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영화

오효진
<#살아있다> 프로듀서

영화 <#살아있다>의 프로듀서 시나리오, 캐스팅, 스태핑(스태프를 꾸리는 일), 예산 운용, 촬영 준비, 촬영 현장 진행, 그리고 편집·CG·음악·믹싱 등의 후반 작업을 거쳐 영화가 개봉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있다>의 제작 과정을 아우르고 책임지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프로듀서란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으로 한 편의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판을 짜는 사람이자 감독, 작가, 배우를 비롯해 각 분야의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그 기간 동안 작품의 출발점인 기획 의도를 잊지 않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시대에 뒤처지는 작품이 되지 않기 위한 고민도 함께해야 한다. <#살아있다>의 경우 장르적으로 재난물, 좀비물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소통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더불어 여러 면에서 반드시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만 하는 작품이었다. 그 중요한 개성을 끝까지 잃지 않는 영화가 되게끔 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을 거듭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 결국은 공동의 창작 과정이란 점에서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과정은 오케스트라 연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악기가 모여서 화음을 맞춰가고 비로소 한 곡의 음악을 연주하듯,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니까.

희비의 순간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수많은 변수와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다. 캐스팅 단계에서도, 촬영 현장에서도, CG 작업 중에도, 홍보 단계까지도. 단계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늘 도사리고 있고, 예외 없이 발생한다. 그 변수에 잘 대처할 땐 기쁘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때는 힘이 든다. 그래서 위기 대처 능력은 이 일을 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내가 하는 일을 영화로 만든다면 성장담, 성장 영화? 영화 한 편을 프로듀싱 할 때마다 정말 많은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진다. 돌이켜보면 그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매번 성장하는 것 같다.

영화가 가지는 힘 꿈꾸게 하는 힘, 그리고 소통하게 하는 힘. 영화는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때론 화나게 부추긴다. 각자가 느끼는 그 감정을 다시 누군가와 공유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고하고 궁극적으로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수많은 고전영화가 여전히 관객에게 기억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거다. 그것이 영화라는 콘텐츠가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나의 극장 메가박스 코엑스점.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를 가장 잘 전달받을 수 있는 곳은 여전히 극장이다. 특히 스크린, 사운드 등 관람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일수록, 관객이 가져갈 수 있는 영화적 재미의 차이는 생각보다 무척 크다.

꿈의 영화 <#살아있다>를 비롯해 <국가부도의 날> <가장 보통의 연애> 등 어떤 작품을 시작할 때나 마찬가지지만, 내가 꿈꾸는 영화는 그리 거창하지 않다.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그저 내가 프로듀싱 하고 참여하는 이 작품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길 바랄 뿐이다.

 

옥광희
<오! 문희> 프로듀서

영화 <오! 문희>의 프로듀서 더러 감독과 프로듀서의 역할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감독은 연출을 하고, 프로듀서는 연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번 작품 <오! 문희>에서 프로듀서로서 가장 신경을 쓴 점은 주연배우 캐스팅과 사투리다. 특히 캐스팅 과정에서 모자 간의 케미를 어디까지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문희’(나문희)와 ‘두원’(이희준)의 드라마가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데다 감동까지 느껴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희비의 순간 이번 작품을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두 주연배우 나문희 선배님과 이희준 배우의 캐스팅에 성공했을 때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에서 바라던 배우들을 캐스팅해 더욱 기뻤다. 가장 힘든 여정은 가끔씩 배우의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조금 더 찍으면 좋은 그림이 나올 것만 같은 순간에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멈춰야만 할 때였다. 그렇게 극적인 순간을 다시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었다.

내가 하는 일을 영화로 만든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영화가 가지는 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마다 언어와 대화의 방식이 달라도 영화를 보면서 다 같이 웃으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영화가 가지는 소통의 힘 덕이다.

