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의 발레리나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에 사는 열한 살 소녀 마이자 바르보자 아벵-아타르(Maysa Barbosa Aben-Athar)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학교를 마친 마이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 거울 앞에 앉고는 머리를 단단하게 틀어 올린다. 그러곤 침대 밑에서 황금색 발레 튀튀를 꺼내 입는다. 이 옷의 가격은 2천 브라질 레알(약 58만원)로, 마이자의 어머니가 청소 일을 하고 받는 한 달 월급보다 더 큰 액수다. “늦었다!”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집을 나선 마이자는 망기뉴스(Manguinhos) 빈민가의 ‘가자지구’라 할 수 있는 후아 레오포우두 불룡이스(Rua Leopoldo Bulhões) 쪽으로 달려간다.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고, 노숙자와 마약중독자들이 이상한 자세로 누워 있는 길을 지나며 마이자는 “여긴 하루가 멀다 하고 총격전이 벌어져요. 그렇지만 우리는 매일 이 진흙탕 같은 곳을 지나야만 해요”라고 말했다. 망기뉴스는 17개의 빈민가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여기엔 제가 다녔던 학교도 있어요.” 마이자가 개조된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제가 다닐 땐 창문이 없었어요.” 그 말을 들을 때쯤 망기뉴스역에 다다랐는데, 역 플랫폼 아래쪽에 있는 한 판잣집에서 강렬한 브라질 펑크 음악을 들으며 마약 조직 보스와 연락 중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 목적지인 발레 학교에 다다랐다. 마이자는 학교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건물 기둥 아래에서 타이츠에 붙은 보풀을 뜯어내며 친구들을 기다렸다. 잠시 후, 멀리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단단하게 머리를 틀어 올린 소녀들이 나타났다. 대략 열 살에서 열한 살 사이의 소녀들이다. 마이자를 포함해 12명의 소녀들은 모두 다이아나 페헤이라 지 올리베이라(Daiana Ferreira de Oliveira)가 운영하는 발레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한 명도 빠짐없이 마약 밀매자들과 총탄 구멍들, 쓰레기 더미 사이를 지나 발레를 배우러 온다. 이 소녀들만이 아니다. 망기뉴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위험한 거리 풍경에 익숙하다. 문제는 마이자 또래 아이들 중 소년들은 마약을 거래하고, 소녀들이 임신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발레 선생님 다이아나의 말에 따르면, 빈민가에 만연한 폭력과 절망과 참담함은 어린아이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마약 거래 이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잔인한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이아나는 그래서 이곳에 발레 학교를 세웠고, 이곳에서 망기뉴스의 아이들에게 다른 대안과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이아나 역시 어린 시절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운 좋게 저렴한 티켓을 구해 조조 공연으로 <백조의 호수>를 관람한 후 큰 감명을 받았고, 이후 새로운 꿈을 꾸었다. 폐업해 비어 있는 인쇄소 건물에서 친구에게 발레 수업을 받고, 룰라 다 시우바(Lula da Silva) 좌파 정권의 장학금으로 스포츠교육학을 공부한 다이아나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지금과 다른 삶을 꿈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발레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허름한 공간에서 겨우 6명의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했던 그의 발레 수업이 발전하고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여러 사람의 후원 덕분이다. 유명한 축구 선수인 자이르지뉴(Jairzinho)는 그의 프로젝트에 대해 듣고 망기뉴스의 발레 학교가 자리 잡을 때까지 2년간 교직원의 임금을 지급했고, 정부의 지원을 받는 트로피컬 인스티튜트라는 곳을 통해 1백80명의 학생이 발레를 할 수 있는 도서관 건물을 제공받았다. 