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이 만나는 바람의 언덕

정은경 셔츠 코스(COS), 재킷 스튜디오 톰보이(Studio Tomboy). 장선 니트 스웨터와 팬츠 모두 코스(COS).

영화 <바람의 언덕>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어 딸을 버린 엄마 ‘영분’과 딸 ‘한희’가 강원도의 작은 도시 태백에서 재회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분은 한희에게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딸이 운영하는 필라테스 교습소의 수강생이 되고, 인적 없는 밤길에 필라테스 교습소 홍보물을 붙이며 딸의 삶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려고 한다. 가까운 친구 하나 없이 교습소 텐트에서 살아가는 한희는 그런 영분이 있어 외롭지 않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던 영분과 한희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따듯한 시간을 맞을 수 있을까? 그리고 더 이상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무서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엄마와 딸인 영분과 한희를 시나리오를 통해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은 어땠나? 장선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크게 다가온 건 도시의 이미지였다. 하얀 눈이 쌓인 언덕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추운 겨울이어서 더 잘 느껴지는 따듯함이라고 할까? 아주 추운 겨울이지만 따듯한 기운이 오밀조밀하게 담겨 있었다. 시나리오로 한희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때까지 생각했던 인물과 달랐다. 난 좀 더 담담한 아이일 줄 알았다. 어른스럽고 혼자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스스로 자신을 어른이라 생각하는 아이. 반면 시나리오 속 한희는 여리고 누르려고 하지만 외로움이 보인다. 정은경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안쓰러웠다. 영분과 한희뿐 아니라 태백에서 만난 윤식 씨, 전남편과 함께 살던 아들 용진 모두 외롭게 다가왔다. 영화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살면서 한번쯤 만났을 것 같고, 내 안에도 그들 각자가 가진 외로 움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았다. 그중에서도 영분은 씩씩하게 애쓰며 사는 모습에 연민이 생겼다.

처음에 생각한 한희와 달랐던 시나리오 속 한희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나? 장선 박석영 감독님이 한희는 오랜 투병 생활을 끝내고 세상에 막 나온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렇게 해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 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을 터놓고 가깝게 지내는 친구 하나 없이, 두려움이 많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

시나리오에는 인물의 과거가 설명되어 있지 않다. 한희와 영분은 어떤 서사를 가진 인물이라고 생각했나? 장선 한희는 공황장애로 인한 과호흡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고아원에서 선택받고 싶은 마음에 생긴 스트레스에서 온 병일 것이다.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다 한 입양처를 두고 자신도 모르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이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과호흡증후군을 이겨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을 것이고 그 운동이 좋아 자격증까지 따서 고향에서 필라테스 교습소를 차린 거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지만 그래도 고향 태백에서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서. 정은경 영분은 결혼을 여러 번 했을 것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책임감이 필요할 때면 외면하고 떠나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도 버렸겠지. 그 일에 대한 죄책감도 가지고 있고. 하지만 늘 주체적으로 살아 왔을 것이다. 자존감도 높고 타협하지 않으며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 안주하며 살지 않다 보니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떠나게 되고. 젊었을 때는 청년의 욕망을 좇았지만 중년이 지난 지금은 자신이 뭘 찾고 있는지 모른 채 정착하지 못하며 산 게 아닐까?

