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THE VOICE 성폭력에 맞서는 사람들 ③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

언어가 이끄는 변화

지난해 신설된 한겨레신문사의 젠더데스크는 콘텐츠의 성 인지 감수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젠더 이슈를 논의하는 역할을 한다. 성 인지 감수성에 맞지 않는 표현과 용어, 일러스트와 사진 등은 수정하거나 교체하기도 한다. 심의라기보다는 구성원 전체가 젠더 이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의견을 개진하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함께 바꿔나간다. 한겨레신문사의 이정연 기자는 지난 4월부터 젠더데스크를 맡았다.

먼저 젠더데스크의 역할을 소개해주십시오. 편집국은 지면 기사와 디지털 기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합니다. 이런 콘텐츠가 젠더 감수성에 비춰 합당한지, 누군가에게 이차적으로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난해 5월 만들어진 젠더데스크의 시작점은 사내 학습 동아리인 ‘페미라이터 인 한겨레’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과 미투 관련 보도 등이 터져 나오던 시기에 페미라이터를 만들었고, 모임에서 젠더를 주제로 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어요. 자연스레 <한겨레>의 성폭력, 젠더 관련 기사의 표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게 됐고 관련 영상과 사진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이러한 내용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젠더데스크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끝에 만들어졌습니다.

페미라이터 모임에서 자사 기사도 리뷰했을 텐데, 기사의 어떤 부분이 동시대 젠더 감수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나요? 사실 <한겨레>의 기사를 검토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개인에 대한 지적이 아닌데도 콘텐츠를 검토하다 보면 이를 만든 사람에 대한 지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폭력 스캔들 관련한 사진 기사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피해 여성이 법정에 출두하며 구두를 벗고 보안검색대를 지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또 성폭력 관련 보도에 사용하는 일러스트에 가해자의 범죄 사실이 중요한 문제임에도 위축되어 있는 피해자를 담은 일러스트가 쓰일 때도 있었습니다. 젠더데스크가 생기기 전에는 페미라이터 단체 채팅방에서 이런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페미라이터를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우리의 보도 방향에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가 입사하며 후배 기자들도 분명 의문을 가진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젠더 이슈에 예민하고 민감한 기준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몇몇이 관련 책을 읽는 독서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젠더데스크의 보도 가이드라인이 궁금합니다. 사용하지 않는 단어에 대한 지침이 있나요? 최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권력형 성범죄가 문제가 됐습니다. 당시 <한겨레> 디지털 기사에서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거나 2차 가해로 이어지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를 본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했고 <한겨레>는 바로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물론 지면에는 문제가 되었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젠더데스크의 성범죄, 성 평등 관련 기사 보도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여직원, 여배우, 여판사 등 직업 앞에 ‘여’자를 붙이지 않고, 꼭 필요할 때는 여성 OO라고 쓸 것, 성범죄 관련 사건을 거론할 때 피해자 이름이 아니라 가해자 이름을 사용할 것, 가해행위가 모호하게 표현되는 몹쓸 짓이나 검은 손, 나쁜 손, 파렴치한 짓 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 성폭력이 범죄란 점이 희석되는 성관계나 성 추문이라는 단어 대신 성범죄나 성폭력 범죄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 만취해 참변이나 나 홀로 거주처럼 피해자가 방어에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 것, 가해자를 짐승이나 늑대, 악마로 표현하지 말 것, 은밀한 부위라는 표현을 쓰지 말고 신체라고 표현할 것,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불법 촬영물, 리벤지 포르노가 아닌 보복성 영상물, 음란물이 아닌 성 착취물이나 성 착취 동영상이라 표현할 것 등이 있습니다.

젠더데스크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하는 부분도 있나요? 많습니다. 최근 최말자 씨의 56년 만의 미투 기사를 <한겨레>에서 단독으로 보도했는데, 첫 보도 이후 부제로 ‘56년 만의 미투 최말자 할머니 재심 청구’라고 썼습니 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한해서 할머니라는 표현은 계속 쓰고 있지만, 이 외에는 성별이 드러나는 용어를 지양하고 있어요. 한 주체에게 굳이 할머니라는 단어로 이미지를 덧씌우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n번방 성 착취 범죄와 관련해서도 20대 국회에서 3대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에서 지면에 정부에서 합동으로 대책안을 발표하는 사진과 더불어민주당이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하는 기자 간담회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를 보고 기사에 필요한 사진은 여성들의 시위 사진이라고 판단해 사진을 교체했습니다.

