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인테리어 오브제

1 우들랏의 신-108 움직이는 조각처럼 회전하는 벽걸이 모빌. 금속 스틱에 크기가 서로 다른 원이 매달린 이 모빌은 거치대에 꽂는 순간 끊임없이 춤을 추는데 그 춤사위의 중독성이 대단하다.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빌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복잡한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마저 든다. 16만원(거치대 포함) 2 스튜디오 페브의 STONE 영리 작가의 ‘스톤’ 시리즈. 작가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을 채집한 후, 각기 다른 색을 입혀 새로운 오브제로 만든다. 사이드 테이블 위에 평소처럼 꽃을 두는 대신 크기가 다른 돌을 쌓아보면 어떨까. 2만9천원, 1만9천원. 3 디 엠파시스트의 EGG WEIGHT 흰자는 알루미늄, 노른자는 황동으로 분리한 달걀 형태의 문진. 형태와 색은 분명 달걀인데, 분리된 단면을 보면 흡사 잘 자른 아보카도 같다. 종이를 고정해도 괜찮지만 테이블 매트 한편에 두어도 좋지 않을까. 4만6천원. 4 쓰리닷츠 서울의 BLUE FLOWER OVAL OBJET 만개한 나팔꽃 세 송이가 피어 있는 유리 오브제. 세로로 세워두거나 가로로 눕혀둘 수 있다. 미니멀한 디자인의 화병 옆에 두거나 뉴트럴 톤의 플레이트가 쌓여 있는 선반 옆에 올려두어도 괜찮다. 4만5천원. 5 반느의 TERRAZZO TRAY 인조석의 일종인 테라초를 커팅해서 제작한 트레이. 불규칙한 패턴이 공간에 방점을 찍어준다. 디저트를 올려두는 플레이트로 쓰거나 손이 자주 가는 주얼리를 보관할 수 있다.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책장 한가운데에 북엔드로 두어도 된다. 4만원. 6 최나은 작가의 SUN CORAL OBJECT 산호의 모습을 표현한 세라믹 오브제. 작가의 개인전 <Under the Waves>의 인스톨레이션 중 일부로, 상상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산호를 탄생시켰다. 작은 접시 위에 올려두면 언제든 바다가 떠오를 것 같다. 3만5천원. 7 뮤지엄 아카이브의 CRYSTAL BALL 소원을 빌 수 있는 운세 구슬. 정말 효력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사양한다. 요즘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볍게 기댈 만한 대상이 있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7만2천원.

인테리어 오브제

1 정그림의 MONO 111 전선을 보호하는 건축자재인 실리콘 튜브로 만든 스탠드 오브제. 자주 입는 코트를 걸어두거나 모자를 올려둘 수 있다. 거실에 둔다면 전체적인 분위기를 고려해 전등갓이나 패브릭을 걸어두어도 괜찮다. 뱀처럼 똬리를 튼 꼬리는 유연해서 자유자재로 연출 가능. 가격 미정. 2 강지혜의 PURITY SERIES 아크릴과 스틸 소재의 조화가 차가운 생경함을 주는 스툴. 앉거나 물건을 올려둘 수도, 작은 공간을 구분하는 파티션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만 실루엣을 온전히 눈에 담을 때야말로 가장 아름답다. 가격미정. 3 배민기의 <OBJECT.AI> 거울 그래픽 아티스트 배민기의 작품을 프린팅한 유리 오브제. 얼굴을 온전히 비추기에는 어렵지만 어엿한 거울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정가운데 새겨진 그래픽에 힘입어 그림 액자의 역할 역시 해낸다. by CAVA, 12만9천8백원. 4 크래프트 컴바인의 PIECE FURNITURE SERIES 바다를 모티프로 만든 조립형 가구. 정사각형판에 퍼즐처럼 박혀있는 피스를 하나하나 집어 사용자의 생각에 따라 새로운 형태로 만들 수 있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오브제나 가벼운 노트를 꽂아둘 수 있는 스탠드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용도 역시 한계가 없다. 가격 미정. 5 김누리의 FIGUE 무화과 모양의 세라믹 오브제. 무화과는 익어가는 형태나 색감 덕분에 때때로 좋은 인테리어 소품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실온에 언제까지고 둘 수는 없다. 한결 가볍고 천년만년 형태가 변하지 않는 이 오브제를 두면 마음이 놓일 것 같다. 각각 1만2천원. 6 글로리홀의 VOLCANO AND ICEBERG 나무 상자 안의 조명이 물결 모양으로 솟아오른 유리 상자를 비추는 수조 조명. 단순한 조명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유리 수조 안에 나무와 풀, 이끼로 인테리어를 한 후에 물을 붓고 물고기를 기를 수도 있다. 참고로 주변이 어두울수록 더 아름답다. 우리에게도 물고기에게도 밤은 특별하니까. 56만원.