이후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에서 교육을 받은 새로운 강사가 합류했고, 브라질 최대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가 이 학교의 후견인을 자청했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후원에도 망기뉴스의 발레 학교를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이아나는 발레를 가르치는 동시에 빈민가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어야 했다. 자신의 학생들이 생활고로 마약 밀매에 손을 대지 않기를 바라지만, 직접적으로 돕기는 어려웠다. 2016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주지사였던 루이스 페장(Luis Pezão)이 긴축재정을 하면서 다이아나의 프로젝트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이 때문에 발레 학교가 자리한 도서관 건물은 문을 닫게 되었다. 다행히 며칠 뒤 발레 학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도와주겠다는 마약 카르텔의 약속에 힘입어 도서관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렇게 망기뉴스의 발레 학교는 정부의 허가 없이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망기뉴스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단단히 행보를 이어나간 발레 학교는 점점 더 커지고 유명해졌다. 그리고 정확히 2년 뒤 2018년 선거 직전에 도서관 문을 닫게 했던 바로 그 주지사 루이스 페장이 이곳을 방문했다. 그는 새로운 시장 마르셀루 크리벨라(Marcelo Crivella)와 함께 발레 학교의 공연에 가고 싶어 했다. 빈민가에 사는 잠재적인 유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다이아나는 주지사와 시장을 공연에 초대했고, 무대에 빨간 페인트를 뿌리고 벽을 검은색으로 덮었다. 공연 당일 발레 학교의 소녀들은 짧은 춤을 춘 뒤 죽어서 땅에 쓰러지는 연기를 했다. “망기뉴스의 발레는 정치적 도구가 아닙니다.” 다이아나가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주지사에게 그의 잘못된 정책이 이곳에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며칠 뒤 도서관은 다시 문을 닫았고 2백50명의 학생은 갈 곳을 잃었다. 다행히 그즈음 다이아나와 제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뉴욕타임스>가 찾아왔고, 또 그로부터 몇 주 뒤 한 익명의 미국 자선가가 발레 학교 장소를 후원하겠다고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또 2021년까지 발레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의 월급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이 덕분에 다이아나는 빈민촌 변두리 재활 센터였던 4층 건물에 다시 발레 학교를 열 수 있었다. 문은 교회에서, 매트는 파산한 학교에서 가져왔으며, 학부모들이 화장지를 비롯한 소모품을 가져오며 조금씩 학교는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턱을 들어봐.” 새로운 발레 학교 건물의 3층, 자선가가 기증한 광이 나는 새 마루 위에서 마이자와 다른 소녀들이 연습을 하고 있다. “하나, 둘, 셋, 멈추고.” 선생님은 구령을 외친 뒤 한 학생의 등을 교정해준다. “넷, 플리에, 다섯, 아라베스크!” 선생님이 말을 걸자 마이자는 수줍게 웃으며 머리를 돌렸다. 마이자는 벌써 4년째 망기뉴스 발레 학교의 선발 그룹에 속해 있는 촉망받는 학생이다. 발레 덕분에 마이자는 또래 아이들이 하기 힘든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마이자는 오루 프레투(Ouro Preto) 겨울 축제에서 공연을 했고, 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루에 가본 적도 있다. 무용수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마이자는 2022년에 있을 테아트로 오페라하우스(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의 컨서버토리엄 입학시험을 보려고 한다. “2백50명의 소녀 중 12명은 발레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테아트로 오페라의 시험관 클라우디아 모타는 말한다. “발레 수업을 받은 소녀들 중 대부분은 나중에 다른 일을 하게 되겠지만, 발레를 하며 배운 절제와 자신감만큼은 마음속에 오래도록 간직할 겁니다.”

