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장마가 이어지던 7월의 어느 날, 기다리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논산의 꽃비원도 아침부터 내린 비로 배나무며 옥수수, 콩, 허브 등이 비를 흠뻑 맞고 있었다. 논산에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올해로 7년째인 정광하, 오남도 부부는 이른 새벽 농사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제대로 내리는 비를 반기는 중이었다. 7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꽃비원은 소소하게 계속 변화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배나무가 있는 과수원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농사 첫해에는 과일이 열리지 않으니까 채소를 심기 시작했죠. 그렇게 한 1년쯤 농사를 짓다가 마르쉐@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나무에 과일이 열린 후에는 그 과일을 마르쉐@에서 팔았어요. 그곳에서 만난 분들과 채소로 연결되면서 꾸러미를 시작하게 됐죠. 이제는 배나무를 좀 줄이고 그곳에 채소를 더 많이 키우고 있어요.” 그간 일어난 여러 변화 가운데 가장 달라진건 주변 지인 몇몇이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는 거다. 그중 마르쉐@를 통해 알게 된 아스튜디오(ah studio)의 도예가는 논산에 작업실을 열어 가마를 들여놓고 도자기를 빚는다. 이제는 농사뿐만 아니라 레스토랑과 농가 민박인 ‘꽃비원 홈앤키친’을 시작했는데, 요리에 이용하는 재료 대부분을 직접 키우고 재배한다. “메뉴는 계절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요. 지금은 감자와 양파, 마늘을 수확해서 감자그라탱이 있고 바질 피자, 채소 파스타와 구운 제철 채소가 올라가는 커리가 있어요.”(오남도) 7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변화가 있었지만 지향하는 방향은 한결같다. 시골 생활을 하며 작물을 많이 기르되 판매에 중심을 두지 않고 자급자족을 우선시했다. 먹고 싶은 것을 키우고, 나와 가족이 먹을 채소이니 자연 상태에 가깝게 재배했다. “시골에 사는 가장 큰 즐거움은 아무래도 여유죠. 건물에 가려지지 않은 뻥 뚫린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서울에 계속 있었으면 아마 회사에 다녔을 텐데 그러면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했겠죠. 농사일이 바쁘고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일정과 상태에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일정을 조정할 수 있어요.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오남도)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해야 하잖아요. 멈춰 있으면 심리적으로 불편하고. 그런데 시골에서는 보다 주체적으로 살 수 있어요. 내가 무엇을 하는지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사실 농사일도 회사 일만큼이나 바쁘죠. 하지만 일과 생활에 더 많이 집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달라요.”(정광하) 물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삶이 늘 즐거울 수만 은 없다. “위기가 계속되고 있어요.(웃음) 작년엔 고비라고 생각 했어요. 7월 초에 비가 일주일 동안 내리 내렸거든요. 그 일주일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죠. 비가 그치자 이번에는 엄청 뜨거운 날이 계속됐어요. 그때는 수확물이 거의 없어 꾸러미를 채우지 못했어요. 그래도 식당을 함께한 덕분에 지속적인 수입은있었죠. 꽃비원 홈앤키친을 시작할 때도 꾸러미를 받는 친구들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꾸러미 식구들이 이곳에 와서 요리 수업을 하기도 하고, 팝업 식당을 하면서 이곳을 알릴 수 있었거든요.” 이는 마르쉐@가 지향하는 바와도 같다. 농부와 요리사,소비자가 서로 소통하는 시장. 인연이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새롭고 즐거우며 이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감사하게도 꽃비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30가구에 꾸러미를 보냈는데 지금은 20가구로 줄였어요. 그 정도가 소통하기 가장 적절한 수량이더라고요. 처음부터 꾸러미를 사업적으로 늘릴 생각도 없었고요. 그분들과 소통하며 꽃비원의 1년 동안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어요. 꾸러미에 계절이 담기는 거죠. 그리고 되도록 원형 그대로 보내드려요. 그래서 흙도 많이 묻어 있죠. 당근을 예로 들면, 잎까지 보내드려요. 우엉도 마찬가지고요. 채소의 온전한 형태를 보며 함께 느끼도록 하고 싶었어요.”(정광하) ”꾸러미를 보낼 때 편지에 다음 꾸러미에 뭐가 담길지 적어 보내요. 그럼 받아보는 분들이 다음에 뭐가 올지 짐작하고 기다리시죠.”(오남도) 올해 꽃비원은 푸‘ 드 어셈블리’를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O2O 서비스로,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오프라인으로 픽업 하는 방식이다. SNS를 통해 마르쉐@에서 판매할 채소 품목을 미리 공지하면 주문서를 받고 결제까지 마친 후 마르쉐@에서 전달하는 식이다. 보증금을 받고 천 주머니에 담아 파는데, 다음 마르쉐@에 천주머니를 가져오면 보증금을 돌려준다. 이렇게 하면 복잡한 시간을 피해 채소를 가지러 올 수 있으니 보다 여유롭게 소비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재고 관리도 좀 더 수월해지는 장점이 있다. 말하자면 선택형 꾸러미인 셈. “마르쉐@ 에 나간 지 6년 차가 됐어요. 그동안 채소로 연결된 많은 인연을 만났고, 마르쉐@와 함께 성장했죠. 앞으로도 ‘시골살이’라는 방향성은 비슷하겠지만 조금씩 상황에 맞춰 계속 변화할 것 같아요.”(정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