나의 극장 CGV 아트하우스. 특히 <오! 문희>가 CGV아트하우스가 투자하고 기획한 마지막 작품이라 그곳을 더 마음에 둘 것 같다. 극장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영화를 보는 이들과 같이 울고 웃으며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볼 때보다 적어도 몇 배는 더 영화가 주는 감동을 크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을 더 즐기는 편이다.

 

홍성윤
<그녀를 지우는 시간> 감독

영화 <그녀를 지우는 시간> 어릴 때 DVD에만 있는 코멘터리 기능을 접하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직접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건데, 이를 보며 미처 생각지 못한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한다는 점과 영화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녀를 지우는 시간>은 이런 방식을 영화 자체에 차용한 작품이다. 영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동시에 논평을 하고, 그 논평이 영화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감독의 역할 감독은 도움을 구하고, 도움을 받는 사람이다. 가끔은 현장에서 할 줄 아는 게 가장 없는 사람이라 생각될 때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 나는 내 역할 이외의 일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가장 부족한 사람이고, 그래서 스태프와 배우들이 각자의 일에서 전문가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부족한 존재인데도 결국 수많은 갈림길에서 감독은 선택을 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감독이란 참 이상하고 힘든 역할이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 말하자면 이런 거다. 친구들과 놀러 가서 저녁 먹을 시간인데, 요리를 한다고 달라붙은 녀석들이 하는 행동이 아무리 봐도 미덥지 않다. 물 양은 알맞은지, 불세기는 적당한지, 아니 지금 하고 있는 게 사람이 먹을 만한 요리이기는 한지. 그런데 요리가 완성되고 나서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는 심정으로 한숟갈을 떠먹는데, 이게 놀랄 만큼 그럴싸한 거다. 심지어 맛있다. 영화가 완성되어가는 과정도 비슷하다. 그 과정을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아니, 이게 정말 완성이 된다고?”

희비의 순간 가장 즐겁고 보람찬 순간은 역시 극장을 채운 관객과 함께 완성된 영화를 볼 때. 무엇도 그 경험을 대신할 순 없을 거다. 반대로 가장 힘든 여정은 그 경험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자괴감에 시달리는 모든 순간.

영화가 가지는 힘 사람들은 영화를 굉장히 쉽고 친근하게 생각한다. 취미 생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영화 보기’가 아닌가. 그만큼 사람들은 영화를 부담 없이 보고, 또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때로는 ‘나도 한번 만들어볼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게 영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영화가 할 수 있는 일 모두가 많이 힘든 시기고, 누군가에겐 이런 상황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철없는 행동이나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예술은 항상 생존과 밥 먹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쓰잘데기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쓸데없는 일에 열정을 바치고, 얼마의 시간을 낸다는 것이 인간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잊고 외면하게 만드는 게 지금의 시대를 견디기 힘든 이유 중 하나고. 그렇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좋은 영화는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다운 삶’을 떠올리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의 극장 여름철에 대작이 개봉하면, 사람들이 제일 붐비는 시간대에 코엑스 메가박스의 제일 큰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가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일부러 시선을 돌려 스크린 모서리 쪽을 본다. 그러면 영화와 극장 안 풍경이 동시에 보이면서 두 개의 세계가 맞닿은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꿈꾸는 영화 누구나 인생을 되돌아볼 때 그 속에 마음에 남은 영화 한 편이 있을 거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기억이 될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최만선
<나는 보리> 음악감독

영화 <나는 보리>의 음악 작업 김진유 감독과 같은 동네에 살아 자주 본다는 이유로 친구(최용철)와 함께 음악 작업에 참여하게 된 작품이다. 작업을 하면서 소박하고 잔잔한 영화 분위기에 맞춰 복잡하고 화려한 것들을 버리려 노력한 기억이 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 짝사랑과 비슷하지 않을까.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심을 다하지만, 그 결실을 온전히 맺을 수 있을지는 모르니까. 또 그 과정에서 설레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이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다가도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희비의 순간 내가 만든 음악이 감독이 만들어낸 장면과 잘 어울릴 때 쾌감을 느낀다. 그렇지 않을 때는 물론 속상한 마음이고. 나의 극장 영화관에 자주 가는 편은 아니지만, 가게 될 때는 꼭 독립영화 극장에 가는 편이다. 제일 좋아하는 건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영화가 많기도 하고, 작게나마 그런 영화들을 만드는 이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그런 극장들을 가곤 한다. 한편으론 극장만큼 방 안에서 혼자 알맞은 사운드를 조정해서 보는 영화도 좋아한다.

