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THE VOICE 성폭력에 맞서는 사람들 ④

이토 시오리 저널리스트

희망을 위한 최선의 선택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인 이토 시오리. 수차례 이메일이 오간 끝에 그와 스카이프를 통한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걸려온 영상 통화 속 이토 시오리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 나는 법을 바꾸는 사람도 아니고 사람들을 교육하는 교육자도 아니지만 어떤 문제에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며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내 피해 경험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무척 괴롭다. 이렇게 걸으면서 인터뷰하는 것도 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일은 여전히 힘겹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 시오리는 희망을 주기 위해 인터뷰에 나섰다. 매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 전해지고, 이를 보는 피해자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수 있다는 희망. “우리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세상은 변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저서 <블랙박스>를 한국에 출간할 당시 성폭행 가해자인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TBS 방송 기자와 민사소송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송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민사소송 승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민사소송을 진행하면서 그 전보다 더 자세하게 증언이나 증거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상대가 하고 싶은 말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사소송을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승소했을 때는 무척 놀랐습니다. 일본의 법상 조금 힘들 거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고 여태까지 일본에선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은 사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런 결과로 이어진건 민주주의 운동이나 인식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 보다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진실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제가 소송 함으로써 저도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증언해준 사람을 비롯해 몰랐던 사실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의미 깊은 일이에요.

형사소송에서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민사소송으로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소송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불기소처분을 받고 저와 변호사는 새로운 증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형사소송을 진행한 2015년에는 일본에서 성폭력 관련 법이 개정되기 전 형법에 따랐기 때문에 더 힘든 부분도 있었습니다. 강간이 성립되려면 협박이나 폭행이 얼마나 있었는지 증명해야 합니다. 그게 큰 벽이어서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 그 부분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었어요. 그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 뒤에 법이 개정됐지만 지금도 그 부분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긴 싸움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과거의 사건을 반복해서 말해야 했고 때론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한 싸움을 시작한 것이 후회되지는 않나요? 후회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 경험을 얘기하지 않고 소송을 진행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싸우기 위해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 다. 경찰이나 사법부가 제 기능을 하는 사회였다면 대중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할 필요는 없었을 테죠.

한국에서는 현재 n번방 성 착취 범죄라고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디지털 성폭력에 무감각했기 이렇게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최근 보복성 영상물 관련 법률이 제정 됐습니다. 인터넷에서 그런 영상이 퍼지면 피해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각하게 퍼지죠.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건 사건 이후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과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경찰이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이나 사건이 알려지고 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마음대로 사건을 판단한다는 점이 성범죄를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게 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사건을 알린 후 정신적인 피해가 계속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디어가 성범죄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 또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특히 안타까운 이유는 피해자의 피해 기록이 영상으로 남기 때문입니 다.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나요? 정확히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영상을 촬영당하고, 이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는 사건은 굉장히 많습니 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요.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성인 포르노물(AV) 촬영을 거부하면 계약 위반이라는 식으로 협박하고 촬영을 강요하는 일이 있습니다. 또 불법 카메라가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교복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갈 때 누군가 숨어서 사진을 찍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저를 포함한 많은 여성이 이런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성폭력 사건은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잘못된 여론을 낳기도 합니 다. 이런 이유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가 쉽지 않고요. 미투 운동이 세계적으로 활발히 일어나면서 피해자를 보는 시선이 변화한 것을 체감하나요? 우선 피해 사실을 알리길 주저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성폭력 방지 센터를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예요. 제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폭력을 겪은 후 내게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지, 내가 잘못한 건 없는지 곱씹으며 저 자신을 탓했습니 다. 아마 많은 피해자가 이런 생각을 할 거예요. 그런 일을 겪고 왜 바로 알리지 않았는지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서울 성폭력 방지 센터에서 만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겁니다. 고마워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들었지만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칭찬을 들은 적은 없었어요. 그 말이 아주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사건 이후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일어난 사건과 내가 입은 피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본인이라는 겁니다. 설령 나를 의심하고 곤란에 처하게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성폭력 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는 건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이 성폭력이 어두컴컴한 골목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 동의합니다. 미투 운동 이후 많은 여성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성폭력이 얼마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그 범죄의 심각성을 알렸습니다.

 n번방 성 착취 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신고가 아닌 n번방의 실체를 최초로 알린 대학생 기자단이 경찰에 제보하면서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미투 운동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는 거지만, 사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피해자가 직접 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성폭력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뿐 아니라 목격하고도 못 본 척하는 제 삼자가 존재할 때가 있습니다. 미투에는 ‘나도 보고 들었어’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성폭력을 목격한 사람은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한국의 n번방 사건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일을 문제 삼아 알리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행동입니다.

