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씨에이치는 애니 오클리(Annie Oakley)에게 영감을 받았다. 명사수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였던 그녀의 모습은 숲을 연상시키는 프린트와 직선적인 실루엣의 수트, 강렬한 인상을 주는 가죽 소재를 통해 런웨이 위에 재현됐다. 간혹 가슴골이 보일 만큼 깊이 풀어 헤친 셔츠나 시스루 팬츠처럼 이질적인 옷이 등장해 의미 있는 주제와 맞지 않는 인상을 주었으나, 옷 자체의 미감만 따진다면 멋스러웠다. 이번 쇼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액세서리를 절묘하게 매치하는 윤춘호의 능력이다. 끈을 달고 목에 감아 연출한 버킷 햇이나 건축적 디자인의 신발, 장총 케이스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형태의 가방은 룩의 완성도를 몇 배로 높이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서울패션위크 기간에 그의 쇼를 볼 수 없는 건 아쉬웠지만, 한국 패션의 높은 수준을 알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충분한 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