꿈의 영화 언젠가 나타나길 기바란다.

 

김지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프로듀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원작 소설을 흥미롭게 풀어낸 시나리오를 읽고 단번에 하고 싶다고 생각한 작품이다. 감독과 매주 만나서 시나리오와 영화에 관해 얘기하는 것부터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일을 맡았다. 특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영화 구조상 편집 과정에서 해볼 수 있는 일이 워낙 많아 편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그 과정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일을 했다.

프로듀서의 역할 감독이 영화의 내적 완성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프로듀서는 영화의 외적 완성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프로듀서는 어떤 아이템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것인가 하는 기획과 시나리오 개발, 예산 수립과 관리, 스태프 구성과 캐스팅, 투자사와의 의견 조율,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의 전반적인 스케줄링과 관리, 최종 결과물이 완성돼 무사히 극장에서 개봉하기까지 전체적인 일정에 참여한다. 물론 모든 일은 제작자와 감독, 참여하는 스태프, 배우들과 조율하고 협업해야 가능하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 좋은 씨앗을 골라 좋은 땅에 심은 뒤 잘 자라도록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주고 다 자라면 수확해서 시장에 내놓는 농사의 과정이 영화와 비슷한 것 같다. 작품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 흥행 여부도 비슷하다. 농사가 힘들게 키워도 흉작이 되거나 제값에 팔리지 않는 상황이 있는 것처럼 영화도 노력과 결과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듬해가 되면 포기하지 않고 또 같은 농사를 반복한다.

희비의 순간 가장 즐거운 순간은 당연히 관객이 완성된 영화를 보고 즐기는 모습을 마주했을 때. 영화 일을 시작한 이래 변함없는 생각이다. 반대로 힘든 여정은 개봉 전의 모든 상황들. 기획 및 개발한 작품이 투자자 모집 단계와 캐스팅을 거쳐 촬영에 들어가고 개봉해 관객에게 선보이기까지 모든 순간이 즐겁지만 힘든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예산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빡빡한 일정을 지키면서 모든 이들과 조율하는 과정은 엄청난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내가 하는 일을 영화로 만든다면 2008년에 만들어진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할리우드 폭로전>이라는 영화가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이자 프로듀서인 ‘벤’이라는 인물을 통해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얽힌 뒷이야기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 영화 현실과 다른 지점이 많긴 하지만, 내 일을 영화로 만든다면 아마 이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극장 특별히 자주 가는 극장은 없다. 보고 싶은 시간대에 궁금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극장도 헬스장처럼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는 되도록 극장에서 보려고 한다. 외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영화라는 작업물이 극장이라는 시스템에 최적화되도록 만든 결과물이니까. 영화를 구성하는 화면(배우, 장소, 미술, 컴퓨터그래픽 등)과 사운드, 음악 등을 최적의 상태에서 온전히 즐기려면 극장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꿈의 영화 식상한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를 바란다. 관객은 자신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지불하고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온다. 그래서 되도록 많은 사람이 괜찮다고, 들인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더불어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보람되고 즐거운 영화를 만드는 것 또한 내 바람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내가 워낙 어려운 환경에서 영화를 해왔기에 즐거운 현장에 대한 갈망이 있다. 참여한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두 자랑스러워하고 즐거워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박시영
<해치지않아> 포스터 디자이너

영화 <해치지않아>의 포스터 디자인 영화의 배경이 되는 ‘동산파크에서 새로운 직원을 뽑는다면 아마 저런 자세로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과 복잡한 스토리 라인을 쉽고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고민해 완성한 디자인이다.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대중성이었다. 사람들이 좀 더 편히 접근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는 데 중점을 뒀다.

