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명 김대명화보

블랙 재킷 디그낙(D.GNAK), 셔츠 준지(Juun.J), 와이드 팬츠 엑스페리먼트(XPERIMNT), 첼시 부츠 유니페어(Unipair),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대명 김대명화보

화이트 터틀넥 톱 엑스페리먼트(XPERIMNT).

김대명 김대명화보

레드 수트 송지오 옴므(Songzio Homme), 블랙 티셔츠 엑스페리먼트(XPERIMNT), 블랙 더비 슈즈 앤더슨 벨(Andersson Bell).

김대명 김대명화보

화이트 리본 블라우스 코치 1941(Coach 1941), 와이드 팬츠 블랑드누아(Blanc de Noirs), 첼시 부츠 앤더슨 벨(Andersson Bell).

김대명의 연기에는 애씀의 그림자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본 위 하나의 문장을 목소리와 표정, 동작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배우로서 결단해야 할 엄격한 이해의 과정이 분명 있었을 텐데 김대명은 그 지난한 여정을 티 내지 않고 태연히 카메라 앞에 선다. 특유의 애쓰지 않은 듯한, 무던한 듯한 자연스러움이 대체 불가능한 재능이 돼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작품 안에서 ‘누구든’ 될 수 있었다.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차분해서 더 섬뜩한 테러범으로, 그를 널리 알린 드라마 <미생>에서는 사람 좋고 넉넉한 김‘ 동식’ 대리로, 영화 <해빙>에서는 의뭉스럽고 속을 알 수 없는 정육 식당 주인 성‘ 근’으로, 영화 <마약왕>에서는 말 잘 듣는 사촌 동생이었다가 마약중독자가 된 이‘ 두환’까지 역할마다 선과 악을 오가며 차분히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만날 수 있는 그의 새 영화는 총 3편이다. <패키지>에서는 사기꾼 ‘황만철’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돌멩이>에서는 지적장애인 석‘ 구’를, 얼마 전 촬영을 마친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에서는 형사 ‘이동혁’을 맡았다. 그에게 꾸준히 연기하는 힘, 그 기쁨을 물었다. “작업하면서 한두 사람씩 제게 마음을 열게 되고, 저 역시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 생기는 일이 가장 행복해요. 최근 작품을 하면서도 친구들이 몇 생겼어요. 좋은 사람이 한두 사람씩 곁에 생기는 것이 가장 기쁘더라고요. 결국 그게 제 삶이 되겠죠.” 연기가 삶과의 끊임없는 친밀한 접촉이라면, 그가 인터뷰 중에 한 말대로 그 삶을 흡수하고 소화해 살을 붙여가는 것이 배우의 일이라면 김대명은 자신의 연기와 삶, 사람을 분리하지 않은 채 무엇도 쉽게 놓지 않으며 그 모두에 충실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오랜만이죠? 영화 <마약왕>개봉할 때 인터뷰를 따로 안 했으니까요. 맞아요. 오랜만이에요.

과거 인터뷰나 평소 일상의 모습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별로 없더라고요. 뒷조사가 쉽지 않았습니다. 작품 말고는 아무 흔적이 없어요. (뒷조사) 할 것도 없어요.(웃음) 성격도 그렇고… 심심한 사람이라.

몇 번의 재수 끝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고 이후 연극 무대에 오르며 20, 30대를 보냈죠. 배우 김대명에게 연기는 오랜 생각거리였겠구나 싶었습니다. 입시 준비를 포함해 지금까지 20년 동안 연기를 해왔으니 연기를 빼면 다른 이야깃거리가 많지 않은 사람이긴 해요. 그렇다고 주야장천 연기에만 빠져서 앞도 뒤도 안 보고 매진하거나 골방에 틀어박혀 골몰한 건 아니고요. 결과적으로 배우라는 직업이 여러 삶을 끌어다 살을 붙여서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연기에 제 삶도 같이 묻어온 것 같아요.

배우의 길을 일찌감치 선택해 한눈팔지 않고 걸어오는 과정에서 ‘나는 어떤 부류의 배우일까’, ‘어떤 길을 가야 할까’ 하는 고민은 없었나요?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있었으면 그 일을 했을 텐데 그게 없었던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아요. 더 행복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제빵이나 요리, 그림 등 연기보다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할 것 같거든요. 제게 인생에서 행복이 중요한 화두거든요. 연기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배우 이전에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요.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잖아요. 그때는 휴대폰도 없었고, 제가 멍하니 생각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반응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글을 쓰는 것과 연기를 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요. 고민해서 결국 표현해낸다는 점에서요.

글과 달리 연기는 나라는 사람을 재료로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다르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하죠? 그렇죠. 얼굴을 드러내고, 몸을 이용해서… 아, 이건 너무 거창한데 (인터뷰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웃음)

김대명의 연기에 대해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부분이 작품 안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죠. 영화 <마약왕>에서 말 잘 듣는 착한 사촌 동생도 김대명 같은데, 극 후반 독기에 찬 마약중독자의 모습도 낯설지 않아요. 감사하죠. 저는 관객들, 저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길 원하거든요. 어떤 역할에 대해 ‘아, 이상할 것 같아’ 하고 쉽게 짐작하기보다 ‘김대명이 저걸 어떻게 할까?’ 하고 궁금해하셨으면 좋겠어요. 한데 그 궁금증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 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질감을 줄여가려고 노력하는 편인가요? 글로만 읽었을 때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을 수 있잖아요. 마약을 한다거나 하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배우로서 그 이유를 수십, 수백 가지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100% 맞지 않더라도 80~90%는 맞을 만한 답을 계속 고민해야겠죠. 관객이 설득당할 만한 이야기를 준비해야 이질감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다행히 이 과정을 힘들어하는 편은 아니에요. 오히려 재미있어요. 고민하고 답을 찾기 위해 어디 가서 멍하니 잡생각도 많이 하고요. 어릴 때부터 엉뚱한 생각 하는 걸 좋아했어요.

