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년의 지금

재킷 윈도우00(Window00), 프린트 스커트 버버리 바이 2000아카이브(Burberry by 2000.Archives), 액세서리 모두 드바스크(Debassqq)와 우잉(Wooing),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현진) 레드 재킷 라이풀 미니멀 가먼츠(Liful Minimal Garments), 화이트 셔츠 안초비(Anchovi), 레드 팬츠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ost Archive Faction), 신발 닥터마틴(Dr. Martens),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유수) 니트 베스트 아워 레거시(Our Legacy), 화이트 스트링 후디 포스트 아카이브 팩션(Post Archive Faction), 레드 팬츠 와이즈 바이 요지 야마모토(Y’s by Yohji Yamamoto), 신발 닥터마틴(Dr. Martens), 이어 커프 이에르 로르(Hyeres Lor).

얼마 전 새 앨범 <비적응>을 발매했다. 소윤 새소년의 두 번째 EP로 타이틀 곡 ‘심야행’을 비롯해 ‘비적응’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는 7곡을 담았다. 지난해 10월 싱글 앨범으로 공개한 ‘집에’도 2번 트랙에 있다. ‘집에’는 2017년 <여름깃>을 발매한 직후부터 내가 느낀 감정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고민하던 중 나온 곡이다. 당시 <비적응>에 수록한 곡의 80% 정도를 써놓은 상태였는데, ‘집에’를 먼저 발표하고 나서야 이번 앨범에서 다뤄야 할 것이 명확해졌다. 여러 곡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단어에 대해 다 같이 생각을 나누다가 사회가 부여한 가치에 무비판적으로 적응하지 않는 ‘비적응’을 떠올리게 됐다.

유수와 현진이 새소년 멤버로 합류한 이후 첫 앨범이다. 전작 <여름깃>과 <비적응>에 차이가 있다고 느끼나? 소윤 두 사람이 합류하며 당연히 바뀌는 부분이 있겠지만 총체적인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다. 새소년이 가지고 있던 서사나 정서, 큰 주제는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셋이 협업해 두 번째 EP를 내며 여러 방면에서 더욱 농익은 것 같다. 유수 우리가 지지고 볶으며 함께한 시간이 음악에 녹아들었다고 느낀다. 현진 ‘새소년스럽게 만들자’고 마음먹기보다는 우리 각자가 추구하는 것을 계속 맞춰가며 더 좋은 곡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새소년스럽다’고 받아들이는 듯하다.

앨범 전체적으로 소윤이 작사와 작곡을 했다. 가사의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 소윤 무언가에서 영감을 얻기보다는 꾸준히 다양하고 새로운 언어를 섭취하려고 한다. 한정된 표현만으로 좋은 작사를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거나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하고 인터넷과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평범한 언어도 많이 찾아본다.

<비적응>을 만들며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나? 현진 내가 혼자 음악 할 때와 달리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하나하나 찾아보며 녹음했다. 소윤, 유수 형과 협업하며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고 배울 수 있었다. 소윤 음악을 만들 때 첫 번째 기준은 나 자신이다. 일단 나 그리고 우리가 생각했을 때 좋아야 하니까 궁극적으로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편인데, 이를 위해선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새로운 새소년의 첫 앨범을 위해 두 사람이 에너지를 내줘 고맙고 나도 무언가에 열중하는 희열을 느꼈다. 그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유수 이제는 ‘이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기준이 생긴 듯하다. 한편으론 각자 자신에게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있다고 느꼈다. 현진이 말했듯이 나 또한 새소년으로서 함께하는 방식이 새롭고, 소윤은 나와 현진의 것들을 수렴하는 동시에 본인이 좋아하는 것도 해야 한다. 각자의 방식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은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비적응>에 서사적인 흐름이 있다고 들었다. 소윤 사실 설명하더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테고, 우리 또한 그러길 바란다.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서사는 1번 트랙 ‘심야행’부터 4번 트랙 ‘눈’까지가 1부고 그다음 2부에 해당하는 연작 ‘엉’, ‘덩’, ‘이’가 이어진다. 초반에는 ‘나’의 감성을 다룬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우리’라는 표현이 많아지고, 시선도 관찰자 입장으로 바뀐다.

