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사이즈, 다양한 인종, 성별을 예측할 수 없는 외모 등 런웨이 위 모델의 모습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지만 단 한 가지, 모델의 연령만큼은 여전히 간과해온 것이 사실이다. 현재 패션계가 선호하고 왕성히 활동하는 모델은 대부분 25세 미만이고 대다수가 미성년자다. 많은 하우스 브랜드의 주요 고객이 50세 안팎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젊은 모델을 선호하는 현상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반갑게도 이번 시즌 컬렉션 쇼에서 많은 디자이너가 중년 모델을 기용했다. 특히 다인종이 어우러져 ‘멜팅 폿(melting pot)’이라는 별칭을 가진 도시답게 뉴욕 패션위크에서 중년 모델의 비중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뉴욕을 대표하는 브랜드 마이클 코어스와 마크 제이콥스 쇼에 다양한 연령의 모델이 등장했고, 비전문 모델을 자주 캐스팅하는 브랜드 레이첼 코미 역시 중년의 모델을 런웨이에 세웠다. 시니어 모델의 활약은 컬렉션이 열리는 다른 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MM6 프레젠테이션은 대부분의 모델을 노인으로 구성해 주목받았으며 막스마라, 에트로, 살바토레 페라가모, 발렌시아가도 시니어 모델 캐스팅 추세에 동참했다.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는 데는 레트로 트렌드의 폭풍적인 인기가 한몫했다. 레트로 패션의 인기에 힘입어 1970~90년대를 휩쓸었던 신디 크로퍼드나 나오미 캠벨, 팻 클리블랜드 등 이미 전설이 된 슈퍼모델들이 런웨이에 다시 등장한 것이 시니어 모델 전성기가 도래하는 물꼬를 튼 것이다.

중년 모델을 캐스팅한 효과는 그들이 딸이나 손녀뻘의 젊은 모델들과 함께 등장했을 때 시너지가 더욱 커진다. 크리스티 털링턴은 서른두 살이나 어린 10대 모델 웅바드 아브디와 같은 컬렉션에 섰고, 버버리 컬렉션에 선 스텔라 테넌트 역시 스물한 살의 아녹 야이와 함께 워킹했지만 이질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이가 주는 강박에서 벗어나 젊은 모델들과 함께 무대에 선 시니어 모델들은 더없이 멋졌고 그들만이 가진 분위기로 런웨이를 장악했다. 실제로 이들의 워킹을 목격한 후 에디터 역시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 인자함, 우아함, 정숙함 등 중년에게 기대하던 이미지와 연령별로 잘 어울리는 옷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 하우스 브랜드의 PR 담당자는 패션에서 나이가 무의미해진 것이 비단 런웨이에 국한한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모델은 현대사회 모습이 그대로 투영돼 있어요. 10대부터 7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에 동시에 어필할 수 있어야 하죠. 실제로 가장 매출이높은 백은 어린 소녀부터 노년의 할머니들까지 두루 인기가 있답니다.” 이 같은 사실은 패션계에서 늘 중시하던 ‘타깃 연령’이 의미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최근 정형화된 미의 기준에서 탈피하는 #탈코르셋 현상이 거세다. 사회적으로 아름다움의 기준에 어린 여성이라는 틀을 만들고 나이 들어가면서 불안해하는 것 역시 사회적 코르셋의 일종이다. 컬렉션에 등장하는 중년 모델들이 보여준 파워풀한 워킹이야말로 탈코르셋에 동조하는 의미 있는 움직임이 아닐까. 정형화된 아름다움과 나이라는 틀에 여성을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니어 모델의 활약이 더욱 거세지기를 바란다. 단언컨대 스타일에 나이 제한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