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와 시

고로에다히로카즈 영화

“이번 작품에서는 외국 스태프와 일했지만 영화인들과 교류하면서 눈에 보이는, 즉 국가와 국경, 인종보다 더 크고 풍부한 것이 영화라는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국가성과는 무관한 지점에서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무척 행복하다.”

배우인 엄마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가 회고록을 내자 뉴욕에 살고 있는 그의 딸 뤼미에르(줄리엣 비노쉬)가 찾아오며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시작한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오래 봐왔다고 믿는 두 사람은 회고록에 담긴 진실과 거짓을 놓고 팽팽히 맞선다. 연기로 일가를 이룬 중년의 여성 배우와 오랜 시간 그를 사랑하고 증오해온 딸이 서로를 이해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모국어로 연출하지 않은 첫 해외 올 로케이션 작품이지만 숏 중간중간 풍경을 쓰는 방식,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의 톤, 관계의 변화와 진전,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조, 여백과 침묵, 그사이 흐르는 음악까지 일관되게 ‘고레에다 히로카즈스럽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보다 가볍고 경쾌해졌다는 것. 그러니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팬이라면 어쩔 도리 없이 사랑할 영화다. 일본에서는 10월 중 개봉하고, 올해 연말 우리나라에도 소개될 예정이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지난 5년 동안 매년 영화를 찍었고, 그 외의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 비행기를 타면 대본을 고치고, 책을 읽어도 영화를 위한 책밖에 읽지 않는다”는 감독과 마주 앉아 또다시 영화 이야기를 했다.

모국어로 연출하지 않은 첫 작품이자 첫 해외 올 로케이션 작품이다. 언어와 장소가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영화는 누가 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색이 선명하다. 그런 점에서 제작 초반에는 소통이 큰 과제로 느껴지기도 했다. 배우들과 언어로 직접 소통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편지를 써서 내 생각을 글로 남겨 배우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 촬영 현장에서도 쓰는 방식인데, 이 작품에서는 의식적으로 편지의 분량을 늘려 소통하려고 했다. 배우, 스태프와 공통 언어가 없는 경우 생각을 글로 전하는 것은 언어를 넘어 생각을 공유하고 다음 단계를 맞춰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영화는 언어와 국경, 문화적차이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영화의 핵심 인물이라 할 배우 카트린 드뇌브에게는 어떤 내용의 편지를 썼나? 영화사 속에서 빛나고, 지금도 여전히 현역에서 활약하고 있는 배우의 매력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점에서 그녀가 우리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편지가 필요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는 현장이 전부인 배우다. 현장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뛰어난 순발력으로 최고의 것을 찾아내 표현하는, 홀로 집에 앉아서는 도저히 영화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낼 수 없는 배우에 가깝다.

그런 그와는 다른 소통 방식이 필요했을 것 같다. 맞다. 이런 이유로 카트린 드뇌브와 나는 가능한 한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매일 아침 그녀의 대기실로 찾아가서 그날 촬영에 대해 대본을 보면서 이야기도 하고. 대신 매일매일 그날의 스케줄을 전달하면서 오늘의 날씨나 파리의 가을 하늘 등을 표현한 시를 적어 보냈는데 굉장히 좋아했다. 마음에 들어서 잘라 보관했다고 하더라.

