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즐겁게, 피부는 건강하게!

가장 쉽고 효과적인 관리는 예방!

일반적인 상태에서 피부 온도는 체온보다 낮은 31°C 정도. 하지만 녹아내릴듯 강렬한 여름철 태양 아래선 단 15분만 서 있어도 피부가 금세 40°C 안팎까지 달아오른다. 하물며 직사광선이 그대로 내리쬐는 해변이나 풀사이드에서 라면 말할 것도 없다. 단 몇 십 분만 머물러도 일광 화상을 비롯해 기미와 주근깨 같은 색소침착에 두드러기까지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고 즐거운 바캉스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이럴 때 어떤 스킨케어보다 우선해야 하는 건 자외선 차단제다. 물과 땀에 강하고, 여러 번 덧바르기 좋은 가벼운 질감과 휴대성을 지닌 자외선 차단제를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여름을 보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보내기 위한 첫 단계!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애프터 선 케어 역시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설화수 상백크림 SPF50+/PA++++. NO.1
크리미 글로우 부드러운 크림 타입의 저자극 브라이트닝 선크림. 50ml, 8만5천원.
헤라 선메이트 레포츠 프로 워터프루프 SPF50+/PA++++. 야외 활동에 적합한 아웃도어용 선크림. 70ml, 3만6천원.

 

신나게 여름을 즐기고 나면 피부는 늙는다

여름철 강력한 자외선은 일차적으로 피부 속 콜라겐과 엘라스틴 같은 탄력섬유를 분해하는 효소를 활성화해 피부를 늙고 처지게 만들고, 곧이어 염증 반응까지 일으켜 손상을 가속화한다. 샘솟는 땀과 왕성하게 분비되는 피지 때문에 모공은 점점 넓어지는 데 반해 뜨거운 태양 빛에 바짝 마른 피부는 외려 건조해 모공과 모공 사이에 각질이 두껍게 쌓이는 것도 문제. 피부의 재생과 회복 능력을 높여주는 탄력 강화 제품이나 안티에이징 제품으로 늙고 지친 피부를 쫀득하게 회복시키고, 강력한 보습으로 각질과 주름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 냉장고에 넣어두고 차게 해서 사용하면 손쉽게 진정 및 쿨링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아이오페 레티놀포 링클 0.3%
고농축 레티놀 성분을 담아 주름 개선 효과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세럼. 20ml,13만원.
프리메라 알파인 베리 워터리 오일-프리 젤 크림
기분 좋은 쿨링효과를 주는 산뜻한 사용감의 수분 젤 크림. 50ml,3만7천원.

 

피부를 지키기 위한 골든 타임을 확보하라

휴가지에서 돌아와 그제야 피부 관리에 돌입한다면 애프터 선 케어는 사실상 실패한 거나 다름없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애프터 선 케어의 골든타임은 노출 후 6~12시간. 이후에는 피부 속에 퍼져 있는 활성산소로 인해 손상이 광범위하게 일어나 레이저 같은 전문적인 치료조차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주의할 점은 자외선에 자극받은 즉시 피부가 달아오르는가 하면, 4~5시간 뒤에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 하루 이틀 동안 지속되는 지연 홍반도 흔하다는 사실. 살짝 열감이 느껴진다 싶더라도 신속한 쿨링 케어로 화기를 빼주는 것이야말로 쓰라리고 껍질이 벗겨지거나 물집이 생기는 등 최악의 사태로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애프터 선 케어의 핵심이다. 흔적이 남지 않도록 시원한 수딩 케어까지 더하면 더욱 좋다.