늘 떠나기만 한 영분이 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을까? 정은경 죽은 남편을 굉장히 따듯하게 보내줬다고 생각했기에 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영분은 한희에게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엄마다. 책임을 지기보다는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쓰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컸을 것이다. 자신을 좋아해준, 사별한 남편이 편히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진심으로 간병했기에 이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다. 죽은 남편을 잘 떠나보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바람의 언덕>을 떠올리면 어떤 장면이 가장 먼저 생각나나? 장선 영분과 윤식이 막걸릿집에서 함께 노래하는 장면을 가장 사랑한다. 이들의 살아온 시간이 느껴 졌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이 장면이 너무 사랑스 러워서 웃음이 나다 눈물이 흘렀다. 영분도 사실은 누군가 보듬어야 할 소녀이던 시절이 있었을 테고, 그 시절을 보내며 살아온 세월이 담긴 장면이어서 좋았다. 한희가 영분이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처음 수업하는 장면도 마음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엄마를 만나기전 언덕에 올라 바람을 맞는 장면이 좋았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외에 로드쇼 형식으로 영화 상영회를 진행해왔다. 개봉 전 영화를 본관객이 꽤 많은데 관객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정은경 중년의 한 여성 관객이 영분의 ‘무섭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앞으로 남은 세월이 무섭고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니 무섭고. 우리 모두 그러지 않나. 많은 시간을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앞으로 다가올 삶이 무서운 거지. 한번은 관객과의 대화 (GV)가 끝난 후 한 노년의 관객이 박석영 감독님을 부르더니 앉혀놓고는 엄마가 영분이처럼 살면 안 된다고 하셨다. 엄마란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웃음) 장선 GV에서 다양한 감상을 들을 수 있다. 한번은 태백 바람의 언덕에 가본 적 있다는 한 고령의 할머니가 6·25 때부터 자신의 삶을 얘기하며 영화에 대한 감상을 얘기해주셨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 그이상을 얘기하는 관객을 만나면 놀랍고 울컥할 때가 있다. 한 관객이 웃으면서 살라고 엄마가 ‘한희’라는 이름을 지어줬을 텐데 막상 딸을 만났을 때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어떻게든 웃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화가 많이 날것 같다고도 하셨다. 정은경 영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한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젊은 관객도 있었다. 가족을 미워하고 대화도 잘하지 않는다던 그 관객은 감독님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용기 내어 가족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했다.

자식을 두고 떠났으면서 다시 돌아와 이해와 용서를 구하기보다 도리어 화를 내는 엄마 영분과 원망의 감정 하나 없이 엄마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는 한희 모두 이해 하기 쉬운 인물은 아니다. 장선 누구보다 한희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끝까지 원망 한 번 못 하는 한희가 속상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세상에 이런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영화에서는 이런 인물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말이 큰 힘이 되었다. 정은경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영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엄마가 왜 이런 거지. 내가 연극에서 연기한 엄마는 가족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자식에게 내어주고도 미안해하는 엄마였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이런 존재 인데 과연 내가 영분을 잘 연기할 수 없을지 걱정도 되었다. 첫 장면을 끝내고 태백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가며 다 털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감독님 말씀처럼 하루 하루 열심히 사는 인물을 만들며 연기했다. 작품을 끝내고 관객과 만나면서 이전에 경험한 적 없는 엄마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박석영 감독은 왜 영분을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을까? 정은경 처음에는 감독님에게 아이를 버린 엄마라면 항상 죄책감을 가지고 살고, 그 아이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살고, 아이를 만나면 용서를 구하고 엄마와 딸로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래야 더 많은 관객이 공감하고 영화를 보러 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때 감독님이 영분이 엄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지점에서 감독님은 흔들리지 않았다.  장선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엔딩이 가장 좋다. 정말 좋다. 엔딩 장면을 두고 감독님이 바꾸자고도 했는데 나는 계속 이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억지로 해피 엔딩을 맺기보다는 엄마와 딸로서 각자 서로 사람으로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좋았다.

오늘 문득 떠오르는 현장에 대한 기억이 뭔지 궁금하다. 정은경 연극 무대에서 연기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건 <바람의 언덕>이 처음이다. 모든 스태프가 배우들을 배려하고 그림처럼 눈이 내린 현장이 참 아름다웠다. 훌륭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지금까지 없던 엄마를 연기할 수 있어 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태백도 아름다웠다. 밤이 되면 마주치는 사람 하나 없이 우리만 있는 느낌이 들었고, 눈이 펑펑 오고 기차가 영화처럼 지나갔다. 장선 태백에 서 만난 사람들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자주 갔던 밥집 이나 술집 사장님도 그렇고, 엄마가 일했던 ‘햇빛 모텔’ 사장님도 그렇고. 촬영을 마치고 떠날 때 아쉬워하는 사장님도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태백에서 보낸 시간도 즐거웠다.

