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어반 팜 테이블(Urban Farm Table)’의 로이든 셰프를 만나기 위해 고양에 있는 찬우물 농장을 찾았다. 로이든 셰프는 요리를 하고 싶어 홀연히 호주로 요리사 이민을 떠나 요리를 공부했고 호주를 비롯해 미국, 덴마크, 프랑스, 벨기에 등 세계 곳곳의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요리하며 20년 가까이 요리사의 삶을 살고 있다. 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친환경 도시 텃밭인 찬우물 농장의 이상린 농부와 귀농, 귀촌을 위한 미디어 헬로 파머의 이아롬 기자와 함께 올해 ‘차도유(차가운 도시의 유기농 농사)’라는 이름으로 텃밭 농사를 하기로 한 로이든 셰프는 매주 월요일 텃밭을 찾는다. 꽃샘추위가 갑작스레 찾아온 4월의 어느 월요일, 그는 채소를 손질하고 남은 부분과 커피 찌꺼기를 담아 왔다. 올해의 목표인 순환 레스토랑을 위한 일이다. 텃밭에 직접 농사를 짓고 그렇게 가꾼 농작물을 수확해 요리하고, 채소를 손질하고 남은 부분은 모아서 썩혀 퇴비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밭에 돌려주는 식이다. 그렇게 건강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음식의 질이 더 좋아질 것이고, 농장에서 직송하는 비율을 90%까지 높이면 음식 가격도 보다 안정적으로 책정할 수 있으니 이로운 점이 많은 프로젝트다. 이날 로이든 셰프는 지난주에 미처 다 뿌리지 못한 씨앗을 뿌리고 아직 차가운 기운이 가시지 않은 밭에서 향이 좋은 여린 쑥과 민들레를 캐고 쪽파 한 단을 뽑은 후 수돗가에서 새어 나온 물을 먹고 잘도 자란 돌미나리를 수확했다. ‘월요일이니까 설렁설렁 하자’고 제안한 아롬 씨는 도시락에 담아온 샐러드에 얹을 꽃도 한 움큼 땄다. 이들은 그렇게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수확했다.

농장에서 만난 다음 날에는 사당동에 있는 로이든 셰프의 원 테이블 레스토랑인 ‘어반 팜 테이블 바이 레이티드 알(Urban Farm Table by Rated R)’을 찾았다. 셰프는 전날 찬우물 농장에서 캐온 쪽파와 쑥, 민들레와 돌미나리를 다듬는 중이었다. 일단 재료를 보고 메뉴를 정하겠다던 그는 세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요리하는 틈틈이 당근의 꽃이며 쪽파의 뿌리, 말린 파를 갈아 만든 소금 등을 맛보여주었다. 멧돼지 한 마리를 직접 정형한 후 일부를 가져와 염장하고 훈제해 만든 베이컨과 60시간 동안 염장하고 한두 달 숙성시켜 만든 오리 가슴살 프로슈토도 건넸다. 무엇 하나 손쉽게 만든 게 없다. 농장과 손님을 요리로 이어주고 싶다는 그의 진심이 낳은 음식들이다.

 

 

Urban Farm Table by Rated R

호주, 미국, 덴마크, 프랑스, 벨기에 등을 오가며 요리사로 살아온 로이든이 만든 음식은 그의 작업실이자 작은 식당인 어반 팜 테이블 바이 레이티드 알에서 맛볼 수 있다. 이곳은 예약제로 운영하며 메뉴도 매번 바뀐다. 모든 메뉴와 내추럴 와인의 페어링 역시 로이든 셰프가 직접 구성한 것. 5인 이상 예약할 경우 셰프가 코스를 구성해주고, 그 이하일 경우 매일 달라지는 메뉴판에서 선택할 수 있다. 새벽 3시까지 이어지는 ‘미드나잇 와인 다이너’ 같은 흥미로운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마르쉐를 비롯해 팝업 레스토랑도 종종 진행하는데 팝업 레스토랑에서도 그의 음식은 제대로 플레이팅되어 서빙된다.

