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and THEN

김소연 배우김소연
화이트 롱 재킷형 원피스 브라이드앤유(Bride And You), 착용한 주얼리 모두 스타일러스(Stylus).
김소연 배우김소연
골드 실크 톱과 팬츠 모두 문초이(Moon Choi), 착용한 주얼리 모두 스타일러스(Sty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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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블라우스 자라(ZARA), 화이트 슬랙스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알란토 콤플렉스가 리포솜 형태로 피부에 잘 흡수되어 매일 3시간 더 잔 듯한 효과를 주는 스템3 앰플 아이오페(IOPE).
김소연 배우김소연
네이비 롱 셔츠 드레스 톰보이(Tomboy), 골드 이어링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해리스 트위드 패턴 디테일 브라운 가죽 롱부츠 닥스 슈즈(Daks Shoes), 블랙 가죽 스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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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보리 와이드 팬츠 제인 송(Jain Song), 베이지 스웨이드 앵클부츠 닥스 슈즈(Daks Shoes),
아이보리 터틀넥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소연 배우김소연
베이지 시스루 블라우스 레하(Leha), 베이지 슬랙스 토이킷(Toykeat),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만년송의 에너지를 담아 지친 피부에 활력을 더하는 슈퍼바이탈 크림 아이오페(IOPE).
김소연 배우김소연
그레이 체크 원피스 언래블 프로젝트 바이 아데쿠베(Unravel Project by ADEKUVER), 골드 이어링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유니크한 락장식의 레드 컬러 백 공구일사(0914), 블랙 터틀넥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소연 배우김소연
버건디 니트 스웨터 빈스(Vince), 배색 플리츠스커트 시스템(System), 골드 이어링 포트레이트 리포트(Portrait Report), 스티치 디테일의 파우더 컬러 호보백 공구일사(0914), 파이톤 가죽 롱부츠 슈츠(Schutz).

향기로운

김향기 배우김향기
퍼플 실크 드레스 분더캄머(Wnderkammer).
김향기 배우김향기
새틴 배색 칼라 러플 드레스 쟈니 헤잇 재즈(Johnny Hates Jazz).
김향기 배우김향기
핑크 버튼 장식 울 코트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촬영이 끝나고 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오늘 같은 휴일에는 주로 집에 있거나 혼자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해요. 그리고 요즘 자전거에 빠졌어요.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하천가에 다녀오기도 하고 그래요. 극장에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고요.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 자전거 타는 장면이 많이 나왔어요. 맞아요. 그래서 생긴 취미예요. 드라마에서 친구들과 ‘따릉이’를 탄 적이 있는데, 그때가 아주 오랜만에 자전거를 탄 거였어요. 근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들이용 자전거 하나를 사서 요즘 자주 혼자 타고 돌아다녀요.

또래 배우가 유독 많은 현장이었겠어요. 다른 작품과 현장 느낌이 많이 달랐어요. 처음에는 그동안의 현장 분위기와 달라서 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또래가 많은 데서 오는 뭔가 밝고 활기찬 느낌이 긍정적인 영향을 줬어요. 딱 2학년 3반 학교 친구들 같은 느낌이었어요.

실제로 많이 친해졌나요? 한 명도 빠짐없이 다들 친해졌어요. 옆 반 상훈이(김도완)까지도요.(웃음)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열여덟의 순간>을 떠올리면 제 학창 시절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드라마 촬영 현장이 아니라 진짜 학창 시절 반 친구들과 함께 소통하고 추억을 나눈 것 같은.

열여덟 살 때로 돌아가면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못해 본 것 없이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영화 <신과 함께> 촬영하고 홍보할 때도 학교생활에 영향이 없게 스케줄을 맞춰주셨어요.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고요. ‘쏠리언’이라는 또래 상담부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또래 상담부 수업 듣고 상담도 하며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죠.

<열여덟의 순간>의 키워드는 성장과 위로인 것 같아요. 꼭 우리뿐 아니라 어른들의 성장담이기도 해요. 서로 위로하며 성장시켰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저마다 각자의 성장을 이룬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한 수빈이도 굉장히 어른스럽고 똑 부러지며 자신만의 생각이 확고한 아이로 보이잖아요. 그런데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또래 아이의 여린 마음이 고스란히 있죠. 그런 게 수빈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후반부에 갈수록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순수한 아이의 모습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준우(옹성우)와의 로맨스 역시 열여덟 살답게 그려내야겠다는 고민이 있었겠죠? 첫사랑은 다른 느낌이잖아요. 그 감정이 드는 순간에는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고,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게 맞나 싶어 혼란스럽기도 하고. 귀엽고 풋풋한 느낌이 들죠. 그런데 마냥 그렇게 보이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감정을 재단하듯 계산하고 예쁜 그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상황마다 당황스러운 모습조차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했어요.