<바람의 언덕>을 통해 관객과 어떤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가? 정은경 많은 여자들이 봐주었으면 한다. 나도 영화를 보고 엄마가 생각났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가 살아생전 나를 위해 참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특별한 날 신으려고 사두었던 신발을 신지 않은 채 그대로 상자에 담아두었다가 결국 내게 신으라며 주던, 늘 가족을 위해 참으며 희생하던 나의 엄마처럼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영분과 다른 삶을 산다. 엄마 덕분에 지금 내가 잘 살아 가고 있는 거겠지만 우리 엄마도 영분처럼 참지 않고 자신의 삶을 위해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정해진 틀에 맞춰진 역할에 충실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로 살아 왔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일이 무섭다는데 공감할 것 같다. 이렇게 공감하다 보면 다른 삶도 인간으로서 이해하기보다 소통할 수 있지 않겠나. 나도 그렇게 자기를 고백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참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고백하는 것. 영화가 그런 용기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선 부산에서 상영할 때 엄마와 남동생이 영화를 보러 왔다. 그때 남동생이 다른 사람들이 쳐다볼 만큼 오열하며 봤다. 남동생 때문에 엄마가 도리어 눈물이 쏙 들어갔다더라. 그렇게 엄마와 자식이 함께 봤으면 좋겠다. <바람의 언덕>은 인물들이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용진은 스스로 아빠가 투병 생활을 했던 침대를 정리하 고, 엄마는 다시 한 번 떠나려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한희도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런 변화가 그들에게는 어딘가에 매어 있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영화를 보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한 힘과 위로를 얻기를 바란다.

이 영화를 만들며 엄마와 딸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 장선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지 못하겠더라. 많이 울 것 같았다. 엄마가 엄마라는 호칭이 아니라 당신 이름으로 불리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으 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엄마는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에게 미안해했다. 자신의 삶을 돌보느라 날 놓은 시간 동안 내가 혼자 자라버린 것 같다고 했다. 엄마도 영분처럼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을 텐데 내뱉지 못하고 혼자 삭이며 살아 왔겠지. 이런 생각이 드니 원래 친구처럼 지내던 엄마와 더 가까워졌다. 정은경 나에게 늘 다 주었던 엄마가 고맙다. 엄마가 그랬기에 나 역시 인내하며 살 수 있었다. 나에게 엄마는 어떤 점에서 슬프고 안쓰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을 갖기보다 씩씩한 엄마로 기억하고 싶다. 행복하고 예쁜 모습으로 씩씩하게산 엄마처럼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AGAINST COVID – 19 ②

 