기자 한 명이 젠더데스크를 담당하고 있으니 자신의 젠더 감수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필요할 텐데요. 서울 YWCA가 만드는 대중매체 보도 모니터링 보고서가 있습니다. 예전 보고서도 찾아 읽어보곤 합니다. SNS도 도움이 많이 돼요. 언론 보도에 대한 비평의 글이 자주 올라오는데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면 좋은 자극이 되고요.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젠더 감수성의 변화가 느껴지는지요. 물론입니다. 회사 안에서도 그런 변화가 느껴집니다. 성 인지 감수성에 부합하지 않는 단어나 표현을 지적하면 수용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젠더데스크가 하자는 대로 다 하겠다며 응원하는 동료 기자도 있고요. 기사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기민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사실 기자 입장에서는 기사 수정을 요청하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데도 모두 잘 수용해요. 편집국의 편집위원 가운데 여성 비율도 높아졌고요. 개인적으로는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지도 고민합니다. 언론이 앞서 나가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면도 있지만, 현재 대중의 언어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상식 수준을 잘 지켜가고자 해요.

처음 젠더데스크를 맡고 가장 크게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페미라이터를 만들었고, 꾸준히 활동해왔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상처받지 않고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했어요. 또 미처 모니터링하지 못한 빈틈에서 큰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했습니다. 얼마 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관련 보도도 속보로 나가면서 부적절한 표현이 있어 한겨레사는 적극적으로 사과 했어요. 온라인 기사에 사과 문구를 넣는 데 그치지 않고 지면에 한 번 더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국장과 편집위원 모두 적극적으로 사과문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함께 싸우고 있는 부산 성폭력 상담소에도 전화를 걸어 피해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고요. 실수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에 대한 대응을 보며 성 인지 감수성이 크게 나아 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제가 젠더데스크를 맡은 지 한 달쯤 되었고, 그 전에는 임지선 젠더데스크가 있는 동안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페미라이터 채팅방에서 오가던 내용이 이제는 공식적인 입장과 방향 성이 되어가는 변화가 흥미롭습니다.

n번방 보도와 관련해 언론사마다 조금씩 다른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한겨레>에서는 n번방 성 착취라고 표현하는데, 단어를 신중하게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사건을 보도 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이름을 짓고 호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 착취라는 범죄 유형을 명확히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n번방 성 착취 범죄를 취재한 기자에 따르면 취재 당시 n번방에서 유포되는 영상은 성을 착취한 불법 영상물이고, 이를 시작점 삼아 취재가 시작되었지요. 엄연한 범죄에 대해 명확히 이름 짓지 않으면 언론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제보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도 n번방 성 착취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고요. 기사 가운데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기사도 그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잠입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취재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에요. 한겨레사 취재팀은 잠입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돈을 내고 들어가지 않은 거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에서는 앞으로도 n번방 성 착취 범죄 관련 취재를 꾸준히 지속할 예정인가요?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후속 취재를 준비 중입니다.(인터뷰가 있고 일주일 뒤 <한겨레>는 성착취와 불법도박 산업의 공생 관계 실태를 다룬 ‘n번방과 불법도박, 범죄의 공생’ 4회 기사 중 1회 기사를 공개했다.)

현재 SNS에서도 n번방 가해자 처벌을 위한 해시태그 공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여론을 들끓게 한 성범죄도 가벼운 처벌로 끝난 적이 많습 니다. 이런 움직임이 과연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지 회의감마저 드는데요. 그렇다 해도 여론이 지속적으로 사건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뜨거운 여론이 있기에 언론에서도 좀 더 취재하려고 하고 경찰도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움직이고 있거든요. 여론이 있어야 세상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n번방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만 해도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을 때 증거물을 가져와 보여줄 때까지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변화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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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라는 장르

실험적인 서사와 탐미적인 언어로 고유한 스타일을 구축한 작가 박솔뫼가 소설 <고요함 동물>로 돌아왔다. 소설 속 ‘나’는 작가가 선사하는 공간과 기억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간다. 고양이 탐정 ‘차미’와 함께 수상한 기미와 징조들을 성실히 따라가보길.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 탐정소설을 쓰고 싶다고 밝혔고, 드디어 탐정소설 <고요함 동물>을 출간했다. 사실 언젠가 탐정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갖고 있다. <고요함 동물>은 탐정소설이라기보다 탐정소설의 여러 장면을 가져와 본래 내가 쓰는 스타일에 활용했다고 하는 편이 더 알맞다.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본격적으로 쓰기에는 아직 그에 맞는 상태가 되지 않은듯해서 내가 좋아하는 탐정소설의 순간들을 가져왔다. 소설 제목은 깊이 고민하기보다는 길을 걷다 우연히 떠오른 단어에서 착안했다.

