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연령이 만 18세 이상으로 낮아졌다. 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마지막으로 투표권을 쟁취한 이들은 4월 16일, 생애 첫 번째 투표를 앞두고 있다. 우리는 지난한 시간 속에서 치열한 논쟁 끝에 투표권을 갖게 된 14명의 만 18세 유권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직업도, 선택한 삶의 방향도, 취향도 각기 다른 이들은 자신과 친구들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선거에 대해서 아주 솔직한 생각을 들려줬다. 여기에는 나이와 성별, 금전적 환경에 따른 편견이 없는 세상,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사회를 바라는 열망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잠시라도 이들의 바람대로 우리 사회가 꿈을 꾸길 바란다.

김효동(래퍼)
우연히 길을 걷다 들은 힙합 음악에 꽂혀 랩을 시작했다. 왠지 내가 해도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고등래퍼 2>에 지원해 본선에 진출했고, 이후 지금까지 랩을 하고 있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톤을 살린 개성 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꿈이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랩을 하기에 적합하진 않았다. 랩을 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고등래퍼 2> 방송이 나가기 전까지 언제나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님을 포함해 선생님, 심지어 친구들도 일단 공부하고 랩은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거라며 말렸다. 이유는 하나였다. ‘공부를 잘하는데 아깝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혼자 했다. 랩을 배울 수 있는 학원도 없고, 선생님도 없었지만 혼자 사운드클라우드와 유튜브를 보면서 장비를 사고 연습을 했다.
만 18세가 살기에 한국은 아직 꼰대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닫혀 있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본인의 생각으로만 판단하는 사람. 많이 나아지고 있지만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 늘었으면 한다.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미국과 이란의 대립. 뉴스를 보다 보면 전쟁이 아주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무섭기도 하고, 남북 관계는 어떻게 될지 걱정도 된다. 만약 전쟁이 나면 6·25전쟁 때 미국이 파병을 온 것처럼 나와 같은 세대들이 미국으로 파병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신경을 쓰게 된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좀 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원하는 일에 몰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비트 메이킹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면 한다. 또 이미 꿈을 이룬 유명한 아티스트를 만날 기회도 있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하는 세상. 청소년의 인생 최대 목표가 대학이 아닌 세상. 대학이라는 공통 목표만 없어져도 사람들이 자신을 직면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을 거다. 대학이 아니라 꿈에 목메는 사회를 바란다. 그리고 전쟁 없는 세상.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찬성의 편을 들어줘 기쁘다. 물론 반대 여론도 인정한다. 어른들이 보기에 만 18세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 아이들로 보일 테고, 잘 모르는 애들이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될 거다. 그런데 지금은 학생들도 정치에 다가갈 수 있는 플랫폼이 많다. 그리고 요즘 애들은 생각보다 뉴스에 민감하다. 지금 사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고등학교 1학년도 안다.
투표권 외에 만 18세에게 주어졌으면 하는 것은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을 배려해주는 정책. 얼마 전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12월까지만 해도 8천원이던 입장료가 1만원으로 올라 조금 부담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통비도 마찬가지다. 대학생 할인이 있긴 하지만, 대학에 가지 않는 사람도 스무 살까지 배려해주는 제도가 있으면 더 좋겠다.