김향기 배우김향기
롱 슬리브 드레스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블랙 스웨이드 부츠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김향기 배우김향기
주얼 장식 퍼프소매 톱 로맨시크(Romanchic).

엄마와 수빈이의 관계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 많은 엄마들과 호흡을 맞췄는데, 김선영 배우가 연기한 엄마와의 관계는 어떻게 달랐어요? 우선 향기로서는 너무너무 좋았어요.(웃음) 수빈이와 수빈이 엄마는 서로 이해하면서도 각자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해 괴로워하죠. 수빈이는 엄마를 보며마음 아파하기도 하고요. 애증의 관계가 확실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연기한 모녀 관계 중 가장 현실적이기도 했어요. 열여덟 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건 공부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엄마랑 트러블이 더 잦기도 했고요.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말로 다 표현하기에는 힘들어하는 관계였죠. 엄마가 화를 내면 대개는 수빈이가 많이 참아요. 참으면서도 듣기 싫어하고 화나고 답답한데, 무슨 말도 못 하고 마음 아파하고 그러죠. 수빈이를 보면서 감정을 가장 표현하기 힘든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작품에서 엄마로 호흡을 같이한 선배 배우들에게 많은 부분을 배울 것 같아요. 맞아요. 작품으로 만난 엄마들 모두 정말 엄마 같았어요. 배우로서 너무 좋고 감사하고 존경하는데, 그 모든 걸 떠나서 진짜 엄마처럼 느껴졌어요. 선배님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죠. 지금껏 늘 제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셨어요.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촬영장에서 임하는 태도나 소통하는 방식, 유연한 대처 능력이 보이거든요. 그런 능력을 볼 때마다 감탄하게 돼요. 그리고 자연스레 제게 그런 것들이 남고 다른 현장에서 선배들을 겪으며 봐온 것들이 문득 떠올라요. 그러면서 저 역시 성장해가는 것 같아요.

좋은 선배 배우들을 만나다 보면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점점 확고해질 것 같아요. 지금까지 아주 좋은 선배님들과 작업을 많이 했잖아요. 그 선배들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잘 소통하면서도 현장에서 항상 자신만의 연기를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서로 의견도 잘 나누고 그런 과정에서 내 캐릭터를 잘 구축해가는 배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요.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직업이에요. 자신만의 중심을 잘 잡으며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올해 스무 살이에요. 작품이나 연기할 인물을 선택할 때 이전보다 좀 더 확고한 기준이 생겼나요? 아직 확고한 기준은 없어요. 시나리오를 읽은 뒤에도 이게 과연 내게 맞는 건지 확답은 잘 못 하겠어요. 시나리오를 받으면 캐릭터를 보기보다는 이야기 구조를 보게 돼요. 그런데 배우라면 캐릭터도 봐야 하잖아요. 전 그런 점이 여전히 부족한 것 같아요. 내가 이 시점에 이 캐릭터를 하는 게 괜찮은 건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 고민이 있는데 아직 저 스스로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올해 초에는 영화 <증인>이 개봉했고, 얼마 전에는 <열여덟의 순간>을 끝냈어요. 이 두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고민한 부분은 뭔가요? 우선 <열여덟의 순간>은 너무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이다 보니 드라마 현장의 속도의 호흡에 잘 맞출 수 있을지 걱정했어요. 고민이라면 지금껏 해온 작품이 주로 가족과 감정을 주고받는 내용이었는데, 이번에는 친구들 사이에 오가는 호흡이 주가 되다 보니 이걸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였어요. <증인>은 여러모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웃음) 지우라는 캐릭터가 온통 도전이었고 그로 인해 밀려오는 부담감과 잘해야 한다는 생각, 미세한 손동작, 스타일, 표정 모든 것이 고민이자 걱정이었어요.

두 작품에서 모두 학생이었어요. 자연스레 어떤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을 것 같아요. 저는 자연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어요. 아, 이제 몇 살이 됐구나, 이런 걸 느끼면서 어른이 되기보다는 제가 나이 드는 것을 느끼지 않아도 자연스레 현장에 가면 후배들이 점점 많이 생기겠죠. 그리고 사람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테고요. 그런 변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제가 아역 배우로 시작했기 때문에 현장에 가면 이전과 달리 저를 어른처럼 대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럴 때면 너무 부담스럽고 안절부절못하게 돼요.(웃음)

반면 앞으로도 잃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면요? 많이 웃는 거요. 항상 지금처럼 많이, 잘 웃었으면 좋겠어요.

