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주현

멀티컬러 스트라이프 셔츠 원피스와 펠트 뮬 모두 제이더블유 앤더슨(JW Anderson).
셔링 디테일 블랙 톱 아모멘토(Amomento).
그린 체크 카디건, 미니스커트, 블랙 레더 롱부츠 모두 미우미우(Miu Miu).

블랙 슬리브리스 점프수트 로우클래식(Low Classic).
레이스 칼라 포인트 재킷과 블랙 레더 롱부츠 모두 미우미우(Miu Miu).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을 이끌어가는 신인 배우 4명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촬영 순서로 치자면 필모그래피를 채운 첫 작품이어서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정신없이 촬영 했다.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은 게 행복하고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일을 하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인 데, 결과까지 좋아서 스태프들과 감독님, 작가님에게 많이 감사하다. 사실 모두 그분들의 공이니까.

드라마가 공개된 후 들은 평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뭔가? ‘눈빛이 좋다’. 선과 악이 모두 있는 눈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는 내가 가진 이런 점을 좀더 똑똑하게 사용하고 싶어졌다. <인간수업>이 첫 작품이어서 나 때문에 피해를 입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 땀, 눈물이 들어가는지 아니까 그분들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촬영하는 동안에는 마음의 여유도 없고 잠도 잘 못 잤다. 한 번 뱉으면 다시는 뱉을 일 없는 대사를 내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규리’를 만들어가면서 가장 고민한 지점은 뭔가? 기능적인 인물에 그치진 않을까, 평면적인 인물로 보이지 않을까 두려웠다.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부풀리는 데 오래 걸렸고 힘들게 만들어갔다. 규리는 나이에 비해 자신을잘 컨트롤하지만 어쨌든 미성년자니까 철없는 마음도 담아야 했다. 하지만 규리를 연기하는 나는 성인이다 보니 계산적이지 않은 지점을 어떻게 표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범죄를 계획할 때는 계산적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감정은 계산하지 않고 연기하고 싶었다. 대본으로 만난 규리는 쉽게 정의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인간수업>을 만나기 이전의 배우 박주현이 궁금하다. 연극으로 먼저 데뷔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입학 후 2년 동안 외부 활동을 할 수 없고, 학교에서 만드는 영화나 학생끼리 만드는 영화를 통해 필모그래피를 쌓을수 있는데 그때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만났다. 호기심이 많아 내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작품을 해왔다. 이런 경험 덕분에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겪는 고충과 그분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게 됐다. 지금 내게 연기는 굉장히 복잡하고 큰 존재다. 원래는 음악을 좋아했던 터라 고등학생 때는 밴드부에서 보컬을 맡았었다. 그러다 연기를 하면 노래를 더 잘할 수 있다는 말에 취미 삼아 연기를 시작했는데 빠져버렸다. 원래 하나에 꽂히면 주저하지 않고 깊이 파고드는 편이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때마침 대학 입시 무렵이어서 진로를 연기로 정했다. 돌이켜보면 <인간수업>을 만나기까지 지나온 시간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연기는 해보니 처음 생각한 것과 어떤 지점에서 다르고 어떤 지점에서 기대 이상인가? 연기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고 더 깊고 더 어렵다. 하루하루 행복하고 감사하지만 배우는 연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좋은 작품과 인연을 만나야 하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 자체가 좋은 기운을 계속 뿜어야 한다.

<인간수업> 현장은 개인적으로 첫 상업 드라마 현장이었으니 많은 것이 낯설었겠다. 감독님이 신인 배우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드라마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고 재미있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닌데, 누구 하나 지치지 않도록 감독님이 선장 역할을 했다.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던 (김)동희와는 촬영 전에 따로 리딩 연습도 했다. 다들 경험이 많지 않아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고, 촬영이 무섭고 설레었을 것이 다.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하니까 현장에서 서로 챙길 여유는 없었지만, 존재 자체가 의지가 되고 만나면 반갑고 서로 응원하게 됐다. 감독님이 만들어준 묵묵하고 묵직한 현장에 잘 스며들었다.