소설 속 구성이 반복된다. 작품은 주인공의 ‘일상’과 고양이 발자국이 찍힌 ‘사건’, ‘대화’와 ‘대화의 끊김’같은 구성으로 이어지는데, 나의 다른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런 구성을 자연스럽게 여기기는 듯하다.

고양이 차미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으로 등장한다. 고양이를 등장시킨 이유가 있나? 주변에 고양이와 함께 사는 친구들이 많다. 차미 역시 친구의 고양이 이름이다. 함께 있을 때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만큼 고양이만 보고 있어서 언젠가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거대한 시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친근한 소재를 선택했지만 반복 어구나 리드미컬한 문장의 흐름으로 서사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내 소설에 일관된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때그때 다른 것 같다. 처음 작품을 쓰고자 한 순간이나 장면에 집중하려고 한다. <고요함 동물>은 전작들과 달리 좀 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귀여운 이야기다.

‘좋아하는 소설들과 긴장감을 유지하며 글을 쓰고, 그 태도를 좋아한다’고 말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글을 쓰며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가 있다면 누구인가? 최근 수년간은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결과물인 내 소설이 볼라뇨의 소설과 비슷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이다. 아무리 좋아해도 비슷한 결과로 출력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지난해에는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책 <실내연구>와 연결된 ‘방의 복원’, 즉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태도는 전작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각 공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늘 공간과 장소에 흥미를 느낀다. 항상 어딘가를 궁금해하고 그곳이 어떤지,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생각하는 편이다. 평소 생각에서 소설이 시작되기 때문에 공간이 중심이 되는 소설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다. 밖에 나갔다가 방으로 돌아오면 방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고 그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편해지지 않나. 이런 식으로 미세하게 변화하는 상태를 ‘방의 복원’이라고 표현했다.

<실내연구>를 쓴 작가 피에르 소골의 집은 김포발 하네다행 비행기 내부다.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든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로웠다. 비행기 내부에 관해 쓸 때 가장 몰입했고, 글을 쓰며 기분도 좋았다. 비행기 안에서는 평소에 하던 행동을 쉽게 하지 못하고 제한된 상황에 놓인다. 비행하는 동안은 행동에 제약이 있으니, 다른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책을 읽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다. 현실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감각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5장의 ‘고양이는 소리 냄새 촉감 움직임 등으로 고유의 실내를 구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방에 떨어진 회색 캐시미어 니트가 회색 고양이로 변하는 장면에서는 공간뿐 아니라 고양이까지 만들어진 셈이다. 작품에는 친구들의 고양이와 길에서 스친 고양이들의 특징이 섞여 있다. 특히 ‘작가의 말’에 쓴 고양이들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아한 표정의 흰 고양이 ‘두모’, 분홍색 입이 매력적인 큰 고양이 ‘꼼이’, 초록색 눈을 가진 ‘오이’, 고등어 고양이 ‘짱이’ 등이다. 특히 5장의 ‘나’가 도쿄 여행을 마치고 호텔 방에 들어섰을 때 만난 회색 과학자 고양이 ‘미오’는 ‘나’가 벗어놓은 회색 캐시미어 니트로 묘사되지만 실제로 니트로 구성된 것은 아니다. 작품 속 ‘나’는 평상시에 좋아하는 방의 장면들을 마음속으로 꼽아보며 잠이 드는데, 이런 생각들은 실제 형태로 존재하며 또 다른 방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공간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품 속 세계를 구축할 때 중시하는 점이 있나?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늘 어렵다. 다만 ‘이상한 자연스러움’의 상태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12장의 마지막 구절 ‘모든 방은 스스로를 복원하며 방 바로 그 자신이 될 것이다’는 결국 작품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말, 즉 공간을 통해 진짜 자아를 찾는 과정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비슷한 구절을 <Viewers>라는 전시 관련 출판물에 수록된 글에 쓴 적이 있다. 이 글을 쓰며 방이 복원되는 상태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다가 이번 소설에서 확장하게 됐다.

