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에 자리한 오래된 아파트에 한승재 소장의 다정하고 작은 집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홍은동 산자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리운 복도식 아파트다. 아무것도 부수거나 덧붙이지 않은 채 한승재는 자신의 감각-섬세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지만 절대적으로 섬세한-만으로 꽉 채운 집에 살고 있다.

자기소개 건축설계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 공동 대표 한승재다. 푸하하하프렌즈는 건축설계를 주로 하지만 인테리어와 시공까지 폭넓게 일한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나중에 또 하고 싶은 일이 들어온다’고 생각해 클라이언트가 해달라는 대로 하기보다 의견을 많이 내왔다. 알려진 가게들 중에는 옹느세자메, 수르기, 파이프 그라운드가 있고 최근에는 성수연방 안에 있는 띵굴 스토어와 아크앤북 인테리어를 했다. 그리고 주택 프로젝트를 계속했는데 설계부터 한채에 2년씩은 걸려서 올해 몇 개가 나올 거다. <어라운드> 매거진 사옥과 주택이 같이 있는 프로젝트도 했다. 주로 어려운 걸 찾아서 하는 일을 많이 했다.

이 집에 대한 설명 부모님과 살다가 어제 나왔다. 계속 못 나온 이유는 부모님 집은 단독주택이고 나는 2층에서 공주님처럼 살았기 때문이다.‘여기를 나가면 쪽방을 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갈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어느 날 지도를 봤는데, 이 동네 땅이 산 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는거다. 출근하는 길에 와서 부동산에 이 가격으로 가능한 집을 보여달라고 했다. 보자마자 너무 좋아서 바로 계약한 후 공사했다. 지금은 부모님과 정을 떼는 중이다. 공사는 12일 동안 했는데 소름끼치게 별로인 것만 빼고는 천장도 벽지도 그대로 뒀다. 내 눈에 낡은 콘센트 같은 건 거슬리지 않지만 천장 등을 켜면 거의 파란색 같은 LED 빛이 별처럼 와다다다 쏟아지는 게 싫었다. 더러운 건 괜찮은데 백 번 해도 아닌 것, 이를테면 별이 아닌데 별처럼 보이게 하는 것들은 못 견딘다. 그런 못마땅한 것만 다 지웠다.

기능적으로 염두에 둔 부분 방 안에서는 완전 몰입하는 일을 할 수 있게 책상을 놨지만 거실은 아예 외부로 보고 접근했다. 흰색 의자는 베란다 바깥 편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도록 평상처럼 연출했고 마루에는 카펫을 깔았는데 강화마루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아서 해본 선택이다. 어쨌든 호텔 로비 느낌도 들고, 다른 공간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들게 했다.

미적으로 신경 쓴 지점 책꽂이에 동그랗게 솟은 쓸데없는 장식.(웃음) 그냥 네모로만 만들면 쉬운데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뭔가를 더 해야 할거 같은 의무감이 있다. 나무 장을 만들 때도 괜히 각을 꺾어서 만들고.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지만 혼자서 고민하는 것들이 있다. 미니멀은 설계하는 사람들에게 버릇 같은 거다. 하다 보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잘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데 계속 거기서 도망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좀 과한 것이나 못생긴 걸 하기도 하고 의외로 잘난 것도 하게 된다. 그런 시도를 늘 한다. 가구끼리 높이를 맞추지 않은 것도 그 시도 중 하나다. 원래는 모든 가구를 어떻게 붙여놔도 맞게 만드는데 우리 집의 가구들은 어떻게 놔도 안 맞는다. 합체가 되는 순간 그렇게 놓고 싶어지거든.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구는 가구지, 테트리스처럼 생각하지 않도록.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만 습관처럼 깊은 생각 없이 ‘일자로 반듯한’ 디자인을 하게 되더라고. 살아 있는 동물처럼 생명력이 강한 원화를 거실 벽에 걸어둔 것도 그래서다. 건조한 인테리어에선 느낄 수 없는 의외성이나 생명력 같은 것을 찾으려고 한다.

이상과의 일치성 아파트가 이상적인 집이 된다면 진짜 대단하겠지?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백 퍼센트 만족한다. 이 골목 초입의 힐튼 호텔도 기분이 좋고, 그런 오래된 호텔 주변에 사는 사람은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느낌도 맘에 든다. 딱 들어왔을 때 산이 보이는 경치도 정말 좋고 전셋값도 비싸지 않아 별일 없으면 쭉 살아도 될 것 같다.

