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OR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We Should All Be Feminists’, 극도로 아름다운 컬렉션에 새겨진 메시지가 패션 월드의 담벼락을 단숨에 넘었다. 그리고 영상을 통해, 사진과 말을 통해 세상에 퍼졌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책으로부터 이 문구를 차용해 시대가 직면한 사회적 이슈를 가장 직관적인 방법으로 환기했다. 우려 섞인 시선이 따랐고, 브랜드에 새로 부임한 그가 주목받기 위해 벌인 해프닝에 그칠 것이란 억측 역시 이어졌다. 그러나 치우리는 자신이 맡은 두 번째 디올 컬렉션을 통해 다시 한번 역설했다. “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었는가?” 페미니즘 미술사에 비중 있게 기록된 동명의 서적 제목이다. 그는 그렇게 브랜드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디올이 부여한 권위를 올바로 썼다. 그리고 쿨하게 얘기한다. “나는 그저 옷을 통해 여성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라고.
 
 

CÉLINE

피비 필로

피비 필로가 패션을 통해 여성을 대하는 방법은 무척이나 명료하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는 것, 완벽히 정제된 실루엣으로 커리어를 고취시키는 것, 미의 기준을 획일화하지 않는 것. 군더더기 없는 수트가 주를 이뤘던 셀린느의 컬렉션, 혹은 다양한 연령과 개성을 가진 모델들을 기용했던 그간의 캠페인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지휘하던 셀린느가 그토록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판단에 오롯이 집중하는, 다시 말해 피비의 디자인과 같은 삶을 지향하는 여성들의 시대가 아니던가.
 
 

PRABAL GURUNG

프라발 구룽

프라발 구룽은 ‘이게 페미니스트의 모습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피날레에 등장했다. ‘미래는 여성이다’, ‘소녀들은 기본적인 권리를 갖길 원할 뿐이다’, ‘나는 이민자다’ 등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의 행렬이 그의 2017 F/W 런웨이를 채운 직후였다. 뉴욕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는 이 컬렉션으로 또 한번 엄청난 주목을 받 았지만, 결코 페미니즘을 액세서리나 트로피처럼 이용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수년 전부터 여성의 권리에 대한 생각을 내비쳐온 행동주의자였다. 최근 진행된 2018 F/W 컬렉션에서도 그는 우피 골드버그와 트랜스젠더 운동가 겸 작가인 재닛 목처럼 영향력 있는 여성들을 프런트로에 앉히며 여성의 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자 했다. 그는 패셔너블하며 스스로를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여성(그에 따르면 모던 페미니스트라고 일컬어지는)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디자인한다. 여성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의 편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 그에게는 시대적 아티스트로 기록될 충분한 명분과 권리가 주어졌다.
 
 

PRADA

미우치아 프라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프라다의 수장이자 사회주의자이며 정치학 박사다. 이 모든 배경 덕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엄청난 무게가 실리고 또 지워진다. “자신의 역할과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여성들을 대변하고 싶었다.” 수년 전의 인터뷰지만 그의 의지는 이후로도 꾸준하게 드러났다. 여성주의 아티스트로 기록되는 프리다 칼로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에서 영감 받아 다문화권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2014 S/S 컬렉션 페인팅과 여성 아티스트의 시선을 통해 영웅적인 여성상을 그려낸 2018 S/S 컬렉션의 만화체 프린트가 대표적인 예다. 눈으로 감상한 후 머리로 사유하게 만드는 그의 방식은 더없이 디자이너답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SACAI

아베 치토세

사카이의 옷은 단단한 힘을 지녔다. 해체주의적인 동시에 완벽히 정교한 패턴, 부드러운 촉감과 대비되는 강렬한 색, 구조적인 형태와 섬세한 소재 사이의 간극이 그 힘을 빚어냈다. 아베 치토세의 디자인에 드러나는 이러한 특성은 그가 추구하는 ‘여성스러움’과 맞닿아 있다. “사카이는 옷을 통해 자신의 자율성을 표현하고 싶지만 딱딱한 수트의 힘을 빌리고 싶지는 않은 이들을 위한 브랜드”라고 설명하는 그의 명확한 브랜드 철학이 이를 뒷받침한다. 전형적인 실루엣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킨 가브리엘 샤넬의 영향 때문일까? 우리는 여성주의와 패션을 연관 지으며 종종 쇼트 헤어에 직선적인 수트를 걸친 단편적인 모습을 떠올린다. 옷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 언어 권력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요소라는 가정에 동의한다면, 남성의 전유물이던 수트를 여성 중심의 아이템으로 만드는 것은 분명 유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패션에게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여성스러움’의 정의에 관한 오류를 정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베 치토세는 바로 그 일에 앞장서고 있다. 예컨대 강렬하거나 우아하거나 아름답거나 균형 잡힌 옷을 입은 누군가에게 “오늘 여성스럽네”라는 찬사를 건넬 날을 앞당기게 되는 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