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츤’ 왕자님

다들 나에게 왜 S를 만나느냐고 한다. 이해는 간다. S는 장난기 많고, 나쁘게 말하면 나이에 비해 좀 미숙하다. 사람들 앞에서 센 척을 하는 것도 그 일환인데, 일단 친구들 앞에서는 이름 대신 나를 ‘못생긴 애’로 부른다. 머리를 툭툭 치기도 한다.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술자리에서 술을 잘 안 마시면 “얘 지금 몸 사리느라 술 안 먹는 거”라며 내게 술을 먹이기 위해 본인이 먼저 술자리 게임을 시작한다. 처음 친구들에게 S를 소개했을 때 친구들은 조심스럽게 S와 계속 만나는 게 잘하는 일일까 하는 걱정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내가 S를 만나는 이유는 둘이 있을 때는 S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는 곳이 왕복 2시간 거리인데 S는 한 번도 나를 혼자 집에 보낸 적이 없다. 내가 손에 뭘 들고 있는 꼴을 못보는 건 물론이고 사귄 지 2년이 넘었는데 같이 밥을 먹을 땐 여전히 나를 아기처럼 챙겨준다. 같이 알바를 하다가 어딘지 거친 매력에 반해 사귀게 됐는데 막상 사귀니 나를 공주님 대접해주는 S를 보며 맘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밖에서 나를 어떻게 대하든 내 앞에서만 잘하면 그만이다. H(대학원생, 27세)

I don’t need a man

A와 나는 헬스장에서 처음 만났다.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서 같은 버스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져 일주일에 서너 번은 동네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사귀자고 고백 할 무렵에는 야근을 한다는 A의 사무실 근처로 가서 함께 술을 마셨다. 대리 운전기사를 불러 A의 차 뒷좌석에 나란히 탔을 때 살짝 취한 A가 내 어깨에 기대며 “너는 나에게 상처 주지 않을 거지?” 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되자마자 A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최소 한 달은 ‘썸’을 탔는데 그동안 A가 그렇게 술자리가 많은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 A는 거의 매일 친구들,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러 갔고 그러고 나면 항상 연락이 끊겼다. 전화도 안 받고 집에 도착했다는 말도 없이. 걱정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시피 한 후, 출근하고도 한참 지나서야 A에게 연락이왔다. 왜 연락이 안 됐느냐고 물으면 A는 술 마시면 휴대폰 잘 안 보는 스타일이라며 오히려 “왜 이렇게 집착하냐”, “나 그런 거 정말 싫어한다”라고 말하며 무안하게 만들었다. 주말에 같이 있을 때는 나와 소통하기보다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상처 많은 사람인 척 굴 땐 언제고. 옆에 있는 사람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을 이 나이에 만나고 싶지 않아 연애를 끝냈다. M(음악 마케터, 34세)

사귀기 전과 후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D에겐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 사정과 상관없이 나로서는 무척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는 D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에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D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운영 하는 와인 바에 아르바이트생을 더 뽑기가 부담스럽다며 내게 도움을 청한 게 시작이었다. 퇴근 후부터 마감할 때까지 도와주기 시작했는데 내게 지시를 내리는 말투가 여자친구를 대하는 느낌은커녕 웬만한 직장 상사보다도 더 사무적이고 차가웠다. 처음에는 ‘일할 때는 예민한 타입인가 보다’ 생각하며 이해하려 했지만 여자들이 많이 오는 테이블에는 서비스를 준다는 핑계로 유난히 앞에 오래 서서 히히덕거리며 그들 사이에서 함께 술을 마시고, 새 와인이 입고되면 문자 하겠다며 번호를 주고받는 걸 보면서 점점 이해하기가 싫어졌다. 매출이 평소보다 적은 날에는 그 불똥이 전부 나에게 튀었는데, 급기야 사람들 앞에서 여자친구 행세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닌가. 자기를 보러 오는 여자 손님이 있어야 장사가 잘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연히 헤어졌다. 다음 날 D에게서 문자와 전화가 엄청나게 왔지만 나는 그 와인 바에서 내가 일한 시간과 내 연봉을 바탕으로 임금을 계산해 노동력의 대가를 요구했다. 거기서 일하느라 방광염까지 얻은 내 몸에 너무 미안하다. K(출판사 직원, 2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