이 재미있었어요. 오늘을 기록한다면 자신감 넘치고 신나는 날이라고 할 거예요.

이곳 LA에서 곧 또 하나의 신나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들었어요. 맞아요. 새 영화 <아담스 패밀리>가 LA에서 개봉해요. 이 책이 나온 이후에는 한국에서도 개봉할 거고요. 이 애니메이션은 1938년에 나온 찰스 애덤스의 만화가 원작인데, 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웬즈데이’를 연기하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매우 좋아한 캐릭터거든요. 그래서 그가 원했던 웬즈데이의 모습을 살려내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연기한 웬즈데이를 포함해 영화 속 모든 캐릭터가 무섭고 괴짜 같고 흥미로울 거예요. 기대해도 좋아요.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은 스크린에 등장해 연기하는 것과 방식이 완전히 다를 것 같아요. 많이 달라요. 머릿속에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연기해야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스크린에서 하는 연기 이상의 것이 가능해요. 실제로 연기하는 것은 제한이 많은 데 비해 목소리만으로 연기할 때는 그보다 훨씬 더 과장되고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오늘을 포함해 지금까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표출해왔어요. 영화, 광고, 화보, 시사회와 시상식, 그리고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서도요.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나요? 카메라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해마다 달라요. 어릴 때는 그저 새로운 경험 중 하나였지만, 카메라 앞에서 자라면서 점점 내가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성인이 된 후로는 나를 표현하고 탐구하는 표출 수단으로 카메라를 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탐구하고 표출하나요? 사진이든 영화든 카메라 앞에 있을 때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해요. 렌즈에 제가 생각하는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묘사하는 걸 좋아해요.

영화 촬영을 할 때는 카메라의 존재를 잊고 자신의 연기에 몰입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어떤 식으로 카메라에 담길지 연구하는 편인가요? 항상 어딘가에 카메라가 있다는 걸 완전히 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연기하는 인물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아내야 하니까요. 동시에 카메라는 관객의 눈이라는 것 또한 인지하려고 해요. 그렇게 균형을 맞추는 거죠.

처음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 게 2004년이니까, 벌써 15년이 지났어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고 있나요? 그렇게 오래됐어요? 충격적이네요.(웃음)

배우로서 보낸 15년의 시간은 어떻게 흐른 것 같아요?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맡은 역할, 함께 일한 감독님들과 무척 행복한 순간들이 많았거든요. 이 모든 경험을 해온 사실이 자랑스럽고 뿌듯해요.

혹시 과거의 어떤 순간을 잠시 여행할 수 있다면, 다녀오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영화 <휴고>의 세트장으로 여행을 가서 그 순간에 다시 빠져보고 싶어요. 어마어마한 세트장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작업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몇 번이고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이었어요.

올해는 어땠나요? 어떤 해보다 다양한 작품을 만난 해인데요. 아주 만족스러운 해예요. 제가 원하는 곳에 정확히 도달한 느낌이에요. 내년에는 제게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벌써 기대될 정도로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연기할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으면 연기하는 내내 굉장히 참담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최근 사랑에 빠졌던 캐릭터에 대한 얘기해준다면요? 영화 <톰과 제리>에서 연기한 캐릭터와 완전히 사랑에 빠졌어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역할이었는데, 영화를 찍는 내내 제 안에 있는 코미디 요소를 찾는 일이 무척 즐거웠어요. 오랫동안 우상으로 생각했던 배우 루실 볼과 줄리아 로버츠에게서 영감을 받아 연기했는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해요.

