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 블루 재킷과 와이드 팬츠, 실크 셔츠, PVC 슈즈 모두 디올 옴므(Dior Homme).

최근 뉴스가 영화 <범죄도시 2>의 새로운 캐릭터로 합류한다는 소식이다. ‘장첸’ 못지않게 극악무도한 ‘빌런’으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이상하게 악역을 많이 제안받는 편이다. 감독들이 내게 날카로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범죄영화는 친숙한 장르는 아닌데, 여러 차례 제안받다 보니 ‘그래 할 거면 제대로 센 거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결정했다.

선택에 어려움은 없었나? 전편의 성공으로 부담이 클 수도 있을 텐데.
나보다 오히려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그 말을 듣고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이상하게 부담이 없다. 왜 부담스러울 거라고 하는지는 안다. 전편이 큰 성공을 거뒀고, 윤계상 선배님이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했으니까. 비교될 수밖에 없고, 2편이니까 좀 더 나아야 한다는 기대도 있을 테고. 그런데 나는 전편의 존재가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참고할 수 있는 교과서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전편의 조감독을 맡았던 이상용 감독님을 포함해 피디, 촬영감독 등 <범죄도시>라는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이 그대로 함께하기 때문에 든든하다. 이 영화가 왜 관객에게 사랑받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다음에는 뭘 해야 할지 정확한 방향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이들이 하라는 대로 잘 따라가면 되겠구나’ 생각한다.

블랙 재킷과 쇼츠, 셔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맡은 배역의 이름이 궁금하다.
‘강해상’. 이번에는 한국 사람이다.(웃음)

드라마 <마더>의 ‘이설악’을 포함해 <슈츠>의 ‘데이빗 킴’, 그리고 <범죄도시 2>까지. 이쯤 되면 내게 악인 기질이 있나 살펴보게 될 것 같다.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닌데.(웃음) 악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저렇게 행동하는지 찾아볼 때도 있었다. 뉴스도 보고 다큐멘터리도 보면서. 어릴 때 학대당한 사람도 있고, 다른 이유를 가진 사람도 있는데, 사실 그걸 다 알기는 불가능하고 알려고 하는 것도 괴롭더라. 그래서 지금은 내가 정서적으로 어떨 때 어두워지는지 찾아보려고 한다.

프린트 셔츠와 레이어링한 티셔츠, 블랙 팬츠, 로고 장식 스니커즈 모두 발렌티노(Valentino).

촬영은 시작했나?
아직. 준비하는 중이다.

이런 시간은 어떻게 보내나? 요즘도 빠져 있는 유튜브 영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전 인터뷰를 보니 그때 빠져 있는 영상 얘기가 꼭 있더라. 먹방에 빠졌다가, 댄스 리뷰에 빠졌다가.
물론 있다. 요즘은 ‘장삐쭈’ 영상을 보고 있다. 만화 병맛 더빙으로 유명한 분인데, 구독자가 2백만 명이 넘는다. 초반에는 기존 만화에 자기 목소리를 재미있게 더빙했는데, 요즘에는 직접 만화도 만든다. 심지어 카톡에 장삐쭈 이모티콘도 있는데, 요즘 말보다 이 이모티콘을 더 많이 쓴다. 이걸로 모든 대화가 가능하다.

혹시 직접 유튜버로 나설 생각은 없나?
같이 일하는 친구이자 스타일리스트가 <새신을신고>라는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는데, 최근 거기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 계정을 만드는 건 잘 모르겠다. 나중에 드라마 하면 현장 스케치를 해볼까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만드는 것 말고 보는 데 관심이 더 많다.

블랙 재킷과 플라워 패턴 셔츠 모두 펜디(Fendi).

유튜브에서 ‘손석구’를 검색하면 조회 수가 가장 높은 영상이 어떤 건지 알고 있나?
모른다. 연기 영상 아닐까? 내 영상은 아마 그게 전부일 거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전여빈 배우와 같이 나온 장면의 편집본. 조회 수가 무려 2백30만 회다.
<멜로가 체질>에 내가 등장하는 장면이 다 합해도 10신 내외인데, 의외로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여빈이와의 케미 때문인가? 시청률이 엄청 높은 드라마는 아니었는데 마니악하게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동안 유튜브를 포함해 의외의 매체에 느닷없이 등장했다. 강한나 배우가 진행하는 라디오에도 출연했고, 팟캐스트 <창밖의 영화>에 나와 영화 얘기도 했다.
그런 데 가끔 나가는 거 재미있다. 친한 사람들이랑 하는 거라 부담도 없고, 나를 좋아해주는 분들한테 작품 안 할 때 인사할 수 있는 계기도 되어 괜찮은 것 같다. 특히 <창밖의 영화>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또 나가고 싶다. 라디오 부스에 앉아서 영화 얘기만 3시간 정도 하다 오면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나고 무척 즐겁다. 진행자들의 능력이 출중하다.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손석구라는 사람은 배우이기 이전에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시네필이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왜 그렇게 좋은 건가? 어릴 때 친구가 거의 없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영화가 친구 같은 존재였다. 미국에 살 때 ‘블록버스터’라고 DVD를 대여해주는, 우리나라로 치면 비디오 가게가 있었다. 거기에 가서 영화를 고르는 일이 너무 좋았다. 한두 시간씩 골랐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보고, 연체료도 내고(웃음), 이러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그때 아주 많은 영화를 봤다. 처음에는 제일 앞줄에 진열된 흥행작을 보고 그걸 다 보면 점점 구석으로 간다. 나중에는 인터내셔널과 아트 섹션 영화까지 거의 다 봤다.

