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얼굴들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레드 러플 드레스 토리 버치(Tory Burch).

한우연

비밀의 정원

첫 영화는 단편 <여름밤>이에요. 취업과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로 치열한 삶 속에서 누구 하나 자신을 조금도 희생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또 한 작품은 단편 <미열>인데,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비밀의 정원>이 <미열>의 장편 버전이죠. 성폭력 피해 여성이 결혼을 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범인을 잡았다는 연락을 남편이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어요. 이야기가 굉장히 담백하고 잔잔하게 흘러가요. 영화의 소재가 소재인지라 섣불리 다가가기 쉽지 않았어요. 피해자의 아픔과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죠. 되도록 관객들이 억지스럽게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제 진심을 많이 담고 싶었습니다. 피해자라고 해서 숨기만 하는 인물이 아니라 강인한 인물이길 바랐어요.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 중에 누구 하나 애착이 가지 않는 인물이 없어요. 꼭 한 명을 꼽아야 한다면 <여름밤>의 소영이에요. <미열>과 <비밀의 정원> 박선주 감독님도 <여름밤>을 보고 연락을 주셨거든요. ‘소영’이가 없었더라면 다른 작품도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

나에게 영화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재능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런데 계속 하고 있는 걸 보면 이 일이 힘들지만 좋은 것 같아요. 독립영화는 뭔가 애틋함이 있어서 좋아요. 현장에서 만나 영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고생하고 애쓰고 울고 웃는 일련의 과정이 흥미로워요. 물론 그 과정이 힘들지만 결과물을 보면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분명해져요. 결과물을 함께 보며 저 장면에서는 이렇게 했었지 하며 서로 추억을 나누죠. 그리고 영화 작업을 하면서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리고 제가 가진 좋은 에너지가 영화를 통해 전달되기도 하고요. 배우로서 살아가는 게 몹시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연기가 하고 싶은 건 결과물이 기대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더 잘하고 싶고, 더 욕심이 나고, 더 좋은 에너지를 담고 싶고 그런 마음이 자꾸 들어요.

내가 꿈꾸는 배우

항상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이고 싶어요. 좋은 영향을 주는 배우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환경오염을 주제로 한 영화가 있다면 그런 작품에서 연기하기 위해서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있고 평소에도 환경을 위한 행동을 하는 배우여야 한다는 거예요. 세상을 향한 긍정의 에너지를 스스로 행동하며 쌓아가다 보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의 저는 아직 한참 멀었죠. 많이 부족해요. 제 삶이 다할 때까지 과연 얼마나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연기를 그만두기 전까지 계속 노력해야죠.

만나고 싶은 인물

찰리 채플린을 좋아해요. 희극과 비극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 소화해내는 배우예요. 그가 연기한 인물처럼 언젠가 희극적인 재미가 있으면서도 슬픔을 지닌 인물을 만나보고 싶어요. 재미도 있지만 슬픈 그런 영화, 음악이 함께 더해진 무성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 배역에 욕심도 좀 있고.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화이트 와이드 칼라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변중희

배우가 된 선생님

단역으로 출연한 안선경 감독의 <파스카>가 제 첫 작품이에요. 그 뒤로 강상우 감독의 <클린 미>, 조민재 감독의 <작은 빛> 그리고 방성준 감독의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과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김동령, 박경태 감독의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등에 출연했습니다. 39년간 교직에 있었어요. 서울의 남자 중학교에서만 38년 근무했고요. 마흔여덟 즈음, 막연히 연극이 하고 싶어 교사 연극 동호회에서 연기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교육 극단 푸른 숲의 창단 멤버가 되었고 1년에 한 번씩 공연을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퇴직을 1년 앞두고 <파스카>에 출연했고 그 작품을 인연으로 다른 작품에도 출연하게 됐어요. 그때 스크린을 통해 본 제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웃음) ‘퇴직하면 영화배우가 될 거야’라고 농담처럼 말해왔던 것이 이렇게
이뤄졌어요. 올해까지 스무 작품 정도에서 연기했어요.

영화를 한다는 즐거움

사람을 좋아해서 배우라는 직업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또 계속 배워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저는 항상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배우라는 일이 그렇더군요. 작품을 끝낼 때마다 2mm쯤 자란 것 같아요.(웃음) 지금까지 연기한 작품이 학생들 졸업 작품을 포함해서 모두 독립영화였는데 저예산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좀 아팠어요. 그래도 꿈을 가진 젊은이들의 작품이잖아요. 아주 확실한 꿈. 그 꿈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들 사이의 저는 어떻게 보면 섬같은 존재이기도 한데, 사실 영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 제자잖아요. 실제로 영화 일을 하며 제자를 두 명이나 만났어요.(웃음)

약자의 이야기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주인공은 의정부 기지촌에서 40년 넘게 일한 ‘인순’이에요. 1960년대 외화벌이를 위한 정책 중 하나가 바로 미군 위안부였죠. 저는 인순을 인터뷰하며 삶을 기록하는 교수를 연기했어요. 인순은 저와 나이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인순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저렇게까지 생명체를 방임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헐벗은 채 가시덩굴을 걷듯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예요. 나라에서도 그런 여성을 보호해주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은 마치 하이에나처럼 어떻게든 이득을 취하려고 그들을 보호하지 않고 내몰아갔어요. 인순을 보며 사람들이 이런 소외받은 약자의 삶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해요. 저는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좀 있었어요. 교사로 일할 때 구치소에 가는 학생들이 안타까워 상담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연기 경력은 짧지만 삶의 그런 경험들이 저만이 할 수 있는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만나고 싶은 인물들

만날 수 있는 만큼 많이 만나고 싶죠. 교직 생활을 하며 늘 짧은 머리를 하고 생활 한복을 입고 다녔어요. 배우가 되지 않았더라면 머리를 빡빡 깎고 인도에 갔을 거예요.(웃음) 언젠가 사극도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들은 대부분 슬픔이 있는 할머니였어요. 농담처럼 이제 더 이상 슬픈 할머니는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요. 나문희 배우님이 어디에선가 노인 인구가 점점 많아지니 노인이 볼 만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 있는데 공감해요. 하지만 노인만 나오는 영화는 재미가 없죠. 건강한 숲에는 고목이 30% 정도 있어야 해요. 아름드리 나무나 새싹과 함께 죽어가는 나무가 있어야 숲이 건강하게 유지돼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건강한 숲이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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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재킷 티아이포맨(T.I for Man), 블랙 데님 팬츠 유니폼 브릿지(Uniform Bridge).