미투 운동은 약자의 연대를 의미하기도 합니 다. 앞으로 미투 운동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이를 위해 어떻게 기여하고 싶은지요? 미투 운동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저는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디어는 일어난 일에 대해 깊이 있게 보도해야 합니다. 저는 저널리스트 로서 잠시 흥밋거리로 소비되고 마는 뉴스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뉴스로 다루지 않은 문제에 대해 다큐멘터리나 르포르타주 형식 으로 알리려고 합니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중 시에라리온을 비롯해 아프리카 지역의 아동 성폭력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년이 되어갑니다. 이미 아프리카에 네 번 정도 다녀왔고, 한 번 가면 2~3주 머뭅니다. 올해 1 월에도 현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다녀왔어요. 장기 프로젝트여서 앞으로도 작업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이 밖에도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전하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어두운 진실을 불편하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통해 마치 내 동생이나 내 딸에게 일어난 일처럼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스에서는 피해자 A씨라 칭한다면 다큐멘터리는 피해자를 보다 인간적으로 다룹니다. 가볍게 소비 되는 정보를 전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시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어릴 때는 인터넷이 없었습니다. 또한 여자니까 여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선입견에 갇혀 자랐습니다. 어른이 되어 제 생각을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딸, 엄마처럼 성별에 따라 정해진 틀 역시 필요하지 않고요. 인터넷은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서지현 검사를 만난 곳이기도 합니다. 번역기를 동원해가며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건 인터넷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인터넷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를 알게 된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동시에 오늘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처럼 인터넷을 통해 취재할 수 있고, 제게 용기를 주는 두 사람(기자와 통역사)을 볼 수 있는 것도 인터넷 덕분입니다. 결국 디지털 세상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공존해야 하는 세상이죠.

오직 여기 ①

영앤도터스

매장 안에 로스팅 룸을 갖춰 직접 생두를 선별하고 로스팅해 원두 납품과 판매를 겸한다. 싱글 브루잉, 아메리카노, 카페 라테, 딥 카라멜 라테, 바닐라 밀크 이 다섯 가지 메뉴에 집중하며 시즌별로 메뉴를 한두 가지씩 변경할 예정이다. 올여름에는 콜드 브루 원액을 얼린 아이스크림에 바닐라 밀크를 조절해가며 부어 먹는 ‘멜팅 라테’를 새롭게 출시한다.

딥 캐러멜 라테 캐러멜 베이스의 따듯한 음료로 컵 끝에 캐러멜 시럽과 설탕, 잘게 부순 견과류 쿠키를 둘렀다. 한곳으로 마시기보다는 컵을 돌려가며 남김없이 먹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156
영업시간 평일 07:00~17:00, 주말 12:00~17:00
문의 02-6487-0207

 

업사이드 커피 뚝섬점

해방촌 꼭대기의 골목 끝에 자리한 로스터리 카페 ‘업사이드 커피’가 뚝섬에 2호점을 열었다. 매일 친숙한 일상의 커피를 지향하는 업사이드 커피에서는 구운 땅콩, 발아 보리 향이 나는 ‘필업’과 좀 더 가볍고 잎차 느낌을 내는 ‘써니 사이드’ 두 가지 블렌드를 제공하며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원두도 판매한다. 뚝섬점에서는 각 지점의 지역 이름을 딴 시그니처 음료 두 가지를 모두 마실 수 있다.

해방촌 커피, 뚝섬 커피 시럽을 넣은 달달한 라테에 크림을 올린 ‘해방촌 커피’와 달달한 라테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넣고 견과류 쿠키 크럼블을 올린 ‘뚝섬 커피’는 균형 잡힌 단맛과 고소함이 특징.

주소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14길 19-1
영업시간 평일 08:00~20:00, 주말 12:00~20:00
문의 070-8802-7579

 

내자상회

조선시대 궁중의 식품을 관리하던 내자시의 터인 현재 건물의 위치에서 영감을 얻었다. 킨토, 본에나멜웨어 등 주방용품 중심의 생활 잡화를 판매하는 겸 카페로 1백 년 가까이 된 한옥의 미감을 곳곳에 간직하고 있다. 시그니처 메뉴는 대부분 쑥과 관련돼 있으며 시즌마다 스페셜 시그니처 메뉴가 추가된다.

