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시대

매 시즌 유혹의 손길을 내미는 수많은 패션 아이템 중 원피스가 다수의 국내 여성복 브랜드 매출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계절이 여름이라는 통계가 있다. 단 한 벌로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는 데다 입기도 편하니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 시즌엔 빅토리안 드레스를 눈여겨볼 것. 와이드 칼라, 퍼프소매, 러플로 완성한 볼륨감 있는 실루엣에 레이스와 플라워 패턴이 전하는 사랑스러움까지 더해져 단번에 시선을 강탈할 존재감 넘치는 옷이니까. 물론 그때 그 시절에 비할 순 없지만, 이런 다양한 요소를 적절하게 접목한 드레스가 다수 포착됐다. 게다가 빅토리안 무드의 절정인 로맨티시즘을 선호하지 않더라도 마음을 빼앗길 만한 대안도 충분하다. 칼라와 소매에 작은 프릴을 달아 심플한 고스 룩을 제안한 셀린느, 데님과 시퀸으로 쿨한 감성을 주입한 MSGM처럼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빅토리안 드레스가 줄을 이었다. 아무나 쉽게 시도하긴 어렵지만 그 특별한 분위기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쉽지 않은 옷, 빅토리안 드레스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레이스 장식이 사랑스러운 샴페인 컬러 드레스 가격 미정 루이 비통(Louis Vuitton).

LACE DETAIL DRESS

루이 비통의 프리폴 시즌 룩 북을 살펴보던 중 제니퍼 코넬리가 입은 샴페인 컬러 실크 드레스에 유독 눈길이 갔다. 2020 F/W 시즌 키 트렌드인 빅토리안 무드가 흥미롭긴 하지만, 실제로 입기엔 살짝 부담스러워 아쉽던 차였다. 이 미디 길이 플리츠 원피스는 빈티지 샴페인 컬러와 화이트 레이스의 조합을 비롯해 정갈한 하이 네크라인, 찰랑이는 실크 조젯 소재, 일자로 떨어지는 낙낙한 실루엣 등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물결 모양을 이루는 소매는 또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루이 비통 룩 북의 모델처럼 초커와 선명한 원색 부츠를 더해 의외의(!) 포인트를 줘도 예쁠 것 같다. 패션 디렉터 장보미

 

롱 앤 린 실루엣의 블랙 드레스 가격 미정 미우미우(Miu Miu).

GOTH DRESS

디테일이 없는 미니멀한 스타일을 고집하는 에디터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도 시도할 수 있을 법한 빅토리안 드레스가 있다. 이번 시즌 롱 앤 린 실루엣을 구현하는데 열을 올린 미우미우에서 선보인 블랙 드레스가 그 주인공. 블랙에 화이트로 포인트를 줘 심플하면서도 강렬한 고스 무드를 풍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칼라와 치마 아래의 작은 리본 장식을 비롯해 상체는 시스루를, 치마 안쪽은 레이스를 선택해 같은 블랙이라도 리듬감을 부여함으로써 지루해 보이지 않게 한 것이 신의 한 수! 완벽하게 드레스업 해도 근사하지만, 화이트 스니커즈나 블랙 플립플롭을 신어 반전을 꾀해도 좋을 듯하다. 패션 에디터 이지민

 

에스닉한 플라워 패턴의 네이비 드레스 30만원대 폴로 랄프 로렌(Polo Ralph Lauren).

FLORAL DRESS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이 계절에 완벽히 어울리는 원피스를 찾았다. 바로 폴로 랄프 로렌의 플로럴 드레스다. 각진 네크라인과 퍼프소매로 빅토리안 무드를 불어 넣은 이 드레스는 휴가지에서 입을 옷을 찾다가 눈여겨보게 됐다.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소재로 장시간 입기에 부담 없고, 스커트가 넓게 퍼지는 형태라 활동하기도 편하다. 후덥지근한 날엔 스카프나 모자를 더해 페전트 룩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웨스턴 부츠를 신어 보헤미안 룩으로 스타일링하면 매력적일 듯하다. 패션 에디터 이세희

 

풍성한 실루엣이 인상적인 블라우스 가격 미정, 슬립 드레스 8백59만원 모두 펜디(Fendi).