그때 본 작품 중 하나가 <브로크백 마운틴>인가?
그건 캐나다에 있을 때 봤다. 그것도 나오자마자 바로 보지 않고 ‘블록버스터’에 가서 빌려 봤다. 보자마자 단번에 꽂혀서 엄청 여러 번 빌려 본 기억이 있다. 그때 나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너무 좋아서 나중에는 설거지할 때도, 청소할 때도 내내 틀어놓기도 했다.

꽤 다양한 곳에서 <브로크백 마운틴>과 이안 감독을 향한 팬심을 고백했다. 이안 감독과 작업하는 게 바람이라고 말한 적도 있는데,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가장 좋은 어필은 어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무슨 말을 하기보다 그분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만 하고 싶다.

이안 감독에게 본인의 필모그래피 중 한 작품을 보여준다면?
드라마 <마더>와 예전에 최희서 배우와 함께 찍은 단편영화 <접점>. 감독님의 감수성과 가장 잘 맞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고, 나도 그런 장르를 좋아한다. 얼마 전에 우연히 <마더>를 다시 봤는데 뭔가 좋았다. 미국 드라마 <센스8>을 찍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출연한 상업적인 작품인데, 무지한 상태에서 연기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봤자 한두 해 차이지만 지금과 완전히 다르더라. 어떤 면에서는 그때 연기가 좋고, 그래서 다시 이런 걸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무지한 상태에서 한 순수한 연기를 다시 하는 게 가능할까?
가능할 거다. 왜냐하면 지금도 크게 똑똑해지지 않아서. 하하. 그건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많이 돌아보고 살피다 보면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캐멀 컬러 쇼츠 모두 프라다(Prada), 화이트 셔츠 휴고 보스(Hugo Boss).

일과 일상을 잘 분리하는 편인가? 아무리 바빠도 지키고자 하는 일상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일상을 건강하게 잘 유지하는 것도 더 나은 연기를 보여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할 때도 일상도 알차게
보내려고 한다. 운동은 꼭 하고, 잠을 잘 자려고 한다. 나가서 노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촬영할 때도 생각보다 여유 시간이 많다.

운동이라면 농구를 말하는 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농구라고 들었다.
요즘엔 날이 추워서 잘 안 한다.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얼마 전에 슬픈 사건이 생겨서 안 보고 있다.

헬리콥터 사고로 세상을 떠난 코비 브라이언트 말인가?
아침에 운동을 하려고 일어났더니 LA에 사는 친구가 그 기사를 보내줬다. 너무 놀랐고, 마치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느껴질 정도로 슬펐다. 아마 우리 세대에 맞닥뜨린 가장 충격적인 셀럽의 죽음이 아닐까 싶다. 되게 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나는 그를 보면서 연기를 배우기도 했다. 농구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며, 나도 연기를 저렇게 대해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스승이 가셨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되게 슬펐고, 나름 혼자서 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했다.

그에게서 어떤 정신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나?
할 수 있는 한 최고가 되기 위해 돌아보지 않고 가는 것.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 데 눈치 보지 않는 태도. 실제로 그는 타고난 조건도 좋았지만 그걸 최대치로 끌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한다. 또 평소 질문을 아주 많이 했다는 말도 들었다. 감독이나 코치뿐 아니라 사업가든, 음악가든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배움을 얻고자 한 거다. 나는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창피하게 생각할 것 없이 모르면 물어보고, 눈치 보지 않고 어떻게든 열심히 하는 것. 그에게서 이런 태도를 배우고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배운 대로 실천하면서 살고 있나?
확실히 나는 그처럼 열심히 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고, 무엇보다 질문하고 의견 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고집부린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의견을 냈다가 아니면 빨리 접고, 모르는 건 물어본다. 그게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거절당하는 의견일지라도?
그렇다. 아니면 말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