쑥 라테, 단풍 라테 ‘쑥 라테’는 쑥 파우더를 넣은 우유에 분홍빛 팥 크림을 올려 달콤 쌉싸름하고, 얼그레이 시럽을 가미한 ‘단풍 라테’는 베르가모트 향을 진하게 풍기는 크림 커피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10길 3
영업시간 매일 10:00~22:00
문의 070-7755-0142

 

하프커피 안국점
커피와 크림이 반씩 조화를 이룬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하프커피’. 북촌의 오래된 로스팅실을 개조해 첫 로드숍을 오픈했다. 안국점에는 원두 본연의 맛을 살려 로스팅한 7종 이상의 싱글 오리진이 마련돼 있으며, 최근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해 집에서도 하프커피의 시그니처 음료를 맛볼 수 있다.

버터 크림 라테 순도 99.9% 이상의 우유를 함유한 크림과 버터에 최적의 밸런스로 블렌딩한 에스프레소를 더해 완성되는 메뉴. 스카치 캔디 맛 커피로 이름을 알렸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2
영업시간 매일 10:00~21:00
문의 070-7780-6665

BE THE VOICE 성폭력에 맞서는 사람들 ③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

언어가 이끄는 변화

지난해 신설된 한겨레신문사의 젠더데스크는 콘텐츠의 성 인지 감수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젠더 이슈를 논의하는 역할을 한다. 성 인지 감수성에 맞지 않는 표현과 용어, 일러스트와 사진 등은 수정하거나 교체하기도 한다. 심의라기보다는 구성원 전체가 젠더 이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의견을 개진하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함께 바꿔나간다. 한겨레신문사의 이정연 기자는 지난 4월부터 젠더데스크를 맡았다.

먼저 젠더데스크의 역할을 소개해주십시오. 편집국은 지면 기사와 디지털 기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합니다. 이런 콘텐츠가 젠더 감수성에 비춰 합당한지, 누군가에게 이차적으로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살펴보고 문제를 제기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난해 5월 만들어진 젠더데스크의 시작점은 사내 학습 동아리인 ‘페미라이터 인 한겨레’입니다. 강남역 살인 사건과 미투 관련 보도 등이 터져 나오던 시기에 페미라이터를 만들었고, 모임에서 젠더를 주제로 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어요. 자연스레 <한겨레>의 성폭력, 젠더 관련 기사의 표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게 됐고 관련 영상과 사진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이러한 내용을 전반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고 젠더데스크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끝에 만들어졌습니다.

페미라이터 모임에서 자사 기사도 리뷰했을 텐데, 기사의 어떤 부분이 동시대 젠더 감수성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나요? 사실 <한겨레>의 기사를 검토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개인에 대한 지적이 아닌데도 콘텐츠를 검토하다 보면 이를 만든 사람에 대한 지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 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폭력 스캔들 관련한 사진 기사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피해 여성이 법정에 출두하며 구두를 벗고 보안검색대를 지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을 사용했습니다. 또 성폭력 관련 보도에 사용하는 일러스트에 가해자의 범죄 사실이 중요한 문제임에도 위축되어 있는 피해자를 담은 일러스트가 쓰일 때도 있었습니다. 젠더데스크가 생기기 전에는 페미라이터 단체 채팅방에서 이런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페미라이터를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우리의 보도 방향에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가 입사하며 후배 기자들도 분명 의문을 가진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젠더 이슈에 예민하고 민감한 기준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몇몇이 관련 책을 읽는 독서 모임으로 시작했습니다.

젠더데스크의 보도 가이드라인이 궁금합니다. 사용하지 않는 단어에 대한 지침이 있나요? 최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권력형 성범죄가 문제가 됐습니다. 당시 <한겨레> 디지털 기사에서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거나 2차 가해로 이어지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를 본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했고 <한겨레>는 바로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물론 지면에는 문제가 되었던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젠더데스크의 성범죄, 성 평등 관련 기사 보도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여직원, 여배우, 여판사 등 직업 앞에 ‘여’자를 붙이지 않고, 꼭 필요할 때는 여성 OO라고 쓸 것, 성범죄 관련 사건을 거론할 때 피해자 이름이 아니라 가해자 이름을 사용할 것, 가해행위가 모호하게 표현되는 몹쓸 짓이나 검은 손, 나쁜 손, 파렴치한 짓 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 성폭력이 범죄란 점이 희석되는 성관계나 성 추문이라는 단어 대신 성범죄나 성폭력 범죄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 만취해 참변이나 나 홀로 거주처럼 피해자가 방어에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 것, 가해자를 짐승이나 늑대, 악마로 표현하지 말 것, 은밀한 부위라는 표현을 쓰지 말고 신체라고 표현할 것,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불법 촬영물, 리벤지 포르노가 아닌 보복성 영상물, 음란물이 아닌 성 착취물이나 성 착취 동영상이라 표현할 것 등이 있습니다.

