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낮은 그녀와의 연애는

눈에 띄는 미모의 A가 신입생 환영회에 등장하는 순간 남자들 사이의 암묵적인 경쟁이 치열했다. A는 어째선지 별 볼일 없는 나를 선택했는데, 사귄 지 몇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 평상시에 사람들과 활발하게 잘 지내는 듯 보이던 A가 나와 둘만 있으면 친한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 거다. M은 아르바이트도 안 하는데 항상 밥값을 자기가 다 내더라, L은 구김살 없는 성격이라 모든 사람이 그 애를 좋아한다 등등. 처음에는 친구들을 칭찬하는 것 같아 좋아 보였지만 A는 실상 그렇게 말하며 은근히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었다. ‘너도 잘하는 게 많아, 모두 너를 좋아해’라고 거듭 말해주어도 늘 ‘내가 이혼 가정에서 자라서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는 말로 시작해서 사람들은 나 같은 애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말로 끝이 났다. 동아리 사람들을 만날 때도, 공동 과제를 위해 여럿이 모일 때도 매번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어떤 말을 해줘도 번번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A에게 지쳐 나는 헤어지자고 했다. A 또한 ‘너도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며 잡지 않았다. 막상 헤어지고 괴로운 건 나였다.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A를 찾아가 긴 대화 끝에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이후의 우리는 예상대로 이전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A의 자기 비하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같이 취업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나는 A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더 감당할 수가 없었다. 헤어진 지 5년. A가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감싸줄 만한 좋은 사람을 만났기를 바란다. C( 언론대학원생, 32세)

 

 

사랑보다 무서운 건

입시를 준비하던 당시 미술 학원에서 B를 처음 만났다. 나는 고3, B는 재수생이었는데 또래 남자애들보다 어른스러운 B의 모습에 내가 반하면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교제를 시작했다. B는 아주 자상한 남자친구였다. 대학생이 된 내가 친구들과 술을 잔뜩 마시고 엉망으로 취해 학교 앞에 뻗어 있을 때도 군말 없이 나를 챙기러 왔고, 기념일이면 꼬박꼬박 꽃다발과 선물을 사다 줬으며 일찍 끝나는 날이면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우리 학교 앞으로 와서 나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그런 그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 만나는 거 너무 재미없다. 뭐 새로운 거 없나?” 나는 B에게 투정을 자주 부렸고, B는 그럴 때마다 멋쩍게 웃으며 미안해했다. 시간강사 C가 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쯤이다. B와 정반대인 차분한 말투와 지적인 외모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C에게 달려가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을 물었고, 결국 연락처를 알아내 학교 밖에서도 연락을 했다. C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이 오자 B를 만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B를 정리하고 C를 만나기 시작했다. C는 B와 모든 면이 달랐다. 연락하는 습관부터 사소하게는 극장에서 좌석을 선택하는 기준까지. 그리고 그런 점이 B를 그리워하게 했다. 같이 잘 때는 미친 듯이 코를 고는 C 때문에 밤을 하얗게 새며 이 흔한 코골이조차 없는 B가 얼마나 귀한 남자인지 깨달았다. 나는 세 달가량 이어진 만남을 정리하고 B에게 돌아갔다. 그 세 달 동안 B가 거의 폐인이 되어 지낸다는 전언이 여기저기서 이어진 터였다. B가 나를 받아준 건 그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이후 지금까지 9년째, B는 변함없이 나만을 위해 모든 것을 한다. 둘이 술을 마시다 B가 이 일을 농담 삼아 꺼낼 때마다 나는 누구나 한 번씩 실수를 하지 않느냐고 생각만 할 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다. 우리는 내년 봄에 결혼한다. D( 플로리스트, 30)

 

 

재회도 타이밍이더라

E와 나는 주위의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잘 맞는 커플이었지만 사귄 지 3년이 되던 해에 권태기가 찾아왔다. 그즈음 나는 좋아하던 밴드의 공연을 보고 뒤풀이 자리에 갔다가 멤버 중 한 명에게 대시를 받았고, 스물셋의 나로선 그의 마음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헤어지는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나는 매몰차게 E를 끊어내고 밴드 멤버와 연애를 시작했다. E는 우리가 헤어지고 1년 가까이 내게 연락했지만 나는 밴드 멤버와 헤어진 후에도 E를 받아주지 않았다. 인연이 끝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니던 회사가 공중분해되는 등 힘든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기댈 곳이 절실했다. 나는 고민 끝에 E에게 연락했고 그날 밤에 만나 오랜 대화 끝에 우린 다시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정작 달라진 건 내가 아닌 E였다. 헤어져 있는 동안 E의 다정함이 그리웠던 나는 예전에 둘 사이에 오가던 말투를 다시 쓰며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는데 그 모습이 E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E가 종일 연락이 안 돼 신경이 쓰였는데 그날 늦은 밤 그에게서 메일이 왔다. “네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꿈꿔왔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이 기쁘지 않아. 네가 준 상처가 너무 컸던 것 같아. 그때의 우리만을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어.” 나는 그제야 너무 늦었다는 걸 알았다. 어떤 사람을 나든 E와 비교하게 되는 통에 나는 지금 4년째 솔로로 지내고 있다. K( 디자이너, 3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