언젠가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인간 수업>이라는 작품은 어떻게 기억될까? 우선 인간 박주현으로서 한층 성장했 다. 내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인 으로서 책임지고 살아가야 할 부분과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에 대해 깨닫게 해줬다. 배우 박주현에게는 상업적인 작품의 문을 열어준 작품이다. 데뷔작의 감독님은 아마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생각날 것 같다. 김진민 감독님은 아버지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했다. 어제도 통화했다.(웃음) 따듯한 츤데레 같은 분인데 힘들 때마다 감독님에게 연락하게 된다. 그렇다고 감독님이 위로를 잘해주는 사람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 점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나를 믿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날 처음으로 뽑아준 김진민 감독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잘 성장하고 싶다.

감독님한테 들은 얘기 중 제일 힘이 된 얘기는 뭔가? 항상 얼음 칼날 위에 서 있는 기분으로 연기하라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현장이 편해지는 순간 떨어지거나 죽게 된다는 무서운 말인데, 앞으로 연기할 때 이 말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배우로 살아가다 보면 연기와 현장이 익숙해질 때가 올지 모른다. 그럴 때 감독님의 이 말을 계속 상기하려고 한다. 좀 더 섬세하게 연기하기 위해서 이 말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규리가 윤리적으로 옳은 인물은 아니다. 더불어 <인간수업>은 현재 특정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주제를 다루기도 했는데, 이런 작품을 하고 나면 배우 자신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치는가? 규리의 가치관이 나에게 스며든 다기보다 규리의 가치관을 탐구하다 보면 견문이 넓어진다. 규리는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규리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 주변의 것들도 함께 배우다 보니 <인간수업>이라는 작품을 하며 사회문제를 보는 내 시야가 조금이나마 더 넓어졌다. 나는 연기 공부가 진정한 인간 공부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부. 철학적인 관점일 수도 있고 정서적인 관점일 수도 있다. 연기를 공부한다는 건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또 다른 인간을 만나는 작업이다.

규리가 가장 멋있을 때는 지수(김동희) 아버지가 돈을 가지고 도망갈 때달려가 온몸으로 부딪히는 장면이었다. 몸을 잘 쓰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 쓰는 걸 좋아한다.(웃음) 꼭 해보고 싶은 장르 중 하나가 액션 스릴 러다. 체대를 나온 아버지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운동을 무척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테니스와 수영을 했다. 집에서 가만히 있기보다 밖에 나가 배드민턴을 치거나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한다. 술을 마시지 못해서 친구들을 만나도 볼링을 치거나 한강공원에 간다.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편인가? 주저하지 않는다. 여행도 출발 하루 전에 표를 사서 갈 때도 있다. 계획을 세우다 보면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가 있더라. 그래서 여행은 마음이 움직이면 바로 떠난다.

다양한 경험이 연기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무조건.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면, 특히 여행 갔을 때 영감을 많이 받아 그때의 감정을 일기로 기록한다. 여행지에서 느낀 낯선 감정이나 생각을 메모하듯 일기로 쓰는 거다. 일과를 적는 게 아니라 감정 위주의 일기다. <인간수업>에 출연하게 됐다고 했을때 황정민 선배가 연기할 캐릭터로서 일기를 써보라고 조언해줬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맡으면 내가 원래 쓰던 일기 대신 캐릭터의 일기를 쓴다. 감정을 섬세 하게 그려볼 수 있어 연기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감정을 텍스트로 기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데, 그만큼 감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래서 서러워서 울거나 화가 날 때 거울을 본다. 그렇게 내 표정을 들여다보면 어떤 감정일 때 이런 표정이 나오는지 알게 된다. 감정을 섬세하게 정리하면 배우의 재료가 되어준다.

차기작에서 박주현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차기작에서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 지금까지 안타까운 인물을 연기했다면 이번에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렇게 순수하게 살아도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어’ 하고 깨닫게 할 수 있는. 좀 더 편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나길 기대한다. 그리고 내가 맡은 캐릭터를 글로 읽을 때보다 훨씬 다채롭고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하고 싶다.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가 ‘charm girl’인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작품, 어떤 인물을 만나 더라도 매력적으로 만들려고 한다. 어쩌면 <인간수업>으로 크게 주목받은것 같은 일은 평생 한 번도 경험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가슴 한편에 있다. 하지만 앞으로 연기를 사랑하고 작품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며 순수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연기하고 싶다. 매번 또 다른 출발점에 서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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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호가 되기까지