남프랑스의 휴양지, 코트다쥐르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STAD & STRAND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눈이 즐거운 도시, 니스(Nice)

‘천사의 만’이라 불리는 도시 니스는 어딜 가든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풍광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영국인의 산책로라 불리는 프롬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를 따라 야자수나무 아래를 걷는 것만으로도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고, 지붕이 있는 벼룩시장인 르 퓌스 드 니스(Les Puces de Nice)에서는 아름다운 물건에 빠지게 될 거다. 흰 벽과 구릿빛 테라코타 지붕으로 알려진 호텔 네그레스코(Negresco)와 페늘롱 궁(Palais Fénelon)에 있는 마티스 미술관(Matisse-museum), 구불구불한 도로와 빨래가 널린 구시가지에서는 어떻게 찍어도 근사한 사진이 나올 거다.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가득한 니스는 오랜 시간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을만큼 매력적인 도시다.

가는 방법 스키폴 공항(Schiphol Aiport: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공항)에서 2시간이면 니스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생트로페까지는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네덜란드에서 자동차로만 이동하면 무려 14시간이 걸리지만, 로드 트립을 하며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화려함과 소박함을 동시에 품은 도시, 생트로페(MONDAIN Saint-Tropez)

코트다쥐르에서 가장 유명한 휴양지 생트로페는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가 1950년대에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를 촬영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오래된 항구에는 값비싼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골목마다 작지만 화려한 명품 가게가 즐비하다. 그렇지만 생트로페의 진짜 매력은 플라타너스나무가 우거지고 노인들이 공놀이를 하는 광장이 있는 전형적인 남프랑스 항구 마을의 분위기에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인  세네키에(Sénéquier)의 빨간 의자에 앉아 천천히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아침 리세 광장(Place des Lices)에서 열리는 마켓을 둘러보다 보면 생트로페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곳인지 금방 알게 될 거다.

나만 아는 작은 해변

화려한 비치 클럽을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이 해변을 찾아가볼 것. 타야(Taillat)와 에스칼레(l’Escalet) 해변 사이, 라마튜엘(Ramatuelle) 근방에 있는 바윗길 위로 걷다 보면 나타나는 작은 해변이다. 구글맵에도 나오지 않아 찾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이 작고 고요한 해변을 마주하는 순간 코트다쥐르의 여행 중 가장 멋지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될 거다.

BEACH CLUB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라 레세르브 알라 플라주(La Réserve à la Plage)

라 레세르브 라마튜엘에 새롭게 문을 연 비치 클럽. 독특한 라탄 조명등과 해변 바로 앞에 놓인 비치 베드가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비치 베드에 누워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샴페인을 즐길 수도 있지만, 신선한 식재료를 활용한 수준 높은 식사 메뉴를 즐길 수도 있다. 특히 숯불에 구운 노르웨이 가재나 구운 채소, 과카몰레가 꽤 훌륭하다. 여기에 남프랑스 특유의 파란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서버들의 친절함은 덤이다. lareserve-plage.com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니키 비치(NIKKI BEACH)

코트다쥐르 안에서 가장 유명한 비치 클럽을 꼽으라면, 단연 니키 비치다. 스페인의 이비자나 두바이, 마이애미 등 전 세계 대표적인 휴양지마다 지점을 둔 비치 클럽으로, 한 손에 칵테일을 들고 킹사이즈 비치 베드에 누워 호화로운 휴가를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평소에는 레스토랑과 클럽으로 운영되지만 종종 전시나 파티, 결혼식이 열리기 때문에 미리 웹사이트를 방문해 그날의 이벤트를 확인하고 가볼 것을 추천한다. nikkibeach.com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클럽 55(Le Club 55)

1955년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촬영 중 브리지트 바르도가 매일 점심을 먹으러 들렀다는 클럽 55는 64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손님은 왕이 아니라 친구’라는 모토로 운영하는 클럽 55는 처음 오는 사람도 부담 없이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브리지트 바르도가 그랬던 것처럼 점심 식사를 하러 가도 좋고, 늦은 오후에 얼음을 가득 넣은 로제 와인인 ‘피신 드 로제(piscinede rose)’를 즐기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club55.fr

 

STAY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다르장스 해변에서 글램핑

코트다쥐르의 작은 마을 프레쥐스(Fréjus) 근처에 있는 다르장스 해변(Plage d’Argens)에는 근사한 캠핑장이 있다. 이곳은 물놀이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는 자쿠지 스파는 물론 캠핑장 내 야외 수영장과 조금만 걸어 나오면 나오는 다르장스 해변까지 종일 물놀이를 즐기기에 최적의 스팟이다. 캠핑장에서는 해변에서 즐길 수 있는 카약이나 패들 보드도 대여해준다. laplagedargens.fr

