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이 방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질 때의 당혹스러움. 앗, 죄송합니다 하고 문을 닫기보다 넋 놓고 그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 사진작가 프랭크 헤어포트(Frank Herfort/@frank_herfort)의 사진은 그렇게 보는 이를 기습적으로 매료시킨다. 베를린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요즘 러시아’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 ‘러시안 페어리 테일(Russian Fairy Tales)’을 통해 러시아의 초현실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는다. 구소련(소비에트연방)의 어둡고 무거운 시대적 잔재와 현대 러시아가 만들어낸 신흥 부자들의 밝고 화려한 면면을 버무려 세계 어디에도 없는 풍경을 직조해내는 것. 특히 헤어포트는 대리석이나 어두운 목재에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우울한 분위기와 화려한 색이 대조를 이루게 해 고립과 정체 등에서 오는 감정을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이를 위해 그는 2년 전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공공장소의 미학적 측면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유럽은 모든 것이 깔끔하고 정확하게 정돈돼 있다. 대기실은 대기실이고, 사무실은 여지없이 사무실이다. 반면 러시아의 공간은 해석 하기 나름의,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이 그저 거기에 그냥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이 하나같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아 보인다고 할까. 주로 이들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다.” 작가의 깊은 사색과 관조, 예리한 통찰로 포착한 인물들이 모두 ‘대기 중’ 인 듯 느껴지는 까닭이다. 이들은 마치 잠에 빠진 듯 혹은 마비된 듯 보인다.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사람의 관계에 주목하는 그의 작업은 개개인의 감정 상태에 집중하는 전형적인 인물 사진과는 거리가 멀다.

프로젝트 ‘러시안 페어리 테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이 프로젝트의 기본 구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독일에서 사진 공부를 마칠 때쯤이다. 졸업 작품으로 시작한 셈이다. 처음에는 프로젝트 이름도 없이 그저 모스크바 공공장소의 사람들을 찍었을 뿐이다. 이후 몇 년 동안 이어온 작업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어떤 방식으로든 이 풍경들이 연결돼 있다는 걸 느꼈다. 그 후 ‘러시안 페어리 테일’이라 이름 붙였고 지금까지도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인의 현재와 과거 삶을 대조하며 동화적 순간을 발견한 셈인데 당신이 느끼는 ‘러시아의 오늘’은 어떤 모습인가?
난 스스로 정치와 거리가 먼 사진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유명 매거진에 작품을 싣는 데 종종 어려움이 따랐다. 이들 대부분은 친러시아 혹은 반러시아라는 분명한 정치적 입장이 담긴 보도사진을 기대한 것 같다. 하지만 극단적인 감상을 표현하는 건나와 맞지 않는다. 내게 러시아는 아름다운 곳이다. 세계에 얼마 남지 않은 건강하고 진실된 나라다. 내가 보는 오늘날의 러시아는 때로 유럽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앞선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소비에트연방 시대의 잔재가 섞여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곳이다.

작가로서 이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지난 5년간 러시아가 변화해온 과정은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의 대도시들은 완벽한 변신을 이뤄냈다. 인간 생활에 편리한 환경을 갖추게 됐고, 사랑스러운 도시로 변모했다. 최근 세워지거나 재정비된 현대 도시의 대부분이 개발 과정에서 본래 지니고 있던 자신의 ‘마법’을 잃은 것과 달리 모스크바는 여전히 러시아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이 점이 내게 큰영감을 줬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이제야 그들 나라의 진가를 알기 시작했다. 전통과 현대의 것이 조화를 이뤄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탐색하고 싶은 나라다.

당신의 작업은 리얼리티를 극단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그 풍경을 판타지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를 당신의 작업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 스타일이라고 정의해도 될까?
모든 아티스트는 작품으로 자신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아이러니하고 극단적인 모습으로 가득한 사람일 수 있고, 판타지와 리얼리티를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러시아의 낯선 장소와 사람들을 탐색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을 다른 나라에도 적용해봤지만 결과물이 러시아에서 얻은 것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내 작품에는 숨겨진 의미가 별로 없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무도 이해할 필요 없는 마법 같은 이야기나 환상적인 시각적 표현에 매우 진지하게 접근한다. 그뿐이다.

인물과 공간, 나아가 사회를 다루지만 역동적이고 생기가 느껴지기보다는 초상화에 가까울 정도로 정적이다.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 이유가 있는가?
사진을 매우 천천히 찍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촬영을 위해 뛰어다니지 않는다. 대부분 삼각대를 이용하고, 오랫동안 구도를 구상한다. 가끔은 모든 세팅을 철수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섭외할 때도 굉장히 공들이는 편이다. 적어도 나는 찰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그 사람과 장소의 분위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미사여구를 거두고 말한다면, 당신의 사진은 아름답다. 당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아름답다. 다만 우리의 관점, 인식, 기대, 의식에 따라 달리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나는 진실된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