강길우

배우 강길우는

오늘 강원도 화천에서 영화 <정말 먼 곳>이라는 작품을 촬영하고 올라왔어요. <한강에게>를 연출한 박근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입니다. 강원도에서 생활한 지 한 달쯤 됐고, 2주 정도 있다 크랭크업을 해요. <명태>라는 영화에서 ‘김수’라는 조선족 역할을 했고 <시체들의 아침>이라는 영화에서 영화를 그만두는 영화감독 역할을 했어요. 올해 개봉한 <한강에게>에서는 연극배우를 연기했습니다. 지금껏 만난 인물 중 가장 의미가 있는 인물 한 명을 꼽는다면 ‘김수’예요. 여러 영화제를 다니며 소개한 첫 작품이기도 하고 조선족에 대한 선입견을 깰 수 있는 역할을 맡은 영화이기도 했죠. 원래는 미대에 다녔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쭉 그려와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막연하게 그림을 그렸죠. 그러다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그동안 했던 걸 하고 싶지가 않아 영화 미술이나 무대 미술을 하기 위해 전공을 바꿔 다시 학교에 들어갔어요. 다시 들어간 학교에서 1학년 때 제가 만든 무대에서 박수를 받는 배우들을 보는데 배가 아프더라고요.(웃음) 그때는 어린 마음에 내가 배우가 되어 저 자리에 서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 됐는데 요즘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져서 조금씩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

지금까지는 저와 잘 맞는 길을 선택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서기 좋아하고 적극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전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니거든요. 간혹 괜한 환상을 가지고 이 일을 시작했나, 하는 고민도 했지만 사람들의 성격이 제각각이듯 배우들의 성향도 당연히 다르더라고요.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집중하고 또 그렇게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껴요. 그 일부가 되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고 설레고요. 만족하며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웃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멋있는 일이에요. 사각 프레임 안에 세팅할 때 보면 스태프들도 들어와 있고, 촬영팀이 아닌 사람들도 왔다 갔다 하고요. 촬영할 때가 되면 작품 속 인물들만 존재하잖아요. 그렇게 딱 영화가 되는 순간이 있죠.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미술도 만들고, 빛도 만들고, 앵글도 만들고, 숨소리도 만들고. 이 모든 과정 자체만으로도 참 멋진 일이에요.

독립영화란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 자본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돈이나 상업성을 떠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죠. 영화를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다양한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그런 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러운 배우

전 자연스러운 배우가 되고 싶어요. 우리의 삶에 자연이 당연하고 자연스레 자리하는 것처럼 저도 자연스럽게 작품에 묻어나는 배우이고 싶습니다.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쯤 됐는데 연극이든, 영화든, 연기하는 현장에 있을 때 정말 행복해요. 그런데 그와 동시에 고통스럽죠. 그 인물을 온전하게 잘 표현하기 위해서 그 인물이 가진 정서나 스탠스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게 고통이죠. 그래도 현장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행복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모든 순간이 촬영 현장에 있어요. 아직도 저는 달려가는 중이에요. 지금껏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다른 누군가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제가 원하는 대로 인물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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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재킷, 스커트, 아이보리 터틀넥 스웨터 모두 스튜디오 톰보이(Studio Tomboy), 스니커즈는 본인 소장품.

최정운

다섯 번째 영화

고등학교 1학년 때 촬영한 단편 <빛나는 물체 따라가기>가 제 첫 영화예요. 그 뒤로 단편 <다녀왔습니다>, <백일몽>, <우리동네>에 출연했고 올해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받은 <남매의 여름밤>이 다섯 번째 영화예요. <빛나는 물체 따라가기>라는 작품에서는 오늘이 자신의 마지막 날인 줄 알고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그 친구를 따라다니는 ‘유라’를 연기했어요. <다녀왔습니다>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머니를 찾아 떠나면서 가족의 사랑을 알아가는 ‘경주’를,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다룬 <백일몽>에서는 ‘학생 A’를, 그리고 <우리동네>에서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엄마의 사랑을 느끼는 주인공 ‘윤주’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습니다. <남매의 여름밤>은 그동안 별 교류 없이 지내던 가족들이 할아버지 집에 모이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뤘어요.

배우라는 꿈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 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화면 속 배우들을 따라 하며 연기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어린 시절부터 꿈이 배우였어요. 그러다 연기를 배워보고 싶어 집 근처에 있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빛나는 물체 따라가기> 오디션을 봤어요. 연기할 때면 너무 재미있어요. 일상에서는 제 마음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살 때가 많은데 연기를 하면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잖아요. 제 연기를 통해 사람들이 기쁨을 얻고 위로받고 때론 행복을 느끼고 그러면 뿌듯할 것 같아요. 사실 연기가 왜 좋은지 계속 생각해봤는데 이유가 명확하게 있다기보다 그냥 좋더라고요. 계속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웃음)

나에게 독립영화란

또 다른 인생. 시나리오를 읽을 때면 제가 연기하는 인물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번 읽어요. 그러다보니 영화 한 편을 촬영하고 나면 얻는 게 많아요. 일단 연기할 때 기분이 너무 좋고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고 각각의 인물로부터 배울 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이야기로부터 교훈을 얻기도 하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영화 속 상황을 겪으며 깨달음을 주는 영화가 제겐 또 다른 인생 같아요.

