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 스웨터와 팬츠 모두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인터뷰를 위한 자리를 편하게 느끼는 편인가?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자리여서 좋아한다. 보통 술자리 아니면 진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말할 수 있으니 좋다.

<모래시계>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오르게 됐다. 생애 첫 뮤지컬이기도 하다. 뮤지컬 자체에 큰 꿈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랜 시간 한 장면을 연습하고 여러 사람과 호흡을 맞춰 두세 시간 동안 공연하는 부분이 매력적이라 언젠가 한번쯤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정도였다. 그간 뮤지컬 작품 출연을 몇 차례 제안받기도 했었는데 모두 거절했다.  작품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기보다는 앨범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 <모래시계>라는 작품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드라마에서 이정재 선배가 연기했던 ‘재희’ 역할인데, 드라마로 이미 충분히 유명한 작품이어서 친숙했고 창작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좀 더 마음이 갔다. 뮤지컬 넘버도 좋았다. 물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연기여서 부담감은 컸지만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막상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가니 선배 배우들의 라이브 공연을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듣는 것만으로도 내 노래 실력이 늘고 발성이 바뀌는 기분이랄까.

데뷔 무대를 준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어려운 점도 있겠다. 창작 뮤지컬이다 보니 그동안 연습해온 동작과 대사가 갑자기 바뀌는 경우도 있다. 공연이 딱 한 달 남은 지금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런데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 <투깝스> 현장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선배들이 모두 괜찮다고 말씀해주신다. (조)정석이 형도 그렇고 연극 무대에서 오래 연기한 선배들이 그 모든 시간이 다 축적되고 있다고.

하이라이트의 손동운, 배우 김산호와 트리플 캐스트다. 함께 캐스팅된 배우에게 경쟁심도 느끼나? 처음엔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셋이 삼시 세끼를 같이 먹으며 연습하다 보니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가게 되더라. 서로 의견을 내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려주며 캐릭터를 함께 연구하고 있다.

앨범으로 컴백하고 싶었다니 의외다. 연기에 더 큰 뜻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그런 식의 기사도 많이 나왔고. 하지만 내게 첫째는 음악이다. 열여섯 살 때부터 늘 R&B 음악을 하고 싶었다. 올해 초부터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봤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더라도 딱 하나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종이에 썼다 지웠다 하며 적어보았다. 그렇게 남은 한 가지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 팬들에게 선보이는 것이었다. 첫 행보가 가장 중요하니까. 그런데 막상 실현하려니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모래시계> 출연을 제안받았고 ‘재희’라는 캐릭터가 나처럼 다 버리더라도 하나만은 지키려고 한다는 점에서 깊이 공감했다. 그래서 더 끌린 것 같다.

재킷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니트 스웨터 소윙바운더리스(Sewing Boundaries), 팬츠 비욘드 클로젯(Beyond Closet).

많은 변화가 있었고 공백기도 길었다. 외롭고 불안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주로 집에 있었는데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책에서 현명한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촐라체>도 읽고, 명언집인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365>는 매일 열 장씩 읽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읽은 날도 있다. 읽을수록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되더라. 그렇게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다 음악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SNS로 메시지를 보냈다. 한 새벽 1시쯤이었나? 그런데 새벽 2시쯤 답장이 왔고 한 시간 있다가 둘이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땐 서로 경계도 했지만 음악 취향이 비슷하고 대화도 잘 통했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전에는 뭔가 목표를 두고 음악 작업을 했는데 그때는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

그 시간을 지나 이제는 오늘의 할 일이 확실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이 있나? 3주 전에는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하루에 한두 시간씩 자며 활동하다 보니 구내염이 생겼는데 좀처럼 낫지 않았다. 몸이 힘드니까 정신마저 피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뮤지컬 연습하러 갔다가 곡을 쓰고 안무 연습을 하다가 드라마 촬영장에 가는 생활이 이어지니 힘겨웠다. 그러다 하루는 집에 돌아와 반성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할지 답을 얻지 못해 우울하게 보냈는데 할 일이 많은 지금 몸이 힘들다고 불평하다니. 그렇게 정신을 차리니 다시 이런 기회를 만났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팬들도 영영 못 만날 것 같고 다시는 무대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때에 비하면 할 일이 분명한 지금은 행복한 시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웃으면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곧 <투깝스>도 방영을 시작한다. 극 중 (조)정석이 형이 형사인데 몸에 영혼이 빙의되면서 한 몸을 나눈 두 명이 번갈아 사건을 해결한다. 나는 정석이 형을 무한 ‘리스펙’하는 파트너 형사를 맡았다. 선배를 마치 팬처럼 좋아하는 강력계 막내 형사. 그런데 실제로 나는 정석이 형의 팬이기도 하다.(웃음) 드라마에서는 사건을 잘 해결해서 따르는 건데 나도 형을 자연스레 ‘리스펙’ 하며 많이 배우고 있다. 늘 감동받는 현장이다.

전작보다 캐릭터가 훨씬 경쾌하겠다. 그간 맡은 캐릭터와 많이 다르다. <투깝스>는 전체 대본 리딩 이틀 전에 캐스팅이 결정됐다. 오디션을 보기 전에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굉장히 밝고 긍정적이며 순수한 인물이라고 하더라. 나와 많이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속사 대표님이 나와 똑같은 인물인 것 같다고 하시더라. 처음엔 나와 전혀 다른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디션을 보러 들어갔는데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완전히 망쳤다. 큰 변화를 겪고 나서 주변의 많은 사람이 다시는 캐스팅되기 힘들 거라고 걱정했었고, 그래서 더 자신감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땐 앞으로 연기를 못 하게 돼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는데 막상 오디션을 보러 가니까 잘해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많이 긴장했다. 오디션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연락이 와서 기회를 한 번 더 얻었다. 오디션을 보기 전에 여의도공원을 큰 목소리로 대사를 하며 걸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오디션을 봤더니 결과가 좋았다.

다른 건 다 포기하더라도 하고 싶은 음악만큼은 내려놓을 수 없다고 했지만 결국 연기도 다시 하게 됐다. 앞으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나? 앞으로 내게 주어질 선택의 권리. 지금까지 보낸 시간도 너무 소중하지만 앞으로의 선택과 내 미래의 꿈은 내가 중심이 되어 선택하고 싶다.

그렇게 선택한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계속 요즘 같으면 좋겠다. 안 될 것 같은 일에 계속 도전하고 결국 해내는 미래. 또 함께 있으면 편하고 좋은 사람들과 웃으면서 일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용감한 편이었나? 사소한 일에는 겁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큰일을 앞에 두면 용감하다. 열일곱 살 때 음악을 하고 싶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춤은 물론 노래도 배운 적 없다. 옆에서 ‘넌 할 수 있어’라고 부추기는 사람도 없었다. 무작정 ‘난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속이 타셨겠다. 맞다.(웃음) 그래도 잘해왔으니까. 많은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하기로 결정하는 나를 보면 참 겁 없다 싶다.

<마리끌레르> 12월호를 위한 인터뷰다. 올 한 해는 본인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 것 같은가? 사람이 평생에 걸쳐 느낄 감정을 1년 동안 모조리 느낀 것 같은 해. 삶의 희로애락을, 바닥과 정상을 모두 찍어본 한 해. 내년은 지금껏 바라던 꿈을 실현하며 살고 싶다.

그럴 것 같나? 자신감은 늘 있다.(웃음) 될 거다.

블랙 셔츠 생 로랑(Saint Laurent), 니트 스웨터 세인트 페인(Saint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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