포스터 디자이너의 역할 첫째로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이 아닐까. 구체적인 업무 과정은 다음과 같다. 영화 크랭크인과 동시에 영화 포스터 기획을 시작해서 영화를 크랭크업할 무렵에 포스터 사진 촬영을 한다. 촬영 데이터와 영화스틸이나 캡처한 장면 등을 활용해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티저 포스터, 메인 포스터 등으로 완성한다.

희비의 순간 즐거움과 힘듦 모두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즐겁고, 힘든 사람을 만나면 더 힘들다.

내가 하는 일을 영화로 만든다면 추리영화가 되지 않을까. 그 남자는 어디로 잠수를 탔나?

영화가 가지는 힘 영화를 보는 한두 시간의 몰입을 통해서든 그 후의 여운을 통해서든 잠시 삶의 궤도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것.

지금, 영화가 할 수 있는 일 사람들의 상실감과 무료함을 달래며 곁을 지키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나의 극장 CGV 용산아이파크몰점. 집에서 가장 가깝고 스크린도 커서 자주 간다. 사실 하는 일이 디자인이다 보니 극장에 가면 극장 광고물들을 훑어보느라 되레 더 불편할 때도 있다.

꿈꾸는 영화 용감한 영화.

 

양진모
<반도> 편집감독

영화 <반도>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부산행>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반도>만의 개성 있는 캐릭터와 독특한 액션을 놓치지 않는다. 보다 진화한 좀비 액션과 팽팽한 긴장감이 매력적인 영화다.

편집감독의 일 영화 편집은 후반 작업의 핵심이 되는 과정으로,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를 토대로 촬영한 신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공정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장면이 재조립되고 삭제되기도 하고 이야기의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나는 이야기를 최대한 매끄럽고 리듬감 있고 지루하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 영화는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가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종합예술이다. 시나리오로 시작해 감독의 연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수많은 스태프의 감각과 손길이 더해져 한 편의 영화가 된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건축물을 짓는 것과 같다.

희비의 순간 가장 즐거운 순간은 시나리오 속 장면을 구성하고 편집한 결과가 관객에게 보여지고 나아가 공감을 얻어낼 때다. 반대로 공감을 얻지 못하거나 우리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을 때 힘들다. 편집자로서 늘 관객과 최대한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내 일을 영화로 만든다면 편집 일은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아마 같은 일을 반복하는 지루한 다큐멘터리가 될 거다.

영화가 가지는 힘 영화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때론 좋은 영감을 주기도 한다. 나 또한 부모님을 따라 극장에 가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본 영화의 감동을 잊지 않으며 산다. 그래서 영화를 본다.

나의 극장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의 아이맥스관이나 집 근처 메가박스 성수점에 주로 간다. 극장은 우리가 만든 영화를 최고의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되도록 극장에서 보려고 한다.

영화제 영화인들에게 영화제는 휴가 혹은 축제다. 그동안 열정을 담아서 작품에 참여한 데 대한 보상일 수도 있고. 사실 영화제가 아니면 다른 영화인들과 교류하고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다. 영화제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작품도 만나고 스태프나 배우들과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서로 좋은 영감을 주고받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좋은 에너지와 경험이 다음 작품에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꿈꾸는 영화 수년이 지나도 기억되는 영화. 유행을 타지 않는 영화. 우리가 흔히 명작이라 부르는 영화는 지금 봐도 촌스럽거나 시대에 뒤처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 영화를 남기고 싶다.

 

한상길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촬영감독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의 촬영 이번 영화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솔직히 영화적 가치보다 시간 내에 끝내는 것이었다. 촬영감독으로서 이미지에 대한 욕심과 잘 찍고 싶은 생각은 언제나 가지고 있지만 이번 영화에서 만큼은 그런 것들이 엄청난 사치였다. 로케이션은 강원도 양양이고, 심지어 계절은 겨울이었다. 게다가 찍을 수 있는 광질과 색 온도가 유지되는 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에 불과했다. 아름답지만 지나치게 짧은 겨울 해를 붙잡으며 허락된 시간과 정해진 예산 내에서 촬영을 마치기 위해 부단히 애쓴 기억이 크다.

