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과 마주한 서초동 작은 골목에 현악기 제작소가 모여 있다. 박연실은 그중 현악기 제작가 김남현의 공방 ‘마에스트로’ 에서 바이올린이나 비올라를 만들고 수리한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낮은 조도의 햇빛, 나지막이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 저마다의 질서로 어지럽혀 있는 작업대는 흡사 프랑스 시골 어딘가에 자리한 노인의 작업실처럼 고요하고 평온하다. 나무 벽장에는 수리를 마치고 주인을 기다리는 바이올린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고 사람이 있기에 딱 좋은 숫자를 가리키는 온습도계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10년째 현악기를 만들고 있는 박연실은 비올라를 전공한 음악인이다. 악기를 연주하는 동안 방앗간처럼 들러야 했던 악기사에서 누군가 자신의 악기를 조금만 만져도 소리가 달라지는 걸 보고 악기를 제작하는 일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멋모를 때 산 첫 악기의 소리가 맘에 들지 않아 매번 렌털 숍에서 악기를 빌려 사용했을 만큼 소리에 민감했던 박연실에게 이 길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등 바이올린 제작 명장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북부의 크레모나로 유학을 떠난 것이 2011년. 그 학교의 마에스트로 아래에서 수년의 과정을 보냈다. “새벽 2시까지 악기를 만드는 일도 부지기수였어요. 너무 재미있으니까요.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서 다음 날 또 일찍 일어나곤 했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으면 지속해나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유학을 마칠 때 즈음 그간 배운 기술을 집약해 자신의 비올라 하나를 만들어 한국에 돌아온 박연실은 지금도 소규모 오케스트라에서 그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다.

바이올린 하나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소리가 나는 나무를 선택하는 일이다. 나무의 건조 정도, 결, 잘려진 면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하는데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어떤 결로 잘린 나무가 좋은 소리가 날지 대충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경험이 아주 중요한 이유예요. 악기를 보는 눈에 결국엔 실패의 경험도 포함되는 거죠. 나무를 봤을 때 안에 옹이가 있을 거라는 예상도 해야 해요.” 나무를 선택한 후 바이올린의 보디가 될 부분을 긴 시간 동안 재단한 다음 그것들을 합쳐 배 부분의 아칭을 만들고 나면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악기를 빛에 대보고 두들겨보는 등 대여섯 가지 과정을 거쳐 이 나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정도의 두께와 느낌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지난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처음에는 큼지막하게 쳐내던 나무살도 뒤로 갈수록 소리를 들어보며 머리카락 두께만큼씩 잘라낸다. 소요 시간은 사람마다, 악기마다 다른데 박연실은 바이올린 하나에 6개월 미만의 시간을 잡는다.

현악기를 만드는 일은 생각처럼 세심하지만은 않다. 큰 나무를 커다란 톱으로 켜는 것 이 일의 시작이자 기초라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다. “남자들은 한두 시간이면 나무 켜는 작업이 끝나는데 저는 세 시간씩 걸려요. 악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등 섬세함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내 장점을 살릴 수 있지만 힘을 써야 할 땐 확실히 남자보다 어렵죠. 하지만 요령을 익히면 돼요. 나무의 약한 부분을 먼저 공략하는 식으로요.”

비올라 연주도 게을리하지 않는 박연실은 지인들의 악기를 손봐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고가의 바이올린이 망가졌는데 영영 못 쓰게 될까 봐 겁이 나서 수리할 생각도 못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차분히 보니 몇 가지 수리만 하면 되겠더군요. 한 달 동안 수리를 했고 결국 친구는 다시 그 바이올린을 켤 수 있었어요. 최소의 수리만으로 정상으로 되돌려놓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럴 땐 내가 악기에게 의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박연실은 스스로 아직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이들이 평균인 곳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무르익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데커레이션이 돼 있는 악기를 만들어보는 것이 그의 소박한 목표다. “현악기 위에 그리는 고전적인 그림이 있어요. 학교 다닐 때 똑같이 카피해본 적이 있는데 올 초에 스페인 마드리드 궁정에서 실물을 보고 왔죠. 학교에서 참고했던 자료와 조금 다르더라고요. 직접 보고 왔으니까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만들게 되면 그 악기들은 연주용이 아닌 예술품이 되겠죠. 그걸로 언젠가 전시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