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 토크

섹스칼럼 첫만남

모든 게 자연스러웠던 우리의 처음

1년 연애, 1년 동거를 거쳐 2년째 결혼 생활 중인 부부

Y(33세, 그래픽 디자이너) & K(32세, 회사원)

첫 만남에서 호감의 정도는? K 소개팅으로 만났는데 딱 중간이었어. 한눈에 반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호감도 아닌. Y 나도. 소개팅이니까 일단 밥 먹으면서 대화를 해보자는 심산이었지. 그런데 대화를 하면서 호감 지수가 급격히 올라갔어. 5시간 동안 엄청 많은 대화를 나눴고 헤어질 때는 완전 호감으로 바뀌었지.

첫 만남에서 연애로 이어지는 과정은 어땠나? Y 다음 날 또 만났고 3일째 되던 날 어떻게 하고 싶으냐는 물음에 내가 먼저 사귀어보자고 했지. K 둘째 날은 7시간 정도 대화한 것 같은데. 사귀기로 한 날도 엄청 많은 대화를 나눴고, 기본적으로 우리 관계의 진전에는 대화가 주효했던 것 같아. 가치관이나 취향이 맞는 부분도 있었고.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얘기 자체가 재미있어서 좋았어. 그래서 어떤 주제가 나오든 끊이지 않고 이어졌어. 디자인, 전시, 영화, 음악 등 어떤 얘기를 해도 재미있었거든.

연애 관계를 맺을 때 처음이 중요한가? Y 호감형과 비호감형을 나누는 나만의 기준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호감을 느껴야 대화의 진전이 있는 것 같아. 비호감이었다가 호감으로 간 적은 없어. 그런 면에서 첫인상이 중요하긴 하지. K 나도 비슷한 것 같아. 다만 나는 중간도 있어. 비호감은 아예 기회가 없고, 중간 혹은 호감 정도의 영역에 있어야 첫발이라도 내디디니까.

연애할 때 처음을 규정짓고 시작하는 스타일인가? Y 썸 타는 관계와 사귀는 건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해. ‘오늘부터 1일’이 낯간지러운 말이긴 하지만 그게 없으면 쓸데없는 ‘밀당’이 지속되는 것 같아 싫어. K 나도 관계를 명확히 하는 편인 것 같아. 그렇게 해야 나의 100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도 100을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Y 시간도 아깝고. K 그렇지. 밀당하는 시간이 관계에서 가장 아까워. 그럴 시간에 빨리 사귀기로 해서 키스라도 한 번 더 하는 게 낫지 않나.

‘첫 키스나 첫 섹스는 작정하기 마련’이라는 말에 동의하나? K 어느 정도 작정했겠지. 그런데 그걸 어느 한쪽이 마음을 품었다기보다 서로 자연스럽게 알았던 것 같아. Y 나도 ‘오늘인가?’ 이런 건 없었어. 사실 처음에는 상대가 능글맞게 나를 꾀는 느낌을 받기는 했어. 빠르다는 생각도 잠깐 했고.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게 흐르니까 특별히 거부감을 갖지는 않았어.

연애와 결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처음의 순간은? Y 처음으로 둘이서 여행 갔을 때. K 거기서 내가 프러포즈를 했지.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 그리고 동거 첫날도 기억에 남지 않아? Y 맞아. 같이 누워 있는데 기분이 아주 이상했어. 독립도 동거도 처음이었거든. 물론 결혼도.(웃음) K 연애하면서 같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게 결국 내 삶에 플러스가 돼야 하잖아. 그래서 동거 첫날은 고민이 있었어. 마음이 맞지 않아서 결국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꽤 긴장했던 것 같아. 그런데 예상보다 편안하고 좋았어. 첫 일주일이 좋아서 그런가. 좋은 감정이 계속 고조되더라고. 그래서 결혼하게 됐어. 만약 동거를 안 했으면 결혼도 안 했을 것 같아.

첫 섹스 이후 관계에 확신이 생겼나? Y 확신이 들진 않았어. 그냥 스킨십의 하나라고 생각했어. K 나는 조금. 앞으로는 이 사람과 더 즐겁게 오래 관계를 맺고 싶다고 생각했어.

