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부문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온 파이어
PORTRAIT OF A LADY ON FIRE

프랑스의 떠오르는 여성 감독 셀린 시아마의 작품. 그는 이 영화로 올해 칸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18세기를 배경으로 결혼을 앞둔 엘로이즈(아델 아에넬)와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메를랑)의 사랑을 조명하는 영화다. 시대의 비극에 갇힌 두 여성의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는 대신, 이들이 함께 보낸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충만하게 묘사하는 데 의의를 둔다. <캐롤>(2015)의 시대극 버전 같기도 하고, 인물 간의 배신과 음모가 사라진 <아가씨>(2016)의 해외 버전 같기도 하다면 이해하기 쉬울까. 예술가인 여성 캐릭터의 성장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기도 하다.

더 와일드 구스 레이크
THE WILD GOOSE LAKE

범죄 스릴러 <백일염화>(2014)로 제6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디아오 이난의 신작. 지아장커 이후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렇다 할 감독이 나타나지 않던 중국 영화계에서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연출가다. 조직 와해와 살해 누명을 쓴 채 쫓기는 남자와 의뭉스러운 의도로 그에게 접근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1950년대의 프렌치 누아르와 1980년대의 애수 어린 중국 영화 사이 어디쯤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독특한 작품이다. 일부 액션에서는 일본 B급 무비를 연상케 하는 스타일을 접목하는 등 과감한 연출이 돋보인다. 중국의 미남 배우 호가와 한국 관객에게도 익숙한 배우 계륜미의 열연도 영화의 매력을 높인다.

리틀 조
LITTLE JOE

앨리스(에밀리 비샴)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꽃을 개발하는 실험실의 연구원이다. 아들의 이름을 따 꽃에 ‘리틀 조’라는 애칭을 붙이고 연구에 매진하던 그는, 꽃에 일종의 부작용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주변 사람 모두 이미 부작용에 노출된 뒤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색감과 구도를 철저하게 계산한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실감이 전혀 들지 않는 인위적인 연출, 종묘제례악(실제 그렇게 들린다!)을 연상케 하는 기이한 음악은 모든 것이 통제 된 실험실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배가한다. 모성의 비극, 행복을 향한 강박을 보는 새로운 시선이 영화 전체에 녹아 있다. 에밀리 비샴은 이 작품으로 올해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파피차
PAPICHA

1990년대의 한복판. 긴 내전 중인 알제리는 모두가 다른 나라로 떠나기를 꿈꾸며 어쩔 수 없이 버텨내는, 우울한 대기실 같은 공간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기준에 반하는 자들이 테러와 살해 위협에 시달리 는 게 일상인 날들. 여성을 향한 폭력은 상상 이상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미래의 꿈을 키우는 20대 여성들의 생명력은 쉬이 꺾이지 않는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는 네즈마(리나 쿠드리)는 기숙사의 친구들과 함께 패션쇼를 준비한다. 자신들의 억압을 상징하는 히잡을 만드는 원단으로 옷을 만드는 방식으로. ‘Papicha’는 아랍어로 예쁜 아가씨라는 뜻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상황을 바꿔가려는 젊은 여성들의 용기와 우정에 집중한 연출은 그들의 펄떡이는 심장 박동까지 전달할 듯 생생하다. 후반부의 다소 충격적인 전개는 그 시절 야만적이었던 폭력의 당위를 노골적으로 되묻는 듯 보인다.

온 어 매지컬 나이트
ON A MAGICAL NIGHT

중년의 부부에게 권태기가 찾아온다. 아내는 집을 나와 건너편 호텔 212호에 묵기로 한다. 남편의 바람기에 지친 아내의 반란을 예상한다면, 틀렸다. 툭하면 당당하게 외도를 즐기는 건 아내 마리아(키아라 마스트로야니) 쪽이다. 마리아가 호텔에 묵는 하룻밤 동안 212호는 20대 시절 마리아의 남편, 남편을 가르쳤던 교사, 마리아의 어머니와 할머니 등 시공간을 초월한 인물들로 북적인다. 그리고 대토론의 장이 펼쳐진다. 주제는 ‘이 결혼, 과연 옳았는가’. 영화는 결혼과 사랑, 중년의 위기라는 익숙한 소재에 판타지를 버무려 참신하게 돌파하는 코미디다. 룸 구석구석을 요령있게 활용하는 카메라를 따라 촌철살인의 대사를 듣고 있으면, 이야기는 결국 우리 모두 잘 아는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달린 문제라는 생각에 새삼 도달하게 된다. 이토록 상큼하고 섹시한 40대 중년 ‘기혼’ 여성 이야기라니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