첫 곡인 ‘심야행’은 비적응의 어느 단계라고 볼 수 있나? 소윤 원래 ‘심야행’은 1번 트랙이 아니었다. 그런데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리가 맞는 것 같더라. <비적응>의 포문을 열어줄 수 있는 유일한 곡이라고 느꼈다. ‘어디쯤 왔을까, 우리의 밤은 여길까. 나는 가끔 정말 모든 게 무서워’라는 표현이 가사에 있다.

‘심야행’의 아웃트로 연주가 인상적이다. 유수 기승전결의 흐름상 곡의 마지막에 해당하지만 그렇다고 다 보여주는 느낌은 아니다. 나름의 절제 속에서 연주가 진행된다. 소윤 ‘심야행’을 만들 때 끝에 확 터지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곡의 기본 전제는 계속 달리는 기차다. 그러니 아웃트로 연주를 통해 탈선하거나 무언가 기차에서 내리지 않아야 했다. 기차를 탄상태로 어디론가 날아가는 거다. 이를 유수 오빠가 드럼연주로 잘 표현해줬다고 생각한다. 현진 오빠의 베이스 기타 라인도 참 좋다. 현진 나 또한 ‘심야행’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많이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절제하며 연주했다.

‘심야행’ 이후 ‘집에’를 지나면 3번 트랙 ‘이방인’이 있다. 이 곡의 보컬 녹음 과정이 특별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땠나? 소윤 아주 많은 실험을 하며 작업했다. 스튜디오를 벗어나 실제로 곡을 쓴 집 안에서 녹음했고, 마이크도 차음하기보다는 많은 소리를 빨아들이는 제품을 사용했다. ‘이방인’에서 내고 싶은 소리가 분명했는데, ‘방’의 공간감이 느껴지고 내 목소리가 이곳과 온전히 하나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녹음할 때 불을 꺼보고, 창문도 열어보고, 소파에 앉아 불러보는 등 별짓 다 했다. 결과적으로는 바닥에 누워서부른 걸 채택했다. 이 곡을 함께 만든 뮤지션 조월에게 이 사실을 말했더니 “어쩐지 발음이 조금 이상했다”라고 하더라.(웃음)

한편 4번 트랙 ‘눈’은 다른 곡과 달리 주제가 사랑이다. 소윤 ‘눈’은 지금의 두 멤버를 만나기 전인 재작년 12월쯤 만든 곡으로 당시 가지고 있던 사랑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가사 첫 줄부터 ‘사랑’이라는 단어가 노골적으로 나오는데, 내게는 그 주제를 음악 안에 본격적으로 꺼내놓는 작업이었다. 내 방식대로 이런 표현을 다룬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어 <비적응>에 수록했다. 편곡할 때도 가공을 많이 하지 않고 그때 쓴 가사와 멜로디를 그대로 가져와 보완을 거쳐 완성했다.

‘눈’에 이어 ‘엉’, ‘덩’, ‘이’가 차례로 등장한다. 연작의 제목에 ‘엉덩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현진 세 곡 중 가장 먼저 ‘덩’을 완성했다. 가사 중 ‘덩실덩실’이라는 중의적인 표현이 있어 ‘덩’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후 ‘엉’을 만들었는데, 가사를 보면 엉엉 울고 있다. 그러고 나니 왠지 ‘이’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고, 결국 ‘엉덩이’가 됐다. 소윤 곡마다 그렇게 이름 지어야 했던 이유가 있고 나름의 기조를 따라 작사했다. 먼저 ‘엉’은 울고 있는 타인에게 위로를 건네면서도 정작 마음속에는 아무 감정이 없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모든 사람이 항상 따뜻한 존재처럼 보여도 각자 차가운 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어보고 싶었다. 한편 가끔 음악이 울려 퍼지는 거리에 나가면 신이 나 춤을 출 때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오는 감정을 바탕으로 ‘덩’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엉덩이’ 연작뿐 아니라 <비적응> 전체를 마무리하기에 더 적합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다 타버렸네, 우리는 완벽한 절망이네’라며 화끈하게 끝이 난다.