촬영감독의 역할 좁은 의미로는 카메라 팀의 수장으로서 카메라 선택부터 렌즈, 조명 등 촬영에 필요한 모든 장비의 선택을 관장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에 관여한다. 촬영 전부터 시나리오를 촬영적으로 해석해 감독이 생각한 영화의 가치와 방향성으로 올바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의견을 조율한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는 과정 인생과 같다.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그 안에서 별별 일이 다 생기고, 과정 속에 인생사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다. 현실에 부딪히다가 극도로 즐거운 순간을 마주하기도 하고…. 그냥 삶, 그 자체 같다.

희비의 순간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로 한정 짓는다면 가장 기뻤을 때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어떤 관객이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영화 재밌더라’라고 하는 말을 들은 날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스태프나 관계자가 아닌 일반 관객에게 좋은 평을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그렇지만 그 재미있다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의 연속이다. 그냥 끝날 때까지 다 힘들다고 보면 된다.

내가 하는 일을 영화로 만든다면 영화 촬영은 생각보다 험난한 여정이고,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쉼 없이 발생한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생각할 때쯤에 감동적인 순간도 튀어나온다. 그렇지만 장르적으로 휴먼 드라마도, 코미디도 아니다. 서사 구조에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좀 돌아이 같은 영화일 것 같은데, 결과적으론 아무도 안 볼 것 같다.

영화가 가지는 힘 영화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영화는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나의 극장 지금 머무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을 선호한다. 그래서 보통은 집 앞에 있는 롯데시네마를 자주 간다. 그러다가도 가끔 좋은 영화를 좀 더 제대로 보기 위해 여행을 가듯 특정 영화관을 찾아가는 것도 즐긴다. 개인적으로 국내 영화관 가운데 종로에 있는 인디스페이스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내에 있는 극장의 스크린 상태가 참 좋다고 느꼈다.

꿈의 영화 재미있는 영화를 찍고 싶다. 그 안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든 결과적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 또 아름다운 빛을 담은 영화도 꿈꾼다. 가능한한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빛들을 스크린에 담고 싶다.

 

박지호
<강철비 2: 정상회담> 3D CGI 제작 담당 로커스 VFX 스튜디오 팀장

<강철비2: 정상회담>의 3D CGI 영화에서 3D CGI 영상 제작을 맡았다. 작은 어뢰부터 (우리에겐)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인 잠수함 ‘백두호’까지, CG로 구현되는 모든 애셋(asset) 제작부터 최종 합성까지 기획 및 제작을 담당했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실제 북한에서 운용하는 잠수함과 현재 상황에 맞는 고증을 거쳐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거였다. 너무 세련되거나 혹은 너무 판타지스러운 작업물로 나오지 않도록 디자인부터 텍스처, 재질까지 고증 확인을 거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또 영화의 중요 공간 중 하나인 심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양우석 감독의 명확한 디렉션을 반영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내가 하는 일을 영화로 만든다면 다양한 에피소드가 넘쳐나는 촬영 현장에 비해 후반 파트 인원들은 상대적으로 정적인 시간 속에서 결과물을 만든다. 그렇지만 현장의 열정에 비해 뜨거움이 모자라지는 않는다. 만족스러운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아주 작은 픽셀까지 수정하며 무수한 철야 작업을 이어갈 뿐 아니라 기술적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미친 듯 노력한다. 그 모습을 영화로 만든다면 나름 스펙터클하면서도 그 안에 웃음이 있는 형태가 아닐까. 마치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처럼. 그런데 막상 영화화되면 좀 지루하긴 할 것 같다.

영화가 가지는 힘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서 나문희 배우의 연기를 보며 극장에서 탈진할 정도로 운 기억이 있다. 영화 속 배경은 내가 겪어보지도 못했고, 심지어 그 당시 나는 자녀도 없는 싱글이었지만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오열했다. 그게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스‘ 크린을 통한 공감’.

