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엔 전시

겨울 방학 중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전시 4가지를 소개한다.

RE:ECM

기간 2020.02.29(토) 까지
장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48 현대카드 스토리지
관람료 일반 5,000원 / 중고등학생 4,000원

독일 음반 레이블 ECM(Edition of Contemporary Music)의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ECM 레코드는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 들며 1천 600장이 넘는 음반 제작을 도맡아 온 굵직한 레이블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50여 년 세월에 담긴 ECM 레코드의 행적과
사운드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새롭게 재해석한 ECM 레코드를 감상할 수 있다.

 

UNBOXING : KAWS Collection

기간 2020.03.27(금) 까지
장소 경기 수원시 앨리웨이 광교 near my A 갤러리
관람료  앨리웨이 광교 공식 인스타그램 (@alleyway.gwanggyo) 팔로워 대상 무료 입장

석촌호수에 누워있던 귀여운 카우스(KAWS)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언박싱(UNBOXING)’을 주제로 한 국내 최대 규모의 카우스 전시가 개최 됐기 때문.
앨리웨이 광교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 하면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하니늦기 전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시오타 치하루 : 영혼의 떨림

기간 2020.04.19(일) 까지
장소 부산시립미술관 2F
관람료 일반 5,000원 / 20세 미만 3,000원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과 부산시립미술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설치미술가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
‘불안’과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전시는 총 110여 점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대표작은 바로 실을 엮어 만든 설치 작품.
무려 200km가 넘는 실을 사용한 <불확실한 여정>과
<부재 속의 존재>는 놓치지 말고 둘러보길 추천한다.

 

[The Prize] 노벨상 : 세상을 바꾼 석학들의 유산 전시회

기간 2020.05.31(일) 까지
장소 제주 JDC 항공우주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관람료 일반 5,000원 / 학생 4,000원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노벨상’을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전시.
진품 메달 6점부터 노벨상 수상자들의 소장품, 관련 콘텐츠까지
여러가지 방면으로 노벨상을 체험해볼 수 있다.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도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가족이나 연인과 방문해도 좋겠다.

지구를 고민하는 여행

새들이 지저귀며 새로운 날의 시작을 알릴 때, 드종구(Dzongu) 지역은 여전히 짙은 아침 안개 속에 잠자고 있다. 습기가 서서히 증발하고 푸른 하늘이 드러나면서 숲이 우거진 언덕에는 주변 산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폭포 소리가 울려 퍼진다. 태양은 불과 몇 시간 후면 이 높은 산비탈들을 지나,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칸첸중가(Kanchenjunga)의 눈 덮인 장엄한 실루엣을 보여줄 것이다. “이 산은 모든 렙차 (Lepcha) 사람들에게 신성한 곳이고, 우리는 우리가 칸첸중가의 눈 때문에 생겨났다고 믿습니다.” 39세의 농부이자 환경운동가인 텐징 렙차(Tenzing Lepcha)는 말한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죽으면, 이 세상 어디에서든 그의 영혼이 산으로 돌아갑니다.” 이 땅에서 오랫동안 원주민으로 살아온 렙차인은 시킴을 나이마에엘(Nye-mae-el), 즉 ‘천국’이라고 부른다. ‘천국’은 네팔, 부탄, 티베트 사이의 히말라야 봉우리들 안에 자리 잡은 인구가 61만 명이었던 옛 독립 왕국에 너무나 잘어울리는 이름이다. 수년 전, 텐징은 고향 땅의 특별한 부름을 느꼈다. 콜카타(Kolkata)에서 쌓은 유망한 축구 선수 경력과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뒤로하고, 드종구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산업화된 세계는 발전의 길을 좇아왔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들의 뿌리로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다”라고 나무 베란다에 앉아 그가 말한다. 주변은 귤과 무성한 푸른 잎사귀로 둘러싸여 있다. 텐징은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청년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독려하고, 드종구의 좋은 농산물 마케팅과 판매를 주도했다. 오늘날 그는 지역 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고 시킴을 발전시키려는 대안적인 계획의 아이콘이 되었다.