이번 영화는 오직 모녀의 유대감과 감정 교류에 집중한다. 모녀 관계의 다층적이고 복잡다단한 면을 섬세하게 포착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려고 했나? 변호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변호사에 대해 공부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변호사가 어떤 삶을 사는지 조사하는 거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눈앞에 두 여성 배우가 있고,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연출자로서 두 사람이 꽤 긴 여행을 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카트린드뇌브, 줄리엣 비노쉬와 모녀 관계와 관련한 이야기를 오래 나눴다. 물론 그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해석하는 등장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드시 모녀여야 했던 이유가 있나? 가족영화를 만들자, 혹은 이번에는 엄마와 딸에 관한 영화를 만들자 하기보다 한 사람의 여성 배우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연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야기다. 그런 가운데 배우로서 실패한 딸을 대비시키며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영화에는 모녀 관계의 다양한 모습이 등장한다. 둘의 상황과 입장이 역전되기도 하고, 여러 상황에서 모녀 관계를 다층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들며 그동안 알지 못한 모녀 관계의 특수성을 발견했나? 질문의 취지와 조금 다른 답일 수 있는데, 영화 후반부에 엄마가 딸에게 ‘어제 몇 번 했냐, 잘하냐’는 등 섹스에 관한 농담을 하지 않나. 이런 상황은 일본에서는 없지 않을까, 프랑스에서라면 가능한 일이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배우가 꽤 즐겁고 자연스럽게 그 대사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새로웠다. 아, 프랑스에서 엄마와 딸은 서로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열려 있구나 싶었다. 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앞서 대사에서 느껴지듯 이전 작품에 비해 유머의 빈도가 높고, 전체적으로 유쾌하다. 감독 역시 영화를 보고 난 뒤 느낌이 밝았으면 좋겠다고 답한 적이 있다. 그간 특별히 배드 엔딩을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주로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주제의 작품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조금 템포가 빠른, 단조보다는 장조의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극 초반 파비안느가 어떤 감독의 영화에 대해 평가하며 ‘시적인 면이 없다’고 비난한다.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가? 많은 사람이 당신의 영화를 두고 ‘시적이다’라고 표현한다. 시적인 요소는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맞다. 그 장면은 파비안느의 입을 빌려 내 생각을 이야기한 거다. 시적인 것…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해야할까. 영화의 힘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어제와 똑같은 하늘이 오늘은 다르게 보인다는 점 아닐까. 어제와는 다른 하늘로 보이게 만든다는 것. 뤼미에르 안에서 엄마라는 존재와 그 의미가 변화하는 것처럼 영화를 보는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영화가 지닌 가장 작고도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시 역시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본다. 컵이 컵 이상의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은 맥락으로 ‘(영화를 통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시간과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감독에게 다가온 가장 빛나는 시간은 언제였나? 영화 후반부에 뤼미에르가 자신의 어린 딸을 앞세워 할머니에게 어떤 말을 하도록 시키는 장면이 있다. 원래는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이다. 촬영이 절반가량 진행됐을 때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문득이 장면을 추가했다. 이 장면을 통해 ‘아, 뤼미에르는 고향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조금은 성장해서 뉴욕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 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 가장 인상 깊다.

왜 여전히 영화를 만드느냐는 질문은 이제 당신에게 왜 살고 있느냐는 질문처럼 다가올 것 같다. 늘 새롭게 어려운 질문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외국 스태프와 일했지만 영화인들과 교류하면서 눈에 보이는, 즉 국가와 국경, 인종보다 더 크고 풍부한 것이 영화라는 공동체 안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국가성과는 무관한 지점에서 동일한 가치관을 가지고 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무척 행복하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나 역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전히 영화를 만들며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번 영화를 통해 한 인간으로서 채워지거나 비워낸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언어나, 일본을 떠나는 문제 등 여러 불안한 점이 있었다. 이런 문제는 여러 방도로 준비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고,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디서든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채울 수 있었다. 반대로 비워낸 것… 비워낸 것이라기 보다 놓친 것이 있다면 반년 정도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딸아이가 반년만큼 빠르게 성장했다는 거다. 집으로 돌아와 딸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서 스스로 머리를 빗는 모습을 봤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아이는 컸지만 나는 뭔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면대 위에는 여드름 약이 놓여 있고….(웃음)

고로에다히로카즈 영화

11월 넷째주 #영화 #드라마 추천

이번 주 개봉 영화 2편과
‘본방 사수’ 하기 좋은 드라마 1편을 소개한다.

