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박완서의말 박완서

<박완서의 말: 소박한 개인주의자의 인터뷰>

박완서

할머니의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할머니가 살아온 시대는 돌이켜보면 격동의 시대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1931년에 태어난 박완서는 딸이 신여성으로 자라길 바란 어머니 때문에 서울 생활을 하게 되었고, 전쟁으로 대학 생활을 접어야 했으며, 여자와 어머니 사이의 모순에 아파하고 개인적인 삶과 문학적 삶 사이에서 곤혹스러워했다. 할머니 세대, 특히 박완서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일을 섬세하게 포착해 편안한 언어와 단단한 뼈로 재구성해내는 그녀만의 탁월한 능력 때문일 것이다. <박완서의 말>은 1990년부터 1998년 사이에 진행한 일곱 번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박완서와 대화를 나눈 이는 시인 고정희, 문학평론가 정효구, 소설가 공지영, 시인 피천득 등이다. 그들은 문학과 사회와 개인사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박완서는 문학과 생활을 오가며 진솔하고 담백하게 대답한다. 무엇보다 그 세대가 겪은 엄청난 체험에서 비롯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태도가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마음산책 펴냄

 

독서 노년에대하여 윌듀런트

<노년에 대하여>

윌 듀런트

윌 듀런트는 인류의 문명과 사상을 연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역사학자다. 그는 학교가 아니라 노동 회관에 모인 사람들에게 강연하며 상아탑 속에 갇히기를 거부한 학자이기도 하다.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철학 입문서 <철학 이야기>, 1만 년 인류 문명사를 풀어낸 대작 <문명 이야기>는 그가 자신의 연구를 대중과 나누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철학과 종교, 예술, 문명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학식을 갖추고 그것을 쉽게 풀어낸 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조언을 구한 독자들이 많았다. <노년에 대하여>는 그 물음에 대한 윌 듀런트의 답이다. 인류를 연구한 저명한 학자로서 그의 대답은 인생은 수수께끼이며 생각하기 벅찰 만큼 복잡하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인생을 문장으로 정의 내리는 철학자가 아니라 인생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학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청춘의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변화, 지혜가 쌓이지만 육체와 정신이 쇠퇴하는 노년기를 유연하고 균형 잡힌 사색으로 풀어낸다. 책의 구성은 인간의 일생과 인생에 끼치는 문명들이 순서대로 정교하게 이어진다. 인생의 여정을 탐구하는 노학자의 폭넓은 고찰과 깊은 사색에서 나온 조언이 가득하다. 민음사 펴냄

 

독서 황현산 황현산의사소한부탁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혜는 곧게 자라지 않는다. 지혜는 고통에서 발현되고 평온에서 싹 틔운다. 지혜는 경험에서 비롯되기에 그 과정이 굽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얻은 삶의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전하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 사례, 개념 풀이, 쉬운 문장, 비유 등 구불구불한 과정을 거쳐야 겨우 상대에게 나의 지혜가 원형에 가깝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의 글이 그렇다. 황현산의 신작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은 2013년 3월 9일부터 2017년 12월 23일까지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로 구성해 주제가 다채롭다. 작가는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하되 감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례를 들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하며, 적절한 비유를 섞어 현상을 그만의 시선으로 짚어낸다. 강한 어조로 독자를 이끌기보다 정중히 손을 내밀어 방향을 가리키는 책이다. 작가의 다정한 태도에 독자는 감정적 동요 없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현자의 지혜는 그렇게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 난다 펴냄

 

독서 허수경 그대는할말을어디에두고왔는가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내 안을 관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깊이 파고들수록 가려졌던 생채기가 들춰지고, 상처는 아문 것이 아니라 곪아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제 속을 쳐다보지 않았다면 무디게 살아갔을 것을 괜스레 꺼내 스스로 상처를 벌리곤 했다. 하지만 거울을 보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제 안을 살피는 것도 등한시하게 된다. 관찰하기에 지쳤기 때문이다. 산문집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쓴 허수경은 오랜 시간 어두컴컴한 제 속을 발굴해온 시인이다. 진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밥벌이를 했고, 독일로 유학 가 긴 세월 고고학을 공부하며 숱한 폐허를 들춰냈다. 책에는 그녀가 발굴한 삶의 생채기들이 시와 같은 형태로 박제돼 있다. 독특하고 날카로운 시선과 솔직한 토로는 읽는 이의 가슴 한구석을 저릿하게 만든다. 이 책은 2003년에 나온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의 개정판이다. 제목을 달리하고, 글의 넣음새와 만듦새를 달리해 15년 만에 재출간했다. 1백39편의 짧은 산문과 9통의 긴 편지로 구성했다. 난다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