둘의 처음은 충동과 계획 중 주로 어느 쪽이었나? Y 충동적인 게 더 많지 않을까? 그때그때 느낌에 따랐고, 계획적으로 한 건 없었어. 성격이 그렇게 치밀한 스타일도 아니고. K 나는 반대야. 사실 계획이 조금씩 있었어. 그러니까 상대의 충동을 불러일으킬 계획으로 접근하는 거지. 이를테면 프러포즈를 할 계획으로 여행을 제안한다든지, 동거를 승낙하도록 설득을 하는 식이었어. Y 그 때문이었나? 충동적인 걸 알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없었어.

반대로 처음 싸운 날은? 관계에서 처음 이견이 생긴 순간. Y 정확히 처음으로 싸운 날이 언젠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결혼식을 할지 말지에 대해 이견이 있긴 했지. 어떻게 보면 무척 큰 이슈였는데도 싸움으로 이어지진 않았어. 서로 대화를 충분히 나누고 빨리 해결을 보려고 했지. K 처음으로 싸운 날을 기억할 필요는 없지만 그때의 해결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처음에 대화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면 관계가 이어지는 내내 힘들고 피곤할 수밖에 없어. 우리는 그런 면에서 처음에 냉각기를 짧게 두고 금방 푼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

관계에서 처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K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만약 처음이 별로였으면 안 만났을 거야.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밟아온 역사는 없는 거겠지. 돌이켜보면 처음 소개팅을 한 날부터 지금까지 좋은 방향으로 난 길을 걸어 여기에 이른 것 같아. 처음 섹스를 했을 때나 처음 여행을 갔을 때나 동거 첫날이나 하루라도 삐끗했으면 우리 관계가 지금과 다를 테니까. Y 맞아. 우리는 모든 처음의 순간에 이견이 없었어.

처음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K 처음에 대해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은 ‘자연스럽다’야. 우리의 처음은 언제나 당연한 듯이 흘러왔어. 그래서 오히려 처음이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아. 이를테면 첫 키스의 순간이 워낙 강렬해서 바로 얘기하는 그런 사람도 있잖아. 우린 그렇진 않아. 그런 처음이 쌓여서 우리 관계가 편안하게 물 흐르듯 가는 형태가 된 것 같아. 결국 처음이 관계의 형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해.

첫 스킨십 혹은 첫 섹스는? K 우리는 처음 손잡은 날, 첫 키스 한 날, 첫 섹스 한 날이 모두 같은 날이었어. 그것도 사귀기 시작한 지 일주일 내에 벌어졌지. Y 그런데 신기하게 주저하지 않았어.

 

처음이 뭐가 중요해

긴 연애의 후유증을 안고 짧은 만남을 반복 중인 Y(33세, 번역가), 몇 번의 연애 후 비연애주의를 선언한 P(34세, 일러스트레이터)

기억하는 첫 키스나 첫 섹스의 순간이 있다면? Y 키스는 몰라도 첫 섹스는 기억 못 할 수 없지. P 상황은 거의 비슷했어. 상대가 덮치듯이 달려들고, 나는 조금 수줍게 받아들이는 입장이었지. 생각해보면 그다지 좋지도 않았어. Y 사실 섹스를 하기 전까지 과정이 설레잖아. 그래서 일부러 그 기간을 길게 둔 적도 있었어. 반대로 걱정도 있었고. ‘잘 안 맞으면 어떻게 하지’, ’막상 자고 나서 연애로 이어지지 않는 건 아닐까’ 싶은 거지. 실제로 섹스를 하고 나서 그다지 좋지 않아 그대로 헤어진 경우도 있었어. P 결국 섹스는 섹스일 뿐이니까.