1번부터 7번 트랙까지 사운드가 확장되는 것이 느껴진다. 소윤 ‘심야행’부터 순서대로 들으면 ‘이’에서 굉장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유수 ‘이’는 합주하며 녹음한 곡이라 밴드 사운드가 더욱 잘 담겨 있다. 현진 합주를 녹음할 때는 한 명이 틀리면 전부 다시 해야 한다. 여러 번 녹음을 진행했는데, 셋 다 조금씩 틀린 버전을 사용했다.(웃음) 모두 들어봤을 때 그게 제일 좋더라. 소윤 세세한 부분보다는 연주의 에너지를 담아내는 데 더 많이 신경 썼다. 그래서 우리가 원한 뉘앙스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일상에서 비적응하겠다고 다짐한 경험이 있다면? 음악을 생업으로 삼다 보니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 하고자 하는 걸 선택했다. 소윤 개인이 살아온 기점을 모으면 그 사람의 역사가 되는데, 내 기점 앞에는 항상 ‘얼터너티브’가 붙었다. 성인이 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보니 어릴 땐 몰랐던 이질감을 느꼈고 나의 대안적인 삶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방식에서 각각 ‘나’로 존재하기보다는 ‘우리’가 되길 바랐다. 내가 비적응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란 것처럼, 사회 안에서도 같은 태도를 유지하며 ‘우리’의 범위를 넓혀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비적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소윤 새소년으로서 할 수 있는 첫째 방법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음악은 개인이 내는 가장 큰 목소리이자 ‘우리’를 만들기에 아주 적합한 매체다. 새소년의 음악을 들어주는 많은 사람 중 내 인생에 전혀 관련 없던 누군가 음악으로 나와 이어질 가능성도 있으니까. <비적응>을 발매하고 공연을 하며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게 비적응으로 연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의 사고와 가치관을 키워가는 행보가 나머지 방법인 것 같다.

평상시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떤 편인가? 현진 직장 동료도 가족도 아닌 듯하다. 점점 가족이 되어가는 것 같으면서도 참 애매하다. 유수 너무 먼 관계로 지낼 순 없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관여해서도 안 된다. 셋이 함께한 시간이 1년 정도로 긴 편은 아니니까 조금 더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은 있다. 소윤 밴드 안에서는 일종의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것 같다. 우리를 이어주는 어떤 유대감이 있는데, 각자의 인생에 침투하는 느낌은 아니면서도 두 사람을 알아가는 게 새롭고 즐겁다. 서로 믿기에 흘러갈 수 있는 시간이고 그래서 감사하다. 앞으로 우리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도 궁금하다.

밴드가 가진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소윤 매번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무대에 오른다는 것. 현진이 조금 더 앞으로 나왔을 때, 유수의 텐션이 평소보다 높을 때, 소윤이 어느 한 부분을 다르게 연주했을 때 분위기의 차이가 있고 관객도 이에 재미를 느끼는 듯하다. 우리도 공연이 앨범만큼이나 기대되고 ‘밴드는 라이브로 봐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새소년으로서 앞으로도 유지하고 싶은 태도나 가치관은 무엇인가? 소윤 각자 가지고 있는 알 수 없는 ‘새소년스러움’을 하나로 합체하는 과정이 항상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 없던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꾸준히노력하고 행동했으면 한다. 유수 진심으로 동의한다. 현진 나도 그렇다. 음악적으로 계속 새로운 걸 추구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소윤 며칠 전 <비적응> 피지컬 앨범이 나왔고 현재 판매 중이다. 사실 나도 CD를 자주 듣는 편은 아니지만, 재생 버튼 하나로 휘발될 수 있는 음악을 손에 잡는다는 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비적응>이 각자의 공간 안에서 함께 존재하길 바란다. 그리고 지난해 12월에 이어 단독 공연을 한 번 더 열고 싶다. 정확한 날짜는 아직 비밀이다. 아마 모두반소매 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조금 덥다고 느낄 때쯤 아닐까?

