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희연

문득 슬픔이 밀려올 때 시의 위력은 더 커진다. 첫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와 아직 묶이지 않은 최근 시들 그리고 산문에 이르기까지 안희연은 슬픈 삶의 분투와 연대의 기미를 놓치지 않으려 온 힘을 기울인다. 그러한 성심으로 ‘세월호’와 ‘촛불’을 겪은 우리 시대의 윤리와 그것을 담아낼 자신만의 미학이 촘촘하게 교직되는 작품 세계를 지향하는 듯한 시인의 존재가 무척 귀하게 느껴진다. 지금 우리 시가 모종의 새로운 방향을 향하는 중이라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안희연에게서 힘입은바가 분명히 있다.

시인 안미옥

적게 말함으로써 더 깊이 말할 수 있을 때가 있다. 담백한 표현이 외려 이미지를 풍성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안미옥의 시가 그렇다. 흐릿한 얼굴에 은은한 음성을 지닌 어떤 이. 쉽사리 마주할 수 없는 저 신비로운 그림자는 그러나 때로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옆에 있는 마음들에 슬며시 곁을 내어주기도 한다. 물론 그 틈을 발견하는 기쁨은 독자의 몫이다. 안미옥이 써나갈 시들은 매혹적인 첫 시집 <온>과 어디까지 맞닿고 다른 한편 어떻게 달라질까. 한두 마디로 설명되지 않는, 다만 ‘안미옥의 시’인 그것을 읽으며 ‘안미옥의 시’를 기다린다.

소설가 김봉곤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그의 편집자다. 혹독했던 지난여름을 찬란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도 그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 덕분이다. 편집자들은 편집하는 동안 표지나 보도자료, 홍보용으로 쓸 문안을 뽑아놓는데, 최근에 이렇게 밑줄을 많이 그으며 만든 책이 있었나 싶다. 문장으로 써버리는 그 순간 진짜에서 멀어지는 감정들이 있다. 그 감정들을 이렇게 놓치지 않고 잘 붙잡은 채 쓸 수 있는 작가는 김봉곤뿐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연애소설을 한국 소설 가운데 본 적 있었나. 없다. 이렇게 사랑밖에 모르는, 사랑 외에는 무엇도 중요치 않은, 사랑에 미친 것처럼 그에 집중한 소설. 그의 첫 소설집이 ‘소설가 50인이 뽑은 2018년의 소설’ 1위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며 <여름, 스피드> 그 후를 기대한다.

소설가 정영수

정영수 작가는 스릴과 스펙터클, 서스펜스로 무장한 ‘소설 같은’ 소설이 아닌, ‘삶 같은’ 소설을 쓴다. 전자가 눈을 즐겁게 한다면 후자는 읽는 이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버린다는 걸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아챘으리라. ‘삶 같은’이라니. 삶은 삶만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충분하지 않다. 내가 그때 너에게 했던 말, 그때 우리에게 있었던 일, 이미 벌어졌지만 곱씹고 또 곱씹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과거는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고여 있는 시간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편편이 빠져들어 읽을 수밖에 없는 건, 정영수 작가만의 문체가 안정적으로 작품을 받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쓰는 첫 문장과 작품 속 괄호의 사용을 특별히 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