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를혐오한다 우에노치즈코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지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지다. 고립은 최대의 적이다. 주위에 함께하면 기분 좋은 사람들을 늘리자. 그리고 때로는 약한 소리를 하고 기대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가 돼주자. 여성들은 이런 일이 특기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만이 투쟁은 아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로 알려진 일본의 사회학자 자 페미니스트 우에노 치즈코. 2012년 국내에 발행된 이 책은 핀셋으로 현실을 낱낱이 파헤친 듯한 날카로운 지적으로 남성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을, 여성들에게는 사고의 전환을 제시하며 대표적인 페미니즘 입문서로 자리 잡았다. 비혼 여성이기도 한 우에노 치즈코는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 등 저서를 통해 이성애,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치 있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 그는 일본에서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동지’를 꼽는다. ‘연대’만이 지치지 않고 즐겁게 투쟁하는 길이라고 페미니즘 인생 70년 차의 선배가 말한다. 현재 우에노 치즈코는 일본 국내의 여성 활동 지원과 단체 간 연결을 위해 설립한 NPO 법인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가 한국에서 이룬 소기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내 책을 읽는 건 기쁜 일이지만, 반면 안타깝기도 하다. 이 책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책에서 그리는 현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이 책이 많이 읽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웠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정신이상자가 일으킨 사건’이라고 하지 않고 ‘여성 혐오 살인’이라고 이름 붙이게 된 데 이 책이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한 사건을 어떻게 이름 짓는 가는 ‘정의(定義)의 정치’다. ‘여성 혐오 살인’이라고 정의함으로써 강남역 살인 사건 현장에 수많은 여성이 모여들고 수많은 메시지를 남긴 움직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여성 혐오는 일본에서도 익숙하지 않은 말이었는데 이 책 덕분에 널리 정착했다. 이 책의 제목에는 ‘페미니즘’도 ‘젠더’도 없지만 내용은 페미니즘 그 자체다. 페미니즘을 몰랐던 젊은 세대는 이 책을 읽고 ‘신선했다’, ‘이런 사고방식이 있었다니 놀랍다’ 등 감상을 전해주었다. 페미니즘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입문서로 삼아 다시 배우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과격하게 ‘미러링’을 하기도 하고 미디어와 기득권(남자)의 시선으로 고착된 외적인 아름다움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탈코르셋’을 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종종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이를 비난하기도 한다. 어떤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든 중점에 두어야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페미니즘에는 역사가 있다. 연상의 여성들의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러링은 남성이 하는 행위를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남성처럼 되고 싶은 것이 아니며 남성을 흉내 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미러링이 일시적으로 임팩트는 있을지 모르나 남성의 어리석은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봐서는 자제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탈코르셋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여성해방운동 초기에 브래지어를 불태 우던 미국 여성해방운동가들의 퍼포먼스다. 브래지어도 코르셋도 분명 여성을 옥죄는 것이지만, 그것을 버린 여성이 버리지 않는 여성을 뒤떨어졌다거나 열등하다고 서열화하는 것은 탐탁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척도로 진보했다거나 뒤떨어졌다고 판정하는 새로운 권위주의, 일종의 페미니즘 원리주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투쟁 방식에는 다양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은 여전히 소수의 이야기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한 여자 아이돌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고, 또 다른 걸 그룹 멤버는 자신의 SNS에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적힌 휴대폰 케이스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주목받았다. 페미니즘 담론의 판을 더 넓히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을들었다. 예외가 없을 정도로 많은 탤런트와 아이돌이 “나도 읽고 있습니다 #MeToo”라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임신중절이 금지되었던 1970년대 프랑스에서는 시몬 드 보부아르를 비롯한 사람들이 “나도 임신중절 경험자입니다 #MeToo”라며 시위를 했다. 성폭력에서도 미투(#MeToo) 운동이 일어났다. 주위 여성들은 비난받는 여성이 고립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페미니즘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한국과 일본 양국의 페미니즘은 그 양상이 어떻게 다른가? 일본에서는 제2차 페미니즘 물결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고령화해 세대교체가 큰 과제다. 젊은 페미니스트도 등장했지만 소수에 그치고 있다. 그렇지만 ‘여성해방운동’이나 ‘페미니즘’이라는 명칭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세대 대신, 정보가 없는 만큼 터부 의식이 없는 젊은 세대가 생겨나고 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이나 젠더라는 말을 알든 모르든, 남녀평등 의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젊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덕분에 사회 전체가 성폭력과 성차별에 민감해지고 허용도가 낮아졌다.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터부시하지 않 고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 움직임에 나서고 있는 점이 좋아보인다.