세계 최초의 완전한 유기농업 주

2016년, 시킴은 지역 환경과 취약한 생태계,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보다 건강한 삶을 보장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세계 최초의 완전한 유기농업 주(州)가 되었다. 이는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농민들에게 유기농업을 교육하며, 주 전역에 퇴비용 구덩이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2003년에 시킴에서 시작한 운동의 결실이다. 오늘날 7만6천 헥타르에 이르는 시킴의 모든 농지는 유기농 인증을 받았으며, 화학제품의 수입과 사용이 엄격히 금지 되어 있다. 세계는 오랫동안 농업에서 지속 가능한 대안을 모색해왔고, 유기농업에 대한 시킴의 장기적인 모험은 인간과 환경 사이의 새롭고 보다 건설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고무적인 사례다. 오랫동안 저렴한 비용으로 세상에 식량을 공급할 수 있다고 칭송받은 과거의 집약 농업은 단일 재배, 다수확 작물, 화학제품 뒤에 숨겨진 사회적·환경적 비용이 점점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집약 농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배출하는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이다. 또 비료와 농약은 벌과 기타 꽃가루를 퍼뜨리는 곤충 수를 급격하게 줄였고, 야생동물을 죽였으며, 심각한 수질오염과 토양 열화를 초래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잡종 씨앗과 값비싼 기술을 도입하는 바람에 농민들이 치명적인 부채의 늪에 빠졌다. 한정된 농지와 적은 수확량 때문에 시킴은 결코 전 세계를 먹여 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쟁보다는 상호 연결에 기반을 둔 시킴의 모델은 세계가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당국은 야생동물과 벌의 개체 수 증가, 시킴의 얕고 건조한 토양의 회복을 유기농업 혁명의 초기 결과로 꼽고 있다. 시킴 대학의 최근 연구는 지역의 토착 농업이 재배 지역에서 나비 종을 크게 늘린다는 사실을 밝혀내 유기농업과 야생생물 다양 성이 공존할 수 있고 상호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여행지

시킴을 완전히 유기농업 지역으로 바꾸기로 한 결정은 2019년 5월까지 25년간 주지사를 지낸 파완 쿠마르 참링(Pawan Kumar Chamling)의 생각이었다. 새로운 정책은 이 지역에 잘 맞았다. 산악 지형과 산재된 소규모 농지 때문에(평균적으로 1헥타르에 불과하고 농민은 대부분 자급농이다) 시킴은 산업화된 기계화 농업에 적합하지 않다. 화학제품 사용량은 항상 다른 국가 보다 현저히 낮았다. 그러나 새로운 행로에는 늘 위험이 따른다. 유기농업은 종래의 농업보다 더 복잡하고 노동 집약적이며, 수확량은 기본적으로 낮고 또 계절에 따라 서로 달라진다. 지역 당국은 생강, 메밀, 강황, 카더몬 4종의 환금성 높은 작물로 시킴의 유기농 농산물 수출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시킴에는 고품질 농산물을 효과적으로 상업화할 수 있는 기반 시설, 즉 저온 유통창고, 가공 시설, 믿을 만한 운송 시스템이 부족 하다. 농민들은 대부분 그들의 제품을 기존 과일과 채소의 유통 경로로 그리고 같은 가격에 판매할 수밖에 없다. 적절한 물류 체인을 개발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리 겠지만, 상황은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 오늘날 드종구의 맛있는 오렌지는 콜카타와 델리(Delhi)까지 판매되고 있으며 중동, 유럽, 동남아시아, 극동 지역의 여러 국 가 투자자들은 이미 시킴 제품에 관심을 표명했다. 유기농업 혁명은 또한 이 접근하기 어려운 땅을 찾는 관광객 수를 급격히 늘렸다. 1975년 이후 인도에 합병된 시킴에는 부티아인, 렙차인, 네팔인, 티베트인 등 여러 민족이 거주하고 있으며 언어, 문화, 종교,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 매우 흥미롭게 혼재하고 있다. 여행은 고될 수 있다. 대부분의 도로는 산비탈을 깎아서 만든 좁은 흙길 이며, 1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이동하는 데는 하루 종일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따른다. 높은 봉우리, 물빛 투명한 강과 원시림이 가로지르는 협곡, 곳곳에 산재한 힌두교 사원, 외딴 불교 수도원, 신성한 호수 등은 시킴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명소 중 일부일 뿐이다.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주도 강토크(Gangtok)를 떠나, 훼손되지 않은 울창한 자연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이 이 매혹적인 땅을 탐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방문객들은 현지인이 제공하는 간소한 여유 공간인 마을 홈스테 이에 숙박할 수 있고, 진정한 시골 생활을 맛볼 수 있다. 쌀을 수확하거나 숨은 폭포를 탐험하고 전통 결혼식에 참석하려면 며칠을 묵어야 한다. 밤이면 현지인들은 손님들과 함께 벽난로 주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유기농 식재료로 차린 저녁을 제공한다.