희비의 순간 극장 의자에 앉아 ‘우리 영화’를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설레고 즐겁다. 그렇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상영이 끝날 때까지의 시간은 괴롭다. 언제나 그렇듯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는 순간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지금, 영화가 할 수 있는 일 개인적으로 지금 영화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자,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자.”

나의 극장 메가박스 상암 월드컵경기장점. 일을 마치고 심야 영화를 보러 자주 가는 편인데 시간상 사람도 별로 없고 위치도 한적한 곳에 있어 멀리 여행을 간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 외에는 집과 가까워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학창 시절 만화방 가듯 편하게 찾는 롯데시네마 가양점도 좋아한다.

꿈의 영화 VFX 영상을 만들고 제작하는 일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CG가 주된 영화보다는 사람 냄새 많이 나고 정극에 가까운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강철비 2: 정상회담>이 더욱 좋았고 이런 영화에 참여하게 돼 의미 있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암울한 미래를 그리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보고 싶다.

코로나 시대의 문화 생활

언택트 현장학습

에어비앤비가 ‘현장학습(Field Trips)’라는 이름의 새로운 온라인 체험을 선보인다. 코로나19로 자유로운 외부활동을 할 수 없게 된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미국의 유명 과학 교육자이자 방송인 빌 나이의 ‘과학자 빌 나이와 함께 알아보는 2020년의 과학계 소식’, 1천명의 흑인 여학생을 위한 책 기부 캠페인(#1000BlackGirlBooks) 설립자인 말리 디아스 가족의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 등의  ‘zoom’을 활용해 이뤄진다. 이외에도 스리랑카 표범을 만나는 사파리, 색  입힌 파스타와 초콜릿 만들기, 파리지앵과 함께 하는 온라인 파리 여행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현장학습’은 에어비앤비 웹사이트 www.airbnb.co.kr를 통해 예약 가능하다.

온라인 미술관

미술관의 작품을 집에서 즐기는 ‘2020 미술주간’이 9월 24일부터 10월 11일까지 ‘당신의 삶이 예술’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전국 40여개의 미술관과 갤러리의 전시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VR전시, EBS 이청아의 뮤지엄 에이로그를 들으며 현장에서 전시를 감상하듯 즐길 수 있는 상상체험 ASMR 등 미술을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미술 주간 웹사이트 http://artweek.kr를 통해 원하는 전시를 선택하면 된다. 9월 23일부터 10월 18일까지 열리는 KIAF SEOUL도 온라인 뷰잉룸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http://kiaf.org에 나와있는 QR 코드를 입력하면 2020 앱북 카탈로그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방구석 1열 공연

전통 예술과 서양 연극을 접목한 국립극단의 신작 ‘불꽃놀이’가 온라인 유료 공연으로 공개된다. 사고로 친구를 잃은 주인공을 담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양한 굿장단으로 표현한다.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지만 대신 대사 전달이 잘 되도록 자막 옵션을 제공한다. 9월 25일과 26일 양일간 진행되며 국립극단 홈페이지 및 인터파크 등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티켓 가격은 2천5백원. 국립 오페라단은 귀족 학생 데 그리외와 평민 소녀 마농의 사랑을 그린 ‘마농’을 9월 25일 네이버 온라인 시어터를 통해 상영한다. 관람료는 2만원으로 무료로 이뤄진 지난 6월의 공연 때보다 추가 촬영을 진행하고 음향도 보강했다. 10월 23일에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위한 콘서트 오페라 ‘피델리오’를 무료로 생중계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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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OF SMALL ISLAND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외딴 곳에 자리한 유인도인 페어섬(Fair Isle)에 발을 디뎠을 때, 당신은 생경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따스한 느낌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건 독특하고 신비한 모습을 지녔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평범한 삶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섬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곳만의 분위기다.