최악의 처음을 떠올려본다면? Y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처음이 몇 가지 있어. 식사, 상대의 친구를 소개받는 자리, 여행, 술. 그중에서도 첫 식사가 제일 중요해. 상대의 성향을 알기 좋은 방식이거든. 사람은 생각보다 먹을 때 솔직해져. 그런데 최악의 식사를 한 적이 있어. 첫 식사 자리인데도 엄청나게 게걸스럽게 먹는 데다 서버한테 굉장히 무례하기까지 했어. 결국 그것 때문에 관계를 끝냈지. P 나는 최악의 첫 키스를 경험한 적이 있어. 장소는 평범했지. 헤어지는 길에 그의 차 안이었는데, 그렇게 거칠고 무례한 키스는 처음이었어. 내가 그의 욕정을 채우는 도구가 된 것 같았어. 그 자리에서 당장 뺨이라도 때렸어야 했는데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분해. 내가 비연애주의자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경험이었어.

뭐든 처음이 가장 강렬한가? 아니면 처음 이후 고조되는 편인가? P 고조되는 편. 처음부터 다 좋을 수는 없으니까. Y 여행이나 데이트는 처음보다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데, 섹스는 고조되다가 떨어지는 편인 것 같아.

반대로 가장 기억에 남는 처음은? Y 첫 연애에서는 첫 섹스. 상대가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 나를 리드했는데, 자존심 상하거나 좋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거든. 그런데 막상 해보니 내가 리드당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더라고. 그 일로 상대와 관계도 진전되고, 연애할 때 진짜 내 모습에 대해서도 알게 됐어. P 첫 여행. 매번 비슷한 패턴의 데이트만 하다가 여행을 가니까 생소한 장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첫 연애의 순간처럼 설렜어. Y 오히려 말도 안 통하고 생소한 공간이라 싸울 일이 많지 않아? P 그렇긴 한데 그마저도 여행이라는 쾌감 때문인지 나름 추억이라며 웃어넘기게 되는 것 같아.

처음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Y 나는 딱히 없는 것 같아. 몇 번의 연애를 하고 나니까 처음은 그냥 처음이라고 생각하게 됐어. P 나도. 의미 부여를 할 것도 없고, 그래서 처음이 별로라고 실망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아.

처음의 순간에 얼마큼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나? Y 40% 정도. 솔직하게 말하면 이것도 높게 잡은 거라고 생각해. 다 거짓은 아니었지만 상대가 싫어할 것 같은 모습은 안 보여주지. P 그럼 진짜는 언제 드러나?섹스라는 게 한 번 하고 나면 엄청난 친밀도가 생기잖아. 자기까지는 많은 걸 숨기고 있을지 몰라도 자고 나면 서로 금방 자연스럽게 자기를 드러내는 것 같아. 그건 남자들의 착각 아닌가.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 명확한가? 오늘부터 1일 같은. P 아무래도 사귀자는 말을 듣고 나서 연애를 시작하니까 명확하지. Y 난 명확한 상태에서 연애를 해본 적 없어. 굳이 선을 긋는다면 첫 섹스를 하는 날이 사귀기 시작하는 날이었지. 대부분 상대 생각도 비슷했고.

관계에서 로망 같은 처음이 있다면? Y 만나던 사람한테 이런 말을 들은 적 있어. 우리는 이 관계 안에 있되 성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은 따로 있으면 안 되느냐고. 그때는 어리고 경험도 적어서 무척 불쾌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성적인 부분이 중요한 사람한테는 가능한 관계라고 생각해. 그리고 솔직히 지금의 내게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관계이기도 하고. P 좋게 말해 폴리아모리(다자 연애)? 그런 관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Y 어렵지. 나도 상대도 동의해야 하는 거니까. 안 될 것 같은데, 그래서 더 로망을 갖는 것 같아. 가장 짜릿할 것 같은 첫 관계라. P 나는 로망 같은 처음은 없어. 이미 비연애주의를 선언하기도 했고, 연애의 첫 순간들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거든.

연애를 시작하게 만드는 처음은? Y 떨림. 상대가 나를 보는 눈빛. 처음에는 그런 것이 연애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 같아. P 말. 대화 말고 말. 나는 사실 연애에 수동적인 사람이었어. 대부분의 연애가 사귀자는 말에 넘어간 경우였어. Y 한 마디 말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P 못 할 건 없으니까.