카무플라주 패턴 트렌치코트, 재킷과 팬츠, 스트라이프 셔츠, 화이트 슈즈 모두 셀린느(Celine).
아네모네 꽃 문양이 그려진 샴페인과 샴페인 잔 모두 페리에 주에 벨에포크(Perrier Jouet Belle Epoque), 나무를 형상화한 오브제 하이퍼 네이처 서빙 리추얼 바이 베단 로라 우드×메종 페리에주에(Hyper Nature Serving Ritual by Bethan Laura Wood ×Maison Perrier Jouet), 플로럴 패턴 재킷과 팬츠, 셔츠, 레이스업 슈즈 모두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진하고 톡 쏘는 블랙베리 과즙과 막 수확한 월계수 잎이 더해진 매력적인 향이 특징인 블랙베리 앤 베이 코롱 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 더블브레스트 재킷, 플라워 패턴 톱, 셔츠, 블루 팬츠, 타이, 샌들 모두 구찌(Gucci).
그린 컬러 코튼 점프수트, 벨트, 샌들 모두 펜디(Fendi),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컬러 포인트 니트 톱, 블랙 팬츠 모두 발렌티노(Valentino), 실버 체인 브레이슬릿 베루툼(Verutum).
미네랄 향기와 씨 솔트가 더해져 영국 해안에 부는 바람처럼 활기 넘치는 향이 특징인 우드 세이지 앤 씨 솔트 코롱 조 말론 런던(Jo Malone London), 블루 재킷, 집업 후디, 터틀넥 톱, 팬츠 모두 지방시(Givenchy).
집업 재킷, 셔츠, 팬츠, 벨트 모두 디올 맨(Dior Men), 샌들 처치스(Church’s).
더블브레스트 재킷, 스트라이프 셔츠, 팬츠, 샌들 모두 구찌(Gucci).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첫 시즌을 마쳤습니다. 일단 별 탈 없이 잘 마무리되어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리고 잠시나마 의사 역을 맡아 지금 같은 시기에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도 의미 있고요.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워요.

30대 초반 무렵, 흥행작에 대한 갈증을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몇 년 뒤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만났죠.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을 만난다는 건 배우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요? 흥행작에 갈증을 느꼈다기보다 대중이 나를 원하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연기를 계속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장 무서운 게 감독님의 오케이 사인이에요. 오케이 사인으로 내 연기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건데, 대중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두렵죠. 잘 안 될 수도 있고, 너무 잘될 수도 있지만 그런 평가 때문에 배우 생활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우정 작가님과 신원호 감독님을 만나면서 그런 걱정이 없어졌죠. 두 작품을 하면서 행복했던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이라면 평생 함께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흥행에는 여러 요소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모든 인물이 각자의 서사를 가진 채 매력적으로 그려진다는 것인데, 본인이 맡은 준완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솔직함. ‘왜 굳이 말을 저렇게까지 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준완은 환자나 친구, 연인을 언제나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대해요. 츤데레 같은 매력도 있고요. 기본적으로 착한 사람이에요. 우정이나 사랑에 진심인 걸 보면요.

준완을 연기하는 데 대한 감독의 디렉션이 있었나요? 감독님은 디렉션을 많이 하기보다 배우를 믿어주는 편이에요.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서 알아서 놀게끔 해줬어요.

가장 준완다운 대사를 떠올린다면요? ‘익순’(곽선영)에게 했던 고백,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었나? 오빠랑 연애하자.” 그 말을 하기까지 서사가 길지 않았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준완의 나이가 마흔이에요. 뭘 재요. 그렇잖아요. 그 마음이 진심이면 되는 거죠. 하나 더 꼽아보면 ‘도재학’(정문성) 선생에게 했던 “의사가 환자를 포기하면 그걸로 의사는 끝이야”라는 대사도 생각나네요.