SEE-THROUGH DRESS

과한 패턴이나 눈에 띄는 색감이 부담스러워 빅토리안 드레스를 향한 욕망(?)을 잠재우던 차에 펜디의 티어드 드레스를 발견했다. 러플 어깨끈과 스모킹 기법으로 완성한 허리 밴딩처럼 빅토리안 스타일 특유의 사랑스러운 디테일을 곳곳에 더했음에도 형태가 심플한 덕분에 과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장점.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소재 역시 매력적이다. 슬리브리스 형태인 이 슬립 드레스만 입어도 좋지만 소매 라인이 봉긋한 셔츠를 안에 입으면 로맨틱한 분위기가 배가된다. 레더 벨트나 레이스업 부츠처럼 강렬한 아이템과 매치해 최근 유행하는 소프트 고스 룩을 연출해도 좋을 듯. 패션 에디터 김지수

 

달콤한 인생

페데리코 펠리니가 20세기에 선보인 이탈리아 영화 <라 돌체 비타>. ‘달콤한 인생’이라는 의미와 달리 영화 내용은 전혀 달콤하지 않지만, 라 돌체 비타라는 말은 이탈리아 패션의 황금기로 정의되는 1950~60년대에 성행한 라이프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패션계의 전설로 남는다. 여인의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 선을 부각하는 란제리 드레스부터 우아한 블랙 이브닝드레스, 엉덩이 라인을 부풀린 풀 스커트, 크로커다일 가죽 펌프스, 번쩍이는 페이턴트 가죽 팬츠, 속이 훤히 보이는 드라마틱한 패턴의 시스루 블라우스 등 이탈리아 여인의 관능적인 이미지는 이 시대에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직후인 1950년대는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가장 번영한 시기였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소비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패션, 영화 등 각종 산업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리조트 룩과 스포츠웨어를 찾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물론이다. 이뿐 아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들이 당시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이들이 영화에서 입고 등장한 룩이 전 세계의 트렌드를 좌우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탤리언 뷰티’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당시 이탈리아 여인들의 로맨틱하고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은 널리 사랑받았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은 풀 스커트가 열풍을 몰고 온 건 물론이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에서 착용한 불가리 주얼리는 201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경매 역사상 최고 가치를 지닌 주얼리로 기록될 정도였다. 1950년대에 이어 이탈리아 스타일이 다시금 꽃피운 시기는 1990년대다. 이때 이탈리아 패션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일조한 브랜드가 바로 베르사체와 돌체 앤 가바나다. “오직 섹시한 것만이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는다(In fashion, only sexy won’t go out of fashion).”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이 유명한 말처럼 베르사체의 역대 컬렉션은 이탈리아 여성들의 생동감 넘치는 관능미를 대변한다.

 

화려한 원색과 복잡한 패턴이 한데 뒤섞여 있고 여인의 풍만한 보디라인을 극대화하는 보디 콘셔스 실루엣은 과장되게 치장하길 좋아하는 이탈리아 여인들의 ‘벨라피구라(bella figura, 아름다운 모습)’를 구현하기에 충분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 스타일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스타일엔 나이나 사회적 지위 같은 굴레가 씌워지지 않죠.” 돌체 앤 가바나의 디자이너 스테파노 가바나의 말처럼 이탈리아 사람들의 패션은 자신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도구이며 그 방식 또한 자유롭기 그지없다.

 

2020 F/W 시즌,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팬데믹에 빠진 이 시점에 난데없이 여유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대변하는 이탈리아식 글래머러스 룩이 트렌드 키워드로 등극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동시에 의미심장하다. 한 매체가 ‘극단적으로 섹시(ultra-sexy)’하다고 표현할 만큼 올가을엔 관능적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과감한 요소가 대거 등장했으니까. 속살이 훤히 비칠 듯한 시스루 드레스며 란제리 룩, 보디수트, 군살 한 점 허용하지 않을 만큼 타이트한 보디 콘셔스 원피스, 브라톱, 라텍스 팬츠 등이 그것.