인터뷰를 위해 필모그래피를 다시 살펴봤는데,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어요. 영화 데뷔작 <아미티빌 호러>를 비롯해 <더 써드 네일> <디 아이> <캐리> <서스페리아> 등 유독 공포영화가 많다는 점이에요. 스릴러물이긴 하지만 영화 <마담 싸이코> 역시 꽤 섬뜩했고요. 다른 장르에 비해 공포물에 흥미를 느끼는 편인가요? 저는 호러야말로 많은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공포라는 하나의 장르에 집중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죠. 또 극한의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건 배우로서 멋진 기회이기도 해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만 남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만큼 강인하고 성격이 분명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다는 점이에요. 나 자신을 어딘가에 가두거나 제한을 두고 싶지 않아요. 다양한 생활 방식과 배경을 지닌 캐릭터들을 경험하고 저를 다양한 형태로 바꿔보면서 안일한 태도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할리우드 미디어 산업에 만연한 성 차별과 기회 불균등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도 자신을 포함해 모든 여성 배우를 위해 위와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제 목소리를 내고, 동료 배우들이 이 업계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작품이에요.

여성이라는 사실에 갇히지 않고 꽤 다양한 인물을 그려내고 있으면서도 영화계의 상황에 대해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는 이유가 있나요? 또 이에 관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내갈 생각인가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제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제 행보는 아직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지 않은 수많은 여성을 위한 것이기도 해요. 전 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려고 해요. 그리고 모든 사람이 보고, 듣고, 보호받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동안 여성뿐 아니라 환경, 정치 분야에 관한 소신도 꾸준히 밝히고 관련 활동을 펼쳐왔어요. 이런 분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와 정책을 지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부터였어요.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2020년 대선.

영화를 제외하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있다면요? 제 반려견 ‘루비’요. 귀여운 프렌치불도그인데 언제나 저를 즐겁게 해주고, 제 삶의 모든 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요.

새롭게 관심을 두는 것도 있나요?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서 새로운 재미와 흥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우리 주위에서는 생각보다 경이롭고 마법 같은 일이 많이 벌어지거든요.

20대가 된 자신의 시간을 즐기려고 하는 편인가요? 20대의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20대가 되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어요. 저는 여전히 새로운 경험을 즐기고, 작은 것에도 즐거움을 느끼고, 나이에 얽매이지도 않거든요. 바라는 게 있다면, 앞으로 카메라 앞에서든 밖에서든 더 도전적이고 신나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20대가 지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수년 내에 감독이 되어 디렉팅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제가 하는 모든 일에서 영감을 찾고 싶다는 것.

지금 바라는 미래의 모습이 있나요?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요.

클로이모레츠 루이비통
소가죽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실크 랩스커트, 카보숑 장식 스트라스 가죽 이어링 모두 루이 비통(Louis Vuitton).

지구 반항아

소코도모 고등래퍼
니트 풀오버 오프화이트(Off-White™), 셔츠 세션스(Sessions), 팬츠 리암 호지스 바이 아이코스(Liam Hodges by Ikoes), 신발 아디다스(Adidas), 목걸이 베르사체(Versace), 터틀넥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소코도모 고등래퍼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후디 프롬마크(Frommark), 안경 펜디×젠틀몬스터
(Fendi×Gentle Monster).

프로펠러가 달린 모자와 물안경 같은 선글라스를 쓰고 <고등래퍼3> 무대에서 지구 멸망을 외치던, 지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지구 반항아’. 그게 소코도모의 첫인상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6개월 뒤 만난 ‘고등 래퍼’는 차분하고 생각 많은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고등래퍼> 이후 첫 정규 앨범이에요. 발매를 앞두고 소감이 어떤가요? 앨범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공이 드는 줄 몰랐어요. 작업하다가 괜찮은 곡 나오면 모아놓았다가 앨범으로 발매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미리 계획을 세우고 판을 짜고 진행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음악적인 것보다는 진행적인 면에 있어서 좀 시간이 걸렸어요. 그래도 재밌게 한 것 같아요.