당신은 폭력 포르노를 삭제하라는 주류 페미니스트의 기조에 반대한다. 폭력 포르노는 상상의 산물이기에 표현의 자유를 허해야 하고 그 제작 행위를 단속할 수도 없다고 했는데, 한국에서 가장 기승을 부리는 포르노는 ‘몰카’다. 이는 종종 ‘리벤지 포르노’가 되기도 한다. 이 역시 그 양이 엄청나 단속하기 힘들 정도인데, 몰카를 포르노로 소비하는 한국의 상황에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방식으로 단속이 가능할지, 일본에 선례가 있었는지도 알려주기 바란다. 몰카는 일본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성폭력의 하나다. 영어로 피핑 톰(Peeping Tom)이라고 하는 것처럼, 자신은 타인에게 노출하지 않고, 몸의 안전을 확보한 채 그저 바라보는 주체가 되어 타자(여성)를 보여지는 객체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남성의 가장 비열한 성적 환상 중 하나이며 포르노의 정석이다. 모델이 있는 실사는 명백한 인권침해지만, 만화나 회화 등 제2차 제작물 속 포르노를 단속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범죄를 단속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상상력은 단속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에 의한 단속이 아니라 ‘보지 않을 자유’나 조닝(Zoning) 등을 통해 시민사회 차원의 대항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과장을 보태 ‘일본에도 페미니스트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남성성이 과하게 강조돼 상대적으로 여권이 높지 않다고 인식되는 일본에서 페미니스트로서 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당신의 신념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유럽과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일본 여자들은 순종적이고 남자의 세 발짝 뒤에서 걷지 않나? 그런 일본에 여성해방운동이나 페미니즘이 있나?”라는 말을 들어왔다. 한국도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야말로 오리엔탈리즘이다. 어떤 사회에도 여성이 목소리를 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일본의 여성이 목소리를 높여 싸운 기록은 <자료 일본 우먼리브사>를 비롯해 각종 미니 커뮤니케이션에 증거로 남아 있다. WAN(Women’s Action Network) 사이트(wan.or.jp/dwan)에서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내가 여성해방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분노와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립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동료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 배경에 있던 신념은 나와 다 른 여성들의 운명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여성에 대한 공감과 신뢰다.

당신은 비혼주의자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비혼을 선언하는 여성들이 많지만 ‘저러다 언제 결혼할지 모른다’는 조소를 받기도 한다. 비혼으로 지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나 맞닥뜨린 상황은 무엇인가? 이 사회는 결혼하지 않는 편보다 하는 편이 여러 면에서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결혼은 여전히 남성 중심 사회에 등록되었다는 증표이기에 여성이 부득이하게 결혼을 바라는 면이 있을 것이다. 기혼자는 지금도 압도적 다수이며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 비혼을 옹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옹호가 필요할 정도로 억압돼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비혼이 성관계가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지만, 성 혁명 이후 비혼과 성관계 여부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비혼 싱글이 살아가기 쉬워진 배경에는 결혼과 섹스의 배타적 연결이 (특히 여성에게서) 사라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비혼이라는 이유로 불편을 느낀 적 없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결혼 여부보다 어머니인지 아닌지가 여성의 가치를 정하는 더 큰 요소다. 어머니는 여성의 완성이며, 어머니가 되지 못한 여성은 여성으로서 한 사람 몫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한다. 어머니가 되기만 하면 비혼 싱글맘이든 이혼 싱글맘이든 여성으로서 풀코스를 거친 셈이 된다. 내가 가장 상처받은 말은 같은 여성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어머니가 돼본 적 없는 당신이 진정한 여성에 대해 무엇을 아나?” 이 사회는 결혼과 비혼,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어머니냐 아니냐로 여성을 나눈다. 여성은 이런 구분을 넘어 서로 연대하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본군 ‘위안부’가 돼본 적 없는 여성은 일본군 ‘위안부’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말도 가능한 것 아닌가? 물론 어떠한 여성들의 경험도 둘도 없는 고유의 경험이지만, 그것을 넘어 ‘여자’라는 집합적인 정체성에 집중했기에 페미니즘이 태어났다. #MeToo는 그 공감의 징표다.

비혼 옹호를 기혼 혐오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소수파의 주장을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아마 자신의 결혼 생활에 내심 불만이 있을 것이다.(웃음) 혐오와 증오는 때때로 자기 안에 있는 약점을 찔렸을 때 나타나는 감정이니 말이다.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은 페미니즘을 알기 전 내 모습과 끊임없이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가부장제 문화에서 자란 당신도 계속해서 스스로를 검열하는지 궁금하다. 또 여성 혐오적 발언을 ‘나쁜 의도 없이’ 하는 남성을 마주할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아무도 자기가 태어난 사회나 문화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생 자기 점검(검열이 아닌)을 되풀이하는 것은 필요하며 중요한 일이다. 성차별의 영역만이 아니라, 내버려두면 분수도 모르고 “일본이 제일 좋다”, “일본 최고”라며 잘난 척하는 악의 없는 무지한 자기중심적 발언을 하는 사람도 다수파라면 하나하나 자기 점검을 하는 것이 좋다. 여성 혐오 발언을 악의 없이 내뱉는 남성은 스스로가 다수파에 속한다는 사실을 의심해본 적 없는 무지하고 둔감한 남성일 것이다. 그럴 때는 바로 그때, 그 자리에서 상대가 알 수 있도록 하나 하나 친절하게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그런 여성은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겠지만, 조금 귀찮은 여자로 보이는 것이 상책이다. 무신경한 모욕을 감내하기보다 그 사람을 대할 때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편이 나으니까.

페미니즘 안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다. 현재 당신이 가장 주의 깊게 연구하고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 현재 내 연구 테마의 중심은 케어다. 케어는 역사적으로 여성이 담당해온 과제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페미니즘에서 큰 문제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늙고 약자가 되어간다. 강자가 되려고 하기보다 약자가 약자인 채로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나의 과제다.

때로는 이 사회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도 든다. 나는 이미 노인이다. 인생을 70년이나 살아왔다. 70년이 흐르는 동안 변한 것도 변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여성의 삶은 크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젊은 여성은 권리 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선택의 기회도 늘어났다. 투쟁은 지치는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지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지다. 고립은 최대의 적이다. 주위에 함께하면 기분 좋은 사람들을 늘리자. 그리고 때로는 약한 소리를 하고 기대기도 하면서 서로 의지가 돼주자. 여성들은 이런 일이 특기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만이 투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