이번 작품은 연기와 연주라는 두 가지 일을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도 독특한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연주가 더 어려웠을테죠? 110% 연주. (조)정석이 형이 기타를 잘 쳐서 묻어간 거라고 생각해요. 형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2004년부터 연기를 시작했으니까 배우로 산 지 벌써 16년이 되었어요.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나요? 대사가 잘 안 외워질 때? 좀 속상해요. 몇 년 전만 해도 대본에 손만 올려도 대사가 외워졌거든요. 진짜로요. 한두 번만 읽으면 됐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읽으면서 중간중간 ‘좀 전에 이게 뭐였지?’ 싶어서 다시 보고요.

군에 입대한 시기를 제외하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작품을 한 편 이상 해왔어요. 꽤 두껍게 쌓인 필모그래피 중 한 단계 올라섰던, 성장했던 작품을 돌아본다면요? 한 단계 올라섰다기보다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를 하면서 ‘체력이 아직 대단하구나’ 하고 느낀 적이 있어요. 30일 넘게 밤을 샌 적이 있는데, 그게 되더라고요.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찍는 내내 놀다 온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내가 연기를 더 많이 즐길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애정을 품은 작품도 있을 것 같아요. 군대에 있을 때 연기를 못한 한을 풀고 싶었어요. 친한 형이자 선배인 하정우 형한테 술 먹고 이런 마음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형이 대뜸 “제목은 ‘롤러코스터’야. 한류 스타인 배우가 탄 비행기가 흔들리는데 착륙을 못 해. 어떨 것 같아?” 하는 거예요. 그게 영화 <롤러코스터>의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하기로 한 후부터 예전에 형이랑 연극할 때처럼 두 달 동안 매일 만나서 대사 만들고, 리허설 하면서 영화를 찍었어요. 그걸로 한을 다 풀었죠.

16년 동안 쉬지 않고 연기할 수 있는 데는 어떤 동력이 작용했나요? 달리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요리는 할 줄 알지만 누군가에게 대접하거나 팔 정도는 아니에요. 그렇다고 사업 수완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골프나 농구, 축구도 하지만 못한다는 소리를 안 듣는 정도예요. 그런데 연기는 너무 잘하고 싶고, 좋고, 재미있어요.

연기를 잘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결국 조화인 것 같아요. <슬기로운 의사생활>만 해도 캐릭터는 물론이고 실제로 연기를 하는 주연배우 5명 모두 달라요. 어떻게 성격이 이렇게 다를까 싶을 정도로요. 그걸 어떻게 조화롭게 만드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기에서 절대 혼자는 없어요.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배우 정경호의 첫인상은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최윤’이었을 겁니다. 지금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김준완’을 떠올리는 사람이 가장 많을 거고요. 다음은 어떤 어떤 캐릭터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아직 해보지 못한 역할이 너무 많아요. 그렇지만 당분간은 김준완으로 불렸으면 해요. 한 5년쯤은 이 이름으로 살고 싶어요. 간혹 의사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죠? 실제로 의사를 만나서 얘기한 적이 있는데, 저한테 진지하게 의학 용어를 쓰면서 이런 건 이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셔서 약간 당황했어요.(웃음)

인스타그램도 하고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지만, 일에 관한 얘기가 대부분이에요. 일을 제외하면 어떤 것이 남나요? 강아지 두 마리의 배변 패드를 갈고, 털을 빗기고, 함께 산책하는 일상. 이 외에는 촬영하는 동안 못 했던 데이트나 운동을 하는 게 전부예요. 예전에는 조깅을 좋아해서 어디에 있든 아침마다 한 시간씩 뛰었는데, 미세먼지가 생기면서 그만뒀어요. 최근에 조깅이나 웨이트트레이닝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하는 중이에요.

연기 말고 좋아하는 것은요? 강아지랑 운동. 그리고 연기 잘하는 사람들 연기를 보는 것이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어‘ 떻게 저렇게 잘하지!’ 하고 감탄하는 재미가 있어요.

지금의 정경호라는 사람을 만든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8년 넘게 한 사람이랑 연애를 하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사람 정경호를 만든 건 최수영 씨라고 생각해요. 수영 씨가 하라는 거 하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면서 사람이 됐어요. 밥 먹기 전에 손 닦을 것, 자기 전에 양치질하고, 술 많이 마시지 말 것, 옷 깔끔하고 예쁘게 입고 다닐 것 등.(웃음) 그래서 여자친구 말을 잘 들어야 해요.

