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영화돈 박누리 장편영화 돈감독

살면서 우리는 얼만큼의 돈을 필요로 할까? 정확히는 모르지만 일단 많을수록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액수에 한계를 정할 수 있을까? 끝없이 돈을 벌 수있게 된다면 내 삶의 방식은 지금과 어떻게 얼마나 달라질까? 영화 <돈>은 매출 실적 0원으로 고군분투하는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이 큰돈을 벌 수 있는 판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고민과 인간적인 고뇌를 담았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순박한 사회 초년생에서 괴물처럼 변해가는 배우 류준열의 폭발적인 연기와 액션 하나 없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영화의 차진 호흡에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첫 장편영화를 내놓는 기분이 어떤가? 글쎄, 첫째를 낳은 느낌?(웃음) 2016년부터 4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작업한 영화다. 완전히 만족한다고 말하기는 뭣하다. 나만 아는 거니까. 그래도 할 만큼, 해보고 싶은 건 다 해서 보여드릴 수 있게 된 것 같고,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전할 수있는 정도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작은 영화가 아닌 상업 영화로 시작하는 행보에 눈길이 간다. 감독이 가진 영화에 대한 신념과도 맞닿는 지점일까? 신념이라고 하면 거창할 수 있지만 영화는 나 혼자 만들고 나 혼자 보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많은 관객과 소통하고 싶어서, 공감해주기 바라기 때문에 만드는거다. 장르나 소재를 떠나 많은 분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내가 관객으로서 영화를 볼 때도 공감 할 수 있는 부분을 중시하며 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영화를 만들 때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

‘돈’이라는 노골적인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로 했을 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컸을 것 같다. 결국 대부분 ‘사건’의 중심에는 돈이 있지 않나. 동명의 원작 소설이 있다. 원래 다른 대본을 쓰고 있다가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끌렸다. 이전에 작업한 것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한 인물의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사실 내가 주식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웃음) 주식 소재의 증권가 이야기임을 다 떠나서 동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나와 비슷한 인물이 자신에게 걸맞지 않는 돈을 벌 수 있는 큰 기회를 얻어서 돈을 벌고 변해가는 모습에 공감이 갔다. 굉장히 평범한 나에게도 저런 기회가 온다면 나는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나는 겁도 많고 의심도 많은 사람이니까 분명히 잡지 못할 것 같아, 감당이 안 될 거야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만약 다음 달에 월세 낼 돈이 없고 부모님이 갑자기 아프셔서 목돈이 필요하게 되면 또 그 기회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나는 더 큰돈을 갖고 싶을까? 내가 갖고 싶은 돈의 한계는 얼마일까? 이런 고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내가 이렇게 공감하고 나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이야기라면 더 많은 사람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년 동안 여의도로 출퇴근하면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들었다. 취재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게 있다면? 일단 출근 시간 지옥철의 고통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꼈다. 누군가에겐 30분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한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그 시간에도 영어 공부를 하거나 휴대폰으로 뉴욕 증시를 확인하며 열심히 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산 건 아닐까 하는 반성도 좀 했다. 증권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큰돈을 만지는 사람들이라 거리감이 있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들의 삶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더라. 매번 돈 앞에서 고민하고, 바쁠 때는 컵라면을 먹고, 당장 이번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농장을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와 별다를 게 없는 그들의 사소한 고민이나 삶의 애환을 신입 사원은 ‘일현’이나 변 차장(정만식)에 투영했다.

영화의 감정을 만들어가는 조일현 역의 류준열의 힘을 다시 한 번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촬영을 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본 그는 어땠나? 이전 작품들에서 연기하는 걸 보면서 대단히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배우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작업을 해보니 반대로 꼼꼼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완벽주의자다. 항상 대본이나 콘티를 손에서 놓지 않고 다시 보면서 공부하고 분석하며 여기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계속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하니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완전히 자기 걸로 만들어서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눈을 찡긋하거나 입술을 실룩거리는 것 하나까지도 다 준비나 해석이 바탕이 되니까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였다. 그런 부분에서 아주 놀랐고 앞으로 더 잘될 수밖에 없는 친구다.

근래 한국 영화에서 주로 악역을 맡았던 조우진 배우의 역할도 신선했다. 배우들의 활용도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우진 선배님이 맡은 ‘한지철’이라는 인물은 금융감독원 직원인데 사실 실제 금감원 직원들은 공무원이고 감시를 하는 직업군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사람을 쫓아다니며 잡으러 다니진 않는다. 한지철은 그 정도의 집요함을 가진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에서 나온 인물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 현실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로 그 인물을 그리게 됐는데, 현실성을 불어넣은 건 우진 선배님이다. 한지철은 이혼남에 아이에게 태블릿 PC를 사주고 태권도를 시켜주고 싶어 하는 기러기 아빠다. 공무원으로서 한지철이 가진 애환일 텐데 모두 선배님의 아이디어다. 그 덕분에 한지철이 현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인물로 만들어진 것 같고, 그래서 ‘저런 사람이 어딨어?’가 아니라 ‘저런 사람이 한 명쯤은 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 됐다.

