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 영화제작자 든든 명필름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내가 여성이라는 점, 여성 영화인이라는 정체성을 중요시 여기게 됐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어떤 영화적 지향점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후배 여성 영화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남성 중심의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독자적 성취를 이룬 ‘여성 위인’들이 있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영화 제작자 심재명은 결을 달리한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위치와 위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 힘에 수반되는 무게와 책임을 아는 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던, 고백과 고발이 쏟아지던 지난해 3월 1일, 그는 임순례 감독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을 개소하고, 공동 센터장으로서 자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렇게 지난 한 해 동안 든든은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과 캠페인을 진행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제보를 받아 피해자 상담과 조사, 법적·의료적 지원을 했다.(그 피해 접수만 69건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든든은 수많은 전문가와 오랜 시간 함께 준비한 ‘성희롱·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공론화했다. 기사를 쓰는 지금, 심재명 대표는 든든을 통해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개막작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선정한 것에 대한 공식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의 개소 1주년을 앞두고 있다.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싶은가? 든든이 많은 사람의 힘과 뜻을 모은 조직이자, 시대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큰 책임을 느낀 해였다. 함께 센터장을 맡은 임순례 감독과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의 최윤희 대표, 자문위원회와 전문 조사위원회 등 많은 이들이 협력해 힘쓰고 있다. 출발 단계에서 시행착오도 겪었고 갈 길도 멀지만, 든든은 음악·미술·출판·방송 등 대중문화 예술계 안에서 현업 종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첫 단독 기구라는 점에서, 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든든이 조직되기 전까지는 영화계 내에서 성범죄가 벌어졌을 때 처리하고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피해자가 신고하고 피해를 호소할 수 없을 때는 한국여성민우회나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이제 든든이 있으니 사건에 대한 대응이 보다 수월해졌다고 생각한다.

시기적으로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개소한 든든은 문화 예술계 전반의 여성에게 직간접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뜻을 같이하는 공식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는 일이니까. 미투 운동이 본격화되기 2년 전부터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 태그 운동이 있었다. 성폭력 예방과 성폭력 없는 영화 현장 조성, 여성 영화인 입지 등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포럼을 통해 스웨덴, 영국, 호주 등 여성 영화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적 지원 제도와 선진화된 정책에 대한 사례를 공부하고,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투 운동이 일었고 나 역시 문제의 심각성과 사안의 위중함을 느꼈다. 이를 위한 센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현재 든든에서 가장 첨예한 화두는 무엇인가? 성폭력 피해자가 사건을 신고 접수하면 든든은 사안에 대해 법률·의료적 지원을 하거나 또는 가해자에게 사과를 이끌어내거나 공론화하는 등 대응 방식을 달리하고 있다. 한데 막상 진행해보니 어떤 사건도 한 번에 쉽게 끝나지 않더라. 재판도 몇 개월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언론과 주변 사람들로 인한 2차, 3차 가해도 일어난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종결하지못한 사건도 있다. 개인이 용기를 내는 일도, 이를 바로잡는 일도 어려운 일임을 새삼 체감한다.

명필름 창립 작품 <코르셋>(1996)은 외모 탓에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개봉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영화 개봉 당시와 현재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 어느 때보다 꾸밈 노동과 탈코르셋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기도 하고. <코르셋>이 명필름의 첫 영화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나?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공동 대표이자 남편인 이은 대표와 명필름을 만들던 1990년대 중반 ‘미시맘’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군화를 신은 엄마가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분유 광고 같은 것이 만들어졌는데, 지금으로 치면 걸 크러시와 의미가 비슷한 용어다. 씩씩한 미시맘이라는 개념을 담은, 기혼 여성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잘 안 됐다. 그러던 중 <코르셋> 시나리오를 대종상 영화제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봤는데, 이 역시 여성이 주인공이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점, 여기에 로맨틱 코미디라는 상업적 장르 안에서 유쾌하게 풀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라 보고 제작을 진행했다.

제작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투자 회사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회의실에는 전부 중년 남자만 있었다. 농담조로 ‘술집에 가도 못생긴 여자보다 뚱뚱한 여자가 더 싫다’, ‘누가 돈 내고 뚱뚱한 여자 이야기를 보러 가느냐’는 등 지금으로 치면 굉장히 위험한 발언들을 했다. 어쨌든 어렵게 완성됐고, 흥행이나 완성도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지만, 한쪽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소재의 영화라는 평도 들었다. <코르셋>이 나오고 얼마 뒤 호주에서 영화 <뮤리엘의 웨딩>이라는, 마찬가지로 뚱뚱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나왔다. 우리로서는 나름 앞서간 기획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리 됐다’고 회고하기에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첫 상업영화부터 모험을 감행한 셈이니까. <코르셋>도 그랬고, 두 번째 영화인 <접속>도 당시에는 이전의 한국 영화와는 결이 다른 작품이었다. <공동경비구역JSA>도 마찬가지고. 의도하거나 의식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 ‘되게 위험한 이야기인데’, ‘저런 건 좀 모험 아닌가’라고 하면 그 소재와 주제에 더 끌렸다. 청개구리처럼. 그렇게 얻은 결과물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졌고, 보람도 느꼈다. 타고난 성향이.(웃음)