숲속 마을의 홈스테이

시킴에서 꼭 가봐 야 할 여행지 중에는 하티둥가 (Hatidunga) 마을 출신의 소심하고 근면한 남성인 57세 아징 렙차(Azing Lepcha)의 농가도 있다. 그의 이야기는 유기농업 전환으로 생기는 어려움과 보상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2003년 아징은 선친에게 5에이커의 가족 농지를 물려받았다. 이 계단식 토지는 1970년대 부터 단일 재배하는 옥수수로 덮여 있었으며, 25년이 넘도록 흔하고 값싼 질소 비료인 요소를 사용하면서 가뜩이나 척박한 토양을 더욱 황폐화시켰다. 아징은 이 땅의 가파른 비탈에 파인애플, 구아바, 바나나, 망고, 파파 야, 잭프루트를 심으며 이곳을 과수원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미래가 밝지 않았다. “아무도 나의 새로운 활동에 대해 몰랐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가장 가까운 시장에서 과일을 내다 파는 것뿐이었습니다. 4년 동안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군 분투했지요.”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집에서 수제 꿀을 만들어 팔고 남은 과일로는 맛있는 무알코올 와인을 만들어 수익 활동을 다각화했다. 이 아이디어는 효과가 있어서 꾸준히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아징은 이들을 맞이 하기 위한 홈스테이를 열고 유기농업과 지속 가능한 관광을 선순환으로 결합했다. 아징은 요즘 매달 3백 명 이상의 인도인과 해외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으며, 과일과 채소, 달걀을 강토크 최고의 5성급 호텔에 납품한다. 아징은 7명의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낼 수 있었고, 유기 농업 혁명의 주요 성공 사례 중 하나로 시킴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동료 농부들에게 자연에만 의존한 유기농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이다. 아징은 동물 배설물과 숲의 나뭇 잎을 섞은 거름을 비료로 사용하고, 발효한 소 오줌과 현지 약초의 혼합물을 방충제로 사용한다. “수확량의 20%는 여전히 곤충, 새, 원숭이 등 야생동물이 먹어 치우지만, 저는 만족합니다. 이 동물들은 숲을 먹이고, 숲은 다시 내 농지에 거름을 제공합니다. 모든 것이 자연 속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파인애플 밭을 돌본 후, 아징이 안내한 시골 부엌에는 세 개의 냄비(fuming pot)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렌틸콩과 푸른 잎 채소 수프와 약간의 밥을 제공하는 점심은 검소하다. 하지만 마치 음식이라는 것을 처음 먹는 것처럼 맛있게 느껴진다. 그맛은 감각을 일깨우고 과일과 채소가 인간과 세상의 살아 있는 연결 고리였던 과거를 말해준다. 그 음식을 음미하는 것은 불변하는 자연의 리듬에 여전히 지배당하고 있는 이 고대 왕국으로 가는 긴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다. 사람들이 자연 세계에 느끼는 본능적인 사랑은 삶의 철학으로 발전한 기본적인 필요의 결과다. 현지 마을들은 서로 떨어져 있어서 장마철에는 산사태로 몇 개 안 되는 기존 도로가 차단되어 몇 주동안 지역 전체가 고립되기도 한다. 이런 어려운 환경은 자급자족하는 생활 방식을 낳았고, 시킴 사람들에게 자연의 언어를 알아듣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시장이 필요 없습니다. 나를 정글에 보내더라도, 나는 어떤 식물을 먹어야 하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텐징이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선조 때부터 이런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과 단절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하여

시킴의 농부들은 검은꼬리두루미가 봄에 티베트로 이동할 때가 채소를 파종하는 시기라는 것과 특정한 꽃이 피는 때에 송어가 알을 낳기 위해 상류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농업과 사냥 기술은 매우 소중한 지식이 된다. 텐징이 그 기술을 열거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마치 신성한 원고를 감상하기 위해 한 세기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비밀 도서관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다. 농업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텐징이 자연보호에 생애를 바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다. 지난 12년 동안, 그와 마을 사람들은 드종구의 산과 강을 영원히 바꾸어놓을 수 있는 몇몇 수력발전 프로젝트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이끌어왔다. 농민들은 구타당하고 감옥살이를 했지만 이 땅에 대한 사랑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세우며 결국 승리했다. 그들은 싸우지 않는다면 농지도 관광도 지금의 생활도 더 이상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래의 도전을 생각할 때면 텐징의 눈은 자부심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그는 자연을 지키는 일이 매일 이어지는 투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했던 일을 똑같이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 다. 그들 스스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조상이 만들어낸 길, 그리고 나와 동료들이 따르기로 결정한 길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나는 미래 세대 역시 똑같이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유랑하는 삶