헤라 아쿠아볼릭 하이드로-젤 크림
시원한 청량감으로 피부를 진정시켜주는 수분 젤 크림. 50ml, 5만8천원.
리리코스 마린 하이드로 앰플 EX 오리지널
특화된 보습 성분이 피부를 즉각적이고 지속적으로 촉촉하고 건강하게 가꿔주는 집중 보습 프로그램. 5ml×12개입, 11만원.
프리메라 리페어빈 시카 크림
건조로 인해 손상된 피부를 개선해주는 피부 장벽 강화 크림. 40ml, 3만5천원

 

여름의 흔적을 지워주는 미백 관리

당장 눈에 띄는 울긋불긋한 홍조와 붉게 달아오른 피부를 진정시키는 것이 애프터 바캉스 케어의 첫걸음이라면 마지막은 미백이다. 얼룩덜룩 칙칙한 피부톤을 밝히고, 눈에 띄게 늘어난 주근깨나 기미 같은 잡티와 각종 트러블 자국을 없애는 화이트닝 케어까지 마쳐야 비로소 바캉스 이전의 피부에 근접할 수있다. 민간요법으로 흔히 하는 감자나 오이를 이용한 천연 팩은 자칫 접촉성피부염을 일으켜 영구적인 색소침착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피한다. 비타민 C 등의 미백 성분이 농축된 앰플이나 에센스를 집중적으로 사용하면 눈에 띄는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 단, 고기능성 화장품이므로 반드시 피부가 어느정도 회복되어 고농축 성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상태에서 사용해야 한다. 피부 깊숙이 이온화한 비타민 C를 침투시키는 피부과의 기미 치료나 미백 레이저 역시 선번을 입은 뒤 최소 2주 정도 후에 해야 탈이 없다.

아이오페 에이스 비타민 C25
순수 비타민 C 성분을 무려 25% 함유한 고강도 미백겸 안티에이징 앰플. 23g,7만원.
설화수 자정미백 에센스
백삼에서 추출한 미백 성분이 피부 톤을 맑고 투명하게 가꿔주는 브라이트닝 에센스. 50ml, 21만원.
설화수 자정미백 에센스
백삼에서 추출한 미백 성분이 피부 톤을 맑고 투명하게 가꿔주는 브라이트닝 에센스. 50ml, 21만원.

 

만신창이 헤어를 위한 애프터 바캉스 솔루션

지금 바캉스가 필요한 건 휴가 내내 불볕더위에 시달린 모발일지 모른다. 모자라도 썼다면 그나마 다행, 최전방에서 무방비 상태로 직격탄을 맞은 두피는 화기로 가득 차 순백의 제 색을 잃고 울긋불긋해졌을 터. 빗자루처럼 버석거리는 모발은 또 어떤가. 자외선과 소금기 가득한 바닷물이나 소독제로 관리하는 수영장 물은 두피와 모발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특별한 건 없다. 휴가지에서는 모발 전용 자외선 차단제를 사용하고, 바다나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긴 뒤에는 최대한 빨리 깨끗한 물로 머리를 헹군다. 바캉스 후 에는 얼굴의 피부와 마찬가지로 헤어 역시 쿨링과 진정, 그리고 충분한 수분과 영양 공급이 절실하다. 증상에 맞는 제품을 선택해 두피와 모발을 각각 따로 관리한다면 금상첨화!

화윤생 뷰티풀에이징 헤어 오일 세럼
모발을 탄력 있고 부드럽게 개선해주는 끈적이지 않고 산뜻한 헤어 오일. 100ml, 2만5천원.
화윤생 뷰티풀에이징 헤어 오일 세럼
모발을 탄력 있고 부드럽게 개선해주는 끈적이지 않고 산뜻한 헤어 오일. 100ml, 2만5천원.