NETHERLANDS

성지예

전략 컨설턴트, Human Rights Foundation

혐오의 바이러스

코로나19는 아시아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며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퍼져나갔다. 인권 단체 Human Rights Foundation에서 일하는 한국인 성지예 씨는 인종차별 피해를 자신의 SNS에 알리며 이 문제를 보다 공론화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2017년에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대학에서 사회과학기술학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석사 학위를 따고 구직 비자를 받은 후 현재 인권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두 가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북한 내 정보 유입을 위한 캠페인에 관한 것이며 두 번째는 매년 오슬로, 타이베이, 뉴욕,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인권 콘퍼런스 시리즈인 오슬로 자유 포럼(Oslo Freedom Forum)의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해외 에서는 사재기도 심각하다고 알려졌다. 네덜란드는 사스나 메르스 같은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고 정부의 대응 방침이 한국보다 느리고 느슨한 편이어서인지 사람들이 코로나19의 심각성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렸다.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노인과 면역력이 떨어 지는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3월 중순부터 정부에서 자발적인 자가격리 및 1.5미터 사회적 거리 두기를 권장했는데 사람들이 이를 잘 지키지 않아 3월 27일부터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3월 초부터 손세정제나 마스크, 소독용 알코올이 보이지 않고 마트에서는 파스타, 밀가루와 휴지의 사재기가 심하다. 도시와 마트마다 상황이 다른 것 같은데, 지난주 헤이그의큰 마트에 갔을 때는 휴지를 제외한 모든 상품이 넉넉했 다. 주요 장보기 배달 서비스들은 3주 후까지 예약이 끝났다. 반면, 장보기가 힘든 이웃을 위해 장 대신 봐주기, 도매상들이 무료로 혹은 저렴하게 이미 구매한 식재료 나눠 주기, 이웃인 농부를 대신해 상품을 SNS에 홍보 해주기, 그리고 이웃과 안부 교환하기 등의 마음 따뜻한 일들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정부는 프리랜서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 대한 생활 보조금 지급 등의 대책을 빨리 마련한 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종차별이 이전에 비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가? 이전부터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존재했다. 이를테면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 ‘행키 팽키 상하이 칭챙총’ 등의 가사로 이루어진 중국인 비하 노래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발언, 행동, 폭력을더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마녀사냥처럼 ‘너희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 같은 논리인 것 같다. 인종차별로 인한 여러 사건은 코로나19가 유럽에서 발생하기 전부터 있었고 지금은 그것을 구실 삼은 것뿐이다. 차별주의자에게 논리적인 이유는 없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면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탓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인종차별 문제가 완화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심해진 인종차별 피해에 대해 SNS에 알렸다. 2월 말 저녁 10시 30분쯤 운동 수업이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스쿠터를 탄 20대 남성 둘 중 뒤에 앉은 사람이 나를 보고 ‘중국인’ 이라 외치며 내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잘 피했고 늦은 시간이라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집에 최대한 빨리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다.

” 내가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들은 네덜란드 친구들이
이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본 후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공론화하게 되었다. “

그 사건을 SNS에 공개한 후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 많은 친구들이 괜찮느냐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자신이 겪은 사건이나 주변의 다른 아시아인이 겪은 사건을 공유했다. 이런 메시지와 수백 개의 긍정적인 댓글을 보니 공론화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흑인에 대한 차별 반대 운동을 시작한 활동가,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아시아인들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중국계 네덜란드인 등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사건 이후 인종차별주의 관련 설문 조사도 진행했다. 어떤 내용의 조사였는가? 4월 1일 현재 총 187건의 인종차별 관련 사건이 접수되었고, 사건을 겪은 곳(장소, 도시, 나라), 가해자의 수와 성별 등 상세한 내용을 항목으로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까지 약 10% 정도의 사건이 신체적 위협 혹은 폭행 사건이었고 피해자의 약 80%는 여성, 가해자의 약 84%는 남성이다. 대부분의 사건은 낮에 발생했고 가해자는 2~3명인 경우가 65% 정도, 한 명인 경우가 20% 정도다.

관련 캠페인도 준비 중이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인가? 우선 이곳에 거주하는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보고하고 기록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것, 더 나아가 다른 반인종차별 단체들과 연대해 시위나 워크숍을 진행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래픽디자인, 학술 논문, 사회운동 등 여러 각도로 접근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로 인한 피해에 그치지 않고 사건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이렇게 공론화한 이유가 있다면? 최근까지 많은 아시아인이 차별을 겪으면 피해자로 보이기 싫어서, 혹은 말하더라도 이해받지 못해서 참았다. 그런데 말이 한번 트이니 공론화가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우리끼리 고충을 나누자는 취지였다. 외부적으로는 공론화를 통해 네덜란드 사람들이 현재 알고 있는 인종차별의 범주에 아시아인도 들어가게끔 하고자 했다. 인종차별은 흑인이나 아랍계 이민자만 겪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주변에 아시아인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아시아인은 쉬운 타깃으로 인식되곤 한다. 이런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칭챙총’이라고 놀리는 사람들에게 따지고 사과를 요구하면 순순히 하는 경우가 꽤 많다고 한다. 네덜란드에 계속 살고 싶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들은 네덜란드 친구들이 이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본 후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하게 되었다.

