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유정이 그린 <나무, 춤춘다>는 책의 내지를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나무의 밑동에서부터 길게 자란 뿌리를 보여주는 그림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림책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아코디언 접지를 사용한 건 그 때문이다. 배유정은 이 책을 만드는 데 5년이 걸렸다. “보통 작가들은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더미를 만들어요. 영화로 치면 콘티죠. 장면들을 만들어 놓고 그 계획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저에겐 그 방식이 맞지 않아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떤 방식이 내게 맞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길었어요. 지금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들을 조각조각 그려놓고 유추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큰 주제만 두고 그 주제에 대해 생각나는 장면들을 그리고 필요하면 추가하거나 그 그림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완성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나무, 춤춘다>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 아래에서 자라나고 있는 긴 뿌리에 거대한 생명을 담은 우주가 살아 숨 쉬는 모습을 그린 책이다. “겉보기와 다른, 풍성하고 강한 내면으로 희망의 싹을 틔운다는 내용이에요. 그 내면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세계가 뭘까?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돌아봤죠.” 그렇게 완성된 뿌리는 거침없이 뻗어나가 푸른 물이 되어 흐르고 그 물을 따라 초록 잎사귀와 붉은 장미가 피어난다. 뿌리 전체가 하나의 나무가 되었다가 물고기가 되고 합쳐져 커다란 사슴이 되기도 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강렬하게 변화하는 색감은 그림에 꿈틀거리는 듯한 생명력을 주고, 시처럼 간명한 글은 그림이 흐르는 방식을 해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배유정의 그림을 완벽히 이해한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 남다른 그림책은 그 지난한 노력 덕분에 2018 볼로냐 라가치상 뉴 호라이즌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10년간 이 분야에 있으면서 그림이 난해하다거나 추상화 같다는 평을 많이 들었어요. 서점 관계자들은 <나무, 춤춘다>를 어린이 책 분야 서가에 둘 수 없다고 했죠. 지금도 예술 분야 서가에 놓여 있어요. ‘나에겐 그림책이 맞지 않는 걸까’ 속앓이를 많이 했는데 상을 받게 돼서 많이 놀랐어요. 특히나 뉴 호라이즌은 새로운 지평을 연 책에 주는 상이라 더 감격적이죠.”

배유정은 현재 우울과 두려움, 불안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죽음과 같이 원초적이고 철학적인 소재에 두려움을 지닌 자신의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볼로냐에서 가진 질의응답 시간에 누군가가 제 모든 그림이 <나무, 춤춘다>처럼 추상화 같으냐고 물었어요. 하나의 거대한 뿌리 덩어리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숨어 있는 동식물을 튀지 않게 그린 것이거든요. 다음 책은 내용에 어울리게 더 구체적으로 그릴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