30대가 지나기 전에 남기거나 얻고 싶은 것이 있나요? 몸을 좀 키우고 싶어요. 체력도 키울 겸. 속도 건강하고 보기에도 좋은 몸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이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다음 시즌 촬영까지 몇 달간 시간이 남았어요.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요? 미처 못 본 대본들이 있어서 그것부터 빨리 보고 결정해야 해요. 그리고 기타 연습. 11월부터 촬영이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요즘 계속 기타만 치고 있어요. 하하.

더 빨리 더 높이, 한승우의 열망

핑크 재킷과 슬리브리스 톱 디올 옴므(Dior Homme).
티셔츠 벨루티(Berluti), 팬츠 르 주(Le Je).
니트 베스트 르 주(Le Je),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과 셔츠 모두 프라다(Prada).
그린 재킷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스트라이프 티셔츠 캘빈 클라인 진(Calvin Klein Jeans).

오늘 빅톤의 새 음반 <Mayday>의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곡의 일부분이 아니라 내레이션으로 음악의 정서를 설명한 방식이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다. 우리가 그동안 발표한 음악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고, 그건 노래보다 내레이션으로 담백하게 들려주는 방식이 좋을 것 같았다. 드라마처럼 앞서 한 이야기를 간결하게 정리해주고,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의미다. 참고로 그 내레이션, 내 목소리다.(웃음)

<Mayday>는 장르와 컨셉트 모두 처음 시도하는 형태의 음악이다. ‘끝나지 않은, 끝내지 못하는 사랑’을 주제로 한 곡이다. 얼터너티브 R&B 장르로 그간 들려준 적 없는 묵직한 사운드다. 지금까지는 청량하거나 서정적인 분위기였다면, 이번에는 절제미가 있는 모습을 준비했다.

매번 빅톤의 멤버들이 작사와 작곡, 안무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나? (도)한세와 내가 작사를 했고, 안무는 모든 멤버의 의견을 조금씩 반영했다. 모든 멤버가 매 음반에 조금씩 참여 해왔지만, 이번에는 유독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서로 부딪치더라도 의견을 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그래서 과정이 치열했다.

왜 이번 음반을 만들면서 유독 열정적인 태도를 보인 건가? 빅톤이 2016년에 데뷔했는데, 지난해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 리운 밤’이라는 곡으로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처음 1위를 했다. 이어서 올해 3월에 낸 싱글 <Howling>의 반응도 괜찮았고. 이런 흐름 덕분에 다들 자신감과 계속 해보자는 기세가 생긴 것 같다.

음반을 내고 활동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도 이 시기를 택한 이유가 있나? 우리 생각으로는 어쨌든 지금이 노를 저어야 할 때인데, 시기와 환경을 탓하면서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최대한 상황에 맞춰서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이번 음반으로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멤버들이랑 얘기했는데 사실 이번 음반에 기대는 없다. 그냥 빅톤에게 이런 모습도 있다는 것, 그리고 꾸준히 음반을 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특히 뮤직비디오를 보면 알겠지만, 이번 음반은 빅톤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번 음반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자작곡도 꽤 많이 만들어뒀다고 들었다. 아주 많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곡도 있고, 여름에 신나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댄스 곡도 있고, 섹시한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도 있다. 확실히 이전에 만든 곡들에 비해 완성도가 높아서 개인적으로는 빨리 공개하고 싶은데, 시기를 가늠해보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자작곡을 들어보니 R&B와 힙합의 경계에 있는 장르가 많은 편이다. 장르는 다양하게 시도하는데, 특히 좋아하는 게 R&B와 힙합이긴 하다. 요즘은 뮤지션 라우브나 롤 모델의 음악에 꽂혀 있다.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려는 것 같다. 노래도 하고 랩도 하고, 작사와 작곡에 안무까지. 이 모든 걸 언제 다 하나? 그러게. 언제 다 하는 건지 나도 신기할 때가 있다. 요즘 하루 일정을 정리해보면 아침에 작업실에 가서 음악을 듣고, 노래 연습을 한다. 그러다 작곡 프로그램을 켜서 곡을 만들고, 생각나는 가사가 있으면 곡에 붙여본다. 그러다 지치면 컴퓨터게임을 잠깐 하고(웃음), 저녁에 안무 연습을 한다. 그러고 밤이나 새벽에 다시 곡 작업을 하고. 최근 몇 달간은 아주 열심히 살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음악만 하는 일상인데 지칠 때는 없나? 지친다기보다 가끔 막힐 때가 있다. 계속 무언가를 쏟아내다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싶은 순간이 가장 답답하다.