만나고 싶은 인물

아직 많은 인물을 연기해보지 않았으니 뭐든지 다 경험하면 좋겠어요. 작품으로 치자면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부모님의 젊었을 적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 시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고 부모님과 얘기할 때 공감대가 생기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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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니트 스웨터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은해성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올해 서독제에서 상영되는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은 세 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다뤄요. 실향민, 노동자들의 불법 해고, 1970~80년대 일어난 해외 입양, 그중에서도 여자나 혼혈이라는 이유로 해외로 입양을 간 아이들. 우리 사회의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많은 사람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영화예요. 제가 연기한 인물은 이 모두를 다큐멘터리로 담는 촬영감독 ‘민규’예요. 민규는 처음엔 관조만 하는 인물이지만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며 이 문제들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게 되죠.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을 만나기 전까진 이런 사회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어요. 노조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도 없고, 해외 입양이 왜 문제인지도 몰랐고, 실향민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었죠. 영화를 촬영하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제 첫 장편영화이기도 해요. 첫 촬영이 있던 날이 기억나요. 처음에는 이 영화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근데 촬영날이 다가올수록 부담감이 커졌죠.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준비한 작품인데 제가 잘 못해서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영화제를 통해 공개되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세 가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연기의 기쁜 순간과 괴로운 순간

역할을 잘 수행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연기를 하는 저는 물론이고 관객들도 기분이 좋지 않을까요? 제가 하는 연기를 보고 관객이 반응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고 흥미로워요. 연극을 계속하고 싶은 것도 그 때문이고요. 연기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은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이어서 선택했는데 연기하기 직전까지 떨리는 그 압박감을 느낄 때예요. 진절머리 날 만큼 괴롭죠.(웃음). 오랫동안 지금처럼 재미있게 연기하고 싶어요.

영화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을 만난 후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바꾸고 싶은 것들이 있잖아요. 지금의 저에게 영화는 세상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매개체예요. 영화라는 통로를 통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해요.

장편영화의 의미

제가 주인공인 첫 장편영화인 것도 의미 있지만 현장의 분위기가 좋았어요. 보통 규모가 큰 영화의 촬영 현장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인사는 해도 상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를 때도 많고요. 그런데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현장의 모두는 가족 같았어요. 영화의 제목과도 어울리는 현장이었죠.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관계의 가나다’에 있었어요.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니트 롱 드레스 로우클래식(Low Classic), 블랙 재킷 렉토(Recto).

유이든

독립영화의 힘

지치지 않는 힘. 물론 상업영화라고 해서 열정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독립영화의 작업 환경은 예산과 시간이 한정적이고 인력도 충분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현장에는 늘 단시간에 낼 수 있는 집중력과 힘이 모여요. 그렇게 집중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죠. 마치 초능력 같은 힘. 서로 믿으며 다 함께 행복감을 느끼는 게 보여요.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한 건 아니지만 독립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모두가 친밀해서 매 순간이 재미있어요. 그런 현장에서는 뭔가를 만들어가는 걸 직접 느낄 수 있으니까 정말 즐거워요. 최근에 관객들에게 선보인 독립영화로는 아시아나 단편 영화제에서 상영한 <K대_OO닮음_93년생.avi>가 있어요. 20분짜리 단편영화인데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 ‘혜원’의 직장 동료 ‘상희’를 연기했어요. 나를 모르는 사람이 그냥 해주는 말에 위로받을 때가 있잖아요. 상희가 그런 인물이었어요. 그렇게 친밀하지 않은 관계에 있는 ‘상희’가 ‘혜원’에게 의도치 않은 위로를 주게 되죠. 이런 대사가 등장해요. ‘지금 하는 것에만 집중해요.’ 지나간 것들은 다 잊고 지금 하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말이 좋았어요. 피해자에게 섣불리 위로의 말을 전한다는 건 힘들고 조심스러운 일이죠. 오히려 폭력이 될 수도 있고요. 감독님은 그런 고민 끝에 ‘지금 하는 것에만 집중해요’라는 대사를 적었고 현재에만 집중한다는 건 살아 있다는 말이니까 지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힘을 내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배우의 길

지금은 잠시 쉬면서 <Patriotic Insanity: 애국적 광분>이라는 연극을 준비 중이에요. 19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거행된 친일 미국인 외교관 ‘더럼 스티븐스 저격사건’을 재구성한 창작극인데 독특한 작품이 될 거예요.(웃음) 극장에서 공연하는 게 아니라 어느 공간을 빌려 그곳에 객석부터 무대까지 모든 것을 새로 설치해요. 뚜렷한 이유로 영화를 쉬는 건 아니고 그동안 일에만 매달린 것 같아 여유를 찾고 싶었어요. 뭔가 주워 담듯이 연기해왔다면 이제는 좀 비우고 채워 넣는 공간을 만들어두려 해요. 예전에 했던 작품들을 보며 제 사상이나 방향성에 대해 자문하며 자신을 알아가는 중이에요. 지금은 저와 조금은 친해진 것 같아요. 정말 많이 싸웠는데 이제 좀 친해졌어요.(웃음)

만나고 싶은 인물

예전에는 연기해보고 싶은 인물이 엄청 많았어요. 사이코패스, 범죄자,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 그때는 그런 장르에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 나이를 대변할 수 있는 드라마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강하고 조금은 유별난 캐릭터를 많이 해왔는데 이제는 좀 더 담백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래도 당분간은 급하게 작품을 하진 않을 거예요. 제 자신과 화해를 좀 더 하고 느긋하게 해보려고요. 한 번 더 검토해보고,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가다 보면 서른이 되었을 때는 좀 더 가속도가 붙지 않을까요? 제게 요즘 연기는 재회한 연인 같아요. 처음 만난 것도 아니고, 너무 멀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재회한 연인 같아요.

영화의 의미

영화는 애증의 대상이에요. 정말 사랑에 빠졌을 때는 하루에 네다섯 편을 연달아 보기도 하고 어떤 감독을 좋아하게 되면 그 감독의 영화만 볼 때도 있고. 그렇게 보는 영화가 쌓이다 보면 제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저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는 대사가 떠오를 때가 있어요. 하지만 연기는 여전히 참 힘든 작업이죠. 가끔 무서울 때도 있어요. 그러다 계속 보고 싶고 고맙고, 위안받다가 우울해지기도 하고 다시 힘을내고. 이상해요. 영화는 이상한 힘을 가진 애예요.(웃음) 저한테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죠. 검을 어느 방향으로 쥐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진짜 무서워요. 무섭기도 하고 너무 사랑스럽기도 하고 그렇지만 계속 보고 싶고 고맙고 또 보고 위안받고, 또 보고 우울해지고, 또 보고 힘내고. 이상해요. 이상한 힘을 가진 애예요, 영화는.(웃음)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블랙 레이스 롱 드레스 비블루마린(Be Blumarine), 앵클 힐 알도(Aldo).