얼마 전 네덜란드의 일간지 <폴크스크란트(VOLKSKRANT)>와 인종차별주의와 관련해 인터뷰를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심각해진 여러 인종차별 사건에 대해 제보했는데 어떤 사건들이었는가? 설문 조사에서 취합한 사건들로 주로 신체적 위협을 가한 폭력 사건들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누군가 밀쳐서 넘어졌거나 유모차를 끌고 가는데 어떤 네덜란드 남자가 “코로나 코로나”라고 하며 유모차 바퀴에 침을 뱉은 사건, 집 외벽에 나치 문양을 그려놓고 간 일, 마시던 음료를 던지며 성희롱한 사건, 네덜란드 아이들에게 구타당한 일본인 아이 사건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코로나”라고 외치며 조롱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바이러스라도 본 듯 피해가는 일도 있었다. 아시아인을 향한 차별이 여러 나라에서셀 수 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의 행동들이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네덜란드에서는 각종 반차별 법안들이 존재한다. 이 중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도 있고, 다양한 반인종차별 단체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기는 오래 걸리고, 이제까지 아시아인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적어서 변화가 더 느렸던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던 친구들이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배우며 변해가는 모습을 봤다. SNS에 관련 글을 올리면 나 대신 악플러들과 싸워 주고 화내며 우리나라에서 차별을 겪어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기도 하고,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사람들이 많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면 대부분 납득하고,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한다. 물론 어딜 가나 차별주의자는 존재한다. 아시아인을 놀리는 게 ‘쿨하다’고 여기는 차별주 의자들에게 실제로는 ‘쿨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을 심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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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의 현주소

이렇게 편리할 줄 알았을까? 휴대폰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결제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하루나 이틀이면 주문한 물건이 집에 도착하는 세상이라니! 평상시에도 흔히 하던 온라인 쇼핑이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그 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별 소비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마리끌레르는 웹사이트 회원 3만8천 명과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17만 명을 대상으로 쇼핑 스타일을 알아보는 서베이를 진행했다. 약 일주일에 걸쳐 서베이에 참여한 회원 중 최근 1개월 이내에 온라인 쇼핑을 한 사람의 비율은 97% 이상으로, 이제 온라인 쇼핑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회원 중 54%가 PC보다는 모바일로 각 웹사이트에 접속하거나 휴대폰 앱을 이용해 쇼핑한다고 답했다. 패션 제품은 G마켓 이나 11번가 등 가격 비교를 하며 살 수 있는 오픈 마켓을 통해 주로 구매하고, 럭셔리 브랜드의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구매한 비율은 30% 미만으로 현저히 낮았다. 구입한다고 해도 백이나 가죽 소품 등 가격대가 낮은 액세서리류를 주로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럭셔리 브랜드의 의류와 신발은 고가인 만큼 온라인으로 구매하기보다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 신중하게 구매해야 하는 품목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은 패션 제품에 비해 비교적 가격대가 낮아 여러 브랜드 제품을 동시에 구매할 수 있는 백화점이나 드러그스토어 같은 종합 쇼핑몰에서 가장 많이 구매했다.

쇼핑 행태도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물건이 필요할 때만 주로 구매하던 예전과 달리, 할인이나 1+1 등 구매 조건이 좋은 상품을 발견하면 필요하지 않아도 구매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59%에 달했다. 온라인 쇼핑을 할 땐 제품 사용 후기를 참고하는 것으로 나타나 사용 후기가 구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스타 마케팅이나 인플루언서 시딩 등 홍보 에 따른 세일즈 파워가 높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구매자가 실제 써보고 올린 사용 후기가 훨씬 믿음이 간다고 답했다. 결제 방식 또한 간결해졌다. 70% 이상의 사람들이 휴대폰에 앱을 깔아 신용카드를 등록하거나 간편 결제 등 주로 모바일 결제를 이용했다. 무통장 입금 방식을 이용한다는 사람 의 비율은 2%에 불과했다. 변화하는 쇼핑 스타일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는 이커머스 쇼핑 시장. 앞으로 어떤 플랫폼으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줄지 자못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