 

따갑고 껍질이 벗겨지는 바디 피부를 케어하라

찬란했던 여름휴가가 끝나고 훈장처럼 남은, 휴가지에서 입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수영복 자국. 특히 가슴, 어깨, 목처럼 평소에는 노출할 일이 별로 없지만 휴가지에서 직사광선을 그대로 쏘이는 부위는 자외선에 더욱 취약할 뿐 아니라 기미, 잡티가 쉽게 자리 잡는 명당 중의 명당. 선번 후유증으로 붉게 달아오르고 화끈거리며 따갑다가 가라앉으면서 마치 뱀의 허물처럼 벗겨지는 각질도 골칫거리다. 야외로 나가기 전, 수영복의 경계 부분까지 꼼꼼하게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야외 수영장이나 바닷가에 다녀왔을 때에는 곧바로 깨끗한 물로 씻은 뒤 차가운 물수건이나 진정 제품으로 피부 온도를 즉각 낮춰야한다. 진득한 모이스처라이저를 듬뿍 발라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관리하도록. 선번은 일반적으로 3~4일이면 저절로 가라앉으나, 등이나 어깨에 물집이 생긴 경우 자칫 터져 세균 감염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소염제를 복용하거나 병원을 찾아가 치료하는 것이 좋다.

설화수 바디로션 백은향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고 탄력과 윤기를 더해주는 은은한 매화 향의 바디로션. 250ml,6만원.
프리메라 망고 버터 컴포팅 바디로션
보습력이 뛰어난 망고 버터와 호호바 오일이 피부를 촉촉하게 보호해준다. 380ml, 3만2천원.
일리윤 콜라겐에센셜 크림 인 로션
풍부한 보습 성분이 피부를 탄탄하고 건강하게 가꿔주는 바디 안티에이징 로션. 350ml,3만원.

이달의 필수템 미리보기

1.설화수 수분영양크림
피부를 강화하는 데 효과적인 자음영양단TM과 유·수분 밸런스를 맞춰주는 포고영, 해송자유가 함유돼 수분을 가득머금은 팽팽한 피부로 가꿔준다. 50ml, 7만원.
2.바이탈뷰티 명작수
기력을 잃기 쉬운계절, 활기를 보충해줄 프리미엄 홍삼 앰플. 20g×50개, 26만원.
3.아모레퍼시픽 보태니컬 수딩 토너
왕대나무 수액이 자극받은 피부를 편안하게 진정시키고, 피부에 필요한 수분을 빠르고 풍부하게
공급한다. 200ml, 9만원

4.헤라 루즈 홀릭 익셉셔널 #248 모즈 코랄, #116 드레시 로즈
우아한 실루엣의 디자인, 풍부한 컬러와 부드러운 텍스쳐의 완벽한 조합을 선사하는 럭셔리 립스틱.
각각 3g, 3만8천원.
5.설화수 자음생에센스
강인한 인삼 에너지를 가득담아 여름철 활기를 잃은 피부에 활력과 탄탄한 탄력을 불어넣는다.
50ml, 20만원.
6.헤라 유스 액티베이팅
셀 세럼 도시의 유해환경으로부터 단 하루만에 놀라운 안티에이징 효과로 탄력있고 화사한 피부로
가꿔주는 세럼. 40ml,9만5천원.

여름의 향기

<향장>은 매달 <볼륨을 높여요>, <별이 빛나는 밤에> 등 많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원고를 담당했던 작가이자 독립 서점 ‘리스본’을 운영하는 정현주의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여는 문장이다. 여러 차례 폭풍이 지나가도 백일홍은 붉은 꽃을 매달았다. 그 여름, 시인은 폭풍 한가운데 있었다. 절망은 붉은 꽃이 되어 피어 올랐고 폭풍이 불고 다시 불어도 쓰러지지 않았다. 넘어지기도 했지만 타고 오르고 매달리며 피어났다. 시인은 불을 뿜듯 나무와 꽃이 자란다고 적었다. 작은 마당이 핏빛 꽃 으로 가득 찰 때 시인의 절망은 비로소 끝이 났다.

