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옷에 낙서를? 패션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최근 패션계가 선택한 아티스트들의 특징은 작품이 마치 장난스러운 낙서(doodle) 같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 일러스트레이터 대니 샌그라(Danny Sangra)의 작품을 제품에 옮긴 버버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버버리는 위트 있는 그의 작품을 이용해 디자인한 두들 컬렉션을 앞세워 클래식한 브랜드의 이미지를 젊고 신선하게 변화시키는 시도를 했다.

구찌 역시 지난 시즌 이탈리아 아티스트 코코 카피탄(Coco Capitán)과 협업해 젊고 감각적인 무드를 구현했으며 발렌시아가는 그래피티를 연상시키는 컬러풀한 백을 출시했다. 얼마 전 열린 2018 S/S 런던 패션위크에서는 MM6가 룩뿐만 아니라 프레젠테이션 장소 전체를 스케치북 삼아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의 작품은 범접하지 못할 법한 특별한 재료도, 뛰어난 스킬도, 긴 시간도 필요없이 펜 한 자루만 있으면 뚝딱 완성된다. 무심하게 쓱쓱 그린 듯한 일러스트와 레터링 프린트를 패션 아이템에 덧입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구찌와 버버리 같은 하이패션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대중에게 낯선 아티스트를 알리는 장이 되기도 하니 서로 득인 셈.

재미있는 점은 이 ‘두들 패션’이 하이패션 브랜드 제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패션위크 기간 스트리트에서도 이를 선보이는 패션 피플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유명한 아티스트가 그렸으면 어떻고 내가 직접 리폼했으면 어떤가. 단번에 강렬한 인상을 안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어 보인다. 언뜻 낙서처럼 보이는 이 작품들은 늘 새롭고 파격적인 것을 열망하는 패션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