설날에 떠날만한 국내 여행

4일 간의 설날 연휴를 맞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산 좋고 물 좋은 국내로 발걸음을 옮겨 보는 건 어떨까.
조용한 휴식과 나만의 시간을 즐기기에 딱인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 여행지 네 곳을 소개한다.

경상남도 사천

항공우주박물관과 남일대해수욕장까지
하늘과 바다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경상남도 사천.
2.4km로 국내 최장거리를 자랑하는 사천바다 케이블카와
와인 저장고를 전시장으로 재탄생시킨사천 와인갤러리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가우도

사이트 http://www.gaudo.co/

‘가고 싶은 섬’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가우도.
섬 양쪽에 연결된 출렁다리를 통해 걸어서도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가우도복합낚시공원은 다양한 어종이 잡혀 낚시꾼들의 성지로 불리기도 한다고.
홈페이지 예약을 완료하면 1000m 하늘길을 가로 지르는 짚트랙 체험도 할 수 있다.

 

관매도

사이트 http://www.gwanmaedo.co.kr/

전라남도 진도에 위치한 관매도 역시 떠오르는 휴양지.
작년 7월부터, 진도항에서 출발하는 직항 노선이 취항 돼 보다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해졌다.
관매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마실길과 둘레길을 걷다 보면
천연기념물 212호인 웅장한 후박나무도 볼 수 있을 것.

 

가천 다랭이마을

사이트 http://darangyi.go2vil.org/index.php

남해에는 한 겨울에도 눈을 보기 어려울만큼 따뜻하다는 다랭이 마을이 있다.
108층 680개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다랭이 논이 이 마을만의 특징.
마을 주변에는 이락사, 용문사와 같은 역사적 유산부터
평화로운 경치의 독일마을까지 위치해있으니 꼭 함께 둘러보자.

<1000>으로 돌아온 신세하

신세하 1000
블랙 레더 롱 코트 챈스챈스(Chance Chance),티셔츠와 반지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마음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다면 몇 킬로그램일까? 신세하가 스스로 질문해 얻은 답이 그의 신보 <1000>에 담겨 있다. 자신의 마음에 ‘천 킬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붙이겠다고 노래하는 타이틀곡 ‘1000’을 포함해 8곡을 수록한 두 번째 정규 앨범. 그 안에 녹아 있는 묵직한 고찰에 대해 신세하와 이야기를 나눴다.

신세하 1000
블랙 레더 롱 코트 챈스챈스(Chance Chance), 블랙 진 팬츠 플랙(PLAC), 블랙 부츠 손신발(SONSHINBAL), 티셔츠와 벨트, 반지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1000>을 소개해주기 바란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테마로 한 두 번째 정규 앨범이다. 방 안에서 혼자 고민하며 만든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여러 뮤지션과 협업해 개인적으로 더욱 뜻깊다.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방면의 아이디어를 합치고 조율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특히 모과(Mogwaa) 형과 많이 작업했는데, 형은 오랜 기간 가까이 지내며 내 음악적 태도를 이해해주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 수록된 곡을 들려주고 함께 세밀하게 다듬으며 앨범 전체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기존 작업실 말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나? 일종의 렌트 하우스처럼 집 한 채의 일부를 빌려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엔지니어 도슨(Dawson)을 주축으로 한 친구들과 방음벽을 조립해 설치하는 등의 작업을 거쳐 공간을 완성했고, 한 달간 그곳에서 작업했다. 각 뮤지션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한 장비를 사용하며 녹음할 때부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꽉 채운 음악보다는 각 사운드가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면서도 잘 들리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른 뮤지션들이 스튜디오에 놀러 와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마지막 날에는 사람들을 초대해 작업의 결과물을 함께 감상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앨범 커버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안과에서 적외선 치료를 받고 있는 내 모습을 사진가 뇌(N’Ouir)가 촬영한 것이다. 커버 이미지가 필요하던 차에 때마침 사진을 현상해 우연히 사용하게 됐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빨간 빛이 나를 관통한다거나 그 빛으로 인해 내가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타이틀곡 ‘1000’의 뮤직비디오에도 붉은색을 많이 활용했다. 커버 이미지가 재미있어 뮤직비디오에도 붉은색을 띠는 요소를 도입했다. 빨간 조명으로 얼굴을 비추고 불의 이미지를 프린팅한 포토월 앞에 서 있는 식이다. 나 이외에도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모델 겸 타투이스트 푸새(Pusae)를 비롯해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단단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 명 한 명에게 붉은빛을 쏘며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1000’에서 마음의 무게를 천 킬로그램이라고 표현한 점이 흥미롭다. 누구든 생각이 중심을 잃어버리는 순간을 겪지 않나. 나 또한 내 방향성에 반하는 이야기를 듣고 흔들린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내 생각이 확고하면 좋겠다고 느꼈는데, ‘무게를 무겁게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가사를 쓰기 전, 내가 미리 허밍으로 만들어놓은 멜로디 라인에서 ‘one thousand kilos’와 비슷한 발음이 들려 ‘1000’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정하게 됐다.