<그 여름의 끝>. 여름이 시작될 때 한 번, 끝날 때 한 번 꺼내 읽는 시집이다. 처음은 대학 1학년 여름이었다. 빈 강의실에 앉아 다음 수업을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동기 하나가 들어와 내 뒷자리에 앉았다. 강의실은 2층이었고 창밖에는 나무가 울창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수십 년을 그 자리에서 컸다는 플라타너스는 잎이 크고 무성했다. 잎이 무성해 창을 열어도 비가 들이치지 않았다.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할 땐 흙냄새가 나더니 나중엔 초록 냄새가 났다. 비에 젖은 나무는 눈이 시큰할 만큼 초록색을 띠었다. 빗소리, 초록 냄새에 젖어 창을 바라보고 있는데 뒷자리 동기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달려 나갔다. 곧 수업이 시작될 텐데 걱정하며 돌아보았다. 달려 나간 그는 달려 들어왔다. 손에 시집 한 권이 들려 있었다. 1층 구내 서점에서 사 왔다고 했다. 뒷자리에 앉아 내게 시를 읽어주었다. 그 여름의 끝. 해마다 여름이면 읽는다고 했다.

백일홍. 6월쯤 피어 10월쯤 지는 꽃. 100일간 붉다고 해서 백일홍이라 한다. 여름 내내 피는 꽃이다. 꽃향기는 희미해 오히려 비 냄새가 떠오른다. 여름이 시작될 때 한 번, 끝날 때 한 번 시집을 꺼내 읽으며 기억 저편의 이 장면을 떠오른다. 비 냄새 나는 플라타너스의 초록. 해마다 보고 킁킁대는 여름의 향기, 여름의 장면.

최근 소설집을 읽다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그 여름의 끝>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그 여름의 끝>을 처음 만나던 날이 기억났다.

강화길의 소설 <화이트 호스>는 여성 서사를 담고있다. 여성이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앓는 세상의 이야기. 2020 젊은 작가상 대상작인 <음복>은 제삿날을 배경으로 한다. 가족이 모인자리. 많은 것은 한 사람을 위해 준비되었다. 망자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 집안의 하나뿐인 아들 정우. 여자 주인공이 결혼하고 지내는 첫 제사였다. 제상 위에 뜬금없이 베트남 음식이 올려져 있었다. 시부모님은 돌아가신 분이 좋아해서 올렸다고 했지만 제상을 물리고 보니 의문의 음식을 신나서 먹어 치우는 것은 남편 정우뿐이었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참석한 사람의 안부를 나누고 참석하지 않은 자의 안부를 묻는다. 정우가 평소 ‘좋은 사람’이라 말하던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잠깐의 대화를 통해 여주인공은 알게 된다. 정우의 ‘좋은 사람’들에게 정우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자신을 피하기 위해 그들이 오지 않았다는 걸 정우는 몰랐다. 혼자만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이 난데없이 제상에 올라가도, 실은 자신을 먹이기 위해 준비했다는 걸 정우는 몰랐다. 자신만 먹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는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몰라도 되었다. 가부장제 아래 태어난 오직 하나의 아들이라면. 수많은 남성들의 ‘눈치없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보여주는 단편이다. 눈치 볼 필요가 그들에겐 없었다. 기색을 살필 줄 모르니 배려나 공감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태어났더니 많은 것이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심지어는 독점할 권리를 가진 자로 그들은 살아왔다.

강화길의 주인공이 특별한 것은 다음과 같은 독백때문이다. “왜냐하면 너는 아마 영원히 모를 테니까. 뭔가를 모르는 너.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너는 코스모스를 꺾은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느냐는 외침을 언젠가 돌려주고 말겠다는 비릿한 증오를 품은 사람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지.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래.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한다.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거절당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솔직한 마음을 말해도 거부당할까 걱정하지 않는 사람. 한껏 보호받으며 성장하며 누군가를 미워할 필요가 없는, 억울할 것도 없는, 구김 없는 마음. 여성 서사 대부분에서 비난의대상이 되고야 말 남성상에 대해 강화길의 주인공은 ‘지금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음복>을 읽고 나면 <가원>인데, 역시나 여자 주인공은 남성을 사랑하고 있다. 이번에는 외할아버지다. 눈치 없고 자기만 아는 면에서는 음복의 남편과 닮아 있다.