HOME, SWEET JENTLE HOME

양쪽 끝으로 갈수록 살짝 위로 솟는 캐츠아이 형태의 풀 아세테이트 프레임 1996 선글라스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레이스 튜브톱 드레스 블루마린(Blumarine), 진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양쪽 끝으로 갈수록 살짝 위로 솟는 캐츠아이 형태의 풀 아세테이트 프레임 1996 선글라스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원형 메탈 프레임 인더무드(Inthemood) 안경과 JENTLE 로고로 포인트를 준 선라이트 메탈 체인 안경줄 모두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핑크 크롭트 카디건 알레산드라 리치(Alessandra Rich), 페도라 누햇(Nuhat), 블랙 가죽 미니 스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젠틀홈 컬렉션 출시를 기념해 한정판으로 선보이는 휴대폰 모양 사탕 굿즈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레드 티어드 드레스 멀버리(Mulberry).
끝을 둥글게 가공한 사각 풀 아세테이트 프레임 쿠쿠(KUKU) 선글라스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볼륨감 있는 러플 장식 니트 드레스 셀프포트레이트(Self-Portrait).
레이스를 트리밍한 가죽 드레스와 와이드 벨트 모두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러플 드레스 아이비 커크(Ivy Kirk), 벨트 알라이아 바이 10꼬르소 꼬모(Alaia by 10 Corso Como), 베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한나의 정원

원피스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슈즈 레이첼 콕스(Rachel Cox).

예능 프로그램 <더 로맨스>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배우로서 시나리오를 읽는 것과 직접 쓰는 건 다르게 다가올 것 같아요. 연기하는 입장에서 대본을 읽고 분석하며 연기에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했지, 지금껏 어떻게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직접 쓰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영역이었어요. 저는 작가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게 그런 능력이 없는데 시나리오를 쓰는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될지 주저 했죠. 진지한 마음으로 임했고, 다행히 재미있어요.

배우로서 배우는 점도 있겠어요. 글로만 접할 때 막연했던 것들이 작가가 어떤 걸 원해서 이런 느낌으로 썼구나 하는 걸 좀더 짐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대본을 읽을 때도 지문을 좀 더 눈여겨보게 됐고요. 어떤 뉘앙스에서 뭘 담고 싶어하는지 생각 하게 돼요. 지금까지 일기나 배우 일지 외에는 써본 적이 없어요. 극화를 목적으로 하는 글은 많이 달라요. 극적인 요소를 더해야 하고 인물 간 갈등도 있어야 하고 위기의 순간도 필요하고. 입장을 달리해서 작품에 참여하는 재미도 컸어요.

어떤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어요? 처음 제작진이 원한 건 연상연하 커플의 로맨스였어요. 그런데 사랑에는 나이 차이라는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나이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갈등을 겪는 얘기에 판타지를 가미해보고 싶었어요. 아직 편집이 끝난 영상은 보지 못했고 프롤로그 영상만 봤어요. (정)제원이랑 쓴 대본이 실제 영상으로 만들어진 걸 보니 누가 연기하고 카메라가 어떻게 담아내고 미술적인 장치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어요.

책이나 희곡을 읽는 것과 시나리오를 해석해서 연기하는 건 저마다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책을 읽는 것은 순수하게 재미를 위한 거예요. 아무 생각하지 않고 마치 여행을 떠나거나 놀이동산 가는 느낌이랄까요. 희곡은 무대 연기에 대해 알고 싶고 진짜 잘 짜인 플롯이 무엇인지, 좋은 대본은 무엇인 지에 대한 정답이 담긴 교과서를 펼쳐보는 것 같아요. 같은 희곡도 극화되는 과정에서 왜 달라질까, 인물을 분석하는 건 왜 다른 걸까, 이런 질문을 하며 마법 책을 뒤지는 것만 같죠. 배우로서 대본을 읽으면 연기해야 하니까 우선 어깨가 무거워져요.(웃음)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작가가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은지, 내가 연기하는 인물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집중하게 돼요.