천 킬로그램의 마음 안에는 뭐가 담겨 있나? ‘1000’의 가사에 나오듯 겁, 질투, 모난 흠 등 외면하고 싶은 것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받아들여야 비로소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누구도 밀어내지 못할 만큼 무겁다고 말하는 것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겠다는 것이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2번 트랙 ‘불러모아’는 머릿속에 있는 잡념을 꺼내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는 모습을 그린 곡인데, 잡념과 함께 ‘방이 가득 울리도록 파티를 열자’는 가사가 이어진다. 부정적으로 여기던 것들도 대면하다 보면 별것 아니라는 의미를 담았다.

‘1000’과 5번 트랙 ‘나’에서 엄정화와 협업해 화제가 됐다. 그동안 내 취향이나 감정을 노래하는 방식으로 나를 표현해왔는데,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가 표현의 방식이 아닌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다른 것에 의해 쉽게 범주화할 수 없는, 나의 확고하고 진취적인 태도 말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자기 자신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빌리면 좋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했을 때 엄정화 누나가 떠올랐다. 나를 포함한 후배들은 물론 수많은 대중이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뮤지션이니까. 그래서 SNS 메시지로 연락드렸는데, 흔쾌히 같이 작업해보자는 답장이 왔다. ‘나’는 엄정화 누나의 솔로곡이고, 이후 함께 부른 곡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1000’의 피처링을 부탁드렸다.

대선배 엄정화가 해준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앨범 작업을 위해 처음 만난 날, 내가 구상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하며 열의를 보이자 “네가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하되, 그 안에 내가 들어가는 모습이 제일 멋있고 자연스러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고민하던 부분을 콕 집어 이야기해주신 것이다. ‘역시 엄정화는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웃음)

래퍼 김아일도 ‘Crystal’과 ‘Lizard, Lung’ 2곡에 참여했는데, 피처링이 아닌 보이스 오버의 형식이다. 앨범 크레딧을 찾아보지 않으면 김아일 형의 목소리를 알아차리지 않는 이상 누군지 알 수 없고, 해당 파트의 가사도 기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해설자처럼 랩을 하는 이 사람은 누구지?’ 하고 궁금해하면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김아일 형에게 ‘Crystal’과 ‘Lizard, Lung’ 2곡을 보냈고, 그가 자신의 시점을 반영한 가사의 랩을 더했다. 예를 들어 일본 뮤지션 나츠키(NTsKi)가 피처링한 ‘Crystal’에서 김아일 형은 크리스털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나를 표현하는 것’에 비유했다. 그 덕분에 나와 나츠키가 각자 쓴 가사의 연결 고리도 생기고 앨범의 테마와도 잘 맞았다.

<1000> 발매 후 다방면에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서울레코드페어에 참여해 <1000>의 바이닐을 한정판으로 판매했다. 12월에는 실제 스튜디오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이번 앨범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를 일주일간 열었고, 도쿄에서 쇼케이스도 진행했다. 라이브 공연과 디제잉 또한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1000>의 수록곡을 다루는 영상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그 외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없다. 많은 사람이 <1000>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들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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