이번 앨범 컨셉트는요? 사실 아무거나 다 넣어봤어요. 힙합에서 친숙하게 들어보셨을 법한 사운드도 넣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도, 못 들어보셨을 것 같은 것도 넣었어요. 다양한 음악을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앨범에는 시티 팝도 있고, 지금 촬영장에 흐르는 레트로 느낌의 곡도 있고, OST스러운 곡도 있어요. 아, 사운드 클라우드에 예전에 올린 곡들도 넣었어요. 여러 장르를 선보였습니다.

지난 곡들을 들어보면 스토리텔링을 하는 방법이 독특한데 곡의 콘셉트를 정하는 방법이 있나요? 주로 그때그때 드는 감정으로 컨셉트를 잡아요. ‘Freedom’은 당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지구 멸망’은 자유로워지고 싶어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 이럴 거면 그냥 다 망해버려라 하는 마음에 만들었죠. 그때의 감정들을 곡 안에 녹여내려고 했어요. ‘Go home’도 “그냥 집 가라. 그만하고 이제 집 가도 된다” 이런 심정이었어요.

그럼 곡의 영감을 일상에서 하는 생각에서 받는 거네요. 모든 곳에서 다 받아요. 길을 걷다가도,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다가도, 이렇게 앞에 놓여 있는 펜에서도요. 그때 그때 영감받은 것들로 노래를 만들어요. 이제까지 나온 곡들도 그런 식으로 만들었어요.

음악 작업 방식은 어떤가요? 저는 뮤지션이니까 음악이 직업인 거잖아요. 회사원이 출근해서 일하는 것처럼 매일 음악 작업을 해요. 오늘도 이 촬영 끝나고 다른 스케줄 갔다가 끝나면 곡 작업할 거예요. 작업 능력도 근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운동을 쉬면 근육이 퇴화하는 것처럼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돼요. 끊임없이 사용해줘야 하죠.

최근 곡인 ‘GO HOME’ 뮤직비디오도 상당히 파격적이에요. 흰색 속옷 한 장 입고 우주를 떠돌아다니던데요. 사실은 다 벗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면 19금 딱지가 붙잖아요. 아마 한국이 아니었으면 다 벗어버렸을 수도 있어요. 다 벗어던지고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마음으로 속옷만 입은 거였어요. ‘Go home’ 곡의 전개도 초반에는 불평불만을 하는 가사들로 시작해서 후반에는 다 내려놓고 초월한 듯한 식으로 구성했거든요. “그럴 거면 집 가라, 그냥 가.” 이렇게 시작해서 마지막엔 “집 가든 말든 나는 신경 안 쓴다.” 이런 식으로 다 내려놓는 거죠.

‘GO HOME’의 피처링을 맡은 ‘LÁPAMASAKA’가 또 소코도모의 다른 자아라고 들었어요. 소코도모와는 어떻게 다른 모습인지 궁금해요. 피처링 할 만한 아티스트를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여기저기 부탁했는데 마음대로 안되고, 연락을 안 받는 곳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살짝 화도 나더라고요. ‘LáPamasaka’는 저의 화난 자아에게 붙여준 이름이에요. 이름 자체에 특별한 뜻이 있진 않아요. 소코도모는 모든 음절이 모음 ‘ㅗ’로 끝나고 라파마사카는 모두 ‘ㅏ’로 끝나죠.

앞으로 다른 곡에서도 만날 수 있는 분인 거죠? 네. 화가 나면요. 화나는 상황이 생긴다면 또 나올 거예요.

유년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다고 들었어요. 다양한 나라에서 보낸 시간, 그때 경험한 자유분방한 문화가 현재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큰 영향을 미쳤어요. 생각의 폭도 넓어졌고요. 어렸을 때는 미국과 브라질에서 살았어요. 미국에 있을 때는 한인들이 많지 않은 서부 앨라배마에서 살았어요. 사계절 내내 별이 유독 잘 보이고 경치도 아름다운 곳이죠. 그러다가 브라질로 갔는데 거기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위험한 지역이긴 했지만 사람들도 친절하고 유대감이 끈끈했죠. 서울도 저에겐 외국 같아요. 여행하는 외국인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소코도모 고등래퍼
후드 재킷 티슈클럽밴드(Tissuclubband), 안경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셔츠와 넥타이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린 나이에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잦은 이동 때문에 불안하거나 위태롭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이 지금의 제 아이덴티티를 만들었고 또 저의 자유분방함을 만들었거든요.