라마튜엘 해변 앞 리조트

생트로페에서 자동차로 20분만 가면 나오는 라마튜엘 해변 앞에 있는 라 레세르브 라마튜엘 호텔과 빌라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보며 아침을 맞이 할 수 있다. 이곳은 수영장과 산책로, 레스토랑과 바, 스파 공간까지 마련되어 멀리 벗어나지 않고도 종일 편안하게 휴양할 수 있다. 스파 마사지를 받을 수도, 아무도 오지 않는 작은 만을 따라 거친 바윗길을 산책할 수도,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을 수도, 조금만 걸어가면 나오는 팡펠론 해변에 있는 힙합 비치 클럽에서 밤을 즐길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껏 즐겨도 좋지만, 호텔 내 스타 레스토랑 라 부알(La voile)에서 세비체는 꼭 맛볼 것을 권한다. lareserve-ramatuelle.com

 

EAT & DRINK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달콤한 프랑스식 간식 라 타르트 트로페지엔(La Tarte tropézienne)

생트로페와 라마튜엘의 도심을 둘러보다 보면 바닐라 크림을 가득 넣은 브리오슈에 설탕을 뿌린 프랑스 전통 케이크 타르트 트로페지엔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바닐라 크림 외에 피스타치오, 커피, 헤이즐넛, 라즈베리, 초콜릿 등 다양한 맛의 크림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오리지널 버전인 바닐라 크림을 맛볼 것을 권한다. latartetropezienne.fr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칵테일과 스프링 롤의 조화 르 티그르(Le TIGrr)

생트로페에 위치한 레스토랑 겸 바 르 티그르에 가면 칵테일과 타이식 식전 메뉴인 스프링 롤의 조합을 맛볼 수 있다. 보드카에 바질을 더한 티그르 시그니처 칵테일이나 와사비 마티니, 달콤쌉싸름한 매력의 아페롤 스프리츠에 스프링 롤은 색다르지만 꽤 괜찮은 페어링을 자랑한다. tigrr.fr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포도밭에서 마시는 와인 샤토 미누티(Minuty)

근사한 바다와 해변 외에도 코트다쥐르에는 즐길 거리가 하나 더 있다. 도시 곳곳에 있는 포도밭을 방문하며 와인을 시음해보는 거다. 라마튜엘과 생트로페 사이에 있는 가생(Gassin)의 샤토 미누티(Minuty)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로제 와인과 해산물 모둠 요리인 플라토 드 프뤼 드 메르의 완벽한 조화를 맛봐야 한다. minuty.com

쿨하게 말해 싫다고

섹스칼럼 SEX

사랑이라는 추상을 감각하게 만드는 가장 황홀한 수단인 섹스. 그러나 섹스는 더 이상 사랑을 방증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교감이 사랑을 만들어낼 거라는 확신과 절실함도 이제는 희미하다. 데이팅 앱을 깔자마자 속수무책으로 보이는 프로필 문구에는 캐주얼 섹스, FWB(Friends With Benefit),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같은 이상한 조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러니까 원나잇 스탠드, 여기에 관계의 시간성을 덧대면 소위 섹스 파트너를 찾고 있는 것이다. 섹스도 경제적일 수 있을까. 당연하다. 우리는 간명하고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는 ‘쿨’한 사람들이니까.

섹스 앞에서 쿨하지 않으면 일단 지고 들어가는 거라고, 우리는 각종 매체를 접하며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주말 연속극에서도 선 섹스, 후 연애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방영된다. 그런 장면에서 섹스는 ‘실수’처럼 묘사된다. 술을 마시고 흥에 겨워 어쩌다 보니 섹스를 해버렸고, 그렇게 관계가 시작된다는 로맨스물의 클리셰는 사방에 넘친다. 섹스 후에 누가 먼저 연락을 하는가로 이른바 ‘밀당’이라는 권력 구조를 만들어낸다. 한때는 결말이었을 그것이 이제는 이야기의 전제, 그야말로 디폴트가 된 셈이다. 섹스는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내게도 섹스 파트너가 있었다. 제안을 받은 적도 있고 반대로 내가 먼저 손을 내민 적도 있다. 만난 지 몇 시간이 채 안 된 사람과 모텔을 찾은 적도 있고, 수년 동안 깔짝깔짝 간만 보다가 어느 날 기어이 해버리고 만 사이도 있다. 그때마다 내게 섹스는 단순히 관계의 지표나 애정의 척도로 비치지 않았다. 그저 구체적인 행위에 불과했다. 상대의 몸을 응시하고, 타인의 몸에 내가 파묻히거나 나를 묻어버리는 일. 그 잠깐 사이에 피어오르는 찰나의 교감이 존재할 수는 있으나, 섹스가 끝난 이후 그것이 오롯이 사랑에 가 닿는다고 여길 사람은 흔치 않을 터.