<고요함 동물>의 마지막에는 해설 대신, 동화 <차미 새미 보미>가 담겨 있다. 원래 해당 시리즈에는 작품 해설이 들어가는데, 해설이 붙는 것이 어울리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즈음 전시 도록에 쓴 <차미 새미 보미>를 수록해도 괜찮을 것 같아 마지막 장에 담았다. 난해하거나 복잡한 소설은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해석하며 읽기 바란다. 한 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도 좋지만 읽다가 잠시 쉬면서 커피도 마시고 산책도 하며 읽는 것을 추천한다.

박솔뫼의 작품에는 항상 다양한 평론과 독자들의 반응이 따른다. 다양한 시각을 담은 다채로운 해석을 볼 때 작가로서 어떤 기분이 드나? 늘 흥미롭게 읽는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반응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부산에 가고 싶어진다는 평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늘 기분이 좋다.

박솔뫼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전에는 이런 질문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삶에서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다음 작품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 곧 단편집을 시작한다. 평소처럼 자리에 앉아 간단히 목과 어깨를 스트레칭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다가 또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일어나 산책한 뒤 원고 쓰기를 반복할 것이다. 하반기에는 장편소설 연재도 시작한다. 그 전까지 무사히 원고를 잘 고쳐볼 생각이다.

BE THE VOICE 성폭력에 맞서는 사람들 ②

브리 리 작가 겸 여성운동가, 퀸즐랜드 지방법원 前 재판연구원

눈물을 닦고 상처를 마주해 진실을 고발하기까지

어린 시절 오빠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십 수 년의 시간을 버텨왔다. 그러다 사춘기를 겪으며 내적 방향성이 ‘진실과 정의’를 향해 있음을 깨달았고, 정의 같은 걸 찾으려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뒤로하고 지방법원의 재판연구원이 되었다. 1년간 법원에서 일하며 수많은 성범죄 사건을 마주하는 건 더없이 고통스러웠지만, 이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직면할 수 있었다. 결국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건을 고발했고, 피고인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는 작가이자 여성운동가 브리 리의 실제 이야기이며, 그는 법조인이자 성폭력 피해자로서 감내하고 고통받다 용기를 낸 경험을 담아 책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을 썼다. 자해까지 이어지던 성폭력 피해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고소인으로서 법정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한 그는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울어야지.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고 나서는 눈물을 닦고 다시 정신을 차려야지. 그 러곤 분노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지. 그래야지.”

십 수 년 동안 혼자 견뎌온 일을 가족, 애인, 친구에게 말하고 고소하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듯 이 책을 내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법률 시스템의 명암을 모두 아는 특수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법조계에서 일하는 사람 중 정작 자신의 불만을 법정에 호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자신의 법조 경력을 담보로 시스템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변호사도 거의 없고요. 저처럼 특권을 가지고 주변의 지지를 받는 사람도 이런 일을 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책은 창작자가 온전히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예술의 종류라는 생각에서 책을 통해 제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습니다.

책 제목을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계란껍질 두개골 원칙(가해자 완전책임)’은 무척 흥미로운 개념입니다. 이름만 듣고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원리는 간단합니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을 때렸는데 B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B의 두개골이 마치 계란 껍데기처럼 얇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해도 A는 자신의 행동이 일으킨 파문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범죄자는 행위의 심각성을 가늠할 자격이 없으며, 피해자가 나올 때마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죠. 이 원칙은 약자인 고소인을 배려하고 보호하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로스쿨 시절에 처음 배운 뒤로 오랫동안 이 개념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민해왔고, 성범죄 사건에서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이를 책 제목
으로 택했습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나뉩니다. 1부에는 재판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마주치는 성범죄 사건을 통해 과거 자신이 겪은 일을 밖으로 꺼내는 과정이, 2부에는 과거 성폭력의 가해자를 고소하고 끝내 유죄판결을 얻어내는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읽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지치는 이 과정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아주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책을 통해 제대로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제게는 훌륭한 친구들과 의지가 되는 동반자와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었으니까요. 제가 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모두 저를 믿어주었습니다. 그들의 지지 없이는 저는 살아남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브리즈번에서 2시간 떨어진 지역 워릭(Warwick)에서 마주한 사건의 피해자가 결정적으로 제게 용기를 심어줬습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상황을 언급한 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곧 끝을 맺는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안도감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마침내 스스로를 위해 정의를 되찾는 노력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성폭행 피해의 트라우마로 폭음, 폭식, 자해까지 했다는 내용은 충격적이지만, 사실 이는 성범죄 피해자 대부분이 겪는 일입니다. 이런 행동과 감정은 어디에서 기인한 거라고 생각하나요? 이건 무척 복잡한 문제입니다. 지금도 괴로워하는 분이 있다면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권합니다. 저는 심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 분야가 아닌 부분에 대해 조언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저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적 학대나 성인 간의 성폭력을 비롯한 성범죄가 널리 퍼져있고, 이 사회가 가해자보다 피해 생존자를 비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이유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보다 피해 생존자들을 비난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요. 사회가 전가하는 수치와 비난을 피해자가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여타 사건과 달리 성범죄 사건은 유독 피해자에게 가혹한 측면이 있습니다. 피해자는 피해 당시 야한 옷을 입고 있어서는 안 되고, 관계를 원치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도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가해자는 술을 마셨다거나, 어린 시절 학대당한 트라우마가 있다거나, 자신의 힘이 얼마나 센지 몰랐다거나 이 중 하나에만 해당해도 이를 이유로 유죄판결을 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법과 절차는 피해자가 인간으로 존중받거나 신뢰받지 못하는 세상의 산물입니다. 피해자를 존중한다면 이러한 범죄는 지금보다 덜 일어날 겁니다. 또 피해자를 신뢰한다면 이러한 범죄에 대한 고발도 많아질 겁니다. 우리의 법률 시스템은 많은 사람의 태도만큼이나 과거에 갇혀 있습니다. 진보는 이처럼 느리고 어려운 일입니다.

