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기회가 생겼다고 들었을 때, 케이트 블란쳇의 뚜렷한 여성관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있기에 질문을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혹시 준비한 인터뷰 질문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진 않을까, 오랜 연기경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미 수십번도 더 들어본 질문이진 않을까. 만남 직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들어간 인터뷰 룸에서 마주한 그녀는 전날 밤, 씨 패션 오드 퍼퓸 런칭 행사장에서 만났던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과는 또 다른 편안한 모습으로 차근차근, 그러나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어제 Si 행사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네요. 행사는 어땠나요? 정말 좋았어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새 향수, ‘씨 패션 오드 퍼퓸’을 아시아에 소개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었더라고요. 준비된 공연도 너무 멋지고 훌륭했어요.

행사에 촬영에.. 바쁜 일정이 계속될 텐데 아무리 바빠도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한다는 뷰티 루틴이 있나요?  제게 아름다움이란 편안함이에요. 제 스스로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면 그건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의식해서 찍어야 하는 셀카를 찍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Beauty 를 위해 제가 꼭 지키는 것이 있다면 자외선 차단제에요. 모두 알겠지만 호주는 햇빛이 엄청 세잖아요. 언제 어디서든 꼭 자외선 차단선크림을 챙겨요. 화장을 하지 않거나 집에 있을 때,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상관없어요. 그리고 제 루틴에서 늘 빠지지 않는 건, 향수에요. 늘 사용하죠.

향수를 선택하다니 조금 의외네요. 대부분 루틴을 물어보면 에센스나 크림을 말하곤 하잖아요. 전 향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향이라는 것이 상당히 감정적인 요소 잖아요. 향이 없으면 완전한 내 자신이 아닌 것 같이 느껴져요. 매일 아침 향수를 뿌리면 마치 제 영혼의 일부를 여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닌 제가 가지 감정을 끌어올리는 거에요.  촬영할 때도 향수를 꼭 뿌리고 가요. 낮이든 밤이든 제 무드를 상황에 맞게 준비 시켜주는 느낌이랄까요? 연기할 때도 항상 그 캐릭터에 맞는 향을 선택하곤 해요. 캐릭터에 따라 어떤 향기가 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캐릭터는 장미향이 어울리고, 어떤 캐릭터는 샌달 우드향이 어울리는 것처럼요. 사회는 여성의 외적인 요소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지만 사실 여성이 내적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향수 이야기를 들으니 Si 패션 얘기가 빠질 수 없네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Si 패션’을 한국 여성들에게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단어가 떠오르세요?  ‘관능적’. 전 달콤하거나 가벼운 향을 선호하지는 않는데 씨 패션은 단 향이 나면서도 관능적인 깊이가 느껴져요.

Si 패션에서 Si는 이탈리아어로 ‘Yes’ 라는 뜻인데요, 평소에 ‘Yes’ 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인가요? 저는 늘 도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Risk taking을 하는 편이죠. 그래서 항상 ‘Yes’ 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죠. 누군가는 왜 이 일에 대해 ‘Yes’를 외쳤어? 라고 묻기도 하지만 제 대답이 ‘Yes’ 였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 제게 “이거 할 생각 해봤어?” 라고 물어보면 전 “그래, 왜 이걸 안해 봤을까? 해보자! ‘Yes’” 라고 말하곤 하죠..

 

 

그렇다면 당신이 가장 강한 신념을 가지고 ‘Yes’ 라고 외친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 남편의 프로포즈에 대한 답이었던 ‘Yes’ 라고 할게요. 저희는 결혼을 굉장히 빨리 했거든요. 사람들이 미쳤냐고 할 정도로요. 거의 3주만에 결혼을 결심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꽤 큰 도전이었네요. 이미 20년 전 이야기에요.

3주요? 요새 저도 결혼에 대해 생각해보곤 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어렵고요.  결혼에 관해 ‘Yes’ 라고 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결혼을 반드시 해야한다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나요?

물론이죠.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요. 여성에게 결혼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굉장한 압박이에요. 우리가 받는 것과 같은 압박을 남자들도 받을까요? 아닐거에요. 여성에게는 출산의 이슈도 있잖아요. 여성들이 그런 압박감을 가지고 살아 가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흔히 남자가 결혼을 안하면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지만 여성이 결혼을 안하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건 여성들끼리도 서로에게 이 압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에요. 엄마도 딸에게 결혼을 꼭 해야하는 것이라고 강요해서는 안되요. 그래야 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할 거에요.

 

 

이제 영화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데뷔 후 여왕, 도둑, 장교, 마법사, 여신 등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는데 나중에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요새 70년대 미국의 보수적이면서도 페미니스트 성향의 여성 역할을 맡아 촬영 중이에요. 현대 미국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여성 평등에 대해, 여성도 평등하게 입법의 주체가 되고자 운동하는 역할이죠. 솔직히 저는 캐릭터 보다 누구와 함께 일하는지가 더 중요해요. 멋진 대본을 만날 수는 있지만 누가 연출하는지 끝까지 기다려야해요. 대본이 좋아도, 상대역이 누군지, 감독이 누군지 알기 전 까지는 그 작품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요. 좋은 디렉팅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거든요. 캐릭터가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어요.