장 선

나의 영화들

첫 장편은 <소통과 거짓말>이에요. 어떤 상실을 겪고 나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잃어버린 남녀가 만나면서 일어나는 얘기인데 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장선’은 어떤 상실을 경험한 후 모두 자기 탓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학대하고 벌을 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요. 그 영화를 찍을 때 저 역시 좀 힘든 상태였어요. 몸이 좀 안 좋아 마음이 힘들었던 건지, 마음이 안 좋아 몸이 힘들었던 건지는 모르겠어요. 그런 와중에 동명이인인 장선을 만나 제가 위로받았어요. 5일 촬영한 작품인데 그 시간 동안 함께한 사람들 모두 너무 좋았고 그 작업물도 소중했죠. 그래서인지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애틋한 인물이에요.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바람의 언덕>이 초청받았어요. 한 중년 여성이 함께 살던 이가 죽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와 오래전 두고 떠났던 딸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그 딸을 연기했어요. 부모 없이 살아왔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살아온 친군데 몸도 좀 약하고 뭔가 서툴러 보이지만 알고 보면 큰 그릇을 지닌 인물이에요. 요즘도 영화 촬영 중이에요. 친한 선배의 작품인데 UFO가 지구에 온지 27년이 지난 후 혼란스러움을 겪는 젊은이들 이야기예요. 그래서 머리를 초록으로 염색했어요.(웃음)

연기하는 이유

작품을 할수록 연기가 좋은 이유들이 생기고, 동시에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겨요. 계속 연기가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작품 속 인물들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하는 인물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저 혼자잖아요. 그래서 책임감도 생겨요. 관객들이 그 인물을 진짜 인물로 봐줄 때면 너무 행복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제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힘들어져요. 아직 영화보다 연극을 더 많이 해서 영화는 이제 배운다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연기를 대하는 마음은 비슷해요. 연극도 많은 관객이 찾는 작품보다 그렇지 않은 작품을 많이 해왔는데, 그럼에도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 불나방처럼 온몸을 내던져요.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 이유는 새로운 인물을 만나 새로운 작업을 하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연기의 시작

연기가 언제부터 좋았는지 생각해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예요. 드라마 속 장면을 흉내 내는 걸 엄청 좋아했거든요. 그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연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 그러다 열한 살 때 교회에서 성극을 하면서 천사2를 맡았는데 함께 연습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학교 연극반에 들어갔고, 입시를 앞두고 학교에서 일본으로 여행을 가게 됐는데 부모님에게 경비를 받아 연기학원에 덜컥 등록을 했죠. 연기를 전공하고 졸업한 후엔 연극을 많이 했어요. 연극은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길어서인지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강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우리 함께 가자’는 느낌도 있고. 매일 다른 관객들이 오니까 공연하는 순간을 그 공간의 모두와 공유한다는 생각도 들고. 공연하며 즉흥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힘도 있고.

바람

아직 영화는 많이 해보지 않아 내년에는 더 많은 작품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물론 연극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연극과 영화가 너무 달라 그래서 어렵긴 하지만 많이 경험하고 다양한 인물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영화는 다시 볼 수 있으니까 아쉬움이 더 커요. 그래도 하고 나면 너무 좋고 때론 힘들고. 그렇게 아파도 계속 사랑하고 싶은 존재예요.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블랙 레더 셔츠 렉토(Recto), 블랙 팬츠 레하(Leha).

왕화영

99년식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단편 <99년식>은 주인공 ‘영지’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유품인 자동차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만 먹다 실행하는 이야기예요. 고등학생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일에 서툴지만 좋은 어른을 만나 도움을 받게 되죠. 영지는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았고, 조금 어두운 면도 있어요. 처음에는 이 인물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저라는 사람과 영지와는 거리감이 있어서 어려웠지만 이홍래 감독님이 영지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말씀해주셨어요.

영화의 의미

영화는 하루에 한 편 이상 잘 못 보겠어요. 보고 나면 제가 겪지 않은 일이어도 자꾸 이런저런 생각이 들고 여운이 남거든요.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면에서 존경스러울 만큼 대단한 매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매체 안에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연기의 시작

자라면서 장래 희망이 여러 차례 바뀌었어요. 당시 본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변덕이 심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싶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부모님은 1년 해보고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지만 지금 7년째 하고 있어요.

나의 지금

곧 친구가 연출을 맡은 단편영화에 참여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여성을 화자로 한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성장 일대기라고 해야 할까요? 얼마 전에 영화 <벌새>를 봤는데 일대기는 아니었지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천천히 감정이 쌓여가더라고요. 영화는 잔잔한데 보는 내내 마음이 일렁였어요. 마음에 무언가가 밀려온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했어요. 언젠가 호흡이 긴 장편도 해보고 싶어요. 한 번 만난 인물과 오래 함께할 수 있으면 해요.