페어섬은 공식적으로 스코틀랜드의 한 지역으로, 오크니 제도(Orkney Islands)와 셰틀랜드 제도(Shetland Islands)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55명. 한때는 360명까지 살기도 했지만, 이는 최고점을 찍은 1861년의 인구다. 그 이후부터 페어섬의 인구는 감소세를 이어왔다. 1973년에는 심지어 인구가 42명까지 줄어들어 이 섬에 사람이 살지 말지 여부를 논의하기도 했다. 유인도 하나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손도 많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급수 장치를, 전기 공급망을, 도로를 관리해야 한다. 가게와 선착장, 비행장과 학교에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페어섬은 여전히 무인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섬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 섬에는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과 학교, 건설 회사와 편물 회사, 기상대, 그리고 몇 개의 B&B(breakfast & bed)형 숙소가 있다. 심지어 철새와 바닷새의 개체 수를 조사하는 조류 관측소도 1년 내내 활발히 일을 벌이고 있다. 겨우 55명의 사람들로 가능한 일이냐고? 놀랍게도 그렇다.

이곳에서는 어린아이를 제외한 성인은 모두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딱히 원해서 그런다기보다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56세의 피오나 미첼(Fiona Mitchell)은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하면서 남편과 함께 우체국도 운영 중이다. 또 초등학교에서 미술 강사를 하면서 소방청 페어섬 지소에서 소방장(watch manager)도 맡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피오나는 공설 비행장의 항공기 소방사 면허를 가지고 있으며, 지역 평의회 의원 일도 하고 있고, 섬 내 다양한 단체의 이사로도 재직 중이 며, 이곳의 많은 여성들이 그렇듯 편물 제작 일도 조금 하고 있다. “여기서는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항상 해야 하는 다른 일이 생기거든요.” 피오나는 열 살 때 이 섬에 왔다. “외지 사람들이 페어섬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는 지점은 저녁이나 특히 겨울에 심심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섬의 일원이 되어 며칠만 지내보면 그게 얼마나 큰 오해인지 알 거예요.”

‘지루함’이란 이곳 사람들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새로운 사람이나 문물을 마주하기 어려운 외딴 곳에 자리했다는 사실만 빼면 섬의 생활은 지루할 틈 없이 흐른다. 피오나처럼 여러 직함을 갖지 않더라도 이곳 주민들은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고 수리하고 유지해야 한다. 이곳에 사는 이상 누구든 해결사가 될 수밖에 없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수밖에 없다. 바깥에서 도움과 물자를 받으려면 비용이 비쌀 뿐 아니라, 아예 도착 하지 못할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모든 섬 지역이 그렇지만 페어섬 사람들만큼 ‘날씨가 허락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대서양과 북해, 노르웨이해가 만나는 자리에 위치하다 보니, 섬에 드나드는 행위는 날씨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사람과 물자의 이동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럽에서 가장 작은 비행장 중 하나로 꼽히는 페어섬 비행장에는 일주일 동안 비행기가 열네 편가량 들어오는데 겨울에는 열 편으로 줄어든다. 물론 그나마도 날씨가 허락해야 한다. 이곳에 들어오는 다른 선택지는 ‘굿 셰퍼드 4호’ 를 타는 것이다. 1986년부터 운항해온 이 배는 섬을 오가는 연락선이자 페어섬의 두 번째 생명 줄이다. 일주일에 세 번 셰틀랜드 본토의 그러트니스 (Grutness)에서 출발하는 이 배는 도착하기까지 2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오는 내내 거친 파도를 뚫어야 하는 탓에 많은 사람이 최후의 선택지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승조원도 종종 뱃멀미를 할 정도라니 이해할 만하다.

