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구석에 자리한 식물들은 저마다 작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이사 가는 친구가 넘겨주고 간 아레카야자, 무뚝뚝한 아빠가 첫 자취방에 사다 주고 가신 선인장, 혼자 걷다 문득 눈에 들어온 작은 다육이들. 만화가 안난초는 식물을 기르는 사람에게 그 식물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각색해서 웹툰 <식물생활>을 그린다. “퇴직하고 일러스트를 전공하는 대학원을 다닐 때 한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베란다에 아주 많은 식물을 키우는 분이셨죠. 식물이라면 저도 평소에 좋아했으니까 문득 식물을 기르는 사람을 인터뷰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결국 그 선생님이 <식물생활>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었죠. 마침 우리 학교가 조경학과로 유명했는데 만날 그림은 안 그리고 학교를 산책하면서 나무와 풀을 보러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그림을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중에 이미 식물을 그리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식물이라는 소재를 어렵지 않게 떠올린 것도 있어요.”

만화를 위해 안난초가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식물을 기른다. 좋아하는 식물도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르다. 하지만 사회생활이 힘들거나 사람에게 지쳤을 때 말이 없는 식물을 조용히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회복한 사람, 차를 마시는 시간처럼 그저 식물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 식물에서 묘한 위안과 안도감을 느꼈다는 사실에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지금까지 만난 9명의 인터뷰이 가운데 안난초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이야기를 담은 식물은 히아신스다. “초반 에피소드 중에 주인공이 어렸을 때 아빠가 늘 퇴근길에 고속터미널 꽃 시장에 들러 파란 히아신스를 사오셨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원래 히아신스를 좋아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히아신스가 더 좋아졌죠.”

회를 거듭할수록 공부할 것도, 찾아봐야 할 자료도 늘어나지만 식물을 그리는 삶은 안난초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만화를 좋아했는데도 나는 스스로 만화를 그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보던 만화는 전부 컷이 많고 복잡한 이야기를 가진 일본 만화였거든요. 처음에는 에세이로 기획했던 <식물생활>을 문득 만화로 돌려 콘티를 짜보게 됐는데 술술 짜지더군요. 덕분에 <식물생활>을 그릴 수 있었고 ‘만화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어요.”

인터뷰할 때 ‘식물로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질문은 빠뜨리지 않는다는 안난초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기질, 이를테면 돌 같은 것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생명을 더 이어가고 싶지 않거든요.” 안난초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은 물을 주지 않아도 잘 살고 떨어진 잎사귀도 땅에 뿌리를 내리는 다육이다.

웹툰 <식물생활> justoon.co.kr/content/home/08nf1de5a8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