지난 20여 년간 여성 제작자로서 권한과 책임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을 것 같다. 명필름이 내년이면 25주년이다. 20년이 넘는 동안 영화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경험하고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내 성 정체성, 영화 산업 안에서 여성 영화인으로서 위상 등에 대한 생각과 심지가 처음부터 굳건한 건 아니었다. 도리어 영화를 만들고 영화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좋은 선후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의식화된 것도 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내가 여성이라는 점, 여성 영화인이라는 정체성을 중요시 여기게 됐다. 여성 영화인과 일하려 노력하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카트> 등 여성주의적 시각의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아마 우리가 어떤 영화를 만들고, 어떤 영화적 지향점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후배 여성 영화인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제작자가 영화만 잘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 또는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가? 그보다 격려를 받았다. ‘먹고사는 것도 힘든데 이런 공적 영역까지 책임지니 안쓰럽지만 근데 고맙다’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다. 반면 ‘영화라는 것이 결국에는 자금이 투입되고 상업적 성공을 반드시 이뤄내, 누군가 손해 보지 않고, 수익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산업인데, 영화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거나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은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뭐, 그런가?’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재미와 의미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남초 집단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명예 남성화된 경우를 어렵지 않게 봐왔다. 영화 산업 역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자의식을 분명히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패밀리 비즈니스라는 울타리 안에서 힘들거나 혼란스러워 할 때 의지가 된 동지들이 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 덕분에 다행히 명예 남성 소리 듣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기 역할 제대로 하고, 남들이 봤을 때 성공했다는 여성들로 부터 ‘나는 이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한 적이 없다’라는 말을 들으면 굉장히 화가 난다. 본인이 여성이 아니면 남성인가? 우리 사회에서, 특히 사회생활을 할 때 소수이고 약자인 여성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 성공한 사람이 취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그 책임 의식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카트> 등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으로도 이어졌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예민하게 생각한 것, 또는 지양하려고 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적어도 명필름에서 만드는 영화의 여주인공은 성적으로 왜곡됐거나, 학대 당하거나, 잘못 묘사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가끔 놀랄정도로 시대착오적인 영화가 있지 않나. 그런 영화들이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도 여성 영화라고 생각한다. 남성 서사가 중심인 영화들 속에서 그 작품이 어떤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가 없었으니까 차별화된다고 여겼다. 잘 만들고, 정확하게 마케팅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작품도 망할 거라 생각하고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남이 시도하지 않은 이야기이고, 소재였기에 잘될 수 있었다.

창조해온 여러 여성 캐릭터 중 가장 사랑하는 인물을 꼽자면 누구인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 크지만 그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여성 배우들이 정말 노력했다. 지금까지도 그들이 자랑스럽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싹’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짓고, 알을 품겠다고 양계장을 탈출하는가 하면, 청둥오리를 키우며 ‘이종 입양’ ‘다문화 가족’을 꾸려내는 주체적이고 용감한 암탉이다.

여성 인권뿐만 아니라 노동자(<카트>), 청년 실업(<7호실>), 대안 가족(<당신의 부탁>) 성 소수자(<환절기>), 청소년(<박화영>) 등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도 꾸준히 해왔다. 완벽한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는 매력이 없다. 유독 명필름이 결핍을 지닌 소수의 이야기를 고집한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 대부분은 어딘가 부족한 존재에서 출발한다. 결핍된 존재가 영화적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극한직업>만 봐도 다 허당 형사들이잖나. 그 형사들이 치킨집을 운영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상업영화로서 재미도 출발하는 거다. 흔히 그런 소수의 이야기는 장사가 안 될 것이다? 그건 아닌 것 같다.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실패한 사람이었고,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성 노예 피해를 숨기고 사는 할머니였지 않나.

장애인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후반 작업은 끝났고 마케팅 준비 중이다.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앞세운 영화가 많았다면, 이 작품은 장애인과 장애인이 조합을 이룬다. 약한 이들이 서로 돕고 살면 힘이 된다는 따뜻한 휴먼 코미디다.

미투 운동이 발화된 지 1년, 대한민국은 성별로 인한 혐오의 정서가 형성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본래 의미로 쓰기보다 악의적이고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보나? 먼저 ‘남성 혐오(남혐)’라는 말은 성립이 안 된다. 흑인이 백인을 혐오할 수 있나? 그것이 가능한가? 소수자, 약자가 하는 건 혐오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혐’이라는 말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젊은 여성 친구들이 의사 표현을 과격하게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글쎄.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 오랫동안 고통 받아왔고 당해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젊은 페미니스트에게 나 역시 많은 걸 배운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생각이나 시각을 갖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새로 만들어진 워딩 중 가장 화가 난 게 ‘빚투’다. ‘미투’가 단지 ‘나도 당했다’가 아니지 않나. ‘빚투’ 같은 용어를 쓰는 걸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약자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아쉽고 바뀔 것은 많다. 페미니즘이야말로 어떤 사회 운동보다 어려운 운동인 것 같다. 혁명을 이루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페미니즘이 제대로 구현되는 사회가 민주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조금씩 나아간다고 느낄 때도 있나? 서지현 검사, 심석희 선수 등 우리 사회 안에서 용기를 내어 자기 목소리를 표출했을 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큰 힘이 되었다. 한데 이 용기를 훼손하거나 폄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럴수록 우리가 더 연대해야 한다. 든든을 운영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울 때가 있다. ‘우리가 이만큼 열심히 했습니다’라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 함께 책임질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