배우의 길

배우라는 일이 쉽지는 않아요.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할 때도 있고요. 그럼에도 이 일을 왜 계속하는지 생각해봤어요. 저는 원래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긴장을 좀 풀어보려고 연구를 더 많이 하게 돼요. 카메라 앞에서 불편해 보이면 안 되니깐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집중하게 되고요. 그렇게 집중하는 제 모습이 좋아요.(웃음) 단 2회 촬영뿐인 단편영화를 찍은 뒤에도 동생을 붙들고 촬영장 얘기만 하고 있는 저를 보면 이 일을 좋아하는 건 맞는것 같아요. 좋아하긴 하는데 아직 확신은 없어요. 그래도 좀 끈질기게 붙잡아보려 해요. 연기를 사랑한다는 말은 아직 못 하겠고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촬영장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분들에 의해 이끌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고맙고, 촬영이 끝나고 나면 서로에게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라는 말도 큰 힘이 돼요. 그 말이 너무 감사해요. 다음에 또 보자는 그 말.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수트 맨온더분(Man on the Boon), 화이트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조민상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밤의 침묵>이라는 작품이 상영돼요. 창작 연극 <장문로 41가길>을 각색한 작품으로 영화에서 ‘상민’이라는 인물을 연기했어요. 제 이름을 거꾸로 해서 극중 이름을 만들었는데 다른 역할들도 마찬가지예요. 영화는 청춘들이 겪는 고통, 갈등에 대한 이야기예요. 상민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화가입니다. 자신의 작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계속 고민하고, 자신은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꾸 ‘가짜’라고 말해요. 그런 사람들에게 ‘네가 가짜야’라고 하죠. 상민의 그런 고민은 제가 하는 고민과도 비슷해요. 진짜를 하고 싶은데 간혹 다른 사람들이 가짜라고 할 때 화가 나죠.

독립영화의 즐거움

아직 많은 작품을 해보지 않았지만 독립영화인지 아닌지를 떠나, 모든 작품은 만드는 즐거움이 있어요. 계속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곧 즐거움이죠. 지금까지는 영화보다는 연극 무대에 많이 올랐어요. ‘창작예술집단 보광극장’이라는 단체를 제가 만들었는데 함께하는 형들과 같이 연극과 영화를 만들어요. 혼자 계속 고민하며 몇 달 동안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어요.

가고 싶은 방향

배우로서 웃기는 건 잘 못해요. 오락성 있는 작품이 어려워요. 하고 싶은데도 잘 안 되죠. 그래서 자꾸만 그 반대 방향으로 가다 보니 고민할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하게 되고 비주류 쪽에 머물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이 자리에 오는 것도 무서웠어요. 사진 찍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웃음)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주 조금씩 나아지면서 발전하는 그런 배우.

준비 중인 작품

창작극을 준비 중이에요. <오후 두 시의 고독>이라는 창작극인데 3·1운동과 관련된 얘기입니다. 파고다 공원에서 조선독립선언서를 읽으셨던 분에 대한 얘기인데 정말 평범한 사람이 단상 위로 올라가서 민중 앞에서 연설문을 낭독하죠. 인물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아 몇 개의 픽션을 근거로 작품이 완성됐어요. 그 작품에서 저는 친일파 인물을 연기합니다. 영화에도 참여하게 됐어요. 작년 서독제에 초청된 <민상>이라는 작품이 제주상영회에서 틀어졌는데, 그 영화를 본 감독님이 함께해보자고 하셨어요.

배우라는 일

연기할 때는 별로 힘들지 않아요. 하지만 작품이 없을 때는 힘들죠. 그럴 때는 아르바이트도 해요. 연기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은 대본을 볼 때예요. 대본을 읽으며 계속 분석하고 연구하며, 연구한 걸 해냈을 때 성취감이 들죠. 사실 무대에 서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웃음). 너무 긴장되거든요. 하지만 연기를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이 재미있어요. 이렇게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도 기분이 엄청 좋죠. 작년에 처음으로 경쟁 부문에 올랐을 때 정말 기쁘기고 감사했어요. 앞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데도 큰 힘이 되고요.

독립영화 서울독립영화제
셔링 장식 롱 드레스 로클 바이 로우클래식(Locle by Low Classic). 블랙 앵클 힐 알도(Aldo).

조민경

유빙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단편 <유빙>으로 초청받았어요. 하진이라는 아이가 아버지를 찾으러 간 곳에서 만나게 되는 언니 ‘윤진’을 연기해요.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고 용서하기 어려워했던 인물이에요. 하진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우는 장면이 있는데, 한곳을 바라보며 헤어지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이상한 유대감이 느껴졌어요. 그 장면을 극장에서 어서 다시 보고 싶어요. 촬영할 때는 극 중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찍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윤진의 감정을 생각해보면 하진과 시간을 공유했다는 게 소중하게 느껴져요. 영화는 어떤 특정한 감정을 강요하거나 일방적으로 전하려고 하진 않아요. 그래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 궁금해요.

연기의 시작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피아노를 전공하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러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교는 호텔경영과를 선택했죠. 그러다 짧은 인턴 생활을 하게 됐는데 문득 내가 이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일 중 하나가 연기였는데 이제는 한 번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오래 전에 교회에서 연극을 해본 적이 있는데 무대 위에서 하나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상대 인물과 대화를 하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 감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는데 기분이 엄청 좋았어요. 그때 마음에 품었던 걸 해보기로 한거죠. 그래서 연기 전공으로 학교에 다시 들어갔어요. 마지막 학기 즈음에 <이월>이라는 작품에 캐스팅되었는데, 이 작품을 끝내고 좀 혼란스러웠어요. 어렵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고. 1백10분짜리 장편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두 장면 빼고는 모두 등장했거든요. 그렇게 현장 사람들과 뒤섞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보니 짜릿하기도 했고, 화면을 통해 제가 몰랐던 제 모습을 본 것 같아 신기하기도 했고 그랬어요.

독립영화라는 것

독립영화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요. 좀처럼 보기 힘든 캐릭터들도 많고요. 러닝타임도 자유롭죠. 다양성이 독립영화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지금 정말 의욕이 충만해요.(웃음) 영화에 출연하는 자체가 즐거워요. 제가 해본 일중 가장 재미있고. 물론 연기에 대한 정답을 알려면 멀었고 지금도 잘 모르겠고, 그 정답이 과연 있는 건지 확신도 없어요. 다만 ‘조민경’이라는 사람이 있지만 영화를 통해 알던 제 모습뿐 아니라 몰랐던 점까지 표현된다는 게 뭔가 무서우면서도 스릴 있고, 재미도 있고, 여러 감정이 느껴져요.