현장에 가기 싫을 때도 있어요? 싫다기보다 두려울 때가 있죠. 누가 봐도 이 신은 내가 잘해야 하는 신이고, 감정적으로든 혹은 영화 전체적으로든 매우 중요한 신을 찍는 날에는 저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가 텐션이 한껏 올라간 상태로 현장에 와요. ‘오늘 쟤가 잘해줘야 할 텐데’ 하겠죠.(웃음) 저만 바라보는거죠. 연기는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고, 영화 제작 역시 많은 사람이 같이 만들어가는 일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오롯이 내가 절대적으로 잘 표현해야 하는 때가 있어요. 내가 해야 할 할당량을 누군가 대신 해주지 않으니까요.

현장에 없는 김대명, 한 사람의 생활자로 살아가는 김대명은 평소에 주로 뭘 해요? 뭐 없죠.(웃음) 촬영이 없을 때는 에너지를 크게 쓰지 않는 편이에요. 일을 하면 할수록 삶과 생활의 중심이 확실히 촬영에 맞춰지더라고요. 익스트림 스포츠나 몸이 다칠 만한 일도 하지 않게 되고요. 스키를 타거나 다른 운동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내가 다치면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거든요. 촬영이 없을 때는 다음 촬영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인 거죠.

주변 친구들은 뭐라고 해요? 재미없게 산다고 그러죠. 배우가 되면 화려하게 살 줄 알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고 좋게 말해주기도 하는데, 이제는 ‘너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사냐’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근데 저는 되게 재미있는데? 재미있어요. 여행 다니고, 걷는 것 좋아하고.

배우에게는 많은 경험이 재료가 돼 연기에 도움을 준다고 하잖아요.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말도 하고요. 간접경험이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다큐멘터리도 많이 보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 보는 거 좋아해요. 별일 없어도 지방에도 많이 다녀요. 시골 장날 찾아다니고, 장터에 앉아서 사람들도 관찰하고요. 시장에 앉아 있으면 제가 누군지 다들 모르세요. 영화 <돌멩이>를 촬영하는 중에도 시골 마을을 많이 돌아다녔거든요. 마을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요. 배우인지도 모르니까 나중에는 저한테 일도 시키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아요.

그렇죠.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를 뿐이죠. 여행 가도 관광지보다는 오래된 가게에 가서 주인아저씨 이야기를 듣거나 그곳 사람들과 막걸리 나눠 마시면서 제 안에 쌓이는 것이 분명히 있어요. 굉장히 많이요. 그런 데서 연기적으로도 배우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많이 배우게 돼요.

경험을 기록하는 편인가요? 전에는 어떤 순간이 좋아서 최대한 느끼려고 했다면, 지금은 단어로라도 써서 남겨두려고 해요. 왜 요즘은 다 신용카드를 사용하잖아요. 카드 내역서 보면 지난 시간이 떠오르긴 하더라고요. 이게 일기 아닌 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금 신고할 때 1년 치 명세서를 모아 1월1일부터 보고 있으면 이때 뭘 했고, 누구를 만났고, 무슨 작업을 하던 때라는게 다 보이더라고요. 어느 식당에서 결제했는지 알면 그 식당에서 들었던 노래, 주인아저씨가 했던 이야기도 생각나고요.

학전이라는 좋은 극단에서 연극을 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왔죠. 연극배우로 산 경험이 지금의 김대명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좋은 연출선생님들, 선배와 동료들을 만나며 많이 배웠어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죠. 작품 할 때도 그렇지만 평상시에도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또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요. 부모님께 어릴 때부터 많이 들은 말이고요. 좋은 사람이 저를 얼마만큼 이끌어갈지, 그 중요성을 점점 더 깊이 체감하는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내게 돈을 내어주고 기회를 주는 것보다 주위의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의 마음이 저를 더 크게 키워준다는 것을요.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요.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만 그런 사람들이 내게 오더라고요. 내가 나쁜 사람이라면 오지 않겠죠. 노력은 하는데 잘되고 있는지….(웃음)

배우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좋은 배우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에 동의해요? 깊이 동의하는 편이에요. 좋은 배우가 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우 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게 아니라 행복하려고 하는 건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뭐가 좋을까? 물욕도 그렇게 많지 않은데…. 식구들 아플 때 병원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는 정도만 돼도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현장에서든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한 일 같아요. 안 되면 좋은 사람인 척이라도 해야 한다고요.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건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돈을 줄 수는 없잖아요.(웃음)

좋은 연기를 줄 수 있죠. 그건 제가 혼자서 고민하고 여러 사람과 많이 회의하고 하면 되지만, 어떻게 보면 한 작품을 하면 보통 3~5개월 길면 1년까지 동고동락하는데 내가 나쁜 사람으로 곁에 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하겠어요. 그게 너무 싫더라고요. 저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력하려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겠죠. 작업하면서 한두 사람씩 제게 마음을 열게 되고, 저 역시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 생기는 일이 가장 행복해요. 최근 작품을 하면서도 친구들이 몇 생겼어요. 좋은 사람이 한두 사람씩 곁에 생기는 것이 가장 기쁘더라고요. 결국 그게 제 삶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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