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진소연

진소연 대학생 1997

#백래시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 조용함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늘 경계해야 하지만 그 자체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면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스럽다 페미니즘 담론이 양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단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정체성이 각인된 순간 고등학교 3학년, 열여덟 나이에 갑작스레 암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다. 당시 종양 제거 수술 후 항암 치료 계획을 짰는데 항암제로 인한 불임 가능성이 높았다. 병원에서는 불임 확률을 낮추는 치료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며 어떤 것을 택할지 정하라고 했다. 그중 하나를 고르긴 했는데 많이 아프고 비용도 높았으며 어느 약물이나 그렇듯 부작용이 전혀 없지도 않았다. 암 환자의 불임을 예방하는 치료 기술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나는 불임 예방 치료를 받을지 말지를 묻는 질문을 받은 적 없었다. 싫다고 우겼다면 피할 수 있었겠으나 그런 생각을 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불안했고 무서웠던 것 같다. 생명이 위협 받는 중대한 병 앞에서도 어린 여성에게는 출산 능력을 유지할 의무가 당연시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여성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던 순간이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조심해라’.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인데 어떻게 더 조심하며 살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공중화장실에서는 습관적으로 나사 구멍을 노려보고, 혼자 걸을 때 뒤에서 인기척만 느껴도 빨리 걷고, 술자리 후 데려다줄 정도로 친한 남성에게도 집 호수를 알려주지 않는 등 유별날 정도로 일상에서 긴장하고 주의한다. 그런데도 자꾸만 조심하라고 한다. 이 말이 싫은 것을 넘어 들을 필요가 없는 사회를 강렬히 원한다.

나는 무작정 참지 않습니다. 평소 여성에 대한 무시나 편견으로 비롯된 발언을 들을 때마다 싸우지는 못한다. 나 역시 웃으며 넘기고 견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전처럼 무작정 참지는 않는다. 상대에게 그 말이 왜 불편한지 설명하거나 약간 정색하거나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거나, 때론 역으로 농담처럼 비꼬기도 한다. 한마디로 타인의 사고방식과 인성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한테만큼은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게끔 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과정이 쌓여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임을 믿는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현재 재학 중인 부산대 여학생 기숙사에서 일어난 침입, 성폭행 시도 사건. 가해자가 같은 학교 학생인 데다 기숙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처음이 아니며, 이후 학내 남학생들은 ‘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라 일반화하지 마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사건 반응에서 큰 온도 차를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 젠더 이슈의 현 주소가 명확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남성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접할 때. 나의 위대한 여성 CEO SUITE의 김은미 대표님. 비즈니스를 배우는 학생이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생존하고 성장한 여성 기업인에게 자연스레 존경심이 든다. 중학생 시절 <글로벌 성공시대>라는 KBS 다큐멘터리로 처음 접한 분인데, 우연한 기회로 인연이 닿아 직접 뵌 적 있고 감사하게도 멘티라 불러주는 사이가 됐다. 아시아 각지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의 모습, 끊임없이 여성 후배들을 위해 기회와 자원을 베푸는 선배의 모습, 일과 취미와 자기계발을 병행하는 법,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가정을 돌보는 방식까지 보여주는 분이라 궤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영감을 얻는다.

이지수 미디어아티스트 큐레이터

이지수 미디어 아티스트·큐레이터 1995

페미니즘?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나와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도 함께 싸우는 것.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여자라서’ 겪는 모든 일을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해도 결국에는 ‘여자라서’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는 것.

듣고 싶지 않은 말 위험하니까 네가 조심했어야지.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에서 해방됐던 계기 완전한 해방이 가능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일부 해방됐다고 느낀 순간은 3개월간 20kg을 감량했을 때 주변 사람 누구도 내 몸의 변화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을 때다. 이 사람들에게는 내가 마르거나 뚱뚱한 게 아무 의미가 없음을 느끼고 다이어트를 그만뒀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과 돈, 마음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됐기에 그만둘 수 있었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언론의 보도 방식이 피해자 중심에서 점점 가해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을 때. 이번 조재범 성폭행 사건에서 처음에는 피해자 중심으로 헤드라인을 뽑던 기자들이 대중의 반응이 부정적이자 코치와 빙상연맹을 중심으로 보도 방식을 바꿨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가장 아름다운 나 이틀간의 야근과 밤샘을 버티고 집에 오자마자 인터뷰를 작성하는, 머리가 산발인 채 추리닝을 입은, 현재를 열심히 사는 나.

나의 위대한 여성 양혜규 작가. 중학생 때 그의 도록을 읽고 처음으로 나를 표현하고 정의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한국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같은 작가로서 매번 자극받는다. 감사하다.

#맨스플레인 조용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듣고 받아들이고 반성해야지, 반박하고 가르치려 들지 말자.

#노브라 내 젖입니다. 넌 네 젖을 신경 쓰길.

#젠더뉴트럴 젠더를 정의할 필요 없이, 모두가 각자의 젠더로 살 수 있는 날까지.

 

한정은(가명) 취업준비생 1996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물리적 위험은 물론 가스라이팅과 맨스플레인으로 정신적 위험까지 노출된 삶.

듣고 싶지 않은 말 남자친구 만나라. 골반이 좁아서 애기 낳을 때 힘들겠다. 여자가 팔자걸음으로 걸으면 보기 좋지 않다. 남자 잘 만나서 남편 돈 받고 사는 게 제일 좋다. 커피는 여자가 갖다줘야지.