배우의 하루

최근에 7월부터 촬영한 장편영화 한 편을 끝냈어요. 지금은 간간히 오디션도 보러 다니고 일도 하고 그렇게 보내고 있어요. 항상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요즘에는 이런 하루하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작업하지 않는 시간도 소중하니까요. 아직은 좋은 배우가 무엇인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용기 있게 말하지 못하겠어요. 우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영화라는 건 어떤 일이나 사람을 엄청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진짜 재미있고 좋고, 그래요. 영화만 괜찮다면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어요.

응원합니다

권해효 조우진

권해효 조우진
니트 피케 스웨터와 팬츠 모두 맨온더분(Man on the BOON), 슈즈 자라(ZARA).

올해 ‘배우 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조우진 내가 먼저 선배에게 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해 듣고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기는 쑥스러운데, 좋은 어른이란 어떤 어른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선배님을 뵙게 됐고, 먼발치에서나마 따라가보자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고. 올해 너무나 감사하고 영광스럽게도 함께하게 됐다. 심사는 사실 명목이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행사라는 취지에 동감했고,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참여하게 돼 무척 뜻깊다. 권해효 배우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독백 페스티벌은 선배 영화인들이 심사하는 것이 아니라 호스트가 되는 방식이다. 올해는 조우진 씨와 함께하게 되었다. 조우진 배우와 함께한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다. 조우진 배우도 무명의 시간이 꽤 길지 않았나. 그 시간을 견뎌온 거지. 서울독립영화제 배우 프로젝트에서 조명하고 싶은 것도 그런 부분이다. 함께 버티는 것. 배우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배우로 살겠노라는 일념으로 견뎌온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좋은 경험의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연기 생활을 하면서 가장 갈증을 느끼는 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런 객관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의 방향성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심에서 뽑힌 24명의 배우뿐 아니라 독백 영상을 보낸 모든 배우에게 ‘당신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라는 메시지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해 독백 페스티벌 이후 영화 현장에서 본선에 올라왔던 두 배우를 만났다. ‘고 어겐(Go Again)’ 한 배우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작업하는 걸 보면서 우리가 선택한 일이 잘못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우진 씨가 합류해 너무 좋다.(웃음) 조우진 이 페스티벌을 시발점 삼아 이런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여전히 볕이 들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이 격려받고 응원받을 수 있는 기회들. 서울독립영화제의 독백 페스티벌이 그런 기회의 출발선상에 있는 행사가 되길 기대한다.

1천2백27편의 독백 영상 중 본선에 오를 24편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조우진 영상을 탈락시킬 때 마치 당사자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고개 숙여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영상을 보며 짠할 때가 많았다. 불과 수년 전 내 모습 같기도 했고, 배우들의 절실한 마음과 한이 느껴졌다. 그 힘듦에 덩달아 힘들어져 쉬어가며 봤다. 영상 속 대사의 느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배우의 길을 가며 각자 어렵게 어렵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두 그렇게 정성 들여 촬영했을 테니 한 편도 대충 넘길 수 없었다. 수년 전 내 모습과 닮은 배우들의 영상을 보며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가다 보면 과거의 나와 그분들이 닮은 것처럼 시간이 지난 후에는 지금의 나와 선배님의 모습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독백 영상을 보며 나 자신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에 감사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이 직업에 대해 전방위적 요소를 하나씩 꺼내 스스로에게 따져 물었다. 물론 여전히 답은 찾지 못했고 찾는 과정에 있지만. 권해효 지난해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1분짜리 독백 영상을 찍는 환경은 그야말로 제각각 달랐다. 어떤 친구는 DSLR 카메라로 그럴듯하게 찍고, 어떤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하는중인지 일하는 가게에서 유니폼을 입고 찍었다. 대한민국의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1천여 개의 독백 영상을 이틀 반에 걸쳐서 봤다. 그렇게 우선 1차로 체크한 영상을 여러 번 반복해 보며 걸러냈다. 여러 번 볼 수밖에 없다. 24편의 영상을 고른 후 모든 참가자에게 감사 영상을 보냈다. 안타까운 지점도 있었다. ‘좋은 연기란 뭘까’라는 질문에 답하기는 참 어렵다.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저 사람은 뭘 맡겨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좋은 배우’라는 것과 ‘좋은 연기’라는 것은 조금 차이가 있다. 가령 어떤 배우는 살아온 삶 때문인지 몰라도 어느 공간, 어느 위치에 있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연기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냥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런데 그 배우가 다른 연기도 잘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단정 지을 수 없다. 이번에 영상을 보내준 배우 중에도 안타깝게도 오래전 연기 학원에서 가르쳤을 법한 틀에 박히고 낡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선발된 24명의 연기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연기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 24편에 속하지 못한 다른 참가자들이 새로운 발견을 하며 좋은 연기의 방향을 잡아갔으면 좋겠다. 영상을 보다 보면 과연 내가 그들의 연기만 보고 있나 하는 의심도 하게 된다. 영상 속 사람이 궁금하면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매력은 배우에게 아주 큰 힘이다. 왠지 모르게 궁금한 배우. 어느 순간은 나도 모르게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 이 사람에게 뭘 맡길 수 있을지 생각한다. 주제넘게.(웃음)

권해효 조우진
그레이 니트 스웨터와 그레이 슬랙스 모두 에스.티. 듀퐁(S.T. Dupont).

무엇이 이토록 많은 배우들로 하여금 포기하지 않게 하는 걸까? 오랜 시간 연기하며 무엇에서 이 길을 포기하지 않을 힘을 얻었나? 조우진 오랜 무명 생활을 보냈다, 그걸 견뎌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많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로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꿈을 꾼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계속 꿈꾸는 것, 그때 나를 버티게 한 힘이다. 권해효 나를 포함한 모든 배우가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의 쓰임새는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늘 한다. 배우는 누구나 죽는 순간까지 이런 고민을 한다. 대중이 이름을 아는 배우가 됐다고 해서 해결되는 고민이 아니다.