포토그래퍼 스테파니에 젠고티(Stephanie Gengotti)는 2016년부터 서커스 러브(Circus Love)라는 이름으로 누보 시르크(Nouveau Cirque: 새로운 서커스라는 뜻으로, 동물 쇼나 묘기를 자제하고 어떤 이야기나 주제를 전통 서커스 기술로 풀어내는 공연 예술 장르)를 선보이는 극단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장기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카라반을 타고 유랑하며 사는 서커스단 가족들의 이야기는 보헤미안의 삶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들은 비전통적인 서커스단이지만, 바넘 앤 베일리(Barnum & Bailey)가 기형적 외모의 사람들과 동물들을 데리고 만든 전통적 서커스 개념을 전복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전통을 재해석하고 확장하며 여러 분야의 예술을 결합해 서커스를 변모시킨다. 이 가족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거리 예술 축제에서 공연하고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즐길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쇼를 보여주며 살아간다. 그렇게 이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서커스 세계의 마지막 계승자로서 쇼를 이어가고 있다.

기쁨과 절망이 어우러진 삶을 표현하는 이들은 국경도 민족도 없이 이곳저곳을 누비며 서커스 쇼를 선보인다. 계절의 순환 같은 원형 노선을 따라 유랑민의 삶을 사는 서커스단은 자유롭지만 한편으로 자유롭지 못하기도 하다. 경계와 제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표현하지만, 카라반을 파고 들어오는 혹독한 추위와 먼지투성이 길, 숨 막히는 햇볕을 피할 수는 없다.

서커스는 예술이고 창조일 뿐 아니라 신체적 훈련과 육체노동이기도 하다. 모든 쇼는 참신한 연구와 기획 못지않게 피와 땀, 오랜 시간을 들인 노력, 힘들고 기나긴 테스트를 거쳐야만 완성된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주머니 속에 고작 몇 달러만 가진 채, 찬장에는 먹을거리가 동난 데다 공연 무대가 슈퍼마켓 주차장일 수 있는 상황에 만족하면서 이루어진다.

서커스의 가장 큰 미덕은 또한 서커스의 가장 큰 한계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삶이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되는 이 하이퍼 기술 세계에 인간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확신. 포토그래퍼 스테파니에 젠고티는 유랑하는 서커스단의 삶을 들여다보며 공유 의식과 가족 의식, 몸을 사용해 일하는 숭고한 능력을 발견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소설가 파비오 스타시(Fabio Stassi)가 <샤를로의 마지막 춤(Charlot’s Last Dance)>에서 한 말에서 영감을 얻어 프로젝트의 이름을 ‘서커스 러브’라고 지었다. ‘우리 모두는 알아차릴 수도 없을 만큼 가느다란 줄 위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는 줄타기 곡예사다. 오로지 사랑이라고 불리는 무질서 속에서만 묘기가 가능하다.’

브루네테 브로스(The Brunette Bros)

이름부터 신성모독적이고 비인습적인 이 서커스단은 2명의 여성이 설립했다. 15년 전 코펜하겐에서 만난 리사(Lisa)와 마리아(Maria)는 1970년대 히피들이 불법 거주를 하면서 생겨난 지역 크리스티아니아(Christiania) 외곽에서 자칭 ‘세계에서 가장 크고 두 번째로 작은 서커스’라는 특이한 서커스를 탄생시켰다. 이들의 서커스에는 자기 역설과 그들에게 영감을 준 예술가 알렉산더 콜더(Alexander Calder)에 대한 깊은 존경이 담겨 있다. 콜더는 조각가이자 공연 소품과 도구를 여행 가방 두 개에 담아 운반이 가능할 정도로 작은 마이크로 서커스를 창안한 사람이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을 피해 서커스단을 시작한 리사와 마리아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장맛비에 흠뻑 젖어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망가진 트럭과 페인트칠한 카라반이 그들에게는 집이고 이동 수단이며 무대지만, 부족한 건 없다. “우리는 경제체제와 관료주의에 짓눌릴 생각이 없어요.” 무엇이든 자율적인 체계하에서 자급자족하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몇 개의 서커스 도구와 장치들로 공연을 하는 동시에 쇼를 홍보하고, 삶을 꾸려간다.