어떤 지점에서 막히는 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 일단 곡 하나를 완성하면 두 번째, 세 번째 곡에서 나도 모르게 똑같은 멜로디를 쓸 때가 있다. 이미 그 멜로디에 빠져서 비슷한 형태를 반복하게 되는 거다.

요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생각은 무엇인가? 계속 드는 생각은 ‘일하자, 쉬지 말자, 움직이자’.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움직이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 해소가 안 돼서 그런 것 같다. 너무 하고 싶은데 못 하던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개인 작업도 많이 하고, 쉴 때도 작업실에 간다.

그렇게 일을 해서 얻고 싶은 결과는 어떤 것들인가? 팀도 그렇고 나 자신도 더 많이 알리고 싶다. 우리 음악이 음원 차트 상위권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고, 음악이 좋다는 소문도 돌았으면 하고. 또 스스로 만족하는 곡을 계속 만들고 싶다.

그럴 때 누군가는 원하는 결과에 빨리 닿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천천히 한 단계씩 나아가는 쪽을 택한다. 예전에는 돌아가더라도 결과를 튼튼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만 돌아가도 될 것 같다. 천천히 조금씩 하면서 뿌리가 많이 깊어졌으니, 지금부터는 속도를 내려고 한다.

올해 음반을 벌써 두 개나 냈다. 연말까지 몇 번이나 컴백을 더 하게 될까? 이번 음반을 제외하고 적어도 두 번은 더 내려고 한다. 욕심인지 모르지만 일단 시도하는 중이다.

멤버 모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멤버들도 그렇지만 매니저 형들도 요즘 잠을 못 잔다. 내가 쉬면 안 된다고 매일 새로운 일을 제안하고 있다. 아마 10월쯤 되면 다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올 것 같다. 일단 홍삼 세트 하나씩 선물해야겠다.

음악 말고 한승우라는 사람을 알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팬들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이돌이 아니라 사람으로 다가가겠다는 말. 그래서 최대한 많이 소통하려고 한다. 브이앱이나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많이 하는데, 그걸 보면 다 알 수 있다. 거기선 그냥 사는 얘기를 많이 한다.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등 최대한 친구랑 만난 것처럼 대화한다.

그 때문인지 팬잘알(팬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라는 별명이 있다. 지금 팬들이 빅톤에게 원하는 것도 알고 있나? 일단 빨리 보는 것. 그리고 다시 한 번 청량한 컨셉트를 시도하는 것. 빅톤이 3집 때까진 청량한 음악을 선보였는데 그 이후 몽환적이거나 서정적인 무드로 바뀌었다. 요즘 나오는 음악도 좋아해주지만, 옛날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반응도 꽤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것을 해보고 싶나? 다른 뮤지션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것. 나와 결이 다른 뮤지션을 만나 공동 작업을 하면서 그 사람이 가진 음악적 재능을 배우고 싶다. 태양, 박재범, 딘, 크러쉬, 헤이즈, 수란, pH-1 등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매우 많다.

작사도 하고 있으니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것 같다. 일기처럼 꾸준하게 내 일상을 음악으로 얘기하는 방식을 생각 중이다. 너무 긴 시간 동안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걸 자제하고 숨겨온 탓인지 이제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다.

그럼 오늘의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내면 어떤 곡이 나올까? 아마 팬들이 원하는 밝고 설레는 무드의 곡이 아닐까. 막 컴백을 했고, 좋아하는 화보도 찍고, 내 이야기를 실컷 할 수 있는 인터뷰도 하게 되어서 오늘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촬영장에 왔다.

아직 촬영을 시작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닌가? 오늘 남은 일정이 꽤 많다. 좀 섣불렀나? 나중에 힘들다고 갑자기 장르를 바꿀 수도 있겠다. 하하. 일단 지금까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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