스무 살이 지난 사람들에게 스무 살은 참 부러운 나이예요.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동경하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뭔가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만들기도 하죠. 더 어릴 때는 스무 살인 사람들을 보면 엄청 어른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막상 제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 크게 달라질 게 없더라고요. 버킷 리스트라기보다는 전 운전을 꼭 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극 중에서 운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테고요.

오늘 문득 떠오르는 올해의 한 장면이 있다면요? 얼마 전의 장면이요. <열여덟의 순간> 배우들과 제주도에 가서 바다를 보고 왔거든요. 그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서 휴대폰 잠금 화면도 그 사진으로 바꿔놨어요. 그날 본 예쁜 바다와 하늘이 지금 떠올라요.

나의 스무 살은 어떻게 기억될까요? 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제 스무 살은 특별하진 않지만 재미있는 한 해였어요. 지난해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지냈지만, 작품 하고 학교도 다니면서 이것저것 재미있는 그리고 이전엔 해보지 않았던 것을 하면서 즐거웠던 스무 살이요.

김향기 배우김향기
새틴 배색 칼라 러플 드레스 쟈니 헤잇 재즈(Johnny Hates Jazz), 블랙 스웨이드 부츠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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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 배우조현철
와이드 팬츠 코스 아카이브 에디션(COS Archive Edition), 울 혼방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레이 바이 매치스패션닷컴(Raey by MATCHESFASH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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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조금 다른 인터뷰였다. 배우 조현철과 1시간을 마주 앉아 있었지만 대화의 반은 꽤 단조롭고 밍밍하게 흘렀다. ‘할 말이 있어도 여러 번 생각하다 보면 결국 안 하게 된다’는 그의 대답을 빌미로 말수 없는 성정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더 길게 답을 해야 하는데’라며 뭐라도 더 이야기해보려는 듯 오래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되레 어느 순간 내 질문이 잘못됐나 싶은 의심이 들었다. ‘조현철은 자신이 답할 수 있는 질문에 최대한 반응하는 사람 같다’는 짐작과 함께 대화가 매끄러워진 건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꺼낸 후 부터다. 시간이라는 다층적인 세계와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행위에 대해 그는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생각을 정확히 표현해냈다. 대답의 끝에는 “근데… 이런 이야기 좋아하세요?”라고 상대의 마음을 살피며.

최근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쾌활하고 해맑은 재벌 ‘산체스’ 역할로 주목받았지만, 실제 성격은 그와 정반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배우로서 연기하는 데 큰 에너지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안 하던 걸 하려다 보니 힘들더라고요. 큰 소리로 대사를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표정도 과장하다 보니 쉽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일 끝나면 그냥 좋고 대체로 만족하며 지냈는데 이번에는 대사가 안 외워지고 목소리도 안 나오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계속 떨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약간 위기였어요.(웃음)

독립영화 <영아> <9월이 지나면> <뎀프시롤: 참회록>과 상업영화 <건축학개론> <마스터> <차이나타운> 등 많은 작품에서 연기해왔음에도 새삼 위기를 겪었다는 거죠?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떨 수도 있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연기를 생업으로만 생각하며 익숙하고 편한 방식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나 싶었고요. 아무리 생계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까요. 대단한 배우가 되거나 주연을 맡고 싶다기보다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정신 차리고 해야겠다고요.