방송에서 선보인 고글이나 모자 등 독특한 소품들이 눈길을 끌었어요. 아이템들은 직접 선택한 건가요? 네, 맞아요. 직접 고른 거예요. 패션에 관심은 많지만 자신 있게 패션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요. 아직 더 배워야 하기도 하고 어딘가 어설프기도 하죠. 패션에 있어서는 아마추어라고 생각해요. 저를 스타일링해주는 형이 있는데 그 형이 제 아마추어적인 면모들을 많이 잡아주고 있어요.

김하온(HAON)이나 강현준(릴타치) 등 <고등래퍼> 출신들은 방송에서 본인의 멘토였던 뮤지션을 따라 소속사를 정하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소코도모의 소니뮤직행은 의외였어요. 멘토였던 그루비룸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나요? 방송하면서 여러 곳에서 연락을 받았어요. 소속사 선택을 앞두고 그루비룸 형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죠. 근데 안타깝게도 하이어뮤직(그루비룸 소속)에서는 연락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그루비룸 형들과는 작업도 같이하고, 재미있는 노래들을 같이 만들려고 해요.

소니 뮤직은 어떤 이유로 선택하게 된 건가요? 같은 소속사 보이콜드 형 때문예요. 형이 소니뮤직에 있거든요.

그럼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뮤지션은 누구인가요? 보이콜드? 네, 같은 회사 소속이니까요.

보이콜드와는 회사를 떠나서도 친분이 두터운 거죠? 소니뮤직에서 연락왔을 때 형에게 물어봤어요. 작업도 종종 같이하거든요. 지금도 많이 의지하고 있죠.

생각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것 같아요.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 모습의 차이가 있나요? 차이라고 하기보다는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는 거죠. 방송이나 무대에서는 창의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통통 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고, 인터뷰를 할 때는 창의력이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그럴 땐 이렇게 차분하기도 하죠. 크리에이티브 하려고 할 때와 평소 이야기할 때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럴 때 ‘하이 텐션’이 되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평소 차분하고 조용하던 사람도 친구들을 만날 때면 신이 나고 흥이 나듯 저는 음악을 할 때 그래요. 특별한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지금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냥… 파이팅.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하고 어울리면서 지금처럼 지냈으면 좋겠어요.

소코도모 고등래퍼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후디 프롬마크(Frommark), 신발 오프화이트(Off-White™), 안경 펜디×젠틀몬스터(Fendi×Gentle Monster), 팔찌 모두 아티펙스(Artifex), 반지 모두 포세뜨(Fossette),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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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by LITTLE

강태오 배우강태오
보머 재킷과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강태오 배우강태오
코듀로이 셔츠와 버건디 스웨터 모두 코스(COS).
강태오 배우강태오
피케 셔츠와 레드 재킷 모두 프레드 페리(Fred Perry), 안에 입은 티셔츠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에서 꽃선비, 요섹남, 순정남 ‘차율무’ 역을 맡았다. 유일하게 원작에 없는 캐릭터이자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지금껏 작품을 하면서 좋은 역할은 많았지만, 이 인물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어필한 역할은 처음이었다. 대외적으로는 더없이 완벽한 사람으로 나오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가장 큰 반전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그가 드러내는 이중적인 면에 매력을 느꼈다.