젠더데스크의 의견을 반영해 수정하는 부분도 있나요? 많습니다. 최근 최말자 씨의 56년 만의 미투 기사를 <한겨레>에서 단독으로 보도했는데, 첫 보도 이후 부제로 ‘56년 만의 미투 최말자 할머니 재심 청구’라고 썼습니 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한해서 할머니라는 표현은 계속 쓰고 있지만, 이 외에는 성별이 드러나는 용어를 지양하고 있어요. 한 주체에게 굳이 할머니라는 단어로 이미지를 덧씌우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n번방 성 착취 범죄와 관련해서도 20대 국회에서 3대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에서 지면에 정부에서 합동으로 대책안을 발표하는 사진과 더불어민주당이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하는 기자 간담회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를 보고 기사에 필요한 사진은 여성들의 시위 사진이라고 판단해 사진을 교체했습니다.

기자 한 명이 젠더데스크를 담당하고 있으니 자신의 젠더 감수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필요할 텐데요. 서울 YWCA가 만드는 대중매체 보도 모니터링 보고서가 있습니다. 예전 보고서도 찾아 읽어보곤 합니다. SNS도 도움이 많이 돼요. 언론 보도에 대한 비평의 글이 자주 올라오는데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하면 좋은 자극이 되고요.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젠더 감수성의 변화가 느껴지는지요. 물론입니다. 회사 안에서도 그런 변화가 느껴집니다. 성 인지 감수성에 부합하지 않는 단어나 표현을 지적하면 수용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젠더데스크가 하자는 대로 다 하겠다며 응원하는 동료 기자도 있고요. 기사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기민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사실 기자 입장에서는 기사 수정을 요청하면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데도 모두 잘 수용해요. 편집국의 편집위원 가운데 여성 비율도 높아졌고요. 개인적으로는 어디까지 밀어붙일 것인지도 고민합니다. 언론이 앞서 나가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면도 있지만, 현재 대중의 언어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 상식 수준을 잘 지켜가고자 해요.

처음 젠더데스크를 맡고 가장 크게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페미라이터를 만들었고, 꾸준히 활동해왔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상처받지 않고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했어요. 또 미처 모니터링하지 못한 빈틈에서 큰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했습니다. 얼마 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관련 보도도 속보로 나가면서 부적절한 표현이 있어 한겨레사는 적극적으로 사과 했어요. 온라인 기사에 사과 문구를 넣는 데 그치지 않고 지면에 한 번 더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국장과 편집위원 모두 적극적으로 사과문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함께 싸우고 있는 부산 성폭력 상담소에도 전화를 걸어 피해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고요. 실수는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에 대한 대응을 보며 성 인지 감수성이 크게 나아 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제가 젠더데스크를 맡은 지 한 달쯤 되었고, 그 전에는 임지선 젠더데스크가 있는 동안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페미라이터 채팅방에서 오가던 내용이 이제는 공식적인 입장과 방향 성이 되어가는 변화가 흥미롭습니다.

n번방 보도와 관련해 언론사마다 조금씩 다른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한겨레>에서는 n번방 성 착취라고 표현하는데, 단어를 신중하게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사건을 보도 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이름을 짓고 호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 착취라는 범죄 유형을 명확히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n번방 성 착취 범죄를 취재한 기자에 따르면 취재 당시 n번방에서 유포되는 영상은 성을 착취한 불법 영상물이고, 이를 시작점 삼아 취재가 시작되었지요. 엄연한 범죄에 대해 명확히 이름 짓지 않으면 언론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제보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도 n번방 성 착취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언론사도 마찬가지고요. 기사 가운데 성 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기사도 그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잠입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취재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에요. 한겨레사 취재팀은 잠입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돈을 내고 들어가지 않은 거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겨레>에서는 앞으로도 n번방 성 착취 범죄 관련 취재를 꾸준히 지속할 예정인가요?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후속 취재를 준비 중입니다.(인터뷰가 있고 일주일 뒤 <한겨레>는 성착취와 불법도박 산업의 공생 관계 실태를 다룬 ‘n번방과 불법도박, 범죄의 공생’ 4회 기사 중 1회 기사를 공개했다.)

현재 SNS에서도 n번방 가해자 처벌을 위한 해시태그 공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여론을 들끓게 한 성범죄도 가벼운 처벌로 끝난 적이 많습 니다. 이런 움직임이 과연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칠지 회의감마저 드는데요. 그렇다 해도 여론이 지속적으로 사건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뜨거운 여론이 있기에 언론에서도 좀 더 취재하려고 하고 경찰도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움직이고 있거든요. 여론이 있어야 세상이 조금씩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n번방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만 해도 이 사건을 경찰에 신고했을 때 증거물을 가져와 보여줄 때까지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변화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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