작은 규모에도 서커스단이 매년 성장할 수 있는 건 가족 덕분이다. 리사와 마리아는 둘 다 어머니이며 두 사람의 가족은 이미 브루네테 브로스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싱글 맘인 마리아의 아들 마리우스(Marius)는 타고난 배우인 반면, 마리우스보다 어린 리사의 아들 에르네스토(Ernesto)는 종종 앞줄에 앉아 열정적으로 음악을 지휘한다. 리사의 남편 마누(Manu) 역시 예술가로 브루네테 브로스의 일원이다.

이들이 예술적, 문화적으로 참고하는 대상은 배우 버스터 키턴, 찰리 채플린, 이탈리아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그리고 심지어 1930년대 섹시 심벌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 베티 부프와 1960년대 미국 TV 쇼에서 가장 유명했던 광대 보조 같은 가상의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 모든 대상은 브루네테 브로스의 쇼에서 이들만의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이건 음악부터 디자인, 영화 편집부터 전위극까지 다방면에 걸친 다양한 훈련이 낳은 결과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부한 표현 수단은 보는 사람들에게 초현실적이고 신비한 경험을 선사한다. 쇼를 본 사랑들은 하나같이 이들의 고갈되지 않는 창조적 에너지에 놀라는데, 그건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방랑하는 것을 즐기는 삶의 전리품과 같다.

꿈의 낚시꾼(Les Pêcheurs de Rêves)

‘꿈의 낚시꾼’은 프랑스의 작은 가족 서커스단으로, 실제로 부부인 빈센트(Vincent)와 플로랑스(Florence)가 부부 광대인 가상의 인물 자(Za)와 크라포트(Krapotte)를 연기한다. 공연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삶과 결혼 생활을 패러디한다. 아내 크라포트는 플로랑스처럼 관계를 이끄는 강한 쪽인 반면 자(빈센트)는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뭐든 한다. 이 쇼에서는 실생활과 허구가 뒤섞이는데, 빈센트와 플로랑스는 자신들의 예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나머지 결혼도 자신들이 만든 ‘광대 체제(Clownesque Regime)’하에서 했다. 광대 체제는 그들이 탄생시키고 해석하고 계속해서 연기하는 캐릭터들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사랑하는 코’라는 제목이 붙은 이들의 쇼는 포스터에 적혀 있듯 프랑스어 ‘humour(유머)’와 ‘amour(사랑)’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유희 속에서 펼쳐지는 유머 혹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이 가족이 사는 곳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지만, 다양한 축제에서 공연하기 위해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여행하면서 보낸다. 쇼는 주로 여름 내내 열리는데 이 때문에 이들의 딸 지아(Zia)와 아들 조르탕(Zorthan)은 매년 여름 부모와 함께 여행하며 계절을 보낸다. 기술부를 맡고 있는 싱글 대디 마르코(Marco) 역시 공연 때마다 딸 루나(Luna)를 데리고 다닌다. 아이들은 정착보다 유랑하는 삶을 선택한 부모 때문에 학교보다 학교 밖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이 덕분에 자신들의 우주를 더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꿈의 낚시꾼’이라는 이름처럼 매년 여름작은 서커스단 안의 두 가족은 각자의 꿈을 낚고 있다.

지로바고와 론델라(Girovago e Rondella)

온갖 신화적 이야기로 넘쳐나는 그리스 로도스섬에서 나고 자란 때문일까? 마르코(Marco)와 페데리카(Federica)는 어릴 때부터 낭만적이고 예술적인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타고난 예술성을 기반으로 그리스의 섬 주민들을 놀라게 한 순회 서커스 듀오인 지로바고와 론델라가 되었다. 그리고 2세대인 루지아다(Rugiada), 티모테오(Timoteo), 토마소(Tommaso)가 탄생하면서 가족 극단으로 확장된 세계를 펼치는 중이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정의 내리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다. 현대 서커스를 여러 분야에 걸친 예술이라고 설명할 때,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시켜주는 완벽한 예가 지로바고와 론델라라고 말하면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이해가 갈 거다. 이들의 영역이 넓어지는 데는 두 사람의 아이들도 한몫한다. 이들의 딸 루지아다는 결혼하면서 남편 그리고 남자 형제인 티모테오, 토마소와 함께 드로모소피스타(Dromosofista)사를 설립했다. 배우, 뮤지션, 인형 조종사들로 이루어진 이 극단 기업은 계속해서 확장된 규모의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두 극단은 함께 여행하면서 버스 극장에서 쇼를 펼친다. 이들은 작은 버스 안에서 삶에 관한 시와 마법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대화는 없지만 말보다 강력한 소통과 환기의 힘을 가진 작은 인형극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더 넓은 세계로 여행하고 있다.