겨울왕국 2

5년 전 개봉한 <겨울왕국>의 속편, <겨울왕국 2>가 개봉했다.
엘사의 마법에 숨겨진 비밀과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위험에 빠진 아란델 왕국을 구하기 위해
엘사안나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크리스토프와 올라프 등 기존의 캐릭터도 여정에 동행하고
물, 바람, 땅을 비롯한 자연의 정령이 새롭게 등장한다.
겨울이 아닌 가을을 배경으로 해 조금 달라진 장면의 분위기도 특징.
전작에 이어 크리스 벅, 제니퍼 리 두 감독이 연출했고
‘Let It Go’를 탄생시킨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 로버트 로페즈 부부도
OST 작업에 참여해 ‘Into the Unknown‘ 등을 새롭게 선보였다.

개봉 11월 21일

얼굴없는 보스

<얼굴없는 보스>는 ‘폼 나게’ 살고 싶어 조폭의 삶을 선택한
상곤(천정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가 조직의 보스로 자리 잡은 후
음모와 배신에 휘말리며 가족과 동료를 파멸로 이끌고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이는 과정이 생생하게 전개된다.
철회(진이한)를 비롯해 상곤을 따르는 ‘식구들’,
상곤과의 사랑을 꿈꾸는 판사 민정(이시아) 등 인물 간 관계를 통해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상곤의 면모를 보여주며
잔혹한 조폭의 세계를 재조명한다.
<게이트>의 각본을 쓴 송창용 감독의 작품으로
실화를 기반으로 약 9년에 걸쳐 제작됐다.

개봉 11월 21일

싸이코패스 다이어리

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육동식(윤시윤)이
살인 과정이 상세히 적힌 다이어리를 발견한 후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착각을 하며 시작된다.
수사에 돌입한 동네 경찰 심보경(정인선),
겉과 속이 다른 사이코패스 서인우(박성훈) 등이 함께
서스펜스와 코미디를 오가는 진실 공방을 벌인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구박받고 동기에게 치이는 등
언제나 ‘을’의 삶을 살던 육동식의 변화 또한 관전 포인트.
<백일의 낭군님>의 이종재 감독이 연출했고
<개와 늑대의 시간>을 집필한 류용재 작가가 함께했다.

편성 수·목요일 오후 9시30분 tvN
첫방송 11월 20일

외롭고 쓸쓸하지만, 아주 다정한

김참새 그림

어떤 그림에는 한 시절과 계절의 시공이 묻어난다. 작가가 스케치를 엮고, 색을 고심하는 동안 맡은 냄새, 두 눈에 담은 풍경, 머릿속을 지배한 문장, 만난 사람, 쌓인 대화들…. 그 연쇄 작용의 총합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결의 감정과 개념을 작가 김참새는 캔버스 위에 담는다. 자신의 작업을 ‘일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작업은 사적이다. 그는 작업 과정에서 묻어두었던 감정을 조심스레 꺼내 하나씩 불을 밝히고 보듬는다. 그의 그림이 마냥 해맑고 명랑하지만은 않은 건 오랜 시간을 두고 마주한 김참새의 그림이 관람자 저마다의 깊숙한 감정을 대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상에 치여 돌보지 못하고 성급히 흘려보내고 문을 닫아버렸던 감정들을. 김참새의 작업에 특별히 아름답다고 느끼는 부분은 작가의 타고난 감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독창적인 원색의 조합 사이사이에 깃들어 있는, ‘돌아보는’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무수한 층위의 섬세한 감정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때로 외롭고 쓸쓸하지만, 아주 다정하다. 두번째 개인전 <김참새 : En Moi, au Fond de Moi>를 연 그와 작업실에서 마주 앉았다.

두 작품을 제외하고 40여 작품을 올 한 해 완성했습니다. 물리적으로 엄청난 몰입이 필요한 작업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시를 앞두고 한 달 보름 정도는 계속 작업실에만 있었어요. 오프닝 날까지 밤을 새우며 작업을 해야 했던 터라 지금 약간 몸살 기운이 있어요. 전시 끝나고 긴장을 놓는 순간 한 번 크게 앓을 것 같아요.

극도로 몰아붙이는 작업 방식이 때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나요? 다행히 몰두하는 시간을 좋아해요. 오롯이 내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에 대해 고민하고 집중하는 과정은 늘 좋은 시간이었어요. 오랜간만의 개인전이여서 그런지 유독 의미 있게 다가왔고요.