쿨하다는 건 무얼 뜻하는 걸까. 성적인 측면에서 주체성을 담보하는 것? 그렇다면 다시 묻는다. 주체성이라는 건 무엇일까. 섹스라는 행위에 수동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은 주체적인가? 다시 묻자. 그렇다면 섹스에 객체적일 수 있나. 섹스를 권력관계로 두고 볼 때, 객체성을 띠는 입장에 놓여 있다면, 그것은 섹스가 아닌 강력 범죄의 피해자일 것이다. 우리는 섹스를 할 때 모두 주체적이다. 행위를 합의한 당사자이므로. 그런데도 왜 여성에게는 ‘주체적인’이라는 수사적 표현이 이제야 마치 제자리를 찾았다는 듯이, 그것도 마치 ‘쿨’한 여자에게만 트로피처럼 주어지는 것일까. 그러니까, 도대체, 왜.

“쿨하게 섹스만 하자.” 이렇게 말하는 남성은 제법 많았다. 나의 연애가 험난했다기보다는 지금껏 살아온 기간에 비례해 통계적으로 추산한 결과다. 이는 나만이 아니라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축적된 경험이다. 섹스‘만’ 하자는 말에서 ‘만’이란 뜻은 결국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 아냐? 섹스를 통해 감정의 전개를 이룩하려는 친구들은 그렇게 해석했고, 궁합은 좋은데 그냥 그것만 좋은 것이라고 재빠르게 단정해버린 친구들은 ‘만’이 제시하는 감정 노동 없는 상태를 기꺼이 만끽했다. 그들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때 ‘만’이라는 단서에 따라 반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나 역시 그 두 부류 사이를 맘껏 뛰어다녔다. 걔랑 하는 건 좋은데 걔 데리고 다니는 건 부끄러워. 그럴 경우엔 ‘만’을 택했고, 제발 나를 사랑해달라고 조르는 강아지처럼 구는 관계에서는 ‘만’따위는 당치도 않다며 떼를 쓸고 빌었다. 상대에 따라 나의 널뛰기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잠깐, 그럼 난 쿨한 여자야, 아니면 질척대는 여자야? 나는 생각한다. 그때 내가 했던 결정들이 온전히 나 스스로 한 선택이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 어쩌면 떠밀리듯, 혹은 어떤 절박함이 나를 끝내 합의로 갈무리하게끔 만들지는 않았는지. 관계를 망칠까 두려워서,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은 압박감에서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를 쓴 건 아닌지. 일례로 나는 친한 남자 사람 친구와 함께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가 그의 원룸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다. 그는 잠결에 나를 더듬었고, 나는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으나 완강히 거부하지는 못했다. 정색을 하면 그와 나의 관계가 어색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냥 한 번만 해줘. 그가 말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부탁을 들어줬다. 이건 나의 선택이었을까. 나는 그날의 섹스를 ‘실수’로 기억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내게 그날은 악몽이나 다름없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Liberated>에는 봄방학을 맞아 해변을 전투 기지로 삼은 남학생들이 등장한다.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의 승부를 판가름하는 관전 포인트는 얼마나 만족스러운 섹스를 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횟수의 섹스를 했느냐다. 그리고 만나서 섹스를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도 자기들끼리 내기를 한다. “Let me show you.” 남학생은 카메라 렌즈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한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정말 에니바디여도 상관없는 아무 여성에게 다가가 묻는다. 네 엉덩이가 탐스러워. 나한테키스해줄래? 여성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남학생은 보란 듯이 카메라를 향해 웃는다. 봤지? 다큐멘터리는 매체가 다루는 섹스의 방식이 여성들에게 마치 일종의 해방처럼 느껴지도록 의도한다고 고찰한다. 첫 경험이 중요하지 않은 세대에게 섹스는 주체적인 섹슈얼리티를 표방하려는 여성이 해내야 하는, 일종의 견습이며 숙련이다.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과연 이러한 방식의 제안과 합의가 온당한지 말이다. 관계의 무게를 덜어내려는 감정적인 편의를 좇는 일이 굳이 섹스라는 결과로 이어져야만 하는지 말이다.

섹스에 있어서 여성은 더 주도적이어야 한다.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건 좀 쿨하지 않다고 퍼붓는 온갖 직간접적인 문화에 대항해 조금 더 강하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한다. 난 내가 섹스하고 싶을 때 해. 지금은 하기 싫어. 그리고 내가 거절하는 건 결코 쿨하지 않은 것이 아니야. 그냥 싫은 것뿐이야. 이것이 진정한 해방의 언어, 이른바 쿨한 애티튜드가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실천해야 한다. 우리 다음 세대의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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