타협해야 했던 부분 엘리베이터에 들어갈 수 있는 것만 들였다. 우리 사무소에서도 아파트 인테리어는 안 하는데 민원이 무섭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도 목공사는 안 하고 사다리차 없이 엘리베이터에 실어 올릴 수 있는 사이즈의 가구들만 두었다.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인테리어나 건축 사람도 마찬가지인데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는 게 먼저다. 그런 면에서 문을 닫아버리고 다른 데서 아름다움을 찾아 가져오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 공산품과는 다르게 건물은 땅의 영향을 엄청 받는다. 콜로세움을 그대로 뜯어서 광화문에 갖다 놓으면 이상할 거다. LED를 달아 밝게 켠다고 낮이 되는것도 아니고 밤은 밤만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밤에는 ‘여기 밤이 되니까 이렇게 좋잖아’ 하는 기분을 더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은 작업 작업의 퀄리티를 떠나서 제일 고생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설계를 하고 공사까지 우리가 했는데 잡지 같은 데서 보고 멋있다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구현했더니 정말 이상 했다. 동네에 있는 옆집이 훨씬 나을 지경이었다. 그때 우리가 받았던 돈과 벌었던 돈을 다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클라이언트도 당장 살 집이 없으니 소송을 걸거나 했어야 하는데 우릴 믿고 또 다시 했다. 원수 같은 사이인데도 같이 일을 했다. 현장에서 도면 그려가며 집 짓고 클라이언트도 옆에서 사포질하고. 그 프로젝트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거의 군대 갔다 온 것 기분이었다.

특별히 흥미를 느끼는 작업 계속 바뀌는데 요즘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공간을 해보고 싶다. 공원이라든지 주민센터의 작은 부분이라도 아무 이권이 개입되지 않은 곳. 주인이 없어 내가 만들고 나서도 언제든지 다시 가볼 수 있는 곳들. 그럼 그게 내 것이라는 기분이 들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언제든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진짜 온 마음을 다해 좋은 걸 할 수 있을 거 같다.

가장 고민했던 작업 매번 너무 치열하게 하는데 옹느세자매 할 때였다. 이상한 계단을 만들었는데 설득은 했지만 확신이 서진 않았다. 사람들이 놀이터처럼 쓰길 바랐기에 쭈뼛쭈뼛하다가 불편해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사람들이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며 노는 모습을 봤을 때 고민이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건축을 할 때 한결같이 지키려 하는 것 집이 예뻐 보이게 하려고 난간을 만들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치지 않나. 그래서 안전을 비롯해 단열, 방수등은 당연히 지켜야 한다. 더 나아가 아파트를 닭장처럼 지어놓고 숨 쉴 공간 하나 마련해두지 않아선 안 된다. 좁은 원룸이라도 로비에 햇볕이 잘 들어오면 좋겠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최소한의 환경은 지켜주고 싶다.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 대학 캠퍼스. 캠퍼스는 쉬는 장소와 잔디밭이 충분히 있고 그것들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으니까. 그 중에서도 서강대학교 캠퍼스의 저녁을 좋아한다.

영감이나 자극은 어디서 질리는 데서. 뭘 하도 많이 봐서 질리면 그다음 게 하고 싶어진다.

최근 나를 제일 감동시킨 것 거실에 걸린 그림. 양유연이라는 회화 작가의 그림이다. 나도 취미로 그림을 많이 그리는데 그 생명력이 남달랐다. 의아할 정도로.

건축가로서 궁극적인 꿈 진부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최종적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착한 마음에서 그러는 게 아니다. 건축가들이 엄청 멋있는 건물을 지어서 사람들이 막 박수를 쳐도 웃기다. 건물이 멋있어서 이 세상에 좋은 일도 아니고. 건축가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서 빛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이고, 재능과 상관없이 기회가 주어져야 해서 어느 정도의 위치도 필요하다. 꾸준히 쌓아간다기보다는 그 정신을 잃지 않다 보면 나중에 나도 모르게 그런 일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 서울시의 여러 건축 계획에 대해 우리가 얼마 전 광화문광장 공모전에서 입선을 했다. 원래 광화문 주변에 있는 공터들을 광장으로 조금씩 넓혀가자, 그렇게 해서 도시가 천천히 변하면 좋겠다는 내용인데 우리 아이디어가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1, 2년 만에 뚝딱뚝딱 되는 나라에서 갑자기 50년짜리 계획을 내놓는 식으로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하지만 이런 변화나 비판의 목소리는 계속 있어야 한다. 너무 조용하지만 않으면 좋겠고 불만족스럽지만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푸하하하프렌즈 건축가 설계 디자이너 인테리어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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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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