캐스팅을 한 이유 중 하나가 ‘한복이 잘 어울려서’라는 말이 있던데, 혹시 감독님에게 이유를 물어봤나? 궁금하긴 한데 왠지 쑥스러워서 못 물었다. 글쎄, 내 열정적인 의지를 좋게 봐주신 걸까? 아니면 율무의 이중성을 내게서 발견하셨을 수도 있고.(웃음) 나중에 종방연 할 때 물어봐야겠다.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것에 관해서 생각해본 적 있나? 타고난 건 없다. 오히려 가지지 못한 점이 많다. 전에는 발음이 심하게 좋지 않았다. 잘못 인지하고 말하는 단어가 많았다. 예를 들어 시옷(ㅅ)은 혀를 아래로 내려 발음해야 하는데, 나는 혀를 위에 대고 말했었다. 그래서 한동안 몸으로 하는 연기만 할 정도로 콤플렉스가 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우는 말을 하는 직업인데 말하는 걸 이렇게 두려워해서 되나 싶은 마음이 들더라. 그때부터 엄청나게 노력했다. 매일 집에서 몇 시간씩 발음 연습을 해서 겨우 고쳤다. 아마 이런 게 무기가 아닐까 싶다. 재능은 없지만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배우가 되고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인가? 손 떨지 마. 술도 못 마시는데 이상하게 카메라에 잡힐 때면 손을 떨 때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민망한 말이다.

강태오 배우강태오
데님 팬츠 리바이스(Levi’s), 안경 스틸러(Stealer), 빈티지 스웨트셔츠와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렇게 운을 띄우는 걸 보니 쑥스러운 칭찬인 것 같은데, 어떤 말인가? 절대 어필하려는 건 아니다. 우수에 찬 눈빛을 가졌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아마 대체로 짝사랑하는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면 주변에서 ‘우수에 찬 눈빛’이라면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준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인가? 그렇진 않다. 사실 나의 이미지를 특정 짓지 못하겠다. 내 연기를 보면 오히려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날 보면 무슨 색이 떠오르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 답으로 나를 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주로 어떤 색이라는 말을 듣는 편인가? 생각보다 다양한 색이 나온다. 짙은 회색일 때도 있고, 주황색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많은 건 갈색이다. 왜냐고 물어보면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들은 “네 피부가 까맣잖아”라고 하고, 구수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다는 대답도 나온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파란색이 아닐까. <오늘도 청춘> <쇼트>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등 청춘을 그린 작품이 유난히 많다. 청춘물을 찍을 때 나를 가장 많이 드러내는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다른 작품에 비해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상대적으로 편하게 임한다. 그중에서도 <쇼트>의 ‘호영’이라는 인물이 내 실제 성격과 가장 비슷하다. 장난치는 걸 좋아하지만 심드렁한 면도 있고, 솔직하고 열정적인 성격의 호영이를 연기하면서 나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2013년에 웹드라마 <방과 후 복불복>으로 데뷔했으니, 이제 6년 차 배우다. 배우라는 직업에 완벽히 적응한 것 같나? 시간이 무척 빨리 흐른 것 같다. 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낯가림이 심해서 새 작품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매번 가까워지는 데 얼마간의 시간이 든다. 배우라는 직업은 늘 낯섦을 맞닥뜨리는 직업인데,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나? 아직도 방법을 못 찾고 극복하려 애쓰는 중이다. 10년쯤 지나면 적응할 수 있을까?

배우로서 삶의 주기를 살펴봤을 때, 진폭이 큰 삶이었나? 연기를 하면서 크게 스펙터클한 일을 겪진 않았다. 나는 낮은 계단을 천천히 하나씩 올라가고 있는 쪽이다. 몰랐던 걸 조금씩 알게 되고, 두렵고 긴장되던 일도 이제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 여기고,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가끔은 실수를 번복하기도 하면서 올라가는 것 같다.

내 삶에 영화적인 순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때는 없나? 그런 순간을 겪어보고 싶긴 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게 좋지 않은 쪽이면 어쩌나 싶고. 어쨌든 지금은 이런 삶에 만족한다.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어떻게 올라가느냐보다 어떻게 유지하느냐다. 연기하면서 실수하지 않고 조용히 올라가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렇게 얇고 길게 조금씩 나아가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 곁에 머무는 배우가 되고 싶다.

