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에게만 중요한 이력서 VS 면접으로 이어지는 이력서

“설마 그동안 이 이력서를 제출하신 거예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헤드헌터의 말에 완전히 주눅이 들었다. 그가 사용한 단어, 목소리 톤, 감지되는 웃음기와 분위기를 짐작했을 때 “에이, 아니죠”라는 답이 나와야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으나 절망적이게도 나의 답은 “네…”였으니까. 취재를 위해 헤드헌팅 기업인 ‘커리어케어’의 정은아 파트장에게 내 이력서를 샘플 삼아 내밀고 코멘트를 부탁한 차였다. 그는 먼저 한 직군에서 커리어를 쌓아왔고 다양한 경험이 있다는 점은 알겠으나 인사 담당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력 사항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에 내 이력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학생 기자, 에이전시 인턴십, 전시 기획자 등으로 활동한 ‘다양한’ 경험, 취업에 도움이 될까 싶어 따둔 각종 전공 관련 자격증을 기록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내게는 의미 있는 경험이지만 경력직 지원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력직 채용 담당자에게는 굳이 필요 없는 정보’이며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경력 사항에 대한 주목도를 떨어뜨린’ 주범이었다. 언젠간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 여기고 힘겨워하는 자신을 다독이며 모아온 내 아이템들이 순식간에 애물단지로 전락한 듯했다.

“이력서는 철저히 인사 담당자의 시각에서 생각해야 해요. 경력자의 이력서라면 학력, 회사 경력 및 업무 기술을 간추려 먼저 쓰고 그 뒤에 직무와 관련이 있는 기타 경력, 교육 수료 및 이수 내용, 자격증의 순서로 작성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인턴십 경험도 신입 혹은 주니어급 레벨 이상으로 지원할 경우에는 안 써도 무방하고요.” 그리고 취미나 특기에 대한 조언을 이어나갔다. “간혹 왕성한 동호회 활동을 경험을 기재하면서 자신의 외향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분이 있어요. 다만 이 부분도 지나치게 다방면에 걸쳐 있거나 개수가 많으면 인사 담당자는 ‘워크와 라이프’의 균형에서 ‘라이프’에 더 치중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여지가 있습니다. 전문성이 있거나 직무와 연관 있는 취미 한두 가지만 언급하는 편이 좋아요. 워크와 라이프의 균형을 맞추면서 안정적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지원자라는 인상을 주니까요.”

 

가장 중요한 경력 사항, 가장 위험한 공백기

다음으로 헤드헌터는 이직이 잦은 점에 우려를 표했다. 통상 이직이 잦은 업계라면 인사 담당자가 느 정도 감안하고 이력서를 검토하긴 하지만 어쨌든 이직 횟수가 많을수록 지원자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적 없는 단기 경력은 기타 경력으로 정리하면 한결 정돈돼 보여요. 한 회사에 최소 2~3년은 재직해야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지 않고 로열티를 가진 지원자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3년 이상 다닌 회사는 한 곳. 이직이 잦은 업계든 그렇지 않든 면접관이 경력자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는 부분은 ‘왜 직장을 옮기려 하는가?’일 것이다. 그간 내 이직의 이유는 뚜렷했다. 직군은 적성에 맞으나 입사할 때와 다른, 따로 원하는 분야가 있었다. 이에 대해 정은아 컨설턴트는 납득할 수 있는 이유라고 했고 그제야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단기 경력은? 과감하게 지우는 편이 나을까?

“이력서에서 이직보다 더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부분이 공백기예요. 지원자의 커리어를 위해 필요한 이직이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경력을 이어가면서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하죠. 아깝더라도 기타 경력으로 빼고 주요 경력 사항을 잘 정리하세요. 이직하면서 현재 지원한 회사의 포지션에 걸맞게 분야나 직무에 변화해 생겼다는 점을 인사 담당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거죠. 연봉이나 직급이 오르는 것은 이직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는 해도 매번 그 부분이 이직의 이유가 되면 위험합니다. 자칫 직무에 열정이 덜해 보일 수 있거든요.” 그가 하는 말을 구구절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동안 이직하면서 한 번도 이력서 컨설팅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던 중 신입 시절에는 외려 선배나 전문가에게 부지런히 이력서를 보내며 한마디라도 더 피드백을 받는 데 적극적이었던 나를 떠올렸다. 몇 번의 이직과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나 나도 어느새 어엿한 ‘경력자’가 되었지만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를 잊어간 동시에 나 자신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력서는 나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다. 그런 일에 전문가가 있다면 백번이고 도움을 받고 그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 다른 일도 아니고 내 목구멍을 책임지는 일자리가 걸린 문제가 아닌가.

 

수요보다 공급이 적은 포지션을 노릴 것

한 명을 뽑거나 적합한 지원자가 없을 경우 없던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채용 인원 0명’인 포지션에 수백 명의 지원자가 몰리는 작금의 구직 환경에서는 상냥한 어조로 냉철하게 조언하는 전문가인 헤드헌터의 손을 거친 이력서라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 기업의 실무자로 숱하게 이력서를 검토했을 김신희 페르노리카코리아 디지털마케팅팀 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원자의 잦은 이직을 어떻게보는가?

“경력 연차에 따라 다른데 일단 10년 차 이상이라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특히 디지털 관련 직군이나 스타트업 위주로 경력을 쌓아왔다면 적당한 이직이 오히려 능력을 증명하는 지표가 되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이건 시대가 바뀌어서 이직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특수한 경우고, 아무리 연차가 높아도 짧은 경력이 많은 건 결코 좋지 않습니다. 지원자가 많다면 일차적으로 걸러지는 이력서에 속하죠.” 이직 횟수가 많은 이력서는 이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충분히,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도 방법이 없을까? 어렵게 전문가의 손길이 닿아 재정비된 이력서로 이직에 성공하는 방법 말이다.

“기업에서 사업 확장을 목적으로 신사업을 펼치면서 새로운 포지션을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이를테면 유통 회사에서 컨텐츠 기획자를 필요로 하거나 반대로 매체사인데 데이터 마이닝 전문가를 영입해야 하는 상황이죠.” 김신희 팀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적은 포지션을 노려볼 만하다고 조언한다. 회사의 전통적인 직무일 경우 자격 요건 열 가지 중 여덟 가지 이상 충족해야 합격이 가능한 반면 이런 포지션은 채용이 시급한데 주변에 적합한 사람이 없는 경우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열 가지 중 대여섯 가지만 충족하고도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이직이 잦은 구직자라면 주변 인맥을 통한 이직이 효율적이고 결과도 좋으며, 퇴사 후 이직하는 경우에는 지원하는 회사의 인지도나 연봉을 전 회사에 비해 낮춰야 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일이 그렇듯 이직도 결국은 타이밍이고 선택의 문제다. 정은아 파트장과 김신희 팀장 모두 현명한 이직만큼이나 자신이 지금 왜 이직을 원하는지를 한번 더 깊이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눈앞에 당신이 평생 쓸 수 있는 ‘이직 카드’가 있다. 당신은 지금까지 몇 장을 썼는가? 모두 적절한 순간이었나? 지금이 남은 카드 중 하나를 써야만 하는 일생일대의 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