다양한 협업을 해오고 있지만 홀로 작업할 때 느끼는 자극이 다를 것 같아요. 혼자 결정하고 행하다 보니 ‘이 길이 맞나?’ ‘이렇게 작업하는 게 맞나?’ 스스로 질문하며 원점으로 돌아간 작업도 많아요. 전날은 괜찮아 보였는데 자고일어나 다시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업이 많이 바뀌기도 했어요. 혼자만의 싸움인 거죠. 바꾼 작업들 중에 반응이 좋은 경우도 있고, 반대로 아니기도 하고요. 바꾸다가 더 최악이 되기도 하고요. 왜 이렇게 했지? 왜 이 색을 썼지? 하며 후회도 해요. 하지만 실패했을 때는 빠르게 털고 넘어가는 편이에요. 바로 다른 걸 시도하고, 또다시 해보고요. 돌아보면 일련의 모든 과정이 좋았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작업에서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는 말로 들립니다. 맞아요. 개인적인 일들, 주로 개인적인 감정을 싣는 작업이라 그림을 일일이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조심스러워요. 어느 선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거든요. 이번 전시에서 유독 위로를 준 작품이 있어요. 최근에 큰 상처를 받아서 힘들었을 때 사람들이 내게 했던 질문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그리며 위로를 받고 빨리 잊을 수 있었어요. 그림을 그리며 위로를 받는 편이에요.

‘Does This Look Different?’ 등의 문장이 써 있는 작품인가요? 맞아요. 상처가 되는 말들에 대해 그렸는데 그 상처가 무엇일까 생각도 해보고, 그로 인해 내가 왜 상처를 받았는지 살펴본다는 점에서 작업이 일기 같아요. 일기를 쓰는 행위가 기록이라 할 수도 있지만 오늘 어떤 일이 있었고, 오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이야기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작용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그림이 위로와 회복이 되죠.

이번 전시에는 회화 작업 외에 자수와 설치, 영상까지 장르를 두루 아우르는 작품이 있습니다. 외연이 한층 더 넓어졌습니다. 졸업할 때 설치 작업을 하기도 했고 전공 과정에서 설치, 영상, 사운드 등 다양한 작업을 시도할 수 있었어요. 바느질의 경우, 바느질이라는 행위 자체가 여러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바느질 또한 하나의 드로잉으로 느껴지고요. 한 땀 한 땀 새기는 과정에서 작가의 생각과 개념이 담기고 이어지는 거잖아요. 그 행위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작업 자체도 큰 즐거움이고요. 아는 분이 저를 ‘봉제왕’이라고 불러요. 설치도, 바느질도 작업 과정이 고되니까 왜 하나 해도 막상 하고 나면 재미있고 의미도 있죠.

김참새의 작업 하면 흔히 경쾌하고 명랑한 느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설치 작업을 포함해 그간의 작품들을 보면 어딘가 좀 우울하고,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많은 분이 제 작업을 밝다고 하지만 사실은 많이 어두워요. 불편한 것들도 있고요. 밝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지만 유학 가서 알았어요. 나는 기질적으로 우울한 사람이더라고요. 혼자 있는 건 싫지만 사람과의 관계 역시 힘든, 불편하고 예민한 사람이더라고요, 나란 사람이. 그런 면을 솔직하게 작업에 담고 싶었어요. 왜 사람도 단편적인 모습만 보면 밝고 쾌활하지만 더 깊이 이야기 나누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잖아요. 제 작업들도 그런 경우 같고요.

맞아요. 밝고 화려한 컬러로 위장하는 듯한 느낌이요. 처음엔 의도하지 않았어요. 근데 작업을 다 하고 보니 ‘그림이 너무 나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 사람들이 저를 밝게 보고 ‘얘는 이런 말에 상처 안 받을 거야’ 하며 종종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정작 저는….