지금껏 읽은 여러 글 중 살아가며 힘이 되는 문장이 있나요? 책 속 문장은 아닌데, 힘들 때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떠올려요. 엄청 힘든 순간도 멀리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 있고, 수없이 많이 일어나는 일 중 한 줌 모래알 정도의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려 해요. 너무 힘들어하지만 말고 넘기려고 애쓰죠. 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여러 글이 제 안에서 자연스레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해요.

반소매 셔츠 로우클래식(Low Classic), 톱 레하(Leha), 하이웨이스트 팬츠, 이어 커프 모두 렉토(Recto), 슈즈 레이첼 콕스(Rachel Cox).
반소매 셔츠 앤아더스토리즈(& Other Stories).

올해부터 <강한나의 볼륨을 높여요> DJ로 활동하고 있어요. 라디오는 하면 할수록 정이 들어요. 청취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다 보니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늘 든든해요. 연기는 카메라가 돌아가면 그 순간의 집중이 필요하고, 그 순간의 진실을 믿어야 하는데 반해 라디오는 호흡이 길죠. 두 시간의 생방송이니까. 그 시간 동안 청취자의 반응을 보고 음악을 듣다 보면 두렵기보다는 편안해져요. 힐링의 시간이죠.

그 두 시간 동안 가장 즐거운 시간은 언제예요? 좋아하는 시간이 정말 많아요. 제 코너 중에 꼽는다면 아, 참 많은데요.(웃음) ‘한나와 두나’라는 1인 2역의 콩트요. 아직 풀지 못한 희극에 대한 제 갈증을 푸는 기분이랄까요. 완전히 절 내려놓고 재미있게 만들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애니메이션 더빙도 해보고 싶어요.

라디오는 사연이나 음악을 듣거나 말을 하는 시간이 있어요. 어떤 때가 가장 즐거운가요? 모두 좋아하는 시간인데 사연과 함께 신청 곡을 틀 때 DJ로서의 임무를 다한다는 생각에 만족감과 쾌감이 느껴져요.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엄청난 기쁨이 있잖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운전 하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제 마음을 알아봐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

DJ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제 자신이 채워져요. 직접 보지 않았어도 어딘가에 개나리가 폈다거나 또 어디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거나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이 바라보는 풍경이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주면 하루를 좀 더 활기차게 살아야겠다 싶어요. 전 원래 집에서 쉬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라디오를 시작하고 조금 달라졌어요. 세상엔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 많더라고요. 스스로 반성하게 되고 좋은 자극도 돼요. 아, 그리고 저도 늘 같은 곳으로 출근하다 보니 월화수는 어떤 기분이고 목금은 또 어떤 기분인지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웃음)