성범죄 사건의 법적 절차에 필요한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모든 사람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할 때, 하다못해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도 보호받고 존중받고 신뢰받아야 합니다. 피고인은 무죄 추정의 원칙으로 보호받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고발인은 공정한 재판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 시스템이 고발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셈입니다. 고발인은 이런 시스템 속에서 아무런 힘도 없고, 아무런 존중도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보다 공평하게 만들면 더 많은 고발이 뒤따를 것이고, 사람들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싸우기를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모든 해악에 대해 책임져야 할
유일한 사람은 바로 가해자입니다.”

용기를 내어 과거의 사건을 고소하고 유죄판결을 얻어낸 이후 내적, 외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무적입니다. 스스로를 위해 싸운 저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그 마음은 배심원의 평결이 다른 방향으로 내려졌더라도 똑같았을 겁니다. 싸우는 과정은 제가 겪은 가장 무섭고 어려운 사건이었고, 앞으로 그보다 더 힘든 일이 있을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제 제게 너무 강하거나 무서운 적 따위는 없습니다.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호주 법조계와 사회에도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미투 운동은 많은 것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그간 여성들이 높은 확률로 학대와 추행, 폭력을 당해왔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라도 알 정도로 널리 퍼졌습니다. 퀸즐랜드에서는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성범죄를 다시 심의하도록 하기 위해 싸워왔고, 실제로 현재 심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2년 전 미투 운동이 일어난 이후 성범죄 근절을 위한 여성들의 적극적인 행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엄청난 백래시도 있고, ‘혐오’라는 이름의 갈등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때때로 못된 짓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때로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가기도 하지만, 법적 절차가 따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권력자들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죠. 그들이 두려워하고 방어적으로 나오리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에요.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아무 거리낌 없이 여성을 학대하고 유린하다가, 갑자기 이런 행위로 유죄로 잡혀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당연히 화도 나고 무섭기도 하겠죠. 페미니즘은 평등을 위해 싸우는 것이며,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답답한 일이기도 해요. 변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는 없어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책 말미에 ‘그가 건드렸던 여자아이가 분노한 페미니스트로 성장했으니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소녀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제가 믿는 가치를 위해 싸우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가치는 바로 평등입니다. 모두가 평등하길 바라는 마음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여전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여러분은 강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위해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목소리를 내고 항의한다고 해서 그로 인해 일어나는 힘든 일이나 귀찮은 일을 여러분이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 모든 해악에 대해 책임져야 할 유일한 사람은 바로 가해자입니다. 계속해서 경찰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끊임없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사랑받으십시오. 그들이 좋은 사람이라면, 이러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원천이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겁니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모든 세대는 새로운 형태의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다만 모두가 바라는 최종적인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고, 지금을 사는 저 역시 완벽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렇지만 아름답고 멋진 세상은 어떻게 그것을 발전시킬지, 그리고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저는 이미 가장 아름답고 멋진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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