그 반면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강조하며 늘 돈이 있는 남자들 곁을 향하는 박시은 대리(원진아)는 남성적인 시각이 투영된 캐릭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떤 색다른 여성상을 보여주기보다 아직까지 현실은 그렇다는 걸 숨기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취재했을 때 주식 브로커는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여성 브로커는 남성의 1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극 소수다. 그 부분이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기도 했고, 그래서 더욱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시은이는 상황을 다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나만 부끄럽지 않으면 상관없다는 태도를 지닌 내공이 센 인물로 보여지길 바랐다. 대놓고 싸우려고 하기보다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내 갈길을 향해 직진하는 인물. 일현에게 시은은 동경의 대상이고 선배지만 시은 입장에서는 일현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자기도 일현을 맹목적으로 원하지 않고 절대 남자가 목적이 되지 않는다. 현실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뚜렷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마무리도 신경 썼다.

다수의 남성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만의 방식이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씁쓸하긴 하다.그 인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씁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게 다행인 것 같고 다음 작품에서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액션도 없는데 박진감 넘치는 호흡을 만들어낸 건 편집이 팔 할이었다. 소재는 주식이지만 주식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작전하고 거래하는 장면에서는 설명을 최대한 배제했고 인물이 상황에 반응하는 모습들, 일현의 표정이라든지 클릭할 때 손가락의 떨림과 망설임 같은 디테일한 리액션으로 관객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바로 인지하면서 따라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씀하신 것처럼 거래 장면이나 사무실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사무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먹고 먹히며 돈을 위해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첩보영화 같은 느낌을 내려고 고민을 많이 했다. 엉키는 시선들을 촬영이나 콘티에서 부터 많이 고민했고 주인공이 위험에 처해 있다, 돈을 잃고 있다 혹은 벌고 있다 하는 긴박한 상황을 음악으로 바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음악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절대 타협할 수 없었던 신이 있나? 좋은 질문이다. 후반부에 가면 일현이 전철을 타고 여의도를 빠져나와서 평범하게 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 몸을 뉘인다. 그때 일현의 시선에 들어온 평범한 사람들의 시점 숏이 있다. 그 부분을 꼭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시작에서는 일현이 신입 사원으로 여의도에 첫 출근을 해서 일련의 엄청난 사건을 겪은 후 어떻게 보면 여의도를 빠져나가는, 시작은 출근하고 마지막은 퇴근하는 느낌으로 보여지길 바랐다. 출근할 때도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여느 사람들처럼 치열하게 출근 했고 퇴근할 때도 나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비로소 안전하게 몸을 누이며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과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나빠지지는 않았구나, 아직은 나로 남았구나’라는 느낌을 가져줬으면 했다. 그런 느낌을 관객들도 받을 수 있을까?

촬영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동명 증권 사무실 촬영이 많았다. 세트장이 아니라 실제 여의도 빌딩 가운데 비어 있는 한 층에 사무실을 차렸다. 그 건물에 본격적으로 출근하기 전에 리허설 데이를 하루 만들었다. 첫 촬영을 하기 전에 배우부터 보조 출연자까지 1백50여명 전원이 본인의 책상에 익숙해져야 촬영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배우들도 주식 브로커라는 직업이 생소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자리를 배치해준 후 각자 자리에 익숙해지라고 시간을 줬더니 다들 수건, 안마기 등 소품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증시가 개장하는 오전 9시에 맞춰 거래를 시작하듯 리허설을 시작하자마자 마치 그 자리에서 몇 달을 근무한 사람들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전화를 받거나 컴퓨터를 보면서 일을 하더라.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정말 브로커들로 꽉 찬 느낌이었다. 소름이 쫙 돋으면서 이제 사무실 신을 찍는 데엔 무리가 없겠구나, 믿고 가도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매력적이거나 딜레마에 놓인 인물이 극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를 좋아한다. 막연하긴 한데 그래서 장르는 상관없다. 액션, 범죄영화라고 해도 인물의 결이 잘 표현되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래서인지 사건이 중심이 되어 인물이 보이지 않는 영화는 공감이 잘 안 간다. <돈>도 사건보다는 인물이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하는 성장 드라마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오랫동안 영화 일을 했지만 한 편을 완성해봄으로써 새롭게 깨닫게 된 것도 많을 것 같다. 필름처럼 갑자기 막 지나간다.(웃음) 감독을 처음 해보지만 좋은 파트너를 얻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제작사나 프로듀서, 배우들, 촬영감독님이나 음악감독님 등 함께 일하는 이들과의 파트너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꼈고 이 영화의 주제나 소재만 놓고 봤을 땐 돈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웃음) 돈이 행복과 직결된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되겠다. 돈은 행복의 척도가 아니다, 이 생각을 계속했다. 이 사실을 앞으로도 잊지 말자고.

그렇게 되뇌었기 때문에 영화를 그렇게 풀어간 게 아닐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던지는 질문을 역으로 하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생업에 몰두하며 살고 있나? 꿈을 위해서가 아닐까. 영화를 그렇게 긴 시간 했다곤 할 수 없지만 15년의 시간 동안 한 번도 꿈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돈이 아니라 꿈을 좇아왔기 때문에 힘든 것도 버티면서 달려올 수 있었다. 앞으로도 꿈이 바뀌지 않는 한 계속 치열하게 살겠지?

어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나? 돈을 만지고 돈을 쓰는 사람이라면 다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 않나. 그러니까 다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