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긋나긋한 봄날의 분위기를 표현하기에 파스텔컬러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올봄엔 분홍 립스틱을 바르는 건 물론이고 공주병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금기시되던 파스텔 빛깔 옷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해도 좋다. 부드러운 컬러 팔레트가 런웨이를 수놓으며 뭇 여성의 마음을 녹였기 때문. 핑크를 필두로 민트, 바이올렛, 옐로까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컬러들이 층층이 쌓인 셔벗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킨다. 매해 이맘때쯤 부드러운 컬러가 여자들의 마음을 간질이는 데 올해라고 특별할 것이 뭐가 있을까 싶겠지만, 이번에는 그 위력이 여느 때와 다르다. 디자이너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파스텔컬러로 사랑스러운 무드의 룩을 완성했다.

프린 바이 손턴 브레가치 컬렉션은 파스텔컬러에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는 프릴 디테일을 더했고 블루마린과 미쏘니 컬렉션은 살갗이 아스라이 비치는 오간자 소재의 드레스를 선보이며 여성스러운 매력을 극대화했다. 이 드레스들이 여배우들의 간택을 받아 레드카펫에 등장하는 건 시간문제일 듯. 평소 무채색만을 고집하는 나만 해도 최근 밝은색 옷을 쇼핑 리스트에 잔뜩 올려두었으니 여리디여린 빛깔의 옷이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시도하고 싶어 하는 숨겨둔 로망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데일리 룩으로는 낯간지럽다는 생각을 여전히 지울 수 없다면 니나 리치 컬렉션을 참고하자. 부드러운 컬러로 밀리터리 룩을 표현하며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니, 그 어떤 핑계로도 이번 시즌 파스텔컬러의 물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