<가원>은 고명한 서예가 석당의 집안 이야기다. 주인공은 치과를 개원하려고 준비 중인 연정이라는 여성이다. 석당의 아들 박윤보는 연정의 외할아버지다. 박윤보는 집안에 하나씩은 있는 문제적 존재다. 아버지 마음에도, 이름에도 어둠을 드리우는 존재로 성장했다. 하는 일마다 실패했으나 현실감각은 생기지 않았다. 몽상가 곁에 생활력 강한 아내가 있었다. 연정의 외할머니는 화장품 외판원으로 살며 그악스럽게 돈을 모았다. ‘낮잠 한번 잔 적 없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아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근검은 물론 절약이 뼛속까지 박혀 있었고 자신에게는 물론 손녀에게도 엄격했다. 전교1등을 하고 돌아와도 기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지해’라고 차갑게 말할 뿐이었다. 없는 돈에 과외를 시키고 학원을 보내고 성적이 떨어지면 매섭게 몰아치며 성공한 여성이 되기를 강요했다. 할아버지는 무엇을 했는가. 석당은 세상을 떠나며 정원이 특히 아름다운 한옥을 한 채 남겼다. 이름을 가원이라 붙였다. 형제들은 직업이 없는 연정의 외조부에게 한옥 관리를 맡겼다. 연정은 할아버지와 가원에서 노닐었다. 할아버지가 담배 연기로 만들어주던 동그라미마저 특별하게 기억했다. 나란히 앉은 연정의 가방에서 영어 학원비를 훔쳐내는 할아버지였는데도 말이다. 할아버지는 죽기전까지 담배만 피웠다. 연정은 할아버지를 라일락 냄새로 기억했다. 라일락 담배를 그는 즐겨 피웠다. 갖은 종류의 무능과 비겁을 지닌 할아버지를 손녀 연정은 왜 좋아했을까. 생계를 책임지고, 학원비를 벌어오고 등록금을 대준 할머니는 싫어했으면서.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뒤 연정은 치과 의사가 되었다. 손녀가 자립하자 할머니는 일을 그만두었다. 펑펑 놀 거라고 하지만 휴식은 길지 않았다. 치매가 찾아왔다. 집을 나간 할머니를 찾아 연정은 도시 곳곳을 헤맸다. 마침내 도달한 곳은 이제는 주인이 바뀌고 폐허가 되어버린 가원이었다. 쑥대밭이 된 정원에 할머니가 서 있다. 추운 날인데 여름 원피스를 입고서. 할머니가 돌아가고 싶었던 때는 어떤 여름이었을까.
<가원>을 읽다가 <그 여름의 끝>을 떠올린 것은 오랜만에 동기를 만난 탓이다. 서점이 하나일 때는 자주 찾아와 좋은 밥을 사주더니 서점이 두 개가 되자 연락이 뜸했다. 식당 의자에 앉자마자 그는 야단치듯 말했다. “곱게 하나만 하지, 뭐 하러사서 고생을 하노?” 순간 그는 <음복>의 정우였고 나는 <가원>의 외조모가 되었다.

여름 한복판에 <그 여름의 끝>을 펼쳐 읽는다. 백일홍은 백 날을 두고 끈질기게 핀다. 개인적으로는 고되고 사회적으로도 혹독한 여름이지만 계속피겠다, 지지 않겠다 생각한다. 우리의 절망이 끝나는 날까지 꽃을 계속 피우고 가득 피워야지. 고운 꽃이라 보지 않고 끈질기게 피는 꽃이라 백일홍을 봐야지. 오가다 백일홍을 마주치면 멈춰 서야지. 희미해서 스쳤던 그 꽃의 향기를 맡아봐야지. 여름의 향기로 기억해야지. 백일홍 향기가 스칠 때마다 ‘그래도’ 피는 꽃으로 살아야지, 끄덕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