주소 서울시 동작구 사당로 23 길 46
문의 인스타그램 @urban_farm-table

 

 

농부가 함께 하는 테이블

어반 팜 테이블이라는 이름에는 요리를 매개로 농부와 먹는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셰프의 바람이 담겨 있다. “농작물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농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고민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 덕분에 새로운 일도 도모할 수 있죠. 마르쉐@에서 만난 준혁이네 농부, 베짱이네 농부 모두 요리사와 일하는 걸 즐겁게 생각하세요. 그럼 저도 덩달아 신이 나죠. 팜 파티도 즐거운 작업이에요. 차에 짐을 가득 싣고 달려가 요리를 하는 일은 저에게 일종의 도전이거든요. 법적으로 식재료마다 원산지를 표기해야 하는데 저는 국내산이라고 쓰고 싶지 않아요. 대신 농장이나 농부 이름을 쓰고 싶어요. 어반 팜 테이블은 정확히 말하면 제가 이끌어가는 프로젝트의 이름이에요. 공간은 달라 져도 프로젝트는 이어지는 거죠.” 어반 팜 테이블의 음식은 재료 본연의 풍미를 살려 요리한다. 누군가는 그의 요리를 두고 퓨전 음식이냐고 묻지만 그가 만드는 음식은 프랑스 요리를 베이스로 한 유럽식 자연주의 요리다. “유럽 음식을 만든다면서 왜 파스타는 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 그럼 돈을 많이 벌 수 없을 거라고 걱정 어린 충고와 함께요. 그런데 세상에 다양한 레스토랑이 있으면 재미있잖아요. 대중적인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있는가 하면 저처럼 창작 요리를 하는 요리사도 있는 거죠. 저는 일을 쉽게 하는 타입은 아닌가 봐요. 대신 평소에 많이 단련돼 있어서 아무리 어려운 일도 쉽게 넘기게 된 것 같아요.”

 

 

자연주의 음식과 내추럴 와인의 마리아주

어반 팜 테이블의 메뉴에는 해당 요리와 함께 마시면 좋은 내추럴 와인의 이름이 적혀 있다. 내추럴 와인은 생태계를 배려하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할 때 인공적인 첨가물을 철저히 배제한다. 병입할 때 박테리아의 번식과 와인의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첨가하는 이산화황을 전혀 넣지 않아 때론 병 속에서 한 번 더 발효돼 식초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일반 와인보다 공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자연과 인간을 위하는 일이다. “호주에서 일할 때 갔던 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를 경험했는데, 그때의 맛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인상적이었어요. 술에 따라 음식의 맛이 변하는 게 참 흥미로웠어요. 페어링을 정하기 전에 와인을 일일이 테이스팅해요. 프랑스에서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친구를 따라 새벽 5시부터 포도를 수확해 와인 만드는 법을 배운 적이 있어요. 좋은 경험이었죠. 처음엔 내추럴 와인을 직접 수입해서 팔고 싶었는데 현실적인 이유로 그럴 순 없더군요.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내추럴 와인에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SNS에 ‘#내추럴와인’이라는 해시태그가 전무할 정도였죠.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를 기대했는데, 한 유명 프렌치 소믈리에가 내추럴 와인을 소개한 후 다행히 인기가 높아졌어요.” 로이든 셰프는 올해 더 많은 내추럴 와인을 소개할 계획이다. 전통주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의 대학원에서 미생물학을 공부하는 아내와 함께 제철 재료로 만든 자신의 음식과 어울리는 전통주를 찾아볼 계획이다. 농부가 공들여 수확한 쌀에 누룩을 띄워 만든 좋은 전통술을 찾으면 그 또한 로이든 셰프가 만든 제철 음식과 좋은 마리아주를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