비동 서커스(Cirque Bidon)

1970년대에 설립된 이 서커스단은 지난 40여 년 동안 말들이 끄는 카라반을 타고 시속 4킬로미터의 속도로 하루 25킬로미터씩 쉬지 않고 유럽을 돌아다녔다. 파리에서 평범한 대장장이로 살았던 프랑수아 롤린(François Rauline)이 서커스단을 만든 이유는 다른 삶, 더 역동적인 삶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내면을 성찰하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은 그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고, 여행을 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느림의 욕구가 꿈과 시간에 대한 갈망과 함께 서서히 찾아왔다. 가진 돈이 얼마 없어서 자전거를 팔아 말 한 마리를 구입한 뒤 카라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 공중곡예사가 되길 꿈꾸고 자신만의 시를 찾고 있던 고전 무용수 한 명과 함께 비동을 탄생시켰다. 비동의 무용수이자 내 아내인 그녀와 나는 서로의 길이 달라지기 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함께했다.”

호기롭던 스무 살 청년이 하얀 턱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되는 동안 비동 서커스는 15명의 예술가들이 함께하는 극단이 되었고, 이들의 쇼는 어딜 가든 환영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 어디든 그의 카라반이 도착하면 줄을 지어 따라다니는 열정적이고 호기심 어린 환영단이 넘쳐난다. 예술과 시가 어우러진 몽환적이고 섬세한 비동의 현대 서커스는 극, 라이브 음악, 광대들의 결합체로서 또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다.

기퍼드 서커스(Giffords Circus)

넬 기퍼드(Nell Gifford)는 런던 근교의 코츠월드 언덕에서 자란 남편 토티(Toti)와 함께 2000년에 기퍼드 서커스를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광장 서커스를 시작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펼치기 위해 고향인 옥스퍼드 뉴칼리지를 떠났고, 두 사람은 함께 꿈을 현실로 바꾸었다. 영국의 신문 <트레이드잇(Trade It)>을 보고 둥근 흰색 텐트를 구입하고, 안에서 생활할 쇼맨 마차를 만들고 밤색과 금색으로 칠했다. 주간 신문 <스테이지(TheStage)>에 공연자들을 구하는 광고를 내고 첼튼엄에 있는 먼지투성이 작은 극장에서 오디션을 열었다. 이렇게 첫 걸음마를 뗀 뒤 두 사람은 매년 여름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쇼를 선보였다.

기퍼드 서커스의 시그니처는 말이다. 넬과 토티는 어린 시절부터 타고 자란 말과 함께 하는 쇼를 만들어냈다. 이들의 서커스에서 볼 수 있는 말의 흥미진진한 모험은 한 번 경험하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말은 새로운 쇼에 영감을 주는 존재였고, 서커스단의 모든 쇼는 말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목표는 유랑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가득 들어찬 마을 광장에서 매일 관객에게 마법을 거는 공연에 몰두하는 작지만 소란스러운 공연단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2000년에 서커스단을 시작한 이래 이들은 1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고, 쇼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창의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일했다. 이들은 탁월한 재능을 서커스에 담기 위해 기존 생활을 잠시 포기할 준비가 된 사람들을 찾아 파리, 모스크바, 헝가리, 루마니아 등지를 돌아다녔다.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탭댄서, 줄타기 곡예사, 공중곡예사, 스턴트 라이더, 오페라 가수, 마술사, 체조 선수 등이 기퍼드 서커스단에서 살면서 함께 여행하다가 마을 광장에 발길을 멈추고 쇼를 사랑하는 시골 가족, 농부, 주말 방문객, 관광객, 영화배우, 록 스타, 예술가, 학생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안타깝게도 지난해 9월, 히피 쇼인 ‘재너두(XANADU)’ 무대를 마지막으로 이 서커스단의 수장인 넬 기퍼드는 세상을 떠났다. 암 투병 중에도 쇼의 마지막 날까지 공연을 해낸 그녀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쇼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떠났지만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그녀의 서커스단, 기퍼드 서커스는 영원히 남을 불멸의 존재로 쇼를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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