망기뉴스에서 발레 학교를 이어가는 일에 대해 다이아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리우데자네이루나 망기뉴스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범죄에서 멀어지게 할 수는 있어요.” 바로 이것이 그가 아이들을 발레 학교에 부르고, 한 달에 네 번씩 테아트로 오페라하우스에 데려가는 이유다. 그는 매주 소녀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연을 열고 벼룩시장과 축제 등을 계획한다. 다이아나는 자신을 하나의 역할 모델로 본다. “나는 스물아홉 나이에 아이를 얻고 결혼했으며 내 집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런 평범한 삶이 이곳에서는 매우 특별한 것일 수 있어요. 마이자 또래의 소녀들은 매우 중요한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클래식 발레의 엄격한 규율이야말로 이곳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요.”

발레 수업 후 소녀들은 지쳐서 탈의실로 향했다. 나는 마이자에게 미래의 계획을 물었다. 소녀는 한 발을 다른 발 위에 놓고 뛰면서 함박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큰 발레단에서 춤추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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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STRONG ⑩

강혜진

국군대구병원 감염관리장교 대위 | 의료기관 감염 관리

국가 감염병전담병원인 국군대구병원 감염관리장교로서 병원 내에서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임무를 하고 있다. 병원 내부 방역부터 의료진과 직원들의 교육 및 증상 모니터링을 한다. 대부분의 의료인들이 보호복을 입어본 경험이 없는데 입고 벗는 과정에서 감염 위험이 높아 그 부분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진행한다.

최전선에서 겪었던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 31번 환진자가 생기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혼란스러워졌던 때. 확진 환자를 수용할 병원이 부족해지자 국군대구병원이 전담 병원으로 지정되고 감염병 대응 업무를 시작할 때, 하필 그 시기에 과로로 잠시 고열이 났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하면서 기다리던 3일간 나로 인해 병원의 임무수행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굉장히 겁났다.

희망적이었던 때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전담 병원으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이게 가능해?’ 였다. 기존에 없던 음압격리병실을 새로 만들 어야 하는데 계속 환자는 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힘을 보탰다. 공병여단에서는 밤새 없던 병실을 만들고 감염 예방을 위한 벽을 설치했다. 화생방지원대에서는 방역을 돕고,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의무사령부에서는 전국 각지의 군의료진을 파견했다. 시민들을 위해 한곳에 모인 이들을 보며 큰 힘을 얻었다. 특히 3월 5일에 개소하던 날 수십 대의 구급차가 줄지어 들어오는 장면은 아직도 잊을 수없다.

진정세인 것 같지만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지금 가장 필요한 것 질병관리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앞으로 코로나19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다. 코로나 19가 종식되더라도 병원을 포함해 집, 회사, 식당 등 모든 곳에서 생활 방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 모두가 정부의 지침 사항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과 달리 많은 국가에서 여전히 환자가 늘고 있어 혹시 모를 감염을 걱정하고 주시하게 될 것 같다.

고군분투 중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본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챙기면서 힘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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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STRONG ⑨

임재만

대전 동부소방서 소방관 | 대구 지원

대구에서의 소방 지원 발열이나 오한, 기침 등의 호흡기 증상이 있는 코로나19 환자 이송에 투입되었고,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급증했을 때 전국 소방청의 동원령이 내려져 대구로 지원을 나갔다. 고생하는 대구시의 구급대원을 보며 같은 구급대원으로서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로 소방서에 근무한 지 16년이 되었는데, 선임이다 보니 후임들이 배려해주는 부분이 많다. 각자 상황에 따라 기피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선임인 내가 먼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방공무원은 당연히 이런 감염병이나 재해, 대형 사고가 났을 때 나서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큰 두려움 없이 지원했다.

내가 경험한 대구 대구의 확진 환자가 급증하면서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수용하지 못해 자가격리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병원으로 이송했다. 언론에서는 대구시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다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차분했다. 전국에서 모인 1백50여 대의 구급차가 확진자들을 이송했는데 모두 서두르지 않고 담담하게 협조했다. 구급대원은 구급대원의 역할을 했고, 환자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다.

희망적이었던 시간 확진 환자가 발생하면 집 앞에서 연락해 구급차로 병원까지 이송했다. 나오길 기다리면서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는데, 대체로 차분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여행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서는 모습이었 다.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어서 대구의 상황도 절망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당시 의료기관이 부족해 경북대학교 기숙사 같은 시설로 가기도 했고 다른 지역으로 이송되는 일도 있었지만 혼란은 없고 시간만 필요할 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코로나19와 싸우고 있고 뉴스를 통해 그런 모습을 보면 감동 적이기도 하고 응원하는 마음도 든다. 잠시나마 그들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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