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아래 챔피언 요한나 노르드블라드

날이 저물어가면서 차가운 겨울빛이 구름 낀 잿빛 하늘 사이로 비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짧은 오후가 지나고 이제 밤이 찾아올 것이다. 소나무 가지를 흔드는 바람 한 점도, 호수의 수면 위를 살랑거리는 잎사귀 한 장도 없다. 그 무엇도 이 끝없이 광활한 나무, 얼음 그리고 눈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런 자연 풍경에 감탄하며 나는 처음으로 절대적 고요라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북동쪽으로 1백70킬로미터 떨어진 소나넨 호숫가의 단출한 사냥꾼 오두막에서 프리 다이버 요한나 노르드블라드(Johanna Nordblad) 그리고 그녀의 자매이자 사진작가인 엘리나(Elina)와 함께 사흘을 보냈다. 도시의 리듬은 저 멀리 뒤로한 채 우리의 하루는 눈을 쓸고, 땔감을 모으고, 저녁을 먹은 후 겨울 정원 촛불 주위에 모여 앉아 긴 시간 수다를 떠는 것으로 채워졌다. 이 황량하고 신비로운 호숫가에서 요한나가 말한 이곳 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엘리나와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와요. 저는 이 자연적인 환경, 이 호수를 사랑해요. 프리 다이빙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물이 깊어 까맣게 보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바로 그 점 때문에 프리 다이빙을 무척 좋아해요. 물속에는 색도 소리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죠. 완벽히 저 혼자뿐이에요.” 요한나는 내가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 중 가장 매력적이고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오만 가지 재주를 가진 그는 한 때 심각한 사고를 당했지만, 오히려 그 일을 새로운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아 절망을 이겨낸 세계적인 운동선수다. 현재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4미터 깊이의 큰 수영장이 있었어요. 잠수해서 수영장 바닥까지 내려가 물 위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을 올려다보곤 했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보였어요.” 요한나는 여섯 살 때 생애 첫 수영용 핀을 선물받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몇 달간 그 핀을 신고 잠들기 일쑤였다. 여러 해 동안 스쿠버다이빙 기술을 익힌 요한나는 1999년 첫 프리 다이빙에 나섰다. 당시 느낀 가벼움은 곧 자유로움으로 다가왔다. 장비의 무게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물속을 유영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 그리고 그 이후 요한나는 계속해서 성공을 이뤄갔다. 2004년 요한나는 무호흡 핀 잠영 다이내믹 부문에서 여성 세계기록을 세웠고, 지속적으로 세계 최고의 다이버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요한나노르드블라드 스쿠어다이빙 다이빙 다이버

그러던 2010년, 끔찍한 사고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어요. 미끄럽고 복잡한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미끄러졌어요. 특별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제가 운이 없었죠. 페달이 움직이지 않았고 왼쪽 다리뼈가 산산조각 났는데, 마치 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았어요.”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진 그녀는 괴사를 막기 위한 복잡한 수술을 받았다. 부종과 골절이 심각해 여러 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고통스럽고 힘든 재활은 1년 반 이상 이어졌고 요한나는 점점 활력을 잃어갔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요한나는 자신의 에이전시를 팔고 함께 일하던 13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고서야 요한나는 마침내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다리 신경이 심각하게 손상돼 그 고통이 끈질기고 날카롭게 그녀를 괴롭혔다. “너무 아파서 제대로 잘 수도 없었죠. 그때 의사가 냉수 요법을 권했어요. 처음에 4℃의 물에 다리를 담갔을 때는 1분도 못 버텼죠. 하지만 고통이 바로 사라지긴 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었죠”라고 그녀는 말했다. 몇 달이 지나자 요한나는 하루라도 냉수 요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차가움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다른 쪽 다리를 물에 담가보기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몸 전체를,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머리까지 담그게 되었다. “그 느낌이 좋았어요. 그때 얼음 밑으로 다이빙을 할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죠. 이런 시도를 하기에 핀란드보다 좋은 곳이 또 어디에 있겠어요?”