지금까지 연기했던 역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할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남편과 함께 호주에서 운영하는 극장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인 리차드 2세를 연기 했었는데 그 작품은 저한테 상당한 터닝포인트 였어요. 영화는 대부분이 정해진 대로 진행하기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에서 본다면 배우와 그 역할의 사람을 동일시 할 수 있어요. 그에 비해 연극은 좀 더 유연하죠. 배우가 어떻게 극중 인물을 만들어 나갈 지에 대한 가능성이 완전히 열려 있는 거에요.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역할을 꼽자면 제게 인터내셔널 커리어를 열어준 작품인 엘리자베스. 제게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죠. 그리고 밥 딜런도 좋았어요.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었거든요.

한국에서는 당신의 작품 중 블루 재스민과 캐롤도 인기가 많아요 캐롤은 제가 너무 사랑하는 작품이에요. 제가 ‘밥 딜런’ 역을 맡았던 영화 ‘아임 낫 데어’ 와 캐롤은 모두 ‘토드 헤인즈’ 감독이 맡았어요. 오래 전 캐롤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관심이 가는 작품이었지만 당시 함께 하려는 감독을 찾기 어려워서 그대로 멈춰졌던 작품이에요. 그렇게5년쯤 지난 후 ‘토드’가 제게 여전히 캐롤에 관심이 있냐고 물었어요. 물론 ‘Yes’가 제 대답이었고, 바로 작품에 참여했죠. 토드가 참여 한다니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캐롤은 정말 특별한 작품이에요. 두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를 누가 보겠냐고 들 했지만 사람들은 좋아해 주었죠. 지금은 우리가 ‘캐롤’을 제작할 당시와 사회적 시선이 조금은 달라 졌을거에요. 아마 이런 영화들이 또 나올 수 있겠죠. 캐롤은 정말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한국 여배우들이 연기뿐 아니라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존중하며 당신을 롤 모델로 꼽고 있는데 알고 있나요? 한국에서 걸 크러시, 우먼 파워의 아이콘이기도 해요. 기분이 어때요? 전혀 몰랐어요, 걸 크러시의 아이콘으로 절 생각해 주신다니 너무 기쁘네요. 사실 영화계에서 일하다 보면 관객들은 다 영화관을 통해 저를 보게 되니 사람들이 제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못 느껴요. 반면 연극에서는 충만함을 느끼기도 공허함을 느끼기도 해요. 왜냐면 가끔씩 자는 사람도 보이고 몰입을 안 하는 경우도 제가 직접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제 작품이 한국 관객에게 가 닿는다는 점이 정말 보람이 느껴 지네요. 다른 언어로 메시지가 전달함에도 불구하고 제 영화가 언어를 넘어, 문화의 경계를 뛰어 넘는다는 말이니까요. 그 점이 아주 좋네요. 감사드려요.

 

 

한국 영화계에서 여배우가 주인공인 작품을 만나는게 쉽지 않아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별로 없는 것도 사실이고요. 헐리웃은 어때요? 오션스8 처럼 여성을 전면에 세운 새로운 시도가 많은가요?  대부분 여자 배우들의 롤이 엄마나 여자친구 등 남자 주인공은 서포팅 하는 것에 머물러있다는 거죠? 헐리웃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처음 맡았던 역할을 돌이켜보면 정말 작은 역할이었어요. 등장인물의 아내나 여자친구 같은 역할이었죠. 그 때마다 저는 그 캐릭터들을 새롭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그 안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서 기존과는 다르게 연기하려는 시도를 하는 거에요. 여성이 극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해요. 그런 변화를 만드는 노력을 함과 동시에 여성을 보조적이거나, 약하거나, 어리석은 역할로 보여지게 하는 연기를 탈피해서 고정관념을 깨 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변화의 시작이 될거에요. 헐리웃에서는 조금씩 이런 변화의 조짐이 보여지고 있어요. 여성 감독이나 작가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예뻐야 한다는 편견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요.

마지막으로 조르지오 아르마니 글로벌 엠버서더로서 여성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제가 대단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Mr. Armani를 존경하고 그가 여성에 대해 생각하는 여성의 복합성에 대해 상당히 공감해요. 우리는 남성적인 측면, 여성적인 측면을 다 가지고 있어요. 한 가지 측면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우리는 똑똑하면서 동시에 시시하거나 장난기가 가득할 수도 있고, 약한 면이 있으면서 동시에 강할 수도 있죠. 어느 한쪽의 성향에 ‘No’라고 하기 보다 우리가 가진 여러 성향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