이시은(유튜버)
‘아트비트’라는 댄스 크루에서 활동하면서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흥부자시은’이라는 계정을 만들었다. 공고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제작한 학교생활을 담은 영상이 좋은 반응을 얻으며 27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게 됐다. 앞으로 유튜브를 통해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작정이다.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일본 관련 뉴스. 이에 관한 영상도 많이 찾아 봤다. 영상을 보기 전에는 가볍게 생각했는데, 보다 보니 애국심이 불타오르는 중이다. 또래 사이에서 가장 핫한 것은 K-Pop. 그중에서도 트와이스랑와 방탄소년단이 핫하다. 댄스 영상을 올릴 때도 두 팀의 곡은 언제나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직업의 다양성.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의 장. 나는 지금 댄스 크루에서 춤을 추면서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버를 직업으로 삼는 동시에 디제잉도 배우고 싶고, 홍보나 마케팅 관련 일도 해보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는 말이 돌아온다. 아직 시간이 많은데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면 안 되나. 남들처럼 떠밀려서 가는 대학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찾고 싶어서 재수를 선택했는데, 이런 내 상황을 알면 뭐라고 하는 어른이 있을 거다. 뭐든지 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지금 내게는 가장 필요하다.
내가 바라는 좋은 세상은 편견 없는 세상. 내 유튜브에서 가장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이 ‘공고에서 여학생으로 살아남기’다. 이 영상을 만든 이유는 공고에 다니는 여학생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응 중에 무섭고 불량한 애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는 말도 많다. 그렇지만 제일 좋은 건 애초에 편견 없이 바라보는 시선이다.
만 18세부터 유권자에 포함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들끓었던 찬반 여론은 처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전에는 투표권을 얻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컸는데, 막상 투표권이 생기니 관심이 생기더라.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간 크고 작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왔다. 그러니 투표할 권리가 충분하다. 나도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한 표를 행사할 생각이다.
만약 내가 총선에 나간다면 교육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어른들 말고 교육 당사자인 만 18세를 포함한 학생들이 직접 의견을 내고 정책에 관여할 수 있는 폭을 넓히겠다.

강지원(영화과 학생)
어릴 때부터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으며, 앞으로 대학교에서 연출 공부를 이어갈 예정이다. 캐서린 비글로 감독을 존경하고, 스릴러 장르를 사랑한다.

내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은 성적으로 평가받는 세상.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은 학생을 성적만으로 평가했다. 간혹 숨은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봐주는 선생님도 계셨지만 드물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방식이 더 노골적이었다. 다행히 나는 이런 폭력적인 잣대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꿈을 꾸면서 좋아하는 것을 배웠기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많은 친구들이 꿈을 발견하지 못한 채, 점수에 맞추어 대학을 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가장 신경 쓰는 사회적 이슈는 젠더 문제. 지난 2017년 시작된 미투 운동을 보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는 견고히 버티고 있다. 또 성범죄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도 많다. 최근 여론을 보면 무작정 성별로 나뉘어 싸우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데, 젠더 문제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 같이 평등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로 정의할 수 있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간다. 삶이 팍팍해서, 일이 바빠서, 이유는 다양하지만, 어쨌든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으면 굳이 나서서 누군가를 도우려고 하지 않고 대화조차 꺼린다. 최근 뉴스에서 홀몸노인 고독사 소식을 자주 접하는데, 소통의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요즘 ‘나만큼은 다르게 살자’라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안부를 묻고, 눈을 맞추면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은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 확충.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다양한 영화가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 시장에서 독립영화의 비중은 매우 낮은 편이다. 대중이 독립영화를 선호하지 않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제작에 대한 지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이유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보다 활발한 투자나 지원이 이루어져 꿈 많은 감독들이 보다 자유롭게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펼칠 수 있었으면 한다.
내가 바라는 좋은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나답게’ 사는 것. 누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귀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누구나 존재만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타인의 시선을 걱정할 필요 없이 원하는 삶이길 바란다.
선거에서 표를 잃을 만한 공약은 소신과 철학 없이 정당을 계속 옮겨다니는 철새 같은 국회의원의 헛말. 구체적인 해결 방안이 없는 유명무실한 정책. 극단적인 진영 논리에 치우친 공약.
바람직한 유권자란 수많은 사람이 이 권리 하나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 누구나 학교 역사 수업을 통해 참정권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통해서 주어졌는지 알 거다. 앞선 사람들이 미래의 우리를 위해 얻어낸 권리를 귀찮다거나 놀러 가기 위해 포기 하진 말자. 그리고 표를 보다 신중히 행사해야 한다.