연락선은 승객들에게는 그다지 인기 있는 선택지가 아니지만, 지역사회 에는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다. 음식을 비롯해 신선한 과일과 채소, 건축자재, 생활용품, 심지어 자동차도 배에 실려 페어섬으로 들어온다. 보통 화요일이 되면 굿 셰퍼드 4호는 창고에 섬사람들을 위한 화물을 가득 싣고 노스 헤이븐(North Haven) 부두에 기적을 울리며 들어온다. “항구에 들어갈 때마다 섬사람 대부분이 배를 마중하러 나와 있다가 짐 내리는 것을 도와 줍니다. 자신의 물건이 없어도 시간이 되는 사람은 누구든 나와 있어요. 땡볕이 내리쬐어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도 늘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 외로울 일이 없죠.” 굿 셰퍼드 4호의 선장 이언 베스트(Ian Best)의 말이다. “이렇게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서로를 지탱해주는 이웃들은 아마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이언의 형제 피오나가 페어섬 사람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피오나의 말은 섬사람 모두 공유하는 인식이자 이 섬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렇지만 반면에 그 이유로 페어섬을 답답한 공동체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은 모든 주민이 서로 돕고 살기 때문에 외톨이가 될 일은 없지만, 워낙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 간의 긴장감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때로는 더욱 두드러지기도 한다. 게다가 이 곳에서는 이웃들로부터도, 나 자신으로부터도 도망치거나 숨을 방편이 별로 없다.

2007년 페어섬에 이사 온 데이비드 킹은(David King) 또한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이 마치 촘촘하게 짜인 편물 같은 이 섬의 사회에 완전히 녹아 들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이곳 사람들은 너나없이 섬에 새로 이사 온 사람 에게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 역할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 입니다. 이곳으로 이주하려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든 일을 나눠 하는 상태고 사회구조는 빈틈없이 돌아가고 있으며, 어딘가 한곳에는 끼어들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오면 좋겠어요. 무언가 새로운 것 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오랫동안 이 섬을 지켜온 사람들의 눈초리를 피할 순 없을 거예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성정이 강하거나 기존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 못 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이곳에서 삶을 유지하는 데는 확실히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존 베스트(John Best)는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경험이 가장 많은 섬사람이다. 1973년부터 페어섬에서 살기 시작한 그는 올해 83세로 이곳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주민이다. 공공 의료 서비스직으로 섬에 정착한 그는 이 곳 사람들이 그렇듯 또 다른 직업을 찾았고, 얼마 지나 건설업체를 차렸다. 처음에는 깃대나 풍차를 세우는 작은 일을 하던 그의 회사는 시간이 흘러 섬 안의 모든 건축물을 짓거나 수리하는 유일한 업체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존은 바위투성이 해안의 멋진 광경이 내려다보이는 섬의 남쪽 끝에 2층짜리 널찍한 자기 소유의 건물까지 지었다. “이 섬에 온 지 47년이 됐지만, 떠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굳이 이 섬에 올 필요가 없지요. 이곳에서의 삶은 돈을 버는 것과는 다른 유형의 성취감 을 느끼게 해줘요. 이를테면 이 섬과 어울리는 멋진 건물을 지을 때, 그리고 이곳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작게나마 도움을 줄 때죠. 우린 서로를 커다란 확대가족으로 여기고 있어요.” 그가 가족이라 부르는 이 사회 안에서 존은 모두의 할아버지 역할도 겸하는 중이다. 나이가 많기도 하거니와 안수받은 목사로 예배를 집전하고 있어 많은 섬사람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 거리를 털어놓기 위해 그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지역사회를 위해 큰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 동네에 비밀은 없거든요. 서로 워낙 잘 알 다 보니 가끔은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나를 찾아와요.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거지요.”

좋거나 나쁘거나 끈끈한 상호부조 관계로 엮인 이 작은 공동체는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삶을 꾸려갈 예정이다. 원치 않더라도 한 사람이 몇 사람 몫을 해내야 하고, 서로의 생활에 속속들이 관여하는 것은 이 섬이 자생 하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보조금 지급 사업이나 섬 주민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에 쓰이던 유럽의 지역 보조금이 브렉시트로 중단될 위기에 처한 지금 상황에서는 내부적으로 더욱 똘똘 뭉쳐 자생 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55명의 페어섬 사람들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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