일상 속 실천 여성복이라 칭하는 것, 색조 화장품을 소비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성차별적 발언을 했다고 느끼는 순간 바로 수정한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비수술 트랜스젠더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듣고 싶다. 내 생각이 한정적이고 틀에 박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던 (오히려 거부감을 보이던) 친구가 페미니즘에 관해 질문했을 때. 꾸준히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 누구라도 한 번씩 찾아보고 관심 갖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의 나눔을 요청하는 것이 진보의 조짐이라 느꼈다.

#맨스플레인 오면 #가스라이팅 오고 #가스라이팅 오면 #맨스플레인 오는. #맨스플레인과 #가스라이팅은 마치 바퀴벌레 한 쌍.

정다운 다큐멘터리감독

정다운 다큐멘터리 감독 1993

나의 위대한 여성 홍형숙 감독. 그의 다큐멘터리 <경계도시>를 가장 좋아한다. 보통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감독은 뒤에 숨어 연출을 하기 마련이지만 홍형숙 감독은 카메라 앞에 몇 번 나서기도 한다. 그게 참 멋있다고 느꼈다(아마도 그 장면들에서 그가 여성 감독으로서 일선에 나서서 자신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상을 받은 것 같다.) 나도 내 다큐멘터리에서 직접 카메라를 들고 말하거나, 카메라 앞에 서는 등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의 롤모델.

페미니즘?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페미니즘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성차별을 당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자기주장을 강하게 어필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성을 가진 스물일곱 살의 정다운이 열심히 살고 있다가 아닐까? 이렇다 대단할 것도 억지스러운 것도 없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 시대 여성들 모두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여성스럽다 자연스러운 것.

대한민국에서 20대, 젊은 여성으로 사는 일 여성으로서 힘든 점을 말해야 하나. 그냥 다 똑같다.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듣고 싶지 않은 말 ‘여자라면’ ‘여자면’으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말.

일상 속 실천 직업 특성상 장비를 여기저기 옮기고 들고 다닐 때 ‘내 장비는 내가 챙긴다’는 마음으로 무거운 것들을 끝까지 나 혼자 들고 다닐 때. 남자인 친구들에게 들어달라고 절대 하지 않는 것.

주목하는 젠더 이슈 끝없는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는 여성들의 가사 노동 문제에 큰 공감을 느끼고 있다. 왜 내가 다 해야 해? 너는 왜 도와준다는 표현을 써? 뭘 도와줘? 응?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여성 감독이나 여성 촬영감독 등 일하고 있는 영역 안에서 여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가장 아름다운 나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맨스플레인은 X 같은 게 확실하다.

#가스라이팅도 X 같다.

#노브라는 좋다.

 

이윤서 대학생 1996

남성만 성욕의 주체로 , 여성은 성욕이 없다 여겨지면서도 남성 성욕을 해소하는 대상으로 섹시함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 섹시하다는 말이 칭찬과 불쾌함에서 줄타기하는 것은 ‘내가 너를 따먹고 싶고, 따먹을 수도 있어’라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 아닐까.

페미니즘? 지금, 여기서, 누가 말을 못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찾아내는 작업이자 그것을 찾아내는 시각.

섹시하다 누군가를 보고 섹시하다고 느끼는 것, 섹시함이 매력의 요소가 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만 ‘섹시하다’고 생각한 다음 ‘섹스하고 싶다’ 최종적으로 지금까지 ‘실제로 추행’이 너무 자연스럽게 벌어진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예쁘다’는 말. 예쁘다는 말을 좋아하는 나도 싫고. 나는 외모에 열등감이 심한 편인데 ‘얼평’이 문화고, 칭찬이니까 그 예쁘다는 말을 듣기 위해 꾸미고 그 말을 못 들으면 자존감 떨어지고. 떨어진 자존감 주워 담는 방법이라고는 외모를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라 나보다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는 것뿐이니까.

일상 속 실천 오빠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관계가 쌓이고 말을 놓을 시점이 오면 상대방에게 ‘나는 오빠라는 말 안 해’라고 밝힌다. 그때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말을 안 놓고 그 사람과는 천천히 멀어진다.(웃음) 오빠라는 말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성애화돼있고 오빠라고 부르는 순간 나의 의견과 말이 힘을 잃는다.

주목하는 젠더 이슈 ‘그냥’ 헐벗고 나오는 남자 아이돌이 많아진 것을 보며 새삼스러워하고있다. 이전의 남자 아이돌이 ‘짐승돌’ 컨셉트로 본인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벗었다면 지금의 남자 아이돌은 잘 보이기 위해, 니즈에 맞춰 야한 모션을 취하는 것을 보며 여성의 욕망이 대중문화 산업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게 맞는 방향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여성의 입김과 주관성이 강화된 결과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생각한다.

성평등 의식이 진보하고 있다고 느낀 사건이나 순간 내가 속한 단체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1박2일 캠프를 간다. 4년 전만 해도 술자리에서 새내기들에게 ‘여자, 남자 외모 1위 뽑아봐라’ ‘절대 사귀고 싶지 않은 선배 뽑아봐라’ 같은 질문을 필수로 했다.그게 재작년에 바뀌었다. 어떤 선배가 여자 후배에게 “너 남자친구 있어?”라고 물었는데 그 후배가 “요즘에 애인 있느냐고 묻지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으면 대자보 붙어요”라고 답하더라. 지금까지는 피곤하다고 자리를 피했는데 그 후배를 보며 앞으로 이런 식의 놀이 문화가 용인되지 않음을 느꼈다. 너무 기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