활동이 다양해진 만큼 관계의 스펙트럼도 넓어졌겠죠? 촬영 현장에서는 동료들과 고생하다 보면 관계가 끈끈해져요. 말하자면 전우애 같은. 라디오는 청취자들과 정을 차곡차곡 쌓아가요. 오늘 하루 힘들었지, 토닥토닥 이러면서요. 시간이 더할수록 예쁜 마음이 쌓여요. 예능은 촬영 일정이 비교적 불규칙한 편이어서 만날 때마다 새로워요. 예능 프로그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움을 줘야 하는데, 그에 필요한 적당한 텐션이 현장에 있어요. 만나면 반갑지만 늘 조금은 낯선 그런 관계죠. 다양한 활동을 하게된 지금이 좋아요. 처음 드라마를 찍을 때만 해도 드라마를 하게 될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러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게 됐을 때는 내 성격에 잘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라디오까지 하게 됐어요. 경험이 많아질수록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힘을 갖게 돼요. 예전에는 해보지 않아 생기는 두려움이 컸어요. 괜히 잘하지도 못하면서 덥석 했다가 잘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요. 이젠 뭐든지 열심히 하다 보면 적응되고 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재킷 로우클래식(Low Classic), 셔츠 렉토(Recto), 데님 팬츠 오피신 제너럴(Officine Generale), 슈즈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화이트 슬립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도전에 망설임 없나 봐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렇다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이면 안 되지만 집중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과감하게 도전하려고요. 20대 초·중반에는 오히려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이고 안전 추구형이거든요. 이젠 마음이 좀 열렸다고나 할까요. 라디오를 하고 나서 목소리로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연기할 때는 목소리보다 시각적인 것에 눈이 더 많이 가는데 라디오를 하다 보면 제 목소리도 듣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목소리를 활용할 수 있는 다른 영역도 해보고 싶어요. 가령 읽어주는 책 같은.

20대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어렸을 때는 단점에 대해 생각 하고 그 단점을 고쳐보려고 했어요. 그 단점에 집착하기도 했고. 지금은 단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크게 마음 쓰지 않아요. 단점에 대해 자꾸 생각 하기보다 저의 좋은 점을 잘 개발해보려고 해요.

반면에 변하고 싶지 않은 점도 있겠죠? 할머니가 되어서도 변하고 싶지 않은 점이 있어요. 초롱초롱한 눈. 눈이 초롱초롱한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눈빛이 죽지 않았으면 해요. 제 인생의 목표죠. 세상을 바라볼 때 늘 그런 눈빛이고 싶어요.

배우가 되고 나서 자신의 눈빛이 지쳤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나요? 그보다는 오히려 데뷔 초에 호기심 어린 제 눈빛에서 힘을 빼려고 했어요. 그때는 화보를 촬영해도 좀 강한 컨셉트가 많았어요.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담긴 눈빛을 낼 수는 없잖아요.(웃음) 강렬한 눈빛을 만들기 위해 제 본연의 모습과 달라져야 했어요. 가족과 지인들이 사진을 보면 저 같지 않다고 할 정도였어요. 말도 안 되게 어둡고 강렬했어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스타일링이나 화보 컨셉트 때문이 아니라 제 눈빛 때문이 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인간 강한나와 연기하는 강한나를 분리했는데 이제는 좀 더 제 눈빛에 가까워지며 편해졌어요.

인간 강한나를 잃을까 봐 두려운 적이 있었나요? 그런 적은 없어요. 작품을 할 때는 배우로 살아가지만 나머지는 인간 강한나의 삶이 중요해요.이 일을 사랑해서 연기하는 거지, 그 관계를 역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그래서 스스로 튼튼해지려고 해요. 생각도 건강하게 하고. 보다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하면 마음도 건강해져요. 삼시 세끼 잘 먹고 잘 자고 마음을 다스리며 살고자 해요. 스스로 잘 토닥이며 마음의 소리를 따라.

올해 작품에서는 어떤 강한나를 만날 수 있을까요?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자기 주도적이고 자신의 삶을 잘 만들어나가고 끌어가는 인물에 끌려 요. 언젠가 자신의 삶을 주도하면서 여유로움을 갖춘 인물을 만나고 싶어 요. 딱딱하지 않고 힘을 좀 뺀 그런 역할이요. 좀 더 일상성이 담긴 인물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지금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봄이에요. 봄 냄새만 맡아도 설레고 좋아요. 그 시간이 짧아서인지 소중하게 잘 보내고 싶어요. 제 인생의 계절도 지금 봄인 것 같아요, 초봄. 따듯한 기운이 점점 올라와 언 땅이 녹고 전 거기에 씨앗과 모종을 심는 중이에요. 그런 봄이 지난 후 뒤돌아봤을 때 저만의 정원이 펼쳐져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씨앗을 심고 있어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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