독백 페스티벌을 통해 24명의 배우들을 만난다.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권해효 아주 오래전에 수상 소감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상을 받더라도 그 상이 내 연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본선에 올랐든, 그렇지 않든 연기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좋은 경험을 했다는 정도지. 뭐든지 하루아침에 달라질 건 없다. 내일도 어제처럼. 그게 현실이다. 아무튼 이런 기회에 만나서 반갑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계가 먹고살기 참 복잡한 곳인데, 너희 인생도 힘들어졌어. 그래도 우리 한번 같이 개겨보자. 어서 와, 잘 왔어’ 하고 맞아주는 선배 역할 정도를 했으면 좋겠다. 독백 페스티벌도 마찬가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주 만나요. 조우진 업이 되기 위해서는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업으로 삼으면 그 전보다는 불안감이 사그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일을 알 수 없고 기회가 내일 날아갈지, 앞으로 수년 동안 오지 않을지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일이 어려운 것 같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지금도 힘들겠지만 권해효 선배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저 건투를 빈다. 권해효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오해가 한 가지 있다. 어떤 관계가 무엇을 만들어줄 거라는 오해. 많은 배우와 감독을 알고 지내며 인간관계를 만든다고 해서 도움 되는 것은 없다. 배우가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건 하나의 작품, 하나의 배역이면 충분하다. 인맥이 기회를 열어줄 거라는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직업은 묘하게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 조우진은 한 명이고 권해효도 한 명이지 않은가. 누구의 것도 뺏지 않는다. 내 몸뚱어리를 움직이면서 살아가는 일이라는 데 자긍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지난해 열린 첫 번째 독백 페스티벌과 달라진 점이 있나? 권해효 첫째 조우진 배우가 조윤희 배우, 나와 함께 예심을 진행했다는 점. 그리고 지난해에는 본선 무대를 영화관에서 진행했다. 그런데 극장이라는 공간이 사람의 육성을 라이브로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독백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에는 작은 음악 공연장에서 본선 무대가 펼쳐진다. 또 하나는 배우를 직접 만나는 것과 영상으로 매력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올해는 영상만 보고 특별상을 정하기로 했다. 본선 심사위원들에게 영상을 보내 특별상 수상자를 뽑을 예정이다.

올해 유독 독립영화계 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한국 영화계에서 독립 영화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권해효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을 비롯해 <벌새>의 김보라 감독 등 올해 여성 감독의 약진이 두드러지는데 사실 독립영화계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올해만 하더라도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의 46%가 여성 감독의 영화다. 독립영화를 보면 한국 영화의 내일을 볼 수 있고 현재 상황도 알 수 있다. 좋은 영화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없는 상황들. 2009년에 개봉한 독립영화의 평균 일반 관객 수는 3만 명이었는데 올여름을 기점으로 1만 명으로 떨어졌다. 극장은 느는데 독립영화를 개봉하기는 점점 더 어렵다.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끝나는 상황이 많다. 독립영화계의 상황이 과연 지금이 건강한 생태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매년 아주 좋은 영화가 많이 나온다. 디지털 시대의 축복인 것 같다. 서울독립영화제가 올해로 45년째인데 2003년까지는 단편영화제였다. 필름으로 장편 독립영화를 만들기는 예산이 여의치 않다 보니 독립영화는 곧 단편영화였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며 보다 많은 장편 독립영화가 등장하고 있다. 조우진 나는 독립영화에 대한 바람을 말하고 싶다. 한국 영화라는 장이 있다면 독립영화가 그 아래에 있거나 뒤에 있지 않다. 독립영화가 늘 옆에 있기를 바란다.

많은 후배 배우들에게 어떤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조우진 권해효 선배님처럼 행동하는 사람.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 사실 이번 예심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후배들을 보며 자극을 더 많이 받았다. 지금보다 더 치열해져야겠다는 자극.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는 선배가 되어 직업에 대해 책임지는 배우이고 싶다. 권해효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독백 페스티벌과 관련해 두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오늘의 인터뷰에서 정리하고 싶다. 배우의 세계에 단계가 있는 것처럼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독립영화는 상업 영화로 가기 위한 단계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배우가 어떤 영화를 찍든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으면 멋있고 존경받을 만하다. 우리는 그저 오래 버티고 배우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을 뿐이다. 또 한 가지는 이번에 ‘심사’를 했다고 표현했지만 우리 모두 ‘개취(개인의 취향)’로 선택한 거다. 우리가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촬영장에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며, 누군가를 평가할 자격이 없고 그럴 위치도 있지도 않다. 다만 ‘우리 같이 갑시다’라고 응원하고 싶어 독백 페스티벌을 준비한 거다. 이제 질문으로 돌아와서, 나는 후배들에게 ‘같이 놀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후배들과 술 한잔 하고 집에 돌아오면 ‘놀아 줘서 고맙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웃음) 그거 말고는 특별히 없다. 조우진 독백 페스티벌을 콘테스트가 아닌 페스티벌로 만드신 것도 그런 취지의 결과물이다. 이름도 심사위원이 아니라 응원위원이라고 하면 좋겠다. 권해효 어? 너무 좋다. 응원단. 위원 말고 응원단원들.

WAY TO GO

윤찬영 스타화보
오버사이즈 니트 풀오버 듀이듀이(Dew E Dew E).
윤찬영 스타화보
파란색 아가일 패턴 카디건 메인부스(Main Booth), 안에 입은 귤색 니트 톱과 머플러 모두 스투시(Stussy), 운동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코듀로이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화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의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처음으로 1인 2역을 맡은 작품이자 10대 시절의 마지막 영화라 더 특별할 것 같아요. 지난해 1월부터 준비에 들어가서 봄까지 촬영한 작품인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처음으로 연기하는 재미에 빠져 있던 시기였어요.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한 것 같아요.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제 내면에만 집중하면서요. 그래서 제게는 1인 2역을 한 것보다 그때라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누구보다 결과물에 기대가 컸을 것 같아요. 지난해 첫 시사회 때 담임선생님이랑 반 친구들을 불렀거든요. 몇 명은 울기도 했고, 영화 속 청소년의 슬픔이나 아픔에 공감된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선생님은 당신이 처음 교사가 되려고 마음먹었던 때가 생각난다며 많은 것을 떠올리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좋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었고요.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 만족해요.