굉장히 안정 지향적인 삶이다. 직업은 배우인데 마인드는 회사원이다.(웃음)

연기하면서 희열은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지금과 정반대로 어릴 때는 ‘관종’이었다. 학교 다닐 때 반마다 가장 목소리가 크고, 말할 때 모두가 자기를 지켜봐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가 꼭 하나쯤 있지 않나. 그게 나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다. 배우가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 때 목소리를 크게 내고 주목받으려는 행동이 창피한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급격히 내성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연기를 하고 싶은 꿈은 그대로 간직했다.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했는데, 무대 냄새를 맡으면서 조명을 받고, 관객과 보이지 않게 소통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그때부터 연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런 순간이 훨씬 많다. 매체에 상관없이 연기를 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희열을 느낀다.

처음 시작할 때 꿈꾸던 모습에 얼마큼 다가갔다고 생각하나?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본 작품이 <태극기 휘날리며>였는데, 보면서 펑펑 운 기억이 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진심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가 될 거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직 먼 것 같다.

연기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겁먹지 않으면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것. 드라마 <오늘도 청춘>을 하기로 했을 때 덜컥 겁부터 났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는데 잘할 수 있을까, 베트남에 가서 촬영하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상대 배우랑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괜찮을까 등등 온통 겁나는 일 투성이였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되더라. 말이 안 통하니까 서로의 행동과 눈빛을 바라보면서 더 집중할 수 있고, 익숙한 곳이 아니라서 오히려 여행하듯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그 작품을 마치고 나서 겁먹지 않아도 일단 해보면 재미있게 잘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에 대해 알게 된 점도 있나? 생각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 친구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더러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나도 내가 그런 줄 알았는데, 연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 하면 되지’ 하는 일도 혼자서 계속 다른 변수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태도가 연기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나? 연기할 때는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 초반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대사 하나하나 숨 쉬는 지점까지 준비해 간 때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오니까 감독님의 디렉팅과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너무 많더라. 결국 준비한 건 하나도 못 하고, 너무 열심히 준비한 나머지 긴장해서 오히려 실수만 연발했다. 그게 티가 났는지, 친한 스크립터가 조언을 해줬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현장의 흐름을 느껴보라고. 그 말을 듣고 혼자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기보다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뒤부터 조금 편해진 것 같다.

주변의 조언을 빨리 받아들이는 편인가? 그런 부분에서는 고집이 별로 없다. 내 생각대로 안 되는데 옆에서 조언해주면 빨리 갈아 끼우는 편이다. 그런데 그것도 안 되면? 또 다른 조언을 찾아 듣고. 될 때까지 찾는 스타일이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스스로 인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꾸준함. 어릴 때부터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이었다. 학원도 10년 동안한 군데만 다닐 정도였다. 연기도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우가 되겠다고 큰소리 떵떵 친 이후로 한 번도 뒤돌아본 적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가다 보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언젠가 물도 나오고 기름도 나오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회의가 들거나 정체기가 온 적은 없었나? 내 연기에 대한 고민 말고 직업에 대한 고민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유일무이한 삶을 사는 것 같다. 어릴 때 친구들한테 연기할 거라고 말하면 다들 심드렁하게 ‘그래’라고 했는데, 지금은 다들 부러워한다. 어릴 때 꿈을 지금도 꾸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때 꾼 꿈의 정점에 언제 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10년 뒤? 30대 중반에는 인정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얼마 전에 점을 봤는데, 30대 중반에 잘된다고 했다. 정확히 서른여섯.

강태오 배우강태오
폴라플리스 레터맨 점퍼, 안에 입은 데님 셔츠와 베스트, 타이, 팬츠 모두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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