많은 이들이 인상적인 캐릭터였다고 평가하는데도요? 평가는 알아서 걸러 들어요. 내가 어떻게 연기한지 알고, TV에 어떻게 나오는지 아니까 좋은 평을 들으면 기분 좋지만 흘려듣게 되죠. 반대로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누군가 정확히 짚어서 이야기할 때는 마음에 담아둬요.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걸 비난하는 것에는 큰 타격을 받지 않는데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오늘 만난 배우 조현철은 배우로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배우에게는 자신을 증명하고 드러내야만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없진 않아요. 다만 뭔가를 드러내고 펼쳐 보이기보다는 작은 역할을 맡아도 사연이 있고 충분히 있을 법한, 도구적이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요. 감초 역할은 웃음을 주거나 정보 전달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그 또한 의미 있고 좋지만 살아 있는 캐릭터로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배우 이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2010년 연출작이자 주연작인 단편영화 <척추측만>으로 제36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수상했죠. 최근 상업 장편영화로 개봉한 <판소리 복서>의 원작인 <뎀프시롤: 참회록>의 공동 연출자이자 주연배우이기도 했습니다. 독립영화, 상업 영화를 가리지 않고 스무 살 이후부터 줄곧 감독 혹은 배우로서 작품 안에서 살아왔어요. 그런 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는 게 좋았어요. 어디 가서 내 이야기를 하고, 그걸 누군가 들어주는 일은 쉽게 생기진 않잖아요. 이런 식으로라도 포장해서 내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꽤 많은 사람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꽤 긴 시간 사이 영화는 무엇일까, 연기는 뭘까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들었을 것 같고요. 영화와 연기에 대해 고민했던 시절은 다 지나간 것 같아요.(웃음) 너무 오래전에 지나간 것 같고… 오히려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 하는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굳이 한다면 어떤 영화에 대해, 어떤 연기에 대해 욕을 하거나.(웃음) 요새는 그냥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웃음),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 좋아해요. 관심사가 많이 바뀌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긴 해요. 요즘은 시간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요. ‘이게 다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고, 왜 내가 의식이 있는 채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실제로 여기 존재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죠. 지금 이 인터뷰도….(웃음) 이게 다 내가 만든 시뮬레이션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기도 했고요. 그런 식으로 질문을 거듭해가는데 말하자면 시간이라는 것도 인간의 고유한 시각으로 본 현상이라는 거죠.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우주의 본질이 그렇지 않은데 인간이 희미한 시각으로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사는 건 아닐까?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향하는 게 시간의 흐름과 연관 있는 건데… 근데 이런 거 재미있으세요? 진짜로요?

그 책 제목이 뭐예요? 카를로 로밸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요.

이런 다채로운 사유들이 삶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꿈에서 바위산을 타다가 길을 잃었는데 수풀 속에서 수천 마리의 메뚜기 떼가 날아오르는 거예요. 그리고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나 내게 양자의 세계를 보여주겠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파란 빛이 보여요. 그리고 ‘이것은 물질이 아니고, 무(無)인 동시에 유(有)이고, 존재인 동시에 비존재’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게 참 좋더라고요. 연기자로서 성공해야지, 연기로서 뭘 해내야지 하는 생각이 사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 세계 속에서도 우리는 변방이잖아요. 작은 나라이고, 60년 넘게 분단돼 있고, 인종도 다양하지 않고요. 그 속에서 무언가 하겠다고 아등바등하면서 삶을 생각하다가 관점을 달리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그런 걸 궁금해하고 찾아보게 되고요. 다른 것들에는 크게 즐거움을 못 느끼지만 이해할 수 없던 것, 알지 못했던 걸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리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을 책이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선명하게 보고 확인하는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책이나 이야기를 통해 새롭게 깨닫는 것처럼 배우 혹은 감독으로서 반대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삶이 허무하고 의미 없는 와중에 유일하게 의미가 있다고 느껴지는 게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잖아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창조의 과정이고 거기서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순간에 유독 더 이야기하고 싶고, 더 만들고 싶고, 더 쓰고 싶어요? 사랑하는 것이 생겼을 때. 예쁜 걸 보면 나누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는 사랑이 작동하는 것 같아요. 내 안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을 남들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고요. 또 죽음을 목격했을 때. 죽음이 어떤 의미이고,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무엇이었고,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이 사랑을 불러일으키나요? 대단히 아름답기보다는 사소한 것들인데, 길을 지나가다 제철 과일을 보고 돈이 넉넉하지 않은데도 누가 생각나서 사게 되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봤는데 날씨가 좋아 좋은 마음이 들면서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는 것도 사랑이겠죠. 그런 마음들을 예민하게 잘 써야 할 것 같아요. 모르고 지나치기 쉽잖아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다 느낄 수 있는 건데 막상 보지 못하는 것들을 끄집어내서 보여주고 싶어요. 다들 사랑하고 있지만 사는 게 피곤해서 지나치는 것들이요.

감독 혹은 배우로서 계속 만들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를 품게 되는군요. 그렇죠. 하지만 그게 꼭 영화는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농사를 지으면서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고, 글이야 언제든지 쓸 수 있고요. 하다못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소통할 수 있으니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 해요. 한데 숙명적으로 뭔가 계속 쓰긴 써야 할 것 같아요. 빠져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건.

인간 조현철로서 지금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극적이었던 시기는 3년 전에 지난 것 같아요. 그때 믿었던 것들도, 확신도 있었다면 그런게 하나씩 다 무너지고.(웃음) 자신에 대한 확신도 사라지고, 믿었던 것들도 다 사라져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려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가장 활활 타올랐던 때는 다 지나고 재만 남은 건데, 김연수 작가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럴 때 글을 쓸 수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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