펜디, 뮈글러, 돌체 앤 가바나, 생 로랑 등 내로라하는 하이엔드 레이블에서 이 과감한 스타일에 자신만의 DNA를 이식해 한 단계 진화한 룩을 쏟아냈다. 다만, 섹시한 룩을 깡마른 금발 모델에게 입힌 기존 방식을 지양하고 연령대와 몸매에 상관없이 다양한 여성에게 입힌 점은 유의미하다 하겠다. “어려운 시기의 패션은 언제나 충격적이고 과감하다.”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남긴 이 말이 적중한 것일까? 여러모로 힘든 이 시점에 잠시나마 이탈리아의 자유로운 ‘라 돌체 비타’ 정신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어도 좋을 듯하다.

심히 패셔너블한 읽을 거리

패션 브랜드, 혹은 편집숍에서
발간하는 일이 뉴스 거리는 아니지만,
최근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며
에디터는 왠지 핸드폰 속 세상보다
책에 더 손이 많이 갔다.

인터넷 쇼핑을 사거나 선물 받은,
혹은 어딘가에 소개되어 탐낸 책을 공유해 본다.
지금의 이 사태가 언제 종결될 지 모르겠지만,
좋은 책 몇 권을 갖고 있으면
집에 있는 시간이 약간  덜 지루할테니까.

자크뮈스 ‘이미지’
JACQUEMUS ‘IMAGES’

자크뮈스 책 IMAGES JACQUEMUS
jacquemus.com
자크뮈스 jacquemus 자크뮈스 책 images
jacquemus.com

인스타그램 마니아인 브랜드 디자이너,
시몽 포르트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
그가 2010년부터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
8만5천41장 중 321장을 묶어 낸 책이다.
별 설명도, 딱히 특별한 것도 없지만
표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아름답다.
비행기를 타고 멀리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펼쳐 보면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효과도 있고.

9월 1일 온라인으로 출시되었고,
현재는 솔드 아웃이나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가격은 약 5만원대.

유니클로 ‘라이프웨어 매거진’
UNIQLO ‘Lifewear Magazine’

유니클로 라이프웨어 매거진 유니클로 책
uniqlo.com
+J 질 샌더 유니클로 질샌더 질샌더 인터뷰
uniqlo.com

유니클로에서 1년에 두 번 출간하는 매거진.
매장 갈 일이 없어 요즘에는 사이트에서 접하고 있다.
일본 패션 매거진, <뽀빠이> 전 편집장이자
스트리트 씬에서 유명인사인
키노시타 타카히로가 작년 유니클로에 조인하며
책의 퀄리티가 날로 좋아지고 있다.
이번 호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건,
질 샌더 단독 인터뷰.
유니클로에서 오랜 사랑을 받았던
J+라인이 컴백하며 진행한 인터뷰다.
책은 전국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고
아래 쇼핑 탭을 클릭하면
온라인 라이프웨어 매거진으로 이동할 수 있다.

프라다  ‘캣워크’
PRADA ‘CATWALK’

 

올 초 구입한 어마어마한 무게의 프라다 ‘캣워크’.
본래 프라다라는 브랜드를 좋아하긴 하지만,
새파란 색의 커버가 너무 매력적이라 안 살 수 없었다.
1988년부터 모든 쇼의 의상을 볼 수 있고,
미우치아 프라다의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멋’을 위해 산 책이었지만,
한 페이지도 버려두지 않고 꼼꼼히도 봤다.
교보문고에서 주문했었고 정가는 8만5천7백원이다.

루이비통 ‘시티 가이드’
Louis Vuitton ‘City Guide’

루이비통 시티가이드 시카고 louis vuitton
louisvuitton.com
louis vuitton 루이비통 시티가이드 시카고
louisvuitton.com

1998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를 선정해
특유의 감각적인 방법으로 ‘가이드 북’을 만들어 온 루이 비통.
운 좋게 시카고에서 2년 여 살았던 경험이 그리워
‘시카고’ 버전과 ‘서울’버전을 구입했다.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진 못하지만,
이만한 대리만족용 책이 없다.
루이 비통은 시티 가이드 외에도
훌륭한 책을 끊임 없이 만드는 브랜드.
매장이나 공식 홈페이지를 구경할 때
‘라이프 스타일’섹션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