영화를 준비하면서 참고한 작품이 있었나요? 원작인 에세이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를 읽었어요. 특히 본드에 중독돼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준영’은 원작에 나오는 실존 인물이라 최대한 책에서 힌트를 얻으려고 했어요. 반대로 ‘지근’은 영화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이라 어떤 작품을 참고하기보다 지근이의 마음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도통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인데, 그래서 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탐구하면서 알아간 것 같아요.

촬영 당시에 느낀 연기의 재미는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어릴 때는 외향적인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사람들한테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죠.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영화 <라라랜드>에 빠지면서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예고를 들어가 연극 수업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그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하면서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집 한쪽에 방음 부스를 설치해 독백 연습도 하고, 매일 아침에는 신문 보고 저녁에는 영화 보고, 책도 읽고, 친구랑 재미있게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따라 하면서요. 영화 <노트북>에 남녀 주인공이 길에서 춤을 추다가 드러눕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런 장면을 연기하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서 친구랑 학교 앞 차 없는 도로에서 따라 한 적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촬영은 많이 했지만 연기를 공부한 적은 없었거든요. 이런 시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연기 실력을 키우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신문은 어떤 이유에서 보기 시작한 건가요? 그냥 따라 해보고 싶었어요. 아침에 신문을 보는 배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신문을 보면 뭐가 달라질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재미없더라고요.(웃음) 얼마 전부터는 잡지로 바꿨어요. 잡지에서 읽는 인터뷰나 기사가 더 재미있고 마음에 와닿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매달 잡지 나오는 날마다 서점에 가서 읽어 보고 마음에 드는 걸로 한두 권씩 꼭 사요. 저 <마리끌레르> 11월호도 샀어요. 이재욱 배우랑 조현철 배우 인터뷰가 재미있었어요.

연기를 위해 시도한 방식 중 가장 효과가 있는 건 어떤 방식이었나요?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소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특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요. 말이 아닌 글로 정리된 누군가의 생각을 읽으면서 제 생각을 정리하고, 대본을 해석하는 방식도 배우고 있어요. 어쨌든 대본에 적힌 건 대사와 지문이 전부고, 연기하는 캐릭터의 속마음을 정리하는 건 제 몫이잖아요. 그럴 때 소설이라면 이런 생각들이 쓰여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는 거죠. 그리고 저를 관찰하는 데는 일기가 효과적이에요. 처음에는 학교 연기 선생님이 3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일기를 써서 졸업할 때 인증을 받으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해서 시작했어요.(웃음) 결국 매일 쓰는 건 실패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저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머리가 복잡할 때 쓰고 나면 해소되는 느낌도 좋고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해 보여요.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어요. 가끔은 너무 진지해지는 건 아닌가 고민이 되기도 하는데, 그렇더라도 잘하고 싶어요.

잘하는 연기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모두를 100% 만족시키는 연기는 없을 거예요. 그래서 그보다는 자신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 담겼을 때, 내 연기가 부끄럽지 않을 때쯤에 스스로에게 잘한다는 말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연기인가요? 아무래도요. 며칠 전에 대학교 입시 실기 시험을 봤거든요. 그거 준비하느라 최근 몇 달은 오로지 연기에만 매달린 것 같아요. 입시 준비가 진짜 할 것도 많고 치열하더라고요. 독백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준비해야 하고, 제시 대사도 외워야 하고, 읽어야 할 대본이랑 책도 많고요. 친구들이랑 학교에서 밤새 연기만 했어요. 힘들긴 했는데, 나름 즐겁기도 했어요.

이미 실전의 경험치가 많이 쌓여서 대학의 필요성을 못 느낄 거라고 생각 했어요. 만약 일반고에 갔으면 어땠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그랬다면 좀 더 일상적이고 보통의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국은 예고를 가길 잘했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연기에 대해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쫓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되고, 다 같이 열심히 나아지는 경험을 하는 게 좋더라고요. 연기는 현장에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선생님께 학문적인 내용을 배우고 동기들과 생각을 나누는 삶이 일상이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연기 밖의 질문을 해볼게요. 연기를 하지 않을 때는 어떤 모습인가요? 주로 축구를 보거나 하거나 축구 게임을 하고 있어요.(웃음) 경기가 있는 날에는 새벽에 축구 보고 학교 가는 게 일상이죠. 오늘도 새벽에 토트넘이랑 츠베르나 경기가 있어서 보고 싶었는데, 오전 촬영이라 참고 잤어요. 손흥민 선수가 두 골이나 넣었는데 생방송으로 못 봐서 아쉬워요.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해요. 힙합 음악은 신곡 나오면 다 들어보는 편이에요.

10대로 보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10대 시절을 어떻게 보낸 것 같나요? 순탄치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특히 최근 3년 동안 개인적으로 힘든 순간이 있었어요. 잘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아요. 별것 아닌 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생각들로 힘든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래서 내년부터는 더 재미있고 행복하게 지내면서 연기하기를 바라요.

바라는 스무 살의 모습 혹은 스무 살이 되어 해보고 싶은 것들은요? 제 고민 중 하나가 또래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나쁜 말은 아니지만 배우로서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20대가 되면 좀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갖춰서 성숙한 역할도 소화해보고 싶어요. 로맨스물도 해보고 싶고, 좀 더 과감한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연극 무대에도 올라보고 싶어요. 얼마 전 에 류덕환 선배님이 출연하는 연극 <에쿠우스>를 보러 갔는데, 보면서 ‘알런’ 역할을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아, 제가 제일 많이 보고 좋아하는 영화가 <라라랜드>거든요. 언젠가 데이미언 셔젤 감독님과 작업해보는 게 꿈이에요.

‘해볼 수 있는 것, 하고싶은 건 다 해볼 작정이다’라는 기세가 느껴지네요. 네. 보여주지 못한 것도 해보지 못한 것도 아직 많거든요. 그래서 빨리 어른의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요.

윤찬영 스타화보
네이비 코트와 니트 스웨터 모두 와이엠씨(YMC), 니트 비니 오베이(Ob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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