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 미치겠다

내가 솔로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소개팅은 들어오는 대로 이따금 했다. 불금에 친구들과 술 한잔할 때면 주변 테이블을 슬쩍 살피기도 했다. 그뿐이었다. 여초 회사에 다니는 내 행동반경엔 일단 남자 자체가 드물다. 유일하게 외간 남자들과 정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곳이 헬스장이지만 몸매 관리보다는 기초 체력 증진이 더 시급한 복부비만형 회원 중 한 사람으로서, 썸은 고사하고 눈빛 한번 교환할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나 자신을 비하하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헬스장에 다녀본 사람은 무 슨 뜻인지 알 것이다. 복숭아처럼 발갛게 상기된 게 아니라, 백주대낮에 막걸리를 걸친 양 시뻘건 얼굴을 하고 러닝머신 위에서 고통스러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매력적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여차여차해서 결국 나는 남자친구 없이 새해를 맞이할 참이다.

독립적인 성향의 P는 해외 출장이 잦은 프리랜서다. 그녀는 사랑꾼이다. P는 출장 때 모으는 마일리지로 종종 비행기를 타고 훌쩍 떠났다. 동행은 없다. 동행은 현지에서 만든다는 게 철칙이었기 때문이다. P에겐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라는 오랜 꿈이 있었다. 나와 다른 친구들은 너무 위험하다, 현실성이 없다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그녀의 꿈을 꺾으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녀도 막무가내는 아니고, 나름 전략이 있었다. 숙소로는 해외에서 유학 중이거나 이민을 간 친구가 사는 곳이 1순위였다. 숙박비를 절약하는 건 물론이고, 그 친구를 통해 여행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혀를 차던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놀랍게도 P는 지난겨울 미국에서 자신의 짝을 만났다. 추수감사절 기간에 맞추어 놀러 간 친구 집에서 열린 칠면조 파티에서였다. 상대는 변호사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던 법학도인 옆집 청년이었다. 1년 가까이 장거리 연애를 하던 그들은 최근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에 들어갔다. 남자도 얻고 꿈도 이룬 P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해피 엔딩을 맞았다.

그러고 보면 근면 성실이 성공의 열쇠라는 건 연애에도 통하는 모양이다. K는 가로수길 근처에 있는 회사에 다닌다. 하지만 그녀는 종종 맛집이 즐비한 회사 근처를 두고 퇴근 후 술을 마시러 혼자 굳이 여의도까지 간다.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도 있지만 혼자 가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하나다. 직장인들이 몰려 있는 그 곳에서 이루어질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는 것이다. 자주 들르는 술집도 있다. 테이블보다 혼자 앉는 바의 비중이 더 큰 선술집이다(삼삼오오 모여서 회식 분위기를 연출하는 강남의 이자카야와는 다른 푸근한 분위기 때문에 혼자 오는 비즈니스맨들이 제법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K의 못 말리는 ‘원정 음주’는 실제로 몇 번의 소소한 결실로 이어졌다. K는 요새 은근히 자신을 따라나서려는 직장 동료들이 있지만, 이건 퇴근 후의 업무 스트레스를 맥주 한잔과 함께 가볍게 털어내는 당당한 커리어 우먼처럼 보이는 게 포인트라며 여전히 혼자 가는 것을 고수하고 있다. 자주적으로 보일지 사연 있는 여자로 보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어쨌든 그녀의 적극성은 부러움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한편 20대 초반의 후배 M은 최근 앱스토어에 난립하는 수많은 소셜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돌려가며 이용해보는 중이다. 희망하는 타입을 적어 넣으면 매일 그에 맞는 남자 회원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평소 목소리 좋은 남자가 이상형이던 M에게는 문자를 쓰는 대신 서로 말소리를 녹음해 채팅을 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주효했다. 의외로 멀쩡한(?) 사람이 많다는 M의 말에 혹 해서 다운받으러 들어갔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앱 리뷰난에는 채팅을 했던 상대방의 아이디를 언급하며 이미 연락이 끊긴 이성을 애타게 찾거나 혹은 상대의 냉정함을 비난하는 회원들의 글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걸 본 나는 짠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음과 동시에, 앱 리뷰 페이지에 등장하는 연애를 하기엔 내가 너무 구식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모르겠다. 외롭다고 투정은 부리면서도 특별히 조치를 취할 생각도 하지 않는 나는 그녀들의 기준으로는 퍽 게으른 사람일 것이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전 남친과 최근 서로 번갈아가며 소개팅을 주선하고 있다는 후배 L 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 쿨한 태도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한편 ‘저렇게 해야 남자를 만나는 거구나’ 싶기도 했다. 사실 그렇다. 어떻게 만났는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녀들은 나보다 행복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