귀여운 동물들조차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지 않아요. 곁눈질을 하며 눈을 피하고요. 올해 초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요. 누구나 다 겪는 일이고, 다들 이걸어떻게 겪어내며 살고 있는 거지 싶은 일들인데 막상 내 일이 되다 보니 점점 마음을 닫게 되고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사람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 날 그림을 그리면 딱 그렇게 나오더라고요. 호랑이 옆모습을 그려야지 하고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시선이 옆으로 빠져 있는 걸 보면 저조차도 신기해요. 누가 알겠어 했는데 이렇게 알아보니까.(웃음) 맞아요. 최근작 중에 정면 보는 작업이 별로 없어요. 예전에는 많이 그렸었는데.

김참새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색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죠. 작가의 타고난 감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없는 독창적인 색 쓰임이 있습니다. 색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는 편인가요? 또 어디에서 영향을 받나요? 원체 색을 좋아해요. 색만큼은 매일, 매 순간 습관적으로 고민하는것 같아요. 우연히 멋진 색 조합을 봤을 때 머릿속에 넣어두기도 하고요. 가장 근본적인 건 어머니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는데, 엄마와 머리 리본끈을 사러 한참을 돌아다녔어요. 빨간색 체크 패턴 끈인데, 당시 국내에서는 안 만들어져서 결국 수입품 시장 같은곳에서 샀어요. 초등학생인데도 ‘저 체크 끈을 왜 저리 사려고 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엄마가 유독 독특한 패브릭과 특이하고 이상한 (웃음) 색을 좋아하셨어요. 또 집에 색색의 털실이 많아서 가지고 놀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지금까지 이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엄마 덕분에.

작가 중에서는 마티스를 좋아한다고요. 색을 좋아해서 그를 좋아하게 된 건지, 그를 좋아해서 색을 좋아하게 건지 모르겠지만 마티스 너무 멋있죠. 색 조합을 보면 저 시대에 어떻게 저런 색을 만들어 표현해낼 수 있었을까 싶어요. 피카소도 그렇고요. 한국에 알려져 있는 작품보다 스페인 본고장에 가면 더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데, 피카소 미술관에 갔을 때 그의 색에 충격을 받았어요. 색에 집착하긴해요. 변태스럽죠, 좀.(웃음)

작업에 텍스트를 응용하는 경우도 많아서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할 거라는 짐작도 했어요. 책 읽는 거 좋아해요. 소설, 에세이 가리지 않고 즐겨 읽는 편인데 작업에 가장 영향을 주는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이에요. 그녀의 글을 보면 묘사가 굉장히 잘돼 있거든요. 단편 중에 ‘유모 럭튼의 커튼’이라는 글만 봐도 유모의 앞치마가 어떻고, 어떤 자수가 놓여 있는지 묘사가 참 섬세해요. 색 묘사도 다양한데 초기작 중에 ‘파랑과 초록’을 읽으며 좋아하는 문장들을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놓기도 해요. 그런 묘사들이 상상에 도움을 주니 시간 날 때마다 읽는 편이고요. 영감이 안 떠오를 땐 무조건 책을 읽어요. 같은 문장이어도 사람마다 받는 느낌이 다르니까요. 보여지는 이미지나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도 좋겠지만 보여지는 건 동일해서, 동일한 영향을 받는다는 한계가 있잖아요. 최근에는 큐레이터 박보나의 <태도가 작품이 될 때>라는 책을 서너 번 읽었어요. 근처 서촌 등에 작은 책방이 많아요. 거기에 귀신처럼 앉아 있는 애가 있다면 그 사람이 저예요.

마지막으로 김참새의 눈에는 무엇이 아름답게 보이나요? 여러 가지를 꼽게 될 것 같은데, 우선 강아지요. 저들은 욕심도, 악의도 없이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잖아요. 꽃도 화려한 꽃보다는 들꽃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힘 주고 있는 것들에게서는 아름다움이 잘 전해지지 않아요. 물건도 새것보다는 손때 묻은 게 좋고요. 작업실 의자들도 다 오래된 빈티지예요. 이 건물도 낡았지만 참 좋죠. 오래된 인터폰도 재미있고요. 시간이 입혀진,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김참새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