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사랑 성 섹스

이별을 겪은 친구가 최근 전 남친과 함께한 잠자리를 생각한다는 얘기를 털어놓는다면 어떨까. 응원하는 마음보다는 아마 왜? 하는 반응을 먼저 보일 것 같다. 헤어진 그는 바랜 과거의 허물이기에 현재의 섹스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털어놓는 본인도 그런 자신을 혼란스러워 하거나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떨쳐내려 애쓰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그럼에도 지난 섹스를 향한 회상의 굴레에 빠지는 일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솔직해보자. 전에 만났던 사람과의 섹스를 돌이켜본 적이 한 번도 없나?

누군가와 새로 데이트를 시작할 때 누구나 조금씩은 새 연애 상대를 이전의 연인과 비교한다. 외모, 말투, 취미, 입맛, 그러니 섹스도 예외일 순 없을터. 친구 H만 해도 새로 만난 누구도 전 남친만큼 잠자리에서 외적으로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전 남친의 군살 없는 날렵한 몸과 멀끔한 속살에 익숙해져 있었다. 정작 사귈 때는 종종 인간미 없다 싶던 그의 빈틈없는 외모는 코털 정리도 간신히 하는 새 남자들과 비교되며 H의 기억 속에서 더욱 미화되어갔다. “내 기준에서 이 남자들은 성의가 없어. 그곳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다리털도 북실북실하고, 한번은 손톱에 때가 낀 채 애무하겠다고 손가락을 내 안으로 들이밀려 하길래 이러지 마시라고 거절했어. 차라리 단순히 사이즈의 문제면 좋겠어. 내가 유별난 거니?” H는 요새 부쩍 전 남친과 나누던 청결한 섹스가 그립다고 했다.

한편 K는 조금 다른 이유로 전 남친과 보낸 밤이 생각날 때가 있다고 했다. 싱글인 그녀는 간혹 썸남 혹은 스쳐가는 인연으로 누군가와 섹스를 할 때면 어김없이 오래 사귄 옛 남친을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특별히 걔한테 미련이 남아서 그런것도 아니야. 오래 만나면서 감정이 많이 식었고, 서로 좋게 합의하에 헤어졌어. 다만 새로운 사람과 섹스를 하는 게 조금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 잠자리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익숙한 상대가 아니니까 아무래도 긴장을 완전히 풀고 임하기가 힘들다고 할까? 어느 체위를 선호하는지, 더티 토크는 좋아하는지, 어떻게 끝내는 걸 좋아하는지 서로 취향을 맞추기까지 알아내야 할 것이 꽤 있잖아. 말하자면 새로운 섹스에 적응하는 과정에 피로를 느끼는 거지. 전 남친은 워낙 오래 만났으니 서로 척척박사였어. 그냥 그 편안함이 그리운 거 같아. 진지한 연애 상대가 다시 생기기 전까진 별수 없겠지.”과거 남친과의 섹스를 떠올리는 이유가 그 남자 때문이라기보다는 현재의 불완전한 연애 상태에 달린 것이라면 차라리 낫다. 실제로는 안타깝게도 헤어진 그를 잊지 못해 그와 나눈 섹스 또한 잊지 못하는 상황이 훨씬 많다. 이별 후 한동안 자위할 때마다 전 남친과 함께한 잠자리가 머릿속에 그려져 매번 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웃픈 사연이다. 무엇보다 한심한 건 때로 혼자만 속상한 것으로 끝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점이다. 새로 사귄 남자와 처음으로 섹스 하는 내내 전 남친이 떠오르며 자신이 아직도 실연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새삼 깨달았다는 친구 L이있다. 새 연인과의 두 번째, 세 번째 섹스도 마찬가지였고, 그녀는 괴로움에 시달리다 결국 전 남친에게 다시 잘해보고 싶다고 연락하기에 이르렀다. 거기까진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L은 그 과정에서 새 남자에게 이별을 고하며 그 이유를 지나치게 소상히 털어놓았다. 이런 TMI가 또 있을까. 그녀의 새 남자는 ‘너와의 잠자리에서 다른 사람이 생각나 헤어지고 싶다’는 말을 들을 만큼 잘못한 게 없었다. L의 솔직함을 가장한 비열함은 한동안 친구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비난받았다. 그렇다면 그냥 생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옛 연인과 다시 만나 섹스를 하는 건 얼마나 나쁜 아이디어일까?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언뜻 드는 생각으로는 괜히 상처만 받거나 왠지 시금털털한 기분이 들 것 같은데, 의외로 경험자 중에는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고 밝힌 사람도 꽤 있다. 2018년 10월 발표된 해외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사람 중 다수가 전 연인과 다시 만나 한 섹스가 이별에 스트레스를 더해줬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옛 연인과의 침대 위 재회가 상대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 모든 건 그저 세상 누구나 겪는 지질한 연애사의 일부이자 과정이고, 굳이 부정하거나 자학할 일도 아닌가 보다. 물론, 새 연인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과 예의만 지킨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