엘리나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요한나는 호수로 연결된 자그마한 나무 선창에 앉아 지난 며칠간 물 표면에 생긴 얇은 얼음층을 부지런히 깼다. 깨진 얼음 조각들을 밀어내고 그녀는 물속으로 이어진 나무 계단을 비추기 위해 초를 켰다. 몇 시간 후면 마침내 이번 시즌 첫 다이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나는 몇 주 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다이빙할 때 손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물의 느낌이 좋아요. 물 밑에 있을 땐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돼요. 믿을 거라곤 오로지 자신밖에 없죠. 긴장을 푸는 동시에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요. 프리 다이빙은 신체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정신적 훈련이 그 이상으로 중요하죠. 물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나의 수중 무호흡 개인 기록은 6분 35초. “시간이 흘러가는 걸 느끼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2~3분이 지난 후부터는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하는 수십, 수백 가지 이유를 마음속으로 꼽게 되거든요.” 미리 거리를 재서 얼음에 구멍을 내놓은 사이로 다이버들이 수평으로 움직여야 하는 다이빙을 할 때는 좀 다른데 낮은 온도에 순응하는 첫 단계가 지나면 그 후로 상당한 평화가 찾아온다. 2015년 요한나는 수영복과 수경만을 착용한 채 50미터를 헤엄쳐 이 종목에서 세계기록을 세웠다. 물의 온도는 겨우 2℃였다. 얼음 밑으로 다이빙을 할 때는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시야 확보가 그중 하나인데, 수면에 있는 두꺼운 얼음층과 눈이 다이버의 시야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자들이 구멍 사이의 안전선을 확대하기도 했다. “심지어 제 손도 안 보일 때가 있어요. 그 정도로 물속은 어두울 수 있죠. 실제 응급 상황이 생길 때를 대비한 제 계획은 수면 6미터 밑으로 헤엄치는 거예요. 그래야 두 개의 구멍에서 비추는 빛을 볼 수가 있고, 어디로 나가야 할지 알 수 있거든요.”

요한나노르드블라드 스쿠어다이빙 다이빙 다이버

“물 밑에 있을 땐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돼요. 믿을 거라곤 오로지 자신밖에 없죠. 긴장을 푸는 동시에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요. 프리 다이빙은 신체적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정신적 훈련이 그 이상으로 중요하죠. 물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에요.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요한나는 깊은 곳을 무서워한다. 프리 다이빙을 할 때나 50미터 깊이의 핀란드 호수 바닥을 헤엄칠 때마다 바다 괴물이나 심연에 사는 알 수 없는 생명체를 떠올리곤 한다. “제가 도달한 가장 깊은 지점은 바로 이런 제 두려움을 억제하고자 하는 능력의 궁극적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더 깊이 갈 수 있겠죠.” 밝은 에너지가 넘치고 호기심이 많은 요한나는 흔치 않은 부류의 성공한 운동선수이자, 자연을 만나는 순간 자신이 꿈꾸던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여자다. 요한나는 일상의 리듬, 업무, 가족에 대한 책임감(열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믿을 만한 조력자인 엘리나와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성격이 매우 다르지만 매우 심오하고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한 명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녀들이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치 그들이 만든 비밀스럽고 마법 같은 자그마한 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엘리나는 오랫동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생활했다. 두 사람 모두 서로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 둘은 함께 사진을 찍고 책을 내고 다이빙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유럽 곳곳을 돌아다닌다. 얼음 다이빙 기록도 갖고 있지만 요한나에게 프리 다이빙은 경쟁자를 ‘무찌르려는’ 욕망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었다. “경쟁이 우선이면 다이빙하는 순간을 즐길 수 없어요. 어릴 때는 경쟁을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요.” 마흔두 살의 요한나는 다이빙과 수중 무호흡을 의무가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 경험하고 있다. “우승하고 나면 주변에서는 자연스레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돼요. 굉장히 다양한 기회가 열리기 때문에 스스로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고 이 스포츠에서 진정으로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야 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2006년 요한나는 핀란드의 비올림픽 선수에게 주어지는 세 개의 정부 보조금 중 하나를 받게 되었다. 그해는 그녀가 훈련을 가장 적게 한 해였다. “그때는 수영장에 가는 일이 즐겁지 않았어요. 동기를 잃었죠. 저는 몇 시간 동안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것보다 자극을 주는 무호흡 다이빙이 더 좋아요. 하지만 다른 일처럼 이 일이 직업으로 변하고 있다고 느꼈죠. 제 인생에서 특히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재활 직후였어요. 저는 야외에서 2년이란 시간을 보냈죠. 그때 카약을 끌고 헬싱키 주변 섬을 탐험했어요. 그곳에는 수백 개의 섬들이 있는데 5분만 노를 저으면 완벽히 자연 속에 놓이곤 했죠”.

올해 또 다른 다이버가 요한나의 기록을 깨기 위한 시도를 할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엘리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요한나에게 확고하고 진지하게 다시 도전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성공에 대한 집착 없이 말이다. 요한나는 마치 게임을 하듯